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0/16 13:45:23
Name 오곡쿠키
Subject [일반] <조커2 : 폴리 아 되>에 관한 옹호론 (1,2편 스포有) (수정됨)
며칠 전 조커2편을 보았습니다. 평이 대체로 좋지 않아 큰 기대 없이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인상은 아마 제가 <조커> 1편을 비롯해 딱히 DC 유니버스의 팬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후술할 글에서 간략히 드러나는 제 예술관 때문인지도 모르겠고요. 어쨌거나 <조커2 : 폴리 아 되>의 예고편이 일종의 '낚시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감독이 관객들을 훈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감상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물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2편이 충분히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좋은 작품인 것으로 보여,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조금 풀어보고자 합니다. 나아가 이 작품에 가해지는 여러가지 비판들이 과연 이 작품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논거가 될 수 있는지도 간략히 논하고자 합니다. 



(스포 주의)



--


1. <조커> 1편의 위험성



 두괄식으로 표현하면 나는 <조커> 1편이 묘한 위험성을 내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부정하기 어렵게, <조커>는 아서플렉이 조커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분출시킨다. <조커>의 큰 줄기는 아서 플렉이 사회로부터 (소위 정상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광범위하게 배제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분노와 울분이 극단적인 범죄로 표출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서사적 구조 하에서, 와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와 점차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관객을 아서의 '통쾌한' 복수극에 쉽게 이입할 수 있게끔 기능한다. 물론 아서의 잔혹한 범죄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은 분명 눈을 질끈 감으며 조커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커> 후반부의 연출은 아서 플렉에게 고담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영웅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게끔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조커>1편 후반부의 아서에게서 빈자들을 위한 영웅의 아우라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오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타인에게서 한 줌의 인정과 공감과 주목을 원했을 뿐, 그에게는 어떤 정치적 동기도 없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주 의미심장하게도 작중의 아서플렉 또한 "나는 그런 정치 같은 것은 모른다"고 둘러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면피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조커> 1편의 후반부는 몇몇 핵심 장면을 통해 아서플렉(혹은 관객)의 시선을 가난한 자 대 부유한 자의 대립구도로 집중시키고 있고(가령 플렉의 감정이 이입된 소피가 부자들을 증오하는 대사, 빈자 대 부자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소요, 플렉과 머레이의 대화), 플렉이 가면을 쓴 군중들로부터 영웅 '조커'로 추앙받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고 폭발적으로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연출적 결과물을 놓고, 감독이 혹은 <조커>라는 영화가 이 같은 정치적 메시지(가령 "부자들을 쏴 죽여라")를 지지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아주 나이브할 것이다. <조커>의 개봉 이후 이 영화가 감정적 울분의 표출과 폭력성을 승인하는 영화라는 식의 논쟁이 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길게 논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구태여 <조커>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감독의 진의가 무엇이냐와 별개로,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정말이지 유력한 해석본이 어떤 것이 될 것이냐와 별개로, 이 영화가 관객을 어떤 식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을 논하기 위함이다.

 나는 <조커> 1편이 단지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커의 탄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안티 히어로물'의 일종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나 예술을 장르적 쾌감이나 유희의 획득을 위한 도구로서 접근하거나,  예술의 자율성 테제를 강하게 옹호하는 평자들은 특히 <조커>를 이런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오락(히어로물)은 오락일 뿐, 괜히 진지해지지 말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예술관을 구구절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와 같은 접근법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독법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커> 1편은 고담시를 배경으로 조커의 탄생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계층의 삶과 연결시키면서 모종의 사회심리학적 드라마의 위상을 획득하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조커>1편이 강한 정치적사회적 함의를 갖는 '르포'의 일환으로 읽혀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커>는 단순히 (예술적)감상과 유희의 대상인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단지 유쾌하게 밈화되어 소비되어야 하는 흔하디 흔한 안티 히어로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나에게 굉장히 기이하게 들린다. <조커>는 아주 정당하게도, 정치적 논쟁의 대상 혹은 매개체이다. 물론, 나는 <조커>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이 영화가 배제된 자들의 폭력성을 은연중 정당화하는지 아닌지의 차원에 머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실제로 <조커>에 대한 개봉 당시의 많은 비평들은 우리가 조커의 탄생과 관련하여 우리 자신 또한 되돌아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조커>라는 영화가 실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아서 플렉의 삶이 정말 불쌍한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소름끼치게 맥락 없는 웃음을 웃는 아서 플렉같은 '광인'을 어디까지 용인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 아니, 반대로 최소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애티튜드를 갖추지 못한 플렉에게 '일반인'들이 반감을 갖는 것이 과연 문제가 되는가? 어쩌면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무제한적 관용도 배제도 모두 답이 아니라고 할 때 그 사이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플렉의 '비정상성'이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복지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혹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에 기인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 말이다.

 누군가는 <조커>와 같은 대중 오락영화에서 이 같은 성찰이나 교훈의 지점을 운운하는 것은 나이브하다거나,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지 말라거나, 이 같은 문제의식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진부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논평할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영화는 시청각적 의미소들의 총체로 구성되는 '의미'의 총체로서, 거기서 '메시지'를 거세하는 것은 거의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그 의미의 총체에서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정보들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특유하게 갖는 강점이 메시지보다는 시청각적 표현이나 그것으로부터의 체험에 있다고 할지라도, 메시지로부터 자유롭거나 완벽하게 분리된 영상적 완성물 따위를 나는 단 한번도 접한 적이 없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아주 많은 경우에 영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조커>가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르포적 함의를 시각적 형상화의 방식으로 충분히 의미 있고 새롭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점은 <조커>의 작품성을 판가름 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인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플렉의 살인 행위는 그야말로 사이코패스적이고, 끔찍하며, 사회로부터 추방당해야 하는 것이고, 법적으로 유죄임이 너무나 명백하지만, 조커가 탄생하기까지 무언가가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못했음을(그것이 부모나 친구나 동료의 사랑이든, 제도의 지원이든) 또한 돌이켜봐야 한다는 것. 나는 이것이 비록 '진부한' 메시지이기는 해도, 영화 <조커>가 핵심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아서 플렉의 파괴적 복수극, 그리고 그것이 주는 은근한 카타르시스와 충분히 양립 가능하게끔 만드는 연출적 선택지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조커1>은 (내 관점에서 보면) 성찰과 쾌감을 양립시키는 것에 실패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도달하게 되면, 관객은 조커의 탄생에 관한 생애사심리드라마적 탐구의 과정을 시야에서 놓쳐 손쉽게 부자와 빈자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되고, 폭발하는 복수가 자아내는 카타르시스에 매료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되도록 이 영화는 구성되었다. 나는 이 영화의 오락성 혹은 쾌감이 아서 플렉이라는 취약계층을 발생시키는 미시적구조적 기제들로 다시금 눈을 돌리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커>의 전반부 또한 개선의 여지가 더 있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핵심적 실패의 지점은 후반부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2. 보완 : 만화경적 현미경



 <조커2 : 폴리 아 되>는 <조커>1편에서 발생했던 실패의 지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획인 것처럼 보인다. 그 기획은 다음의 슬로건으로 압축된다. 당신, 다시 아서의 목소리를 들어라. 조커가 아닌 아서의 목소리 말이다. 이는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만약 조커가 토크쇼 진행자인 머레이 플랭클린의 머리에 총알을 꽂아넣지 않았다면, 과연 <조커>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 가능했겠냐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질문이 우습다고 느낄 수 있겠다. 당연히, 영화이므로 가능한 그 무자비한 폭력이야말로 <조커>의 매력이자 열광의 포인트인 것이라고 말이다. 조커에 열광하지 말고 아서플렉에 주목하라는 주문은 어줍잖은 선민의식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조커2>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영화는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선은 마치 아서에게 '만화경적 현미경'을 들이미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아서플렉-조커'는 자기분열적 인물이며 제3자의 시선으로 그 성격을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나는 '아서플렉'이나 '조커'나 모두 많은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아서플렉은 정돈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끔하게 표현하는 능력 자체가 결여된 인물이다. 교육의 부재이든, 지속된 학대가 낳은 정신적 피폐상태이든, 모종의 이유들로 인해 그는 소위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든 인물이 되어 있다. 조커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커는 카오스의 화신이다.

 나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목소리를 비추고자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엄밀히 보자면, 특히나 아서플렉의 내적 자기분열상태와 언어능력의 결여로 말미암아, '아서플렉'에 대한 관찰은 '조커'에 대한 관찰과 쉽사리 분리되지 않는다. 초반의 취조실에서 변호사는 아서에게 (아마도)사형죄를 피할 수 있는 전략을 설명한다. 그런데 변호사로부터 연이어 이어지는 질문에 어떤 속시원한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담배를 요구하거나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 사람은 아서 플렉일까 혹은 조커일까?

 물론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아캄수용소와 법정에서 주로 목도하게 되는 인물이 아마도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임이 유력하다는 증거들이 등장한다. 1편에서보다 더욱 피골이 상접한 이 인물에게는 조커가 보여주던 표독스런 광기가 다소간 거세되어있다. 그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이고, 다시금 타인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통한 새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있다. 이는 누가 봐도 조커라기보다 아서 플렉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위태롭고 나약한 아서플렉은 끊임없이 조커라는 망령이자 유혹에 시달린다. 그는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고, 조커를 연기하는 것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망령). 하지만 동시에 조커를 연기하는 것은 사랑과 주목을, 그리고 자신을 바보취급 하는 사회를 향한 통쾌한 반항을 가능케한다(유혹). 아서는 결국 그 유혹에 굴복하여 조커가 되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자주색 양복을 입고 조커 분장을 한 그는 과연 어디까지 '조커'인 것일까? 엄밀히 말해 우리는 결코 작중 등장하는 아서플렉-조커를 한 가지 모습으로, 한 가지의 자아로 쉽사리 재단할 수 없다. 우리는(관객은) 만화경을 통해 그를 보고 있다. 그는 분열적이고 다층적이므로, 그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필연적으로 다의적이다. 이를테면 아서플렉-조커의 자아는 은밀하게, 혹은 아주 명백하게 착종되어 있다. 이 둘은 무 자르듯이 구분될 수 없다. 일견 아서는 분장과 착장을 통해 이 둘 사이를 분절적으로 넘나드는 듯 보이지만, 내면의 심리의 차원에서 이 둘은 결코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그가 뮤지컬로 표현되는 몽환 속에서 조커의 모습으로 노래할 때조차 거기에는 분명 아서플렉의 울분과 소망이 강하게 녹아들어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를테면 '아서플렉-조커'에게 만화경적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만화경적이라는 것은 아서플렉-조커의 분열성 혹은 다층성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이다. 현미경이라는 것은 아서플렉-조커의 내면에 깊게 파고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과 몽환 사이의 넘나듦, 내면적 자기분열, 변호사와 할리퀸 양자에 대한 믿음과 불신의 혼재상황은  (적어도 플렉의 목소리에 대한 인내심을 갖고 있는 관객에게는) 아서플렉-조커라는 인물을 둘러싼 진실들, 그의 본심(사실 그에게 본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이것 자체가 물음의 대상이다), 끊임없는 분열적 상황 에서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그가 최후에 내리게 될 선택 등에 관하여 이입하고 반추하게 만든다. 요컨대 <조커2 : 폴리 아 되>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또한 강박적으로 아서플렉의 목소리를 들어보게끔(혹은 상상하게끔) 우리를 안내한다.

 물론, 영화의 종반부에 이를수록 우리는 '아서플렉-조커'가 표면적으로 아서플렉으로 등장하든 조커로 등장하든 간에 언제나 갖고 있는 특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어느 경우에든 그가 절박하리만치 '타인'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아서플렉은 말할 것도 없고, 조커 또한 타인의 주목과 권력의지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서플렉-조커'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카오스 그 자체인 '조커'라기보다는 누구보다도 타인을 욕망하는 연약하고도 자연스러운 인간인 '아서플렉'에 더 가깝다는 것이 매우 유력한 설명일 것이다.

 종합하면, 아서플렉-조커는 결국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투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전투이다. 그가 (어쨌든 개념적으로는 구분되는) '아서플렉'이 되기를 선택하든 '조커'가 되기를 선택하든 이는 마찬가지이다. 최후의 변론에서 그는 "조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궁극적으로 인간 아서플렉으로 남고자 하지만, 그는 결코 아서플렉이 될 수 없다. 그는 진실로서의 자신, '더 리얼'로서의 아서플렉을 대면할 수 없다. 현실로서의 아서플렉에게는 학대와 상처의 트라우마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학대와 상처의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가 그에게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그는 조커일 수도 없다. 조커는 단지 타인들로부터 요구되는 이미지이자 기호일 뿐(혹은, 단지 공유된 망상 : 폴리 아 되일 뿐) 단 한 순간도 현실의 아서플렉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커를 연기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신을 숨막히게하고 옭아매기때문이다. 아서플렉-조커는 아서플렉일수도 없고, 조커일 수도 없다. 그래서 그가 어떤 자아를 '선택'하든, 그것은 그 자신을 패배와 저주의 구렁텅이로 이끈다. 이 영화는 아서플렉-조커의 혼란스러운 분열적 내면, 그 사이의 넘나듦 혹은 그 양자의 착종,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 그 딜레마로부터 도달하는 종착역으로서의 철저한 고갈과 파멸을 아주 음침하고 암울하며 충격적인 영상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 <조커2>의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 관하여



 <조커>1편이 후반부에 이르러 은근하게 조커에게 영웅의 아우라를 덧입히면서 '아서플렉'대신 '조커'에 열광하도록 우리를 유도한 반면, <조커2>는 철저하게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에게 이입하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혹자는 토드 필립스의 이 같은 선택을 <조커>1편에 대해 가해진 정치적 비판에 대한 수용이자 응답인 것으로 본다. <조커>1편이 소위 '배제된 자들'의 분노를 대리적으로 표출하고 정당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자신(토드 필립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음을 소명하기 위해 속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1편의 진의는 '아서플렉'의 삶에 대한 탐구이자 성찰이었지 폭력적 카타르시스에 대한 탐닉이 결코 아니었다고 변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조커2>에서 조커를 숭앙하는 무리들(할리퀸과 군중들)은 어쩌면 현실의 관객에 대한 유비이고, 토드 필립스는 조커에 열광하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너희들 그러지 말라"고 힐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그래서 이는 광범위한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토드 필립스가 속편에서 보여준 선택에 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것이다. 크게는 왜 우리가 '조커'를 보러가서 '아서플렉'의 추레한 동어반복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부정적 반응과, '조커'에 대한 창작적 해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물의 장르적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낸 이 작품의 의의를 주목해야 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정적 평가의 양상은 다양할 것이긴 한데, 어쨌든 평단의 다수는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 나의 입장은 후자에 가깝다. <조커2>에 대한 앞서의 장황한 서술들은 이 영화의 작품성을 옹호하기 위한 나름의 논변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그 옹호가 꼭 성공적일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나는 <조커2>가 장르적 창의성, 예측되는 연출 의도에 아주 잘 부합하는 전개의 속도와 형식, 탐미적 과감성, 정치적 타당성 혹은 윤리, 전작과의 적절한 메타적 관계, 현실 사회에 대한 논평적 성격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조커>1편의 예술적 완성도를 뛰어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1편이 여전히 더 나은 작품이라는 주장이나, <조커2>에서 발견되는 여러 결함들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이러한 주장(의견)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주장들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내 견해의 어떤 부분이 수정보완되기도 하고 <조커> 시리즈가 갖는 예술적 의미가 한층 더 풍성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전제를 덧붙이고 싶다. <조커2>의 작품성에 대한 논쟁에 있어 우리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인내심 혹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조커2>는 핵심적으로 아서 플렉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아서플렉의 목소리에 주목해주지 않는 관객들을 향해 마치 울분을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의 작품성이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그 '(아서의)목소리'가 얼마나 적절하게 예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그 '울분'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효한지에 관한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온당한 평가의 과정은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것,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에 관한 기본적인 경청을 전제로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거나, 비참한 패배자일 뿐인 아서 플렉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다거나, 아서의 동어 반복(우리는 그가 동어반복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린 존재임을 아주 쉽게 망각한다)이 지루하다는식의 논평은 이 영화에 대한 타당한 평가로서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감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우리가 평론의 영역에서 주관주의로 침몰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대중적 선호의 영역에서도, 작품성에 대한 평론의 영역에서도 아서플렉은 외면받고 있다. 나는 다만 후자의 영역에서, 이 영화에 대한 외면은 그 근거가 부실하다고 생각한다. <조커2>는 토드 필립스가 전작의 맹점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하게 시도하는 예술적 실험으로서 상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에서 관객에게 외면받을지언정, 적어도 평론의 영역에서 아서플렉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통합규정
24/10/16 13:53
수정 아이콘
쓰면 제재 받는 단어 쓰셔서 수정 하셔야 될 것 같네요
통합규정
24/10/16 13:57
수정 아이콘
저도 똑같은 단어 사용해서 벌점 먹었고 자유 게시판 운영위원님이 명백하게 혐오워딩이라고 못 박아 말하셨어요.

빨리 수정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13:58
수정 아이콘
아마

'인~'

단어를 말하시는 것 같군요. 수정하겠습니다.
불쌍한오빠
24/10/16 13:58
수정 아이콘
저는 조커2가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아서 플렉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영화가 조커2 였다는게 아쉽고 대부분의 관객들도 그걸 바라지 않았다고 보고요

사실 영화 이름이
<조커 : 폴리 아 되> 보단
<아서 플렉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가 더 어울립니다
오곡쿠키
24/10/16 14:09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대다수 관객의 기대에 반하고 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다는 점에는 아마 반박의 여지가 없겠지요.

적어주신 제목과 관련해서도, 이 영화에 기대를 한 관객들이 영화를 '미안해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라는 변명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짜증난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 작품을 '변명'이라기보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더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특히나 1편과의 연속성(보완관계)과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고려하면 <조커 : 폴리 아 되>라는 제목은 충분히 일리 있는 제목일 것이겠구요.
24/10/16 14:19
수정 아이콘
뮤지컬 부분이 조커&할리쇼에서만 국한되어서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었습니다. 너무 잦은 노래의 개입이 극의 흐름을 계속 끊어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14:25
수정 아이콘
말씀해주신 평(뮤지컬이 너무 잦다, 과하다)이 지배적인데 저는 애초에 이런 평을 알고 봐서 그런지 과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몰입이 잘 됐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다만 저는 노래가 활용된 장면들은 충분히 아서가 공상(뮤지컬)을 실행시킬만한 상황이었다고 봐서, 지루하거나 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것과 별개로 작품 내적인 정당화는 충분히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라멜로
24/10/16 14:21
수정 아이콘
메세지에 대해 고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게마저 좋은 평을 못 듣는 이유는
오히려 그 메세지가 특별하다거나 신선하다거나 상상하지도 못 했던 반전이라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조커를 비튼다고 생각했을 때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클리셰에 가깝습니다 관객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수준도 아니에요
반면 그 메세지를 전달하는 과정은 너무 지루했고 특히나 뮤지컬 부분은 대부분 평론가 관객들이 불호로 꼽는 부분이고
오곡쿠키
24/10/16 14:32
수정 아이콘
저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딱 적어주신 반응만을 접했는데요. 의견에 대한 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실 영화에서 메시지를 추출하자면 우리가 어떤 걸작을 들고와도 그것이 진부하지 않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은 사실 이런 의미에서 유효한 것이기도 하겠죠. 글에서도 밝혔듯이, 영화의 핵심은 메시지보다는 시청각적 표현물(및 그것이 자아내는 효과)에 가깝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본문에선 명료하게 서술하지 못한 바이기도 한데, 저는 어쨌든 궁극적으로 시청각적 효과 + 메시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커2>도 메시지 자체는 진부하겠죠. 다만 그것의 시청각적 표현으로서의 결과가 꽤 완성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자.

"지루"나 "불호"의 부분은 그렇게 느끼셨다면 당연히 존중드리는 바입니다. 다만 반대로 소수이지만 이 영화를 재밌게, 몰입해서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요. 본문은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라멜로
24/10/16 14:38
수정 아이콘
비슷한 생각이에요 저도 메세지보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마 대부분 영화 평론가 분들도 그럴거에요 메세지가 진부하지 않기란 굉장히 어려우니까
특히나 영화를 몇천 편을 보신 분들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메세지가 불호여서 반응이 안 좋다는 관점은 반의 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글쓴 분께서는 그 시청각적 효과에 만족하셨다고 하지만 저도 그랬고 해외 평론가들의 평들도 대부분 지루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더라고요
결국 전달과정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사람들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거고
Rorschach
24/10/16 14:39
수정 아이콘
굳이 따지자면 제일 큰 문제는 예고편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기는 그냥 대놓고 관객 대상으로 영화 외적으로 사기 친 거라서 논외로 하고,

불호에 가깝지만 막 영화가 엉망이라거나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2편이 감독이 1편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그럴 거라면 아서의 상승과 하강이 이렇게 5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나올 것이 아니라 한 편에 몰아서 완결성 있게 끝이 났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렇게 됐으면 아서플렉이라는 인물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광기가 고담을 사로잡고, 그 광기에 휩싸여버린 고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조커가 등장할 수 있었겠구나 하고 사람들이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요. (물론 감독의 의도는 조커의 등장 그 자체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어쨌든 개인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이유는,
첫째는 이 영화가 'inspired by'가 아니라 'based on'이면서 '조커'라는 제목을 전면에 달고 나온 것이라는 부분과,
1편의 마지막 씬(경찰차 씬 말고 상담 씬)에서 아서가 이제 더 이상 아서가 아니라 조커라는 존재가 된 것 처럼 이미 표현을 했었던 부분 때문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제가 기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은 것이 제일 아쉽긴 했었습니다. 할리 퀸젤이 조커에 의해 할리 퀸이 되는 과정을 토드 필립스 감독이 어떻게 그릴 지가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크크
오곡쿠키
24/10/16 14:56
수정 아이콘
예고편의 경우는 일종의 반전효과를 노린건지, 그냥 흥행을 좇은 기만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도 있는 것으로 보아 좋게 해석하긴 어렵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불호인 2가지 근거에 대해선, 일단 속편이 based on의 성격을 갖는다고 해도 "폴리 아 되"라는 부제가 있기 때문에 조커라는 단어를 쓰는게 이상한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만, 이게 관객에게 묘한 기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거의 전적그로 수긍하는 바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네요. 전편의 엔딩에 저는 (도저히 아서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의미의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조커적인 혼돈을 긍정하는 농담으로 봤습니다) 갸우뚱 했던 것인데요. 저는 그런 엔딩을 속편에서 부정하기에 오히려 좋게 본 것입니다. 다만 연결의 정합성으로 본다면 박하게 평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할리 퀸이 어떤 캐릭터인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에, 온도차가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4/10/16 14:46
수정 아이콘
저는 영화보고 나와서는 너무 실망하고 굳이 이런식으로 만들어야 했나 그 순간엔 너무 별로였는데,
시간도 지나면서 이런저런 평과 해석도 보다보니
그래 뭐 이런 조커 영화도 있을 수 있지로 바뀌었습니다. 비판 받을 부분은 여전히 많지만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다만 제 기대치에 충족 못한 것은 맞기에 처음 매겼던 개인적인 별점은 올려주진 않았네요.
24/10/16 15:31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걸 잘 풀어쓰셨네요. 조커2는 조커1의 수정본으로 해석하면 나름 이해는 되는데 어쨌든 제작진이 아차차 하면서 핸들을 너무 과격하게 꺽다 보니 관객들은 멀미를 느끼는 상황 같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4/10/16 16:49
수정 아이콘
근데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과 조커2가 별로라고 하시는 분들이.. 서로 완전 다른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닌가.. 싶어요.. 논의의 지점이 형성되어야 서로간의 토론이 되는데,,,,, 어차피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의 포인트에 딱히 '조커2가 나쁘다고 하시는 분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반대로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은 걍 영화를 영화자체로 봤을 뿐이고 '조커2가 나쁘다고 하시는 분들'은 영화자체로만 보기에는 내가 쓴 돈과 시간이 너무 억울한 것이고..
오곡쿠키
24/10/16 17:09
수정 아이콘
저는 그래서

'정말 이 작품의 작품성이 정말 그렇게 나쁜 것이냐' 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조커2가 좋았다는 사람들의 포인트에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맞다면, 적어도 평단의 평가가 왜 이리 박한지는 설명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씨네21에 올라온 기고문 정도를 읽어봤는데, 이 작품이 왜 구린지에 대한 속시원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지루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겠냐', '쓸데없이 가르치려 든다' 등은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라고 보이진 않거든요(그게 의미 없는 의견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위 댓글에서 1편의 마무리랑 연결 지어 2편의 스탠스는 정합적이지 못하다 정도의 비판 등이 제시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24/10/16 17:11
수정 아이콘
근데 또 이동진씨의 파이아키아 댓글을 보면 딱히 그런것만 같지도 않은것도 사실입니다. 반론제기는 양반이고 온갖 인신공격도 난무하던 지경이라…
율리우스 카이사르
24/10/17 15:19
수정 아이콘
아.. 유투브 댓글은 너무 간게 많긴 하죠. 
24/10/16 17:25
수정 아이콘
일단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전제하고 말하자면(1은 개봉때 보았고 그 뒤로도 몇 차례 vod에서 정주행하기도 했습니다)…

전 대중의 냉대는 그렇다 치고 평단에서도 대체적으로 폴리아되의 평가가 박한 건 결국 평단에서도 이 영화를 [히어로물]로서 해석하는/보는 시각이 강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 밀씀해 주신 부분 인용하면

[나는 <조커> 1편이 단지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커의 탄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안티 히어로물'의 일종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나 예술을 장르적 쾌감이나 유희의 획득을 위한 도구로서 접근하거나,  예술의 자율성 테제를 강하게 옹호하는 평자들은 특히 <조커>를 이런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제가 보기에 평단에서도 대체적으로는 이 시각에서 조커1도 그렇고 폴리아되도 보는 입장들이 많았거든요. 이것인 즉슨 기존 히어로물의 문법 안에서 이 영화를 평가하는 셈이고 다른 부분 인용하면 장르의 외부에서 이 영화를 볼 때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물의 장르적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낸] 이라고 평가가 가능하겠으나, 슈퍼맨/배트맨 등 전통적인 dc유니버스나 얼마 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마블 유니버스가 만들어낸 히어로물의 문법에서 이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저런 해석을 하기가 어려워지겠죠. 
24/10/16 17:49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가진 메세지나 표현 방식에 중심을 두고 관람한 사람들은 좋은 평을 하는 것 같고,
그 메세지나 표현 방식을 왜 조커 라는 제목으로 해야 하느냐 생각하는 사람은 악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후자의 생각을 갖는 것 같구요.
시드라
24/10/16 17:5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조커 1을 재미있게 봤고 조커 2는 부제를 듣는순간 느낌이 좋지 않아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고
유튜브나 리뷰어 글 등으로 조커2 스포일러를 다양하게 접한 후 관람을 포기한 사람으로
수많은 조커 2 비평글을 본 후에 내린 이 영화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조커 시리즈는 예술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목적관객층에 있어서는 상업영화가 일반대중을 목적관객층으로 삼는 반면 예술영화는 특정 마니아 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생산주체의 부분에서 상업영화는 프로듀서 중심의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했고 예술영화는 감독이 중심역할을 하면서 제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간극 -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 DBpia

상업 영화는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플롯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를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한 영화고, 돈을 벌기 위해 일반인들이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가져 온다는 뜻이지요

조커 1은 그런 의미에서 상업 영화로써의 성격을 만족함과 동시에 예술 영화로써의 영역까지 일부 가져간 대작입니다
조커 1편을 극장에서 보기로 선택한 관객 대부분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재해석 했을지 기대하면서 들어왔는데
기존의 역대급 조커에 전혀 밀리지 않고, 기존 조커들이 보여주지 못한 조커의 탄생을 맛깔나게 보여주면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만화 속 조커를 영화로 그대로 옮겼다는 극찬을 받았고,
히스 레저의 조커는 조커 특유의 광기 카리스마를 자기 식으로 재해석을 멋지게 해서 극찬을 받았죠
이 두 조커를 본 관객들은 역대급 조커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심리를 가지고 조커 영화들을 보러오는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1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서 플렉이 어떻게 조커가 되는지를 멋지게 묘사하면서 역대급 조커가 또다시 탄생했습니다

조커 1 마지막은 조커의 탄생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관객들은 이 작품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동시에
후속작이 나온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리고 조커 2 : 폴리 아 되 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관객들은 호아킨의 조커를 또 볼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감으로 극장에 찾아왔는데
그들이 본건 조커가 아닌 인간 아서 플렉의 이야기 였고 갑자기 1편에서 보이지도 않던 뮤지컬이 시도 떄도 없이 등장하면서 산만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에 인간 아서 플렉은 조커를 자기 반성 하면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조커 시리즈는 예술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고 무수한 후원을 받고 감독이 만든 상업 작품입니다
그리고 조커라는 캐릭터는 자기 반성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가졌지만
뛰어난 지능과 악마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적으로 보이는 초인들을 농락하는 악당 오브 악당이지요

특히 코믹스로 조커를 접한 서양인들은 조커 하면 이런 이미지가 확고하고 그걸 기대하고 갔는데
감독은 응 니가 기대하는 조커는 없어 너네가 관심없는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를 난 만들꺼야 그리고 뮤지컬로 아서의 감정을 표현할꺼야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조커는 죽었어 인간 아서 플렉만 남았어 라며 조커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빅 통수를 날립니다

이 영화는 다시 말하지만 상업 영화고, 상업 영화면 관객들은 기존 플롯과 설정이 유지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길 기대하는데
감독은 상업 영화를 예술 영화로 만들어 버리면서 1편의 스토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이 재 해석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 시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만듬새와 무관하게 욕을 먹고 흥행도 참패했고,
감독은 커리어를 스스로 망쳤고, 쩐주는 감독을 믿었다가 돈을 못벌어서 화가나고,
관객은 기대를 배신당하면서 헛돈을 날렸다는 생각과 강제로 주입당한 스토리에 기분 나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년 간 지겹도록 봤습니다 PC, 페미들에게서요
물론 그들 대부분은 토드 필립스만큼의 능력이 안되지만 그들이나 토드나 관객에게 내 얘기를 들어! 라고 강제로 주입한건 똑같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안되서 기존 시리즈 작품에 강제로 영향력을 행사해서 멀쩡한 작품을 망쳤고, 토드 감독은 제 손으로 조커 시리즈를 끝냈습니다

이제 조커3 만든다고 누가 보러 올까요? 토드 감독은 피쟐에서 표현할 수 없는 그 단어의 왕으로 불리는게 정말 싫었다고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아니면 자기 커리어를 걸고 이렇게 관객들 통수를 칠 수 없어요

조커 2 : 폴리 아 되는 단독 작품으로만 보면 뮤지컬 파트가 과하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업 영화의 시리즈 영화고, 조커 1에서 이어졌던 모든 기조를 제 손으로 반박하고 박살냈다는 점에서 라오어 파트2와 매우 비슷합니다

라오어는 제 인생게임 중 하나이자 많은 사람들의 인생 게임으로 라오어 2 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떄 전세계 모든 게이머가 기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파트2는 제 손으로 게임의 아이덴티티를 박살내고 자신의 사상을 강제로 주입시키면서 망했습니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못 판 작품은 아닌데 라오어1 판매량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죠

저는 라오어 파트2를 안했지만 이걸 굳이 찍어먹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스토리는 쉣인데 게임성은 좋다 특히 로프 액션은 이게 가능한 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등 스토리 외적으로는 좋은 평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라오어 시리즈의 정체성은 조엘과 엘리의 여행 스토리이고 그 스토리를 박살내면 아무리 게임을 잘 만들어도 의미가 퇴색되는 겁니다
중앙 가지를 박살냈는데 겉가지 잘만든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조커 2 : 폴리 아 되 도 조커라는 캐릭터를 박살내고 감독이 인간 아서 플렉을 관객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킨 순간 사실상 망한 겁니다
영화 조커 시리즈의 정체성은 조커라는 캐릭터고 조커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대하고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감독은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를 강제로 주입하면서 영화의 정체성인 조커를 제 손으로 박살내는데
이런 모습은 라오어 라는 걸작을 만들고 파트2에서 스스로 박살낸 닐 드럭만하고 다를바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예술 영화였다면 조커 2는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조커의 또다른 일면을 재조명하는 좋은 영화로 평가 받았을 껍니다
예술 영화에서는 뭐가 나와도 문제 없고 어떤 신선함을 받을지 기대한 관객에게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는 정말 새로울 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스폰서의 후원을 받는 상업 영화이자 기존에 이미 조커라는 확고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조커 1에서 조커의 탄생을 마지막에 본 관객들이 새롭게 탄생한 조커가 2편에서 어떻게 활약할지를 기대하고 왔는데,
감독은 관객의 이런 마음을 알면서 무시한건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부정하고 죽이면서 인간 아서 플렉을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망했고 조커 시리즈는 끝났습니다
토드 감독은 제 손으로 조커를 만들었고 제 손으로 조커를 끝장 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이제 막을 내렸고 더 회생할 여지도 없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20:07
수정 아이콘
길고 정성스런 답글 감사합니다. 다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외면하는 이유를 상세히 풀어주신 듯합니다. 다만 몇 가지 더 논의해볼 지점이 있는듯해 답변 드립니다.

1.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분

인용해주신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의 설명도 그렇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라는 용어를 활용하여 양자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저 또한 이러한 구분이 직관적으로 무얼 지칭하고자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상업영화 스러운 뭐시기..', '예술영화 스러운 뭐시기..' 라는 것이 분명히 있죠. 그렇기는 한데, 또 한편으로는 양자를 구분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지점이 있습니다. 가령 박찬욱 감독은 자신을 단 한번도 '예술영화'를 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정확히 단 한번도 라는 워딩을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최근작 <헤어질 결심>에 관해 감독 스스로가, 이 영화는 상당한 투자금을 등에 업고 거대 배급사의 홍보 및 상영관 할당 등 지원을 받는 '상업영화'라고 명확히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또 감독 박찬욱 자체를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죠. 감독 본인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말이죠. 아마 박 감독을 '예술영화' 감독으로 보는 시선은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 작가주의적 고집, 주제의식이나 연출의 파격성 등에 강한 인상을 받아 그를 예술영화를 찍는 감독으로 보는 것일테죠. 그러니까 사실 상업영화/예술영화를 무 자르듯 구분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말씀해주신

[상업 영화는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플롯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를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한 영화고, 돈을 벌기 위해 일반인들이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가져 온다는 뜻이지요]


이 부분은 일단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상업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한 영화"라는 점에 대해선 저도 큰 토를 달지 않습니다.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한다"는 점에도요. 다만, 상업영화가 반드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플롯으로" "일반인들이 납득만한 이야기를 가져온다"는 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선택이 상업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확률이 크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만, 우리가 단순히 "상업영화"라는 범주적 틀을 내세우며 (소위 상업영화에 속한다는)작품들의 특성을 이러저러한 식으로 한정짓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2. 관객의 기대에 대한 배신

[...그들이 본건 조커가 아닌 인간 아서 플렉의 이야기 였고 갑자기 1편에서 보이지도 않던 뮤지컬이 시도 떄도 없이 등장하면서 산만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에 인간 아서 플렉은 조커를 자기 반성 하면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조커 시리즈는 예술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고 무수한 후원을 받고 감독이 만든 상업 작품입니다
그리고 조커라는 캐릭터는 자기 반성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가졌지만
뛰어난 지능과 악마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적으로 보이는 초인들을 농락하는 악당 오브 악당이지요

특히 코믹스로 조커를 접한 서양인들은 조커 하면 이런 이미지가 확고하고 그걸 기대하고 갔는데
감독은 응 니가 기대하는 조커는 없어 너네가 관심없는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를 난 만들꺼야 그리고 뮤지컬로 아서의 감정을 표현할꺼야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조커는 죽었어 인간 아서 플렉만 남았어 라며 조커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빅 통수를 날립니다

이 영화는 다시 말하지만 상업 영화고, 상업 영화면 관객들은 기존 플롯과 설정이 유지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길 기대하는데
감독은 상업 영화를 예술 영화로 만들어 버리면서 1편의 스토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이 재 해석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 시킵니다..]


위처럼 적어주신 부분은 왜 <조커2>가 수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는 평가를 듣는지, 왜 흥행에 참패하고 있는지를 적절히 서술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몇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시드라님은 <조커2>가 상업영화이며 -> 상업영화는 다수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며 망조에 들었다-> 심지어는 pc적인 사상까지 강요한다는 주장을 하고 계신듯합니다.

물론 위에선 상업/예술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씀은 드렸으나, <조커>가 그래도 상업영화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의 주장에는 다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즉, "다수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주장 말이지요. 물론 시드라 님이 이를 하나의 '당위'로까지 주장하신 것인지는 애매합니다만, 어쨌거나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상업영화로서의 성공에 있어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신 듯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토드 필립스를 비롯한 많은 창작자들은 대중적 성공(혹은 돈)을 위해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넘어(혹은 관계 없이) 예술적 성취를 지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상업적 성공이라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로서의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로서 상업적 성공을 일궈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다수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그저 지향하는 것이 도리어 상업적 참패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저 뻔한 것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예상 범위 내이다, 작품성을 제고할 수 있는 어떤 혁신도 없다는 혹평을 들으면서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죠. 즉, "다수 관객의 기대"를 그저 좇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이 영화는 '조커'라는 IP를 활용하고 있으니 '최소한 허용되는 범주 안에서', '관객들이 갖고 있는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 일종의 허용 범위 내에서' 모종의 예술적 변형을 시도했어야 마땅하고, 갑자기 '아서플렉' 영화를 만드는 것은 도를 넘었다고 주장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서플렉'의 목소리를 강조했다고 하여 그것이 허용범위 밖의 일탈로 평가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서술해주신 DC세계관에서의 '조커들'의 특성을 존중하자면, <조커2>는 조커를 '죽여버린'것이 맞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어쨌거나 핵심적으로 '조커1편'의 후속작입니다. 1편의 내용은 결국 조커의 탄생으로 귀결되지만, 이 1편에서 조커의 탄생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이 그 탄생 과정, 즉 아서플렉의 이야기였습니다. 1편의 마무리가 마치 아서플렉은 죽었고, 각성한 조커만이 남았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강하기 때문에 2편의 내용이 관객의 기대를 반하는 측면이 있을지언정, 2편에서 다시금 아서플렉의 이야기를 강조한다고 하여 그게 '허용범위 밖의' 일탈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도해 보입니다.

3. 사상의 강요 혹은 주입

[그래서 이 영화는 만듬새와 무관하게 욕을 먹고 흥행도 참패했고,
감독은 커리어를 스스로 망쳤고, 쩐주는 감독을 믿었다가 돈을 못벌어서 화가나고,
관객은 기대를 배신당하면서 헛돈을 날렸다는 생각과 강제로 주입당한 스토리에 기분 나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년 간 지겹도록 봤습니다 PC, 페미들에게서요
물론 그들 대부분은 토드 필립스만큼의 능력이 안되지만 그들이나 토드나 관객에게 내 얘기를 들어! 라고 강제로 주입한건 똑같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안되서 기존 시리즈 작품에 강제로 영향력을 행사해서 멀쩡한 작품을 망쳤고, 토드 감독은 제 손으로 조커 시리즈를 끝냈습니다]


가령, 저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인어공주>식의 PC함의 추구가 긍정적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유보적인 입장입니다만, 가령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설정하는 것이 이 작품의 작품성을 제고시키는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일단 회의적입니다. 단순히 흑인으로 설정하는 것을 넘어 모종의 작품 내적 장치들이 추가되고 그것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무튼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런 PC적 장치의 삽입은 <인어공주>라는 작품사적 맥락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외삽적 시도라는 점에서 '정치적 사상의 강요'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긴 하겠습니다(저는 그걸 꼭 강요라고만 봐야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면 <조커2 : 폴리 아 되>에서 아서플렉의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이 '사상의 강요'라거나, '아서플렉을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시킨'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이 시리즈는 '아서플렉-조커'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심지어 아서플렉의 서사는 1편의 주요한 표현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속편의 선택이 '다수 관객의 기대에 반'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다수 관객이 이를 '강요'라고 '느낄'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 선택을 두고(전작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관객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이는 창작자의 운신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들의 다른 분들이 밝혀주시는 바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저는 <조커> 1,2편을 단순히 '히어로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족이지만 놀런의 <다크나이트>에 관해서도 비슷한 입장이긴 한데요. 사실 <다크나이트>나 <조커1,2>편은 그저 유희거리로 즐길 '히어로물'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들이 평론의 영역에서 고평가를 받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도, 작품이 단지 '히어로물'의 한계 내에 머물고 있지 않고 모종의 '깊이'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죠. 마치 현실의 우리가 맞닥뜨리는 딜레마처럼, 고담시의 그들 또한 인간으로서의 격정을 겪어내고 있죠. 그것이 주는 울림이나 감동, 쾌감, 성찰의 기회 등등 같은 것이 분명히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측면에서도, <조커2>편이 감독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PC적인 강요"로 비판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치적 함의나 색채가 굉장히 강할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니요. 사실 이미 <조커>1편에서 또한 감독은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조커라는 괴물, 아서플렉이라는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관한 물음에 모종의 정치성이 거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나이브한 견해 아닐까요. 다만 전작에 관해서는 그 정치성에 대한 물음이 그렇게 활발히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조커의 각성이라는 카타르시스로 그 정치성을 관객의 시야에서 상당히 희미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조커>에서 '정치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저는 그것은 기만이거나, 혹은 의도적인 망각이거나,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정치적인 태도를 표현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술의 결백증명
24/10/16 20:32
수정 아이콘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남기는 댓글에 과분할 정도로 품격있는 답글...
시드라
24/10/16 23: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먼저 위 댓글은 제 생각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왜 조커 2를 본 / 보려고 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등을 돌리는지
조커 2를 관람한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 작성했습니다 (첫 댓글에 상업영화라고 표현했던게 그런 맥락입니다)

제가 맨 처음에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라고 구분한 것도 사실 일부러 그런 겁니다
말씀 해주신대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분이 본문에 나온 MCU 같은 작품은 철저하게 상업을 추구하지만
댓댓글에 설명해주신대로 생각보다 많은 영화가 이 경계선이 애매하게 걸쳐 있고
당장 제가 적은 위 댓글에서도 조커 1은 상업성과 예술성을 둘 다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대중은 영화를 우리처럼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하면서 보지 않아요
그들은 [조커]라는 캐릭터가 있어서 영화관에 보러간거고 조커 1편이 잘 나와서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전체 관객의 대부분입니다
대중들은 조커 캐릭터 보고 갔는데 조커의 탄생 얘기 및 아서 플렉의 상황에 몰입도 하고 공감도 되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든 겁니다
그래서 조커 1이 흥행적으로도 매우 성공한 영화가 될 수 있었죠 여기선 상업 영화, 예술 영화 구분은 의미 없고 잘 만들고 재미가 있으니 입소문이 나서 흥행에도 성공한 겁니다

두번째로 조커 1편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커 2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곤 대부분 [이제 조커가 무엇을 할까?] 를 기대하면서 보러 갔을 껍니다
조커가 탄생했으니 뭘 한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 생각이고 당연히 '조커'에 포인트를 맞춰서 영화관에 갔죠
그들 대부분은 조커 2의 부제 [폴리 아 되]가 무슨 뜻인지 별 관심도 없고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네 라는 생각만 하고 조커를 보러 갑니다
사실 저도 폴리 아 되라는 뜻은 조커 2 부제에서 처음 알았고 검색병이 도져서 검색을 해보니 프랑스어로 '둘의 광기'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는걸 알게되고 저는 조커가 활동하면서 아서 플렉이라는 자아와 충돌하는 내용인가? 라고 상상했습니다
사실 이정도로 검색하는 사람도 드물고 그냥 조커 2편이 나왔으니 보러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이들은 무엇을 기대하며 갔을까요? 당연히 조커 입니다 조커 2를 보러간 사람은 조커를 보러 간 겁니다
그런데 영화 내용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와버리고 마지막에는 조커를 스스로 부정합니다

여기서 댓댓글 세번째 주제인 사상 얘기와도 연관되는데 첫 댓글에서 주입이라고 적었던 건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메세지를 전하는 매체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맛보고 느끼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조커 보러 왔는데 끊임없이 인간 아서 플렉 얘기가 반복되고 결국 조커라는 정체성을 부정해 버리죠

만약에 말입니다
이 영화가 [조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고 조커와 유사하지만 다른 [아서]라는 캐릭터 이름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영화 [아서]는 빈민촌 출신에 사람들에게 무시받는 코미디언이고 그는 여러 일을 겪으며 흑화해서 DC코믹스 조커와 비슷하지만 슬픔과 인간성을 지녔지만 상황이 그를 악당으로 만드는 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사람들은 조커 비기닝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해석을 가진 새로운 [아서]라는 피지알에서 표현할 수 없는 그 단어 캐릭터가 탄생했다고 열광했겠죠

그리고 [아서 2 : 폴리 아 되]는 이번에는 인간 아서 플렉에 대한 얘기를 풀어냈고 할리퀸과 유사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결국 마지막에 빌런 아서와 결별하는 얘기로 마무리 됩니다
사람들은 조커와 비슷한 아서라는 캐릭터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얘기를 보면서
조커에서 모티브를 따온건 분명하지만 조커와는 또다른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하고 일부 사람들은 스토리가 좋았다고 고평가 할 껍니다
물론 일부 말할 수 없는 그 단어 부류인 사람들은 나의 아서는 이렇지 않아! 라고 욕하겠지만요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조커]입니다 그 말은 DC 코믹스에서 수십년 동안 여러 악당의 모습을 보여준 조커라는 캐릭터 이름에 탑승했다는 거고
토드 감독도 그 조커가 아니라고 부정한 적도 없고 조커라는 이름값으로 사람들을 모은 후 1편의 완성도와 재미를 동시에 잡으며 매우 흥했습니다
만약에 조커 라는 이름을 적지 않고 아서 라고 적었다면 조커 1편이 지금만큼 흥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언젠가 분명히 고평가 받았겠지만 흥행이 지금만큼 빠르게 되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대중들은 [아서]가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고 별 관심이 없거든요 [조커]라는 이름이 달려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보러 간거고
영화가 생각 이상으로 재미 있으니 입소문을 내고, 그걸 들은 사람들도 새로운 조커를 보러 가서 이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을 껍니다

그리고 조커 2 : 폴리 아 되가 나왔으면 당연히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조커 이야기가 시작되겠다고 생각하는게 정상인데
조커 얘기는 안나오고 인간 아서 플렉 얘기만 계속 나오고 마지막에는 내가 좋아하는 조커라는 캐릭터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DC 코믹스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니 욕을하고 나가는 사람도 많고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겁니다

조커 2 반응이 동양권보다 미국 및 서양권에서 더 안좋게 표현되는 이유가 이런것 떄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저는 조커 2를 돈 주고 볼 생각이 없는 이유가 앞에서 말했듯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가 떠올라서 입니다
이 영화가 [아서 2 : 폴리 아 되] 였다면 저는 돈주고 보러갔을 껍니다
그런데 기존에 정체성이 확고하게 구축된 [조커]라는 캐릭터의 이름을 빌려서 만든 영화가,
2편에서 그 조커를 부정해 버리는데 이건 기존의 조커 이미지를 재해석 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개혁하는 수준이거든요

조커를 재해석 하고 파괴할꺼 같았으면 조커의 이미지를 따오되 조커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차용했으면 되는 겁니다 위에서 말했듯이요
하지만 이 영화는 흥행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존에 확고하게 구축된 조커를 가져왔고 그 조커를 아예 부정했으니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든 겁니다

오곡님과 저처럼 영화를 다양하게 보는 사람들은 이런 파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물론 저는 돈 주고 볼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 팬들 중 상당수는 오락영화, 액션영화만 보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예술영화 같은 스타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데
조커 2에서는 기대가 와장창 깨지고 기대했던 조커마저 사라지니 분노하고 돈아까워 하는 겁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조커 2]가 아니었으면 꽤 괜찮은 좋은 영화였을 껍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커 시리즈]의 2탄으로 나온 영화이고, 그걸 기대하고 간 사람들 대다수는 오락영화 보러 가는 느낌으로 간건데
거기서 토드 감독의 일방적인 재해석 캐릭터를 계속 봐야하는게 PC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기존 시리즈에 기생한 것과 별 다를바 없다고 표현한겁니다
물론 완성도는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요

여튼 제 해석은 일부러 오락영화를 기대한 대중의 관점에서 적은거고 제가 조커2 완전판을 보지 않아서 틀린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건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완전히 망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제가 적은 대중의 생각이 크게 틀린거 같지는 않아 보이네요

https://v.daum.net/v/20241016155737715 [흥행 참사 '조커2', 손실 추정치만 '2700억'...진짜 '비상']

나중에 이 작품이 라오어 파트 2 처럼 어느정도 재 발굴은 될 수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지만
흥행은 대 실패했고 대중들 대다수가 이 영화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라고 적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커 2를 보러간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런 섬세한 해석에 관심 없습니다
조커 1은 조커 비기닝이 멋지게 만들어져서 상업/예술영화 안따지고 재미있게 봤던거고
조커 2는 조커가 이제 뭘할껀지 기대하고 갔는데 관심없는 뮤지컬과 아서 얘기만 계속 나오고 마지막에 조커를 부정하니 실망한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제목에서 부터 조커 캐릭터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빌렸고 그걸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2편은 셀프로 흥행을 부정해 버렸죠
이게 비평가들의 평가와 대중들의 평가와의 괴리감하고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거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오곡님 해석글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 얘기는 이 영화가 왜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인지를 대중 관점에서 적은거라 적고보니 이 영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쪽으로 치우쳤는데
첫 댓글 중간에도 적었지만 이영화는 조커를 떼고 보면 뮤지컬 과도한걸 제외하면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 같습니다
나중에 OTT에 풀리면 꼭 한번 봐야겠네요

p.s. 다른 댓글 적는다고 로튼 토마토 지수를 보니 비평가도 대중도 30퍼대 점수를 줬네요
대중과 비평가들의 생각이 다 맞는건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혹평을 하는건 왜 그러는지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3: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조커가 무슨 PC적인 강요인가 하면 그거야 조금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나도 노골적인 메타픽션이라는 점에서 극의 진행방향을 질서적 세계로 봉합해가는 창작자의 너무도 올곧고 정상적인 멘탈이 느껴지죠. 이 지점이 조커2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라고 보구요. 아서 플렉의 혼란스러운 정신이랑은 괴리되어 있는 것처럼 와닿죠. 문제는 메시지가 아니라 방법론이란 거죠. 방향성 자체가 형식적으로 잘 살리기가 조금 난해했다고 보지만요. 그래서 결국 조커 개인의 심리적 사투라고 하는 뻔하디 뻔한 구도 속에서 정작 그 개인의 정신은 거세된 채 창작자의 똑바르고도 말똥한 정신만이 남게 되는 촌극이 벌어졌던 것이라 생각하구요.

여담이지만 인어공주에서 별도의 추가 장치 없이 단순히 (외모가 출중하지 못한) 흑인으로만 설정한 게, 적어도 pc적인 차원에서는 상당히 유의미한 시도라고 봅니다. 그게 기존 작품의 예술성을 제고시켜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pc라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흑인도 당연히 백인이랑 똑같고, 추함도 아름다움이랑 똑같다 이거죠. 물론 양상적으로는 분명 다르고 그래서 저마다 다양성을 지니는 것이겠지만,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 추함도 아름다움만큼이나 특별하다는 것. 그런 측면에서는 제가 봤을 때 그냥 흑인으로만 설정하는 게 pc적으로다가 맞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요. 왜냐하면 못생긴 pc는 인어공주 같은 캐릭뽕빨물 장르에는 쥐약이니까요. 그러니 pc할 때 하더라도 웬만하면 못생기게는 하지 마라... 라는 전혀 pc하지 않은 결론이 나오죠... 물론 뭐 장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요.
오곡쿠키
24/10/17 08:36
수정 아이콘
아래에 답글 드리기는 했으나, 조금 덜 노골적인 메타픽션이었으면 이 영화가 더 '세련된' 영화였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하게 됩니다. 다만 지금의 결과물이 '실패'라는 점에는 아래에서 밝혔듯이 동의하기 어려우나, 말씀하신 근거를 바탕으로 그런 논평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작품성과 별개로 pc함 그 자체로만 보면 그냥 단순 치환이 타당한 선택이었을 수 있겠네요. 다만, 저는 스스로가 그래도 친 pc의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단순 치환의 방법론이 pc의 긍정성을 과연 적절히 살리는 '전략'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긴 합니다. 반 pc주의자들에게 쓸 데 없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크지 않나 싶네요(물론 이러한 갈등 자체가 목적이며 의도라고 주장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뭐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 백인들이 독차지해왔으므로 그러한 관습이자 편견을 깨는 것 자체고 pc적인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상대적으로 과거의 작품인 <인어공주>야 그렇다 치고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이미 흑인이 주인공이며 흑인 정체성이나 서사를 충분히 깊게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만큼, 그러한 파격의 pc적인 의의가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드라
24/10/17 09:42
수정 아이콘
PC 쪽에서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라는 걸작이 존재합니다
재미있는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상당수의 사람들은 매드맥스가 PC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와 영화 재미있다! 액션 진짜 잘만들었네 퓨리오사 카리스마 장난 아니네 라고 하죠

잘 만든 영화는 재미 속에 자신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녹아 내리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지 않아요

제가 라오어2, 스타워즈 라제, 그 외 시리즈를 망친 수많은 기생 작품들을 안좋아 하는 이유는
이 작품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사람을 가르치고 훈수두려고 하는게 너무 티나거든요

그리고 저도 단순 치환은 좀 부정적인게 PC 진영이 승부를 보려면 기존 작품에 탑승하지 말고 오리지널로 승부를 봐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드 감독의 조커도 조커라는 캐릭터에 탑승을 했기 때문에 제가 PC로 비유를 한 겁니다
조커 이미지를 가져다 쓰지 않았으면 얘기가 많이 달랐을 껍니다
린버크
24/10/16 21:23
수정 아이콘
[그리고 조커라는 캐릭터는 자기 반성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가졌지만
뛰어난 지능과 악마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적으로 보이는 초인들을 농락하는 악당 오브 악당이지요

특히 코믹스로 조커를 접한 서양인들은 조커 하면 이런 이미지가 확고하고 그걸 기대하고 갔는데]


공감하기 어렵네요. 조커1의 아서 플렉이 어떤 뛰어난 지능과 악마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조커1을 보고도 조커2의 아서가 코믹스의 조커처럼 세계를 농락하기를 당연히 기대했을까요? 조커1에 이미 지극히 평범하다못해 평균보다 한참 아래인 인간 아서 플렉은 주입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실망했다고해서 감독이 조커2에 들어서서야 어떠한 것을 주입하려 했다는 것은 비약적으로 보입니다.
시드라
24/10/16 22:30
수정 아이콘
사람들이 왜 조커2를 외면했는지에 대한 풀이입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조커라는 캐릭터가 뭘 하는걸 보러간건데 아서 플렉이 나오고 조커를 부정한거죠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은 상업영화 보러갔는데 강제로 예술영화 보게 되었으니 실망하고 돈 아깝다고 한겁니다

상업영화 위주로 보는 사람들 중에선 만듬새를 떠나 예술영화 스타일의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저는 나증에 ott에 무료로 풀리면 볼 생각인데 지금은 돈주고 볼 생각이 없습니다
린버크
24/10/16 23:13
수정 아이콘
예술영화적 성격이 강했다에는 동의하지만 나머지 다른 내용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코믹스 조커의 초인적인 능력은 이미 그 팬들이 납득한 조커1 속 아서의 평균 이하의 능력, 평범성과 전혀 부합하지 않아요. 따라서 조커2가 조커1과 다르게 사상을 주입한다거나 몇 문단을 할애하신 라오어2의 비유도 맞지 않고요.
시드라
24/10/16 23: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만화에서는 조커가 좀 초인처럼 나오지만 원래의 조커는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 악마같은 공작을 하는 캐릭터죠

그 초인같은 면모는 진짜 초인들과 상대하다보니 과장된 면이 있고요

그리고 제 평가는 일부러 대중들에게 맞춰서 적은 겁니다 오락영화 보러간 사람들 입장에선 통수 맞았다고 느낄수도 있다고 적은 거고
실제로 조커 2 오픈하자마자 보러간 제 친구들 중 몇명은 영화가 엉망이 되었다며 화를 내더군요

왜 그렇게 돈주고 본 영화를 싫어하다 못해 욕을 할까 라는 초점에서 맞춰서 생각하다보니 저렇게 비교한 겁니다
폴리 아 되 로튼 토마토 평점은 평론가 평점, 대중 평점 둘 다 바닥 수준일 정도로 평이 좋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좋게 해석해줄수도 있지만 비평가도 대중도 이정도로 외면한다면 그만한 무언가가 있어서겠죠

https://www.rottentomatoes.com/m/joker_folie_a_deux
린버크
24/10/16 23:29
수정 아이콘
타인의 말을 저도 빌려보자면
이동진 평론가는 조커2에게 호평을 내리고 비판이나 비난을 좀 받자 다른 영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수파 평론이 옳은 평론은 아니라고요. 다수의 견해와 다르다는 사실이 틀린 평가를 했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https://youtu.be/ytUijI9yv_U?si=wCtEdSVpkBdaowKf

저는 조커2를 직접 관람했습니다.
그 결과 조커2가 평작 정도라고만 생각하지만 조커2의 아서의 행보가 코믹스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것은 조커1의 아서의 예측범위 내에서 봤을 때 예상범위라고 여길 뿐입니다.
시드라
24/10/16 23:33
수정 아이콘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단독으로만 보면 나쁘다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커라는 이름을 빌린 영화, 시리즈 느낌이 나는 영화다 보니 결과적으로 상업적으로는 대 실패한 영화가 되기 직전이고
제가 위에 적은 글은 대중 관점에서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분석 글입니다

저는 라스토 오브 어스 파트2를 증오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라오어 파트2는 갓겜이지요

그 다름은 처음부터 계속 인정했고 대중 관점에서 적은 글이라고 여러번 적었는데
계속 '나는 아닌데? 나는 조커2가 이렇게 파격적으로 나올꺼라고 예상했는데?' 라고 얘기하시면 저는 더 할말이 없네요
린버크
24/10/16 23:43
수정 아이콘
저는 시드라 님께서 조커2가 조커1과 다르게 상업적으로 실패한 이유가 pc처럼 사상을 주입했다, 캐릭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개인적으로 분석하셨기에
그 개인적 의견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사상 주입이라기에는 과도해요.
시드라
24/10/16 23:46
수정 아이콘
그 부분은 제가 약간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 일부 사람들에겐 감독은 조커를 왜 저런식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냐?
라고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적은건데 적다보니 표현이 좀 강해진거 같네요

제가 말하는 맥락 위주로 보시면 좋을꺼 같습니다
밤가이
24/10/16 17:54
수정 아이콘
전 말이 안되는 부분을 다 아서의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니 1편에서 전혀 진행된 이야기가 없는 상태가 되네요.
5~6명을 살해한 사람을 정신병원의 일반 환자들과 같이 노래수업을 받게하는 것, 리 퀜젤이 독방에 들어올수 있다는 것, 재판을 조커분장을 하고 받을 수 있는 것, 폭파가 일어나고 폭파의 가장 앞에 있던 아서는 다치지 않은 점, 계단을 올라가 이야기나 올라가는데 알아서 켜지는 전등, 면회올 사람도 없지만 면회를 가면서 복도에 방치한 점 등 말이 안되는 부분을 다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니 그냥 1편에서 감옥에 갇혀 망상을 한것을 그냥 본 느낌이라 이야기는 없고 분위기 좋은 쇼만 구경한 느낌입니다. 색감이나 분위기 연기가 좋아서 지루하진 않았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없었네요. 감독이 전작의 비판을 고려하여 후속편을 만들었다기 보다 이야기는 끝났는데 호아킨 피닉스의 꿈이라는 단하나의 장면 아니디어로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조커가 부르는 노래만 남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20:10
수정 아이콘
[~6명을 살해한 사람을 정신병원의 일반 환자들과 같이 노래수업을 받게하는 것, 리 퀜젤이 독방에 들어올수 있다는 것, 재판을 조커분장을 하고 받을 수 있는 것, 폭파가 일어나고 폭파의 가장 앞에 있던 아서는 다치지 않은 점, 계단을 올라가 이야기나 올라가는데 알아서 켜지는 전등, 면회올 사람도 없지만 면회를 가면서 복도에 방치한 점 등 말이 안되는 부분을 다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니 ]

이렇게 보셨군요. 저는 이런 식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노래수업, 독방에 들어오는 리, 폭파 씬 이후의 전개 등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는 느꼈습니다만, 이것을 망상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았습니다(어쨌든 뮤지컬이라는 장치가 따로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플렉이 살아가는 현실이지만, 작품의 전개를 위한 시적허용(?)정도로 받아들였는데요. 무튼,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있기 어려운 영화라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롤격발매기원
24/10/16 19:23
수정 아이콘
메시지 전달이 잘됫으면 흥행이 망하지도 않았겠죠
10명중에 9명이 메시지에 흥미가 없으면
전달방법이 잘못된거고요
오곡쿠키
24/10/16 20:15
수정 아이콘
메시지 전달이 아주 잘 되면서도 흥행에 참패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좀 어렵다고 평가받는 영화임에도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들도 많습니다.

"10명중에 9명이 메시지에 흥미가 없으면 전달방법이 잘못된 것" 이라는 주장은 메시지의 가치를 '흥미'라는 단 하나의 요소로 환원하는 주장에 가까워 보입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네요.
아빠는외계인
24/10/16 19:25
수정 아이콘
조커2를 보지는 않았지만 조커1에 대한 평가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는 그 단점이 굉장히 치명적이라고 느꼈어요
린버크
24/10/16 20:42
수정 아이콘
대체로 다들 동의하는 발언들을 하시지만
시리즈가 상업적으로 망했다 = 잘못된 영화다(혹은 욕먹을 영화다)와 비슷한 주장도 보이네요. 관객수나 조회수나 시청률이 높다 = 좋은 작품이다라는 주장과 유사해 보입니다.
문화나 예술은 다양한 목적과 가치와 척도가 있고, 안타깝게도 조커2가 예술적으로도 빼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조커2의 예술적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다거나 상업성이나 예측가능성, 관객에 기대에 영화가 부응하는 것 등이 다른 척도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최근 다수가 좋아하고 예측가능한 작품이 명작이다와 비슷한 주장이 꽤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린버크
24/10/16 21: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나 혹은 사회 다수가 예측가능할만한 행위를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못 벌고 망하기 때문이다]는 사실이지만 세상의 일부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측이 어렵고 기존의 것과 다른 것도 필요하며 두번째로 조커2가 이러한 방향(수준과는 달리)으로 나아갈 것은 충분히 예측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예측하지 못한 것을 접했다고 하더라도 사상의 주입이나 강요와는 다릅니다.

조커1의 사회적 파장이 속편에 미칠 영향을 제외하고서라도 조커1은 히어로물을 원작으로 하지만 극도로 현실적인 배경과 인물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담의 행정력도 미국의 일반적인 도시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충동적인 초짜범죄자에 제대로 교육경험도 조직도 없는 평범한 마른 남성 아서가 어떻게 고담을 파멸로 이끌지 상상할 수 있을까요?

원작의 조커가 초인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어봤자 조커1 실사판의 아서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커2의 아서에게 코믹스의 조커1을 이어받아 히어로 조커를 기대했고 비슷한 묘사를 해야 했다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입니다.

저는 그래서 조커가 이상하게 몰락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물론 연출 측면에서 그 방법이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예측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커1에서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아서를 목격하고도 조커2에서는 코믹스의 조커를 따라야 했다나 예상했다는 주장은 뒷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 이루어질 수가 없었어요. 조커2는 1편의 스토리를 부정한 게 아니라 일부 관객들이 멋대로 조커1의 결말부의 아서를 보고 조커2가 조커1의 초기설정을 파괴한 후 코믹스 조커가 되기를 기대한 겁니다.
오곡쿠키
24/10/16 21:22
수정 아이콘
조커1의 아서를 생각한다면 속편에서 기존 코믹스식 조커를 기대하는 것이 도리어 모순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조커2가 예술적으로도 빼어난 작품은 아닙니다"에 관한 의견을 더 주시면 많이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흐흐
린버크
24/10/16 23:23
수정 아이콘
써주신 글이 뛰어나셔셔 예술성에 대해 오곡쿠키님보다 잘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뮤지컬의 양이나 노래가 지나치게 너무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는 초라한 삶을 살아온 아서가 밝거나 독창적인 곡보다는 흔히 들을 수 있는 팝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언급했으나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가더군요.
뮤지컬의 분량이 어마어마한 반면 후반부 조커의 변심 과정은 너무 짧아 갑작스러우면서도 그 계기의 설명은 다소 직접적이어서 뻔해보였습니다. 메세지의 핵심부는 후반부에 주로 제기되었는데 거기에 포인트를 좀더 두었으면 했어요.
린버크
24/10/16 23: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최근에 피지알 채식주의자 글에도 비슷한 댓글을 달았는데
예술이 뻔하게 하지 않게 하는 법으로 최근 나름 유행하는 방식으로 채식주의자에서는 주인공이 피해자이지만 정신병자를, 기생충에서는 계급적 피해자지만 사기범죄자로, 조커1에서도 계급적/개인적 피해자지만 연쇄살인마로 그리며 지나친 감정이입과 편파를 피합니다. 그 결과 독자,작가와 주인공은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사회적으로 총체적 관조를 시도해볼 수 있죠. 그런데 조커2에서는 조커1의 최대강점인 줄타기적인 감정이입을 잃어버리고 뮤지컬 시청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곡쿠키
24/10/17 00:12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네요. 일단 할리퀸과의 사랑 서사, 교도관이나 인터뷰 기자 등 과의 관계 등으로부터 아서냐 조커냐 사이의 갈팡질팡이 주욱 표현되었다고 봐서 후반부의 변심을 저는 갑작스럽다고 느끼진 못했는데요, 법정에서의 결단이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겠네요. 충분히 지적할만 합니다.

줄타기적인 감정이입의 경우도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어쨌든 영화가 아서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면서 해석의 폭이 줄어드는 것(메시지가 어느 정도 명확히 고정되는 것)은 타당한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게 '교조적'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듯하고요. 다만 저는 그 직설이 절절하게 들렸거든요. 대중의 외면이라는 영화 외적 사실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무튼 나중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묘한 '촌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2: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전에도 다른 리뷰글에서 비슷하게 댓글 달았던 건데요. 그런데 현실에서도 원래 깜냥도 안 되는 자들이 택도 없는 헛짓거리를 많이들 저지르지 않습니까? 저는 아서가 1편에서 봤던 찰리채플린 무성영화마냥 부조리하고 우연한 세계의 편애를 받아가며 되도 안 되는 능력과 할리퀸의 조력으로 좌충우돌 범죄를 저질러가는 코미디적 전개를 착각물스럽게 시켜봤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서가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긍정해가면서 말이죠. 조커라는 영화의 매력은 그런 꺼림칙한 자기긍정과 불손한 자기정당화였으니까요. 거기에 연민과 구조적 모순과 정신병자의 불가피한 운명성, 그리고 대중적인 광기를 네 스푼씩 얹어주고요. 실제로 제작된 조커2의 방향성 자체가 아예 글러먹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비트 초이스도 실력이라고 돌이켜 생각하면 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선곡이지 않았나 싶어요. 무엇보다도 너무 대놓고 메타픽션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치명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렇다 보니 아서의 혼란스러운 정신이랑은 따로노는, 창작자의 너무도 정상적인 멘탈이 느껴지는 모순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죠.
비역슨
24/10/16 22:58
수정 아이콘
일반적으론 맞는 말씀이지만 사실 조커2 정도로 큰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 엄청나게 흥행한 전작의 속편으로 출시한 작품이라면... 더 흥행할수록 명작이다 라는 명제는 반드시 성립하진 않더라도, 이정도까지 관객에게 심하게 외면받는건 보통 망작의 척도가 되어오긴 했죠. 

조커2의 역사에 남을 흥행 실패 사례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 대부분 나쁜 입소문 때문이었다고 언급되는데, 그 정도로 극심한 관객 불만족을 유발할 정도의 부족한 상업성이라면 근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크게 해칠 만한 요인이 맞다고 봅니다. 
린버크
24/10/16 23:1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것처럼 척도의 하나입니다. 저도 조커2 보면서 꽤 졸렸습니다만 메세지나 그리고자 한 그림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6 20:52
수정 아이콘
조커2는 조커2와 같은 종류의 서사가 보여야할 것들을 충실하게 보여줬죠. 일식집 와서 짜장면 안 나온다고 투정하면서 너 왜 일식집 차렸냐 그러면 안되죠. 조커2 악평 남기는 사람들 보면 하나같이 짜장면만 얘기하는데 사실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지도 않은 짜장면 얘기는 잔뜩하고 스시 얘기는 어째 하나도 안 나오는 느낌
오곡쿠키
24/10/16 21:28
수정 아이콘
저 또한 기왕 일식집에 갔으니 일식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입장이지만, 사실 많은 분들은 '예전에는 짜장면을 팔지 않았느냐', '짜장면집이라고 광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실 것 같습니다. 윗 댓글에서도 지적이 나왔듯이 서로의 묘한 입장차이에 대한 핀트를 잘 맞추어야 하지 싶습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2:38
수정 아이콘
애초에 조1도 일식이었으니 조1 보고 간 사람이면 조2보고 왜 짜장면 안 파냐고 따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드라
24/10/16 23: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조커 이름 달았으면 짜장면 집이라고 공언한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조커 2에선 일식집이 되어서 기대했던 중식메뉴는 하나도 안나오고 일식만 잔뜩 내놓고 먹으라고 강요하니 사람들이 불쾌해 하는거죠
대부분은 일식집에 스시 먹으러 간게 아니라서 이미 기분이 나쁘다보니 스시에는 맛 이전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 스시 얘기는 거의 안보이는 겁니다

일부 미식가들은 짜장면을 기대했는데 스시가 나온걸 보고 당황했지만 일단 먹어보니 맛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짜장면 대신 스시 맛 좀 보라고 얘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식당에서 스시가 나온거 자체가 기분나빠서 스시를 먹을 생각이 없는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2:37
수정 아이콘
조2 보고 다시 보면 조1도 일식이었죠. 다들 본인이 먹은 게 일식인지 중식인지 몰라서 그렇지. 조1에서도 아서는 빌런이 되는 걸 선택한 게 아니죠. 본인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빌런으로 선택당했을 뿐이지. 조1에서 아서 그렇게 바보만들어놓고 조2 와서 천재빌런 만들면 그게 업종 변경한 거죠
라이징패스트볼
24/10/17 00:53
수정 아이콘
모 영화 유튜버가 지적한 것처럼 참 모순적인 영화인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라는 특성상 전작을 재밌게 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러 갈 이유가 없지요. 근데 전작의 결론을 부정하고 새로 쓰고자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전작을 몰입해서 재밌게 본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싫어할 가능성이 높아요. 물론 전작을 좋아한 모든 관객이 조커 2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저 또한 두 영화 모두 즐긴 사람 중 하나이긴 하지만, 토드 필립스를 위시한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했거나, 아니면 1편의 성과이기도 한 관객들의 기대 및 요구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동진이 옳게 지적했듯이 지금의 반응을 예측하고 의도한 것은 분명히 아닐테니까요.
일각여삼추
24/10/17 01:18
수정 아이콘
2편 만들기 싫었던 감독이 3편은 못 내도록 못 박았다고 해석하면 모든 게 설명됩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2:40
수정 아이콘
조커2가 일식집이었냐 하면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조커2가 일식이었으니 조커1도 당연히 일식이었을 것이다는 식의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커1이 일식이었냐 아니었냐 조커2가 일식이었냐 아니었냐를 떠나서 조커2는 일식이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식이었다고 보구요. 일전에도 댓글을 썼지만 그 제조 방식이 조커1과의 연관성을 떠나서 그 자체로 상당히 모순적입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3:02
수정 아이콘
조2 맥락에서 보면 조1도 일식이죠. 인물의 역사 그리는 영화야 주제의식과 내용 일치되는 채로 치밀하게 잘 묘사하면 못했다고 할 수는 없죠. 조2까지 보면 조1~조2는 일관되게 일식 내놓고 있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3: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것도 조2의 맥락으로 조1을 재맥락화 것에 불과하구요. 그래서 윤석열석방하라님도 지난번에 [2편이 마지막이니 2편 위주로 이해해야한다고 우기겠습니다]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뭐 저도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는 보는데 아닐 수도 있고요. 2편은 1편의 맥락과 상충된 작품이었을 뿐일지도 모르죠. 피차 우기는 것이긴 하죠 그게 원래 해석이라는 것이겠고. 문제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극의 진행방향을 질서적 세계로 봉합해가는 창작자의 너무도 올곧고 정상적인 멘탈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일식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리고 1편과의 연관성을 떠나서 형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거지요.

다른 리뷰글에도 댓글 달았던 내용이지만, 돌이켜보면 2편은 다른 걸 다 떠나서 너무 노골적으로 메타픽션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 자체는 정신병을 앓고 있을지 몰라도 극을 지배하는 서사의 방향성이 너무도 적나락하게 계시돼 있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진의가, 그의 너무도 말똥한 정신이 느껴지죠. 너무도 올바르게 극을 질서적 세계로 수복해가는 정상적인 멘탈이 말입니다. 그 점이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지점이었고, 불쾌한 골짜기마냥 이질감과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일전에 코스프레니 연기니 했던 게 기억나실 겁니다. 말하자면 창작자에게 조종당하는 게 너무도 훤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심리적 사투 치고는 치졸하죠). 그래서 지나고 보면 결국 개인의 심리적 사투라고 하는 그 진부한 구도 속에서 트릭화된 아서의 정신병적 증상만이 이물감처럼 부자연스럽게 남게 되고 말았던 것이라 생각하고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3:30
수정 아이콘
그거야 님이 아쉬운 거지 조2도 조2와 같은 종류의 서사가 해야하는 건 다 했죠. 님이 위에 쓰신대로 감독이 조2에서 아서의 조커로서 정체성 다시 긍정하게 했으면 조2만큼의 개연성이나 핍진성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겠죠. 일식 만들지 말란 얘기밖에 더 되겠어요. 깜냥도 안되는 자들이 헛짓거리 많이 저지른다고 하시지만 사실 그정도로 기능 떨어진 사람이 뭘 더 저지르기가 쉽지 않죠. 슈퍼맨에 과학법칙 따지는 게 말 안 되듯이 슈퍼맨이라 생각했던 인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서 과학법칙을 왜 무시하지 않았냐고 해봐야 그냥 그런 거 그리려고 했으니까 라는 답변밖에 더 돌아오겠습니까. 진부한 비평이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3: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조커 2편은 조커 2편과 같은 종류의 서사가 흔히 보여주는 방식에서 이탈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너무도 노골적인 메타픽션이거든요. 그래서 인물과 괴리된 채로, 극을 질서적 세계로 수복해가는 창작자의 정상적인 멘탈이 모순적으로 와닿았던 거고요. 또 그 결과로 아서 플렉의 혼란스러운 정신이 트릭화돼서 위화감과 이질감을 자아냈던 겁니다. 보통 심리적 사투 어쩌고 하는 작품들은 영화 이렇게 안 만들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조커 2편만의 특장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최중요 인물인 아서 플렉의 심리 자체가 창작자의 올곧은 정신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불일치를 발생시킨다는 겁니다.

기능 떨어지는 사람들이 뭘 더 저지르기가 쉽지 않을 수는 있는데 뭐 그런 사람들의 택도 없는 범죄가 종종 벌어지기도 하는 세상이고요. 그리고 자꾸 일식집이냐 아니냐 이야기하시는데 그걸 떠나서 형식적인 모순이 있다는 겁니다. 애초에 2편이 일식집이었다고 1편까지 반드시 일식집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 윤석열님 의견 알겠는데요. 제가 지금 1편도 일식집이었다는 해석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닌데요? 그런데 왜 윤석열님은 1편은 일식집이 아니었다는 분들 해석 틀렸다고 하십니까? 저는 뭐 2편이 일식집이냐 아니냐 1편까지도 일식집이었냐 아니었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잖아요? 윤석열님도 지난번에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1편은 일식집이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오늘은 왜 무조건 1편까지도 일식집이었던 게 맞고 일식집 아니라는 건 틀린 거다고 말씀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네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3:41
수정 아이콘
미친 사람 묘사하니 서사 방향성도 미쳐있어야한다는 것도 진부하고 기계적인 비평이죠. 질서적 세계와 아서와의 거리 보여주는 게 알파자 오메가인 서사고 서사 방향성 바꾼다고 알파자 오메가가 더 나아진다는 근거도 없고. 1편 일식 아니라고 보는 건 자윤데 그거 근거로 구리다고 까는 건 진부한 것 같아서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3:45
수정 아이콘
미친 사람 묘사하니 서사 방향성도 미쳐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닌데요.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이 실은 창작자의 정신에 종속되고 있다는 거지. 그래서 아서의 심리는 결국 창작자의 트릭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구요. 그래서 사실 표층적으로 관찰되는 것보다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아서가 질질 끌려다니거든요. 창작자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바짝 붙잡혀서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3:48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뭐 그런 사람들의 택도 없는 범죄가 종종 벌어지기도 하는 세상이라지만 그것도 단발성이지 연속적으로 뭘 해내고 이럴 능력 없는 인물 만들어놓고 능력밖의 일 해내는 이야기 쓰는 것도 누구 입장에선 재밌겠지만 누구 입장에서는 웹소설 이세계물 같이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정신병자라고 뭐 항상 창작자 정신 밖에서 놀아야하나요 진부한 얘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0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어차피 아서 정도 기능이면 조2에서 처럼 아서 잡혀서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이야기 진행하는 게 그나마 제일 현실성 있어요. 애초에 조1처럼 얘기 끌고갈 여지도 별로 없었죠. 대안 없으면서 기계적으로 비평하는 것도 지적인 게으름이죠. 조2가 취한 형식 파괴한다고 조2가 보여준 주제의식이 딱히 더 잘 드러나진 않을 걸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03
수정 아이콘
그래서 그냥 웹소설처럼 내가 다 이겨 하기보다는 그 행적을 통해 (1편이 그랬던 것처럼) 역설적인 현실성을 담아내는 식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겁니다. 말하자면 찰리 채플린 영화 빌런 버전이죠. 종국에는 실패해서 몰락한다 하더라도요. 그리고 정신병자라고 창작자의 정신 밖에서 예측불허하고 통통 튀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요(그런 거랑은 전혀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다 창작자의 설계이긴 합니다만(예측불허하게 통통 튀는 캐릭터들도 실은 다 창작자의 계산이죠) 적어도 극중에서 그게 드러나면 안 됩니다. 조커 2편은 말하자면 트릭을 공개하고 하는 마술이에요. 극을 이끌어가는 창작자의 정상적인 멘탈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메타픽션이라는 점이 도리어 치명적이었다는 거고요. 그냥 메타픽션도 아니고 너무나도 노골적인 메타픽션이었죠.

댓글 지워져서 다시 씁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06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뭐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긴 한데 꼭 제가 말한 대로 영화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요. 문제는 결국 영화의 내적인 불일치죠. 정신병자라고 항상 창작자의 정신 밖에서 놀아야 하냐고 하셨는데 아예 인형이 돼버린 거죠. 영화는 인형을 인형이 아닌 것처럼 보여주는 마술입니다. 그런데 인형을 조종하는 모습까지 다 보여주면 인형은 인형으로 인식되는 거죠. 정신병자 인형을 정신 멀쩡한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조커 2편은 그런 형식상의 모순을 안고 있는 영화란 것입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1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대신 사실적이잖아요. 그냥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있는 거죠. 결국 일식이냐 짜장면이냐 그런 이야기.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16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노골적인 메타픽션이 아니었더라도 얼마든지 사실적일 수 있었습니다. 인형 조종하는 티를 안 낼 수 있었죠. 일식이라 한들 못 만들엇다는 이야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야기.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18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님 말대로 조2 아서 행적도 조1처럼 했으면 아이고 정병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미학 어쩌구 하면서 지들 맘대로 도구로 가져다가 소설쓰고 있겠네 했겠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20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리고 인형 조종하는 모습 대놓고 보여준다고 그게 왜 "대신 사실적"인지도 모르겠구요. 그게 사실성에 기여하나요? 그냥 아서 인형으로만 만들고 말았죠. 저는 제 대안 고집 안 합니다. 다만 2편은 일식이라 한들 못 만든 스시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25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일어날 것 같은 일 일어날 것 같은 대로 아서가 조1같지 않으니 인형이다 그러면 인형같이 그린 게 조1보다야 사실성에 기여한 건 맞죠. 사실 기능 떨어졌으면 인형스러워지는 게 사실적이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2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1편 같지 않으니 인형이라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정상적인 멘탈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아서가 인형이라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근거를 오독하지 말아주세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29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니까 인형적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사실적이죠 뭐 어우 소름돋아라 여기까지 큰그림을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윤석열석방하라 님// 모든 캐릭터들은 사실 다 인형입니다. 서사예술이란 그 인형들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리는 예술이구요. 그래서 영화를 마술에 비유하곤 하는 겁니다. 등장인물들을 비롯해서 극중 세계 자체가 일종의 환상이죠. 그런데 인형을 조종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면 그건 더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냥 인형이 될 뿐이죠. 창작자의 정상적인 멘탈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함은 그런 의미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정상적인 멘탈이라는 점에서 그 별거 없는 정병 아서랑은 괴리되어 있죠. 정신 똑바르고 말똥한 양반이 정신병자 인형 가지고 놀고 있는 꼴입니다.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걸 대놓고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3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러니까 더 사실적이죠. 현실반영 100% 감독의 혜안이 소름돋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4:3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극중에서 아서는 살아있는 사람 자체가 아닙니다. 그게 어떻게 사실적입니까.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4:55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같아서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0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윤석열석방하라 님// 아무리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누군가의 실에 매달려 조종당하진 않습니다. 아서 플렉은 사실 아서 플렉이 아니에요. 영화의 창작자지. 그래서 아서 플렉의 정신병은 연기이고 코스프레에 불과하다고 했던 겁니다. 정신 말똥한 양반이 정신병자 인형 가지고 놀고 있는 꼴입니다. 그 정신병자 인형은 사실 정병이 아닌 거죠. 정신 똑바른 그 양반의 '액션'인 거죠. 인형 '같은 게' 아닙니다. 진짜로 인형입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영화적으로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22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조종당할 수도 있죠. 그거까지 의도라면? 소름돋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25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조종당할 수야 있죠 인형이니까. 사람이 아니면 조종당할 수 있습니다.
조종당하는 인형은 사실 창작자의 액션인 거고요. 아서는 사실 없고 창작자만 존재하는 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3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쵸 그래서 그런 거까지 의도했다면?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3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못 만든 거죠 뭐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31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같아서 사실같을 수도 있죠 뭐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32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인형을 실제 사람이라고 하는 건 비사실적인 이야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3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처럼 조종당하는 게 사실같다 그러면 사실적인 거죠 뭐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34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인형'처럼'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인형입니다. 아서는 아서가 아니라 창작자의 액션인 거고요. 아서는 사실 없고 창작자만 존재하는 거죠. 석열님도 그쵸라고 긍정하셨잖아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3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처럼도 아니고 거의 인형으로 표현되다니 아서가 겪을 무력감을 그렇게 잘 표현할 수가 없는 거죠. 소름돋는 측면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3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거의 인형이 아니라 아예 인형이요. 그래서 아서의 정신병은 연기이고 코스프레란 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4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거조차 의도라면? 소름돋는 측면인 거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4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의도는 의도죠. 실패한 의도.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41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을 묘사하는데는 성공한 거죠. 아서의 무력감이란..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43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아서는 무력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아요. 아서는 창작자의 액션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어디 제대로 기능하나요 영화 내적인 모순을 떠안고 있죠. 그래서 석열님도 저번에 아서의 정신병은 코스프레에 불과하다니까 반박하셨잖아요. 오늘은 그래도 그쵸 그쵸 하면서 그건 긍정하시네요. 사실 모를 수가 없긴 합니다 아서의 정신병이 한낱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4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저번에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뭐 맞다고 가정해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가정하면 아서의 무력감까지 창작자의 액션에 불과한 것까지도 더 소름돋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46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렇다고 가정하면 아서는 무력함을 느끼지 않는다니까요. 창작자가 무력한 척하는 거니까요. 다 연기고 코스프레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48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러니까요 그게 더 소름돋는 거죠. 진짜 인형이니까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49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진짜 인형이란 건 맞습니다. 아서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거죠.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5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쵸 말씀대로 진짜 인형을 묘사한 거라면 무력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무력감을 묘사한 건데 되게 잘 한 거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5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아서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무력감을 느끼니 마니 할 것도 없는 거져.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52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거 마저도 소름돋는 거죠. 무력감을 느끼니 마니 할 수 없는 실존적인 고뇌라니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53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아서에게는 실존적인 고뇌도 없는 거죠. 다 창작자의 자위적인 놀이에 불과하니까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5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니까 논리대로 따라가면 실존적인 고뇌도 할 수 없는 자의 고뇌를 생각해볼 수도 있죠. 아아..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54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런 고뇌도 결국 창작자의 자위적인 놀이에 불과한 거져.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55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런 놀이에 놀아나는 고뇌도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아아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55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런 놀이에 놀아나는 고뇌도 다 창작자의 유치한 인형 놀이구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5:57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말씀대로 그런 놀이에 놀아나는 고뇌가 성립한다면 그게 다 창작자의 자위에 불과할지라도 미학적인 의미가 있겠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5:58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조차도 다 창작자의 어린애 같은 놀이에 불과한 거져. 저차원적인 미학 정도는 있겠네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0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래서 코스프레 비미학론이나 코스프레 미학론이나 사실 별 근거 없는 거죠크크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00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일식집론 같은 것도 사실 뭐 별 근거가 있겠습니까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0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코스프레 비미학론이나 코스프레 미학론이나 짜장면 얘기죠. 작품 주제의식도 일식, 감독도 일식이라고 밝히는데 중식 비평하려면 뭐라도 근거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0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거야 2편에 와서의 얘기구요. 1편에서도 물론 아서 플렉 개인에게 집중하긴 했습니다만 서사를 다루는 방식이 일식집이 아니었다는 건데요. 일식집이었다 해도 1편은 제대로 된 일식집이었다면 2편은 이상한 일식집이었던 거죠. 그럼 뭐 잘만든 일식집론이라고 바꿔 부를게요. 석열님은 결국 잘만든 일식집론을 주장하고 계신 거잖아여? 그런데 잘쳐줘봤자 평작 수준이라는 게 보편적인 평가인데 이걸 뒤집으려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12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2편와서 얘기라기엔 굳이 속편이 전편과 정반대라고 가정하는 게 억지스럽죠. 인물의 역사 그리는 영화야 주제의식과 내용 일치되는 채로 개연성 있고 핍진성 있게 잘 묘사하면 평작 정도는 된다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1편처럼 뭔가 뻥뻥 터뜨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15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게 왜 억지스러운가요 1편이랑은 상충되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아서 개인에게 집중했다는 점에서 1편 2편 둘 다 일식집이었다 한들 1편은 제대로 잘 만든 일식이었다는 거고 2편은 이상하게 만든 일식이었단 거고요. 그리고 저도 평작 정도는 된다는 입장입니다. 상기한 이유로 이상하게 만들었는데 맛은 그냥 요상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라고 할 수 있겠네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22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어차피 1편처럼 빵빵 터뜨리기에는 무리수 둬야할 부분들도 많고 아서의 개인의 일대기를 끝까지 충실하게 그려내겠다는 목적(일식)에서는 2편 이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딱히 없죠. 아서의 개인의 일대기를 다루는 게 잘못됐느냐 혹은 가치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그런 점에서 1편과 2편은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23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저는,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요상한 모든 그런 음식들이 대개 다 그렇듯 안 만드는 게 차라리 나았을 만한 요리였다고 봅니다. 물론 하여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 나름의 존재의의는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요. 못 먹을 수준은 아닌 모든 요상한 요리들이 가지는 정도의 존재의의였다고 보는 거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24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1,2편 둘 다 아서 개인에 집중해 일대기를 그리는 과정에 있다는 건 부정 못하시거든요. 서사적인 차이점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일식이라는 맥락이 같다는 건 불변이죠. 서사 다루는 방식 아무리 얘기해봐야 짜장면 얘기에 가까운 거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2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제가 일식 얘기하면서 작품성 얘기하니 일식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못하시고 일식으로서 작품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근거 못 대시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똑같이 짜장면 가지고 인형이니 하니 서로 말꼬리잡기 수준의 근거밖에 없고요. 그게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26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리고 개인의 일대기를 다뤄서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다루는 방식의 형식성이 문제라는 거고요.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딱히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불호평이나 평작 수준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잖아요. 애초에 잘 살리기가 어려운 방향성이었던 거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2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일식으로의 작품성이 충분하다는 근거는 석열님이 대셔야죠. 대다수가 작품성이 별로라고 하는데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29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저는 애초에 일식으로 볼 수도 있고 짜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관점의 차이인데 석열님은 한사코 무조건 반드시 일식집이라는 듯이 말씀하시길래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3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일식으로 작품성 충분하다는 근거는 위에 적었으니까 거기 반박을 하시면 되고요. 사람들이 맞다고 하면 맞는 것도 아니고 저야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까인다고 거기에 동의해줄 이유는 없죠. 비평은 민주주의가 아니니까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3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게 왜 근거입니가. 그냥 석열님 나름의 설명인 거죠. 저도 제 나름의 설명은 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석열님도 그게 무슨 근거냐고 하셨잖습니까. 그런 식으로 대꾸를 하시니 저도 똑같이 대꾸하는 거죠. 애초에 석열님이 먼저 각자 나름의 설명이 아니라 그 설명의 객관적인 타당성을 요구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석열님은 그런 의미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냐고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3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짜장면으로 보자니 똑같이 말꼬리잡기 수준의 근거(인형.. 소름돋는다..)고 일식으로 보자니 님이 딱히 반박을 안 하셨고. 1, 2편 종합하면 개인의 일대기 서사로 다뤘는데 개인의 일대기로 보는 게 먼저 아닐까요. SF물은 SF물로 해석하고 나서 그 다음에 다른 툴도 붙이는 거지.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33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석열님도 일식으로서의 작품성이 충분하다는 타당한 근거 제시 못하셨잖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따지기 싫지만요. 굳이 그렇게 따지자는 듯이 나오시길래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35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반증시도 해볼 여지 있는 상태로 설명해줬으면 그게 근거죠 뭐. 거기에 반증시도 안 하시면 제가 해드릴 게 없음.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3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참고로 전 중식론에 인형 소름 어쩌고 하면서 반박시도 했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39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저는 인형 얘기를 짜장면 관점에서 한 게 아닌데요? 일식이라는 점에서 일식으로서 왜 훌륭하지 못한지를 얘기한 건데요. 먼저 아닐까요 하시는데 그러니까 그게 어디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근거입니까. 그거 그냥 석열님 나름의 설명에 불과하잖아요. 저도 창작자의 정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한 등장인물의 소품화 및 서사와 형식상의 불일치로 제 나름의 설명을 했습니다. 어차피 피차 자신의 설명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다는 거 입증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니가 말하는 거 뭔 근거 있냐? 이런 식으로 반론 안 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나오시길래. 석열님은 그럼 무슨 대단한 근거가 있으시냐고요. 저도 이런 형식상의 불일치로 인한 마이너스가 평가에 있어서는 먼저 아닐까요? 하는 거고. 석열님도 석열님 나름대로 자신의 먼저를 제시할 뿐인 거고. 석열님이 말하시는 거 저는 전혀 먼저라고 생각 안 해요. 석열님도 제 설명을 전혀 먼저라고 안 받아들이시겠지만. 그런데 피차 객관적으로 타당한 근거 제시 못할 거면 근거 타령은 하지 말자는 거죠. 그런데 먼저 근거 요구 하시길래 저도 그러는 석열님은 뭔 대단한 근거 있냐고 반문했던 거고.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4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게 무슨 반박입니까 애초에 제가 일식론에 입각해서 반론하고 있었던 것도 놓치셨는데요. 그리고 저도요. 소름 어쩌고 반박에 대해 '그조차도 다 창작자의 유치한 인형놀이에 불과하다'고 재반박 시도 했습니다. 피차 반박 수준이라는 게 그 정도잖아요. 솔직히 저는 그 정도 수준으로 내려가기 싫었는데 그런 식으로 나오시니까... 더 얘기해봤자 어차피 평행선인 것 같았기 했지만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43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형식적으로 가면야 어차피 서로 의미없는 말꼬리잡기(인형론)이고 큰 틀에서 일대기 잘 그렸냐 따지면 이런이런 이유에서 잘 그린 것 같다.'정도가 제 의견입니다. 제가 제시한 이런이런 이유에서 잘 그린 것 같다에 반박을 딱히 직접적으로 하시진 않았고 형식적인 문제야 서로 얘기 많이 나눴고 의미없는 말꼬리잡기인 거 확인했고 그정도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크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4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근거가 있으면 말꼬리잡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죠. 없으면 처음부터 그냥 비슷한 수준이었던 거고. 그래서 말꼬리 잡아본 겁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46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이런이런 이유에서 잘 그린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저는 상기한 형식상의 문제로 인해 잘 못 그린 것 같다고 했던 거죠. 저도 이런이런 이유에서 잘 못 그린 것 같다고 했던 겁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47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래서 형식적인 이유는 별 근거가 못 되는 것 같다고 말꼬리 잡기 놀이하면서 보여드린 겁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4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구태여 재차 '소름 어쩌고'를 반론이라고 하시길래요.
저도 구태여 '그조차도 다 창작자의 유치한 인형놀이 수준'을 재반론이라고 돌려드린 겁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49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저는 여전히 유효한 근거라고 생각하고 석열님이 제대로 된 반론을 못하고 쓸데없이 말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50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그러니까요 그럼 제가 또 소름 어쩌고 하고 똑같은 수준에서 말꼬리 잡기 하잖아요. 형식상의 문제를 논의에 끌고오셨지만 애초부터 딱히 근거 없었다. 평행선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50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그럼 저도 똑같이 석열님이 제시한 근거에 대해 말꼬리 잡기 놀이 해볼게요. 말꼬리 잡기 놀이에서 못 빠져나오시면 석열님도 별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52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근거 있으면 머리채 안 잡히죠. 이거나 저거나 비슷한 수준 아니냐 하면서 머리채 잡았는데 말꼬리 서로 늘어지면 비슷한 수준인 거죠. 저는 애초에 이거도 저거도 딱히 지지하는 입장 아니고 그냥 똑같다는 거 보여주려고 가정적으로 들고온 걸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6:53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무슨 소리세요 일식으로 작품성 충분하다고 하셨잖아요. 그 충분한 근거에 대해 지금부터 말꼬리 잡기 놀이 해볼게요. 시작할까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6:54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아 그전 댓글 답변이에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7:07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주제의식과 내용이 일치되게 치밀하게 잘 묘사했다고 하셨고, 아서의 개인의 일대기를 끝까지 충실하게 그려내겠다는 목적을 충족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조차도 다 창작자의 유치한 인형놀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죠. 결국 아서는 없는 건데요.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전혀 치밀하지 않습니다. 부실하기 짝이 없어요.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7:08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인형 얘기 꺼내시면 제가 또 인형이 소름 어쩌고 하면서 반복하지 않겠어요. 새로운 주제에서 머리채 잡을테니 너도 방어해봐 하셨으면 새로운 주제에서 얘기를 꺼내셔야.. 이래서 님이 지금 이 논의를 이해 못 하시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머리채 잡을래도 못 잡으시잖아요. 기회를 줘도 못하니 시간 낭비라는 겁니다. 댓글 쓰시는 거 보고 머리채 잡을 기미 보이시면 오겠습니다. 별로면 안 와요크크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7:10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석열님이 제시하신 내용적인 근거도 결국 형식탈트로 방어할 수 있다는 거죠 크크.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실까봐 구태여 내용적으로도 치밀하지 못하고 부실하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7:11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석열님이 소름탈트 쓰시는 거나 제가 유치탈트 쓰는 거나 크크크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7:16
수정 아이콘
실제상황입니다 님// 새벽에 자다깨서 적적했는데 대화 재밌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7:25
수정 아이콘
윤석열석방하라 님// 네 저도 재밌었습니다. 앞으로 석열님 보면 말꼬리 잡기 놀이 자주 해볼게요! 오늘처럼 포기하시거나 못 빠져나오시면 석열님도 근거 못 대신 겁니다? 네네 하여튼 석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여~
오곡쿠키
24/10/17 08:02
수정 아이콘
아이고..우선 흥미로운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윤석열석방하라님과 아주 길게 댓글을 주고 받으셨는데, 어디다 답글 달아야 할지 몰라 일단 최상위 댓글에다 답변 드립니다.

어쨌든 실제상황님이 조커2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고 보는 핵심적 이유는 아래와 같은 듯한데요.

[..조커2는 너무 노골적으로 메타픽션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중략)..아서 플렉이라는 인물 자체는 정신병을 앓고 있을지 몰라도 극을 지배하는 서사의 방향성이 너무도 적나락하게 계시돼 있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진의가, 그의 너무도 말똥한 정신이 느껴지죠. 너무도 올바르게 극을 질서적 세계로 수복해가는 정상적인 멘탈이 말입니다. 그 점이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지점이었고, 불쾌한 골짜기마냥 이질감과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일전에 코스프레니 연기니 했던 게 기억나실 겁니다. 말하자면 창작자에게 조종당하는 게 너무도 훤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심리적 사투 치고는 치졸하죠). 그래서 지나고 보면 결국 개인의 심리적 사투라고 하는 그 진부한 구도 속에서 트릭화된 아서의 정신병적 증상만이 이물감처럼 부자연스럽게 남게 되고 말았던 것이라 생각하고요.]

아주 흥미로운 설명이네요. 사실 위에서 린버크님도 비슷한 지적을 해주셨죠. 설명이 직설적이고 뻔한 부분이 있었다든가, 영화가 너무 명확히 아서의 편에 서고 있어 해석이 단조로워진다든가. "창작자의 진의나 정신이 너무 말똥히 느껴진다", "너무도 올바르게 질서적 세계로 수복해가는 정상적인 멘탈" 등의 표현도 비슷한 차원의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대중적으로 혹평받고 있고 윗 댓글들에서 "예술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나, 도입부의 애니메이션부터 아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영화라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겠습니다. 반면에 핵심 표현 대상인 아서플렉은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양자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주장이신 듯한데,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라고 보지만 이 부분이 작품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듯합니다. 아래 댓글에서 보면, 실제상황님은 이러한 비평적 근거가 그리 "객관적"이라고 자평하시지는 않는 듯하구요. 제가 읽기로는 일종의 '약한 근거'(객관성주장에 까지는 가닿지 않은)를 제시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제 생각은 어떠하냐면, 일단은 1)우선 창작자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인물이나 작품 내 장치가 '꼭두각시'내지는 '도구'로 느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직설화법적인 영화는 그 자체로 뭔가 심각한 단점을 갖게 되는 것인데 저는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거든요(물론 실제상황님이 직설 그 자체가 문제다 라는 주장을 하고 계시진 않습니다만). 2)다만 직설이나 노골적 의도가 하필이면 별로 그렇게 명쾌하고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물(에 대한 표현)과 결합되면 그 묘한 대비성으로 말미암아 인물을 꼭두각시처럼 느낄 여지가 커진다는 주장이면 이건 꽤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네요. 그래서 인물의 매력이 다소 떨어져보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연결될 수 있는 듯 보이고요.

바로 이 지점까지는 실제상황님의 지적이 아주 흥미롭습니다만, 그래서 이 영화가 구리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합니다. 왜냐면 위에서 지적하신 부분은 특히 이 <조커2>라는 작품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메타픽션적 속성에 대한 입장차이로 말미암은 감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노골적인 메타픽션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였고(조커1편에 대한 비판이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 관객들이 조커를 소비하는 방식에 관한 메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애초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죠)그로 말미암아 작중 아서플렉에게 적절히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의 명징성은 혼란스러운 인물의 목소리를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보도록 유도하는 아주 적절한 특성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제조방식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뭐랄까, 저로서는 지나치게 형식에 집착하는 논평이 되는 것으로 보이구요. 반면에 실제상황님께서는 (아마도 추측하기에) 노골적인 메타픽션스러운 부분이 어떤 측면에서든 거슬리셨던 것으로 보이고(이 영화의 기획의도나 메시지 자체에 관해 실제상황님이 의견을 밝힌 것은 아닌듯하지만), 이것이 아서플렉을 꼭두각시로 느끼게 만들고 모종의 짜침이라거나 이물감같은 것들을 느끼게 만든 듯 합니다. 애초에 실제상황님께서도 이러한 근거들로 "그래서 객관적으로 이 작품은 구리다"라는 주장까지 나아갈 생각은 없는 듯 보입니다만, 일단은 요컨대 서술해주시는 부분은 실제상황님의 감상을 설명하는 근거로서 아주 적절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하나 작품성에 대한 평가로 활용하기에는 '메타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입장차이에 따라 설득력이 완전히 달라지는 성격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4/10/17 08: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웬만한 비평들이 대개 다 그리 객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제 소박한 논평도 당연히 포함해서 말입죠. 관점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굳이 첨언하자면, 저는 내용과 형식의 정합성과 등장인물의 자존성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골적 의도가 하필이면 별로 그렇게 명쾌하고 이성적이지 않은 인물과 결합되고 있다는 점'도 모순적이지만, 조커라는 영화 자체가 아서 플렉이라고 하는 특정 인물의 의식을 밀착해서 포커싱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그래서 모순적인 포인트라고 보구요. 그 노골적인 의도를 확인하고 나면, 아서의 말이 아서의 말로 들리지 않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마술사 내지 인형사의 말로 들린다는 거죠. 위에서 '트릭이 공개된 마술'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썼었고 말이죠. 형식적으로도 문제지만 조형적으로도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조커만의 메타픽션이 가지는 유니크함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지점들이죠. 저도 그래서 위에서 '특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 특장점이 창작자의 자의식에 대학 아서 플렉의 종속화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봤지만요. 모순에 근거해 있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특색을 가진다는 점에서 저도 망작이라고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좋게 평가하시는 분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곡쿠키
24/10/17 09:12
수정 아이콘
저 또한 비평이 오롯한 "객관성"을 지닌다거나 혹은 지향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미학적 평가에 있어서 표현의 진실성이나 적절성, 작품 내적 정합성과 완결성, 등등의 종합으로서의 탁월성을 평가하고 그것을 근거짓는 것에 있어 수리물리학적인 의미의 객관성 주장은 사실 거의 불가하다시피까지 할 테지요(과학철학 전공자들은 수학이나 물리학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주장을 하실 수도 있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적 논평의 스펙트럼 내에서도, 취향정당화에 가깝냐 비교적 작품성 정당화에 가깝냐 하는 것들의 차이는 직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편입니다. 윗 댓에서는 메타논의에 대한 취향차이로 해석 및 평가가 아주 갈리는 것 같다고 말씀 드렸으나, 일단 저에게는 실제상황님의 논거들이 단지 자의적이기만 한 선호의 표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작품성 평가 논거로 작용할 수 있는 듯 보이네요. 메타논의에 대한 취향 차이 -> 평가 기준이나 가중치의 설정 -> 그에 맞춘 평가 결과의 도출 등의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할 때 제 생각엔 실제상황님과 저 사이에는 일단 기준이나 가중치 설정에서 입장차이가 발생하는 듯 싶습니다(잘 말씀해주셨듯). 사실 작품성에 대한 어떤 논평을 시도하든 간에 해석자의 선호가 전제된다는 건 필연이니만큼 그런 의미에서는 모든 평론은 '주관' 적이겠죠. 다만 우리가 주관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과정이나 논증적 결과물은 분명 다를테니까요.

'등장인물의 자존성'은 왕왕 다른 형태로 비평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는 사례는 많이 보아왔지만 이 작품에서는 제가 전혀 캐치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영화를 볼때 주요하게 보던 포인트도 아니었구요. 흥미로운 의견 감사합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8:45
수정 아이콘
제가 말꼬리잡기라 표현했지만 '아서가 인형으로 쓰여서 짜치니 구리다'와 '아서가 인형으로 쓰였다니 세상에 이 또한 감독의 계획이고 명작이 탄생했다'라는 헛소리가 사실 같은 수준의 근거죠. 누구는 아서가 철저히 도구적 존재로 쓰였다는 사실을 외려 미학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죠.(물론 그 이상한 사람이 저는 아닙니다만) 근데 누군가가 그걸 근거로 조2가 명작이라 하면 말꼬리를 잡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반대 역시 마찬가지겠죠크크
오곡쿠키
24/10/17 09:13
수정 아이콘
단순 한 줄 요약을 하면 대동소이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을 저울질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하하. 제가 위에서 실제님이랑 석열임의 논쟁을 전부 따라가지는 못했으나, 서로 조금의 인내심을 더 가진다면 조금 더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까 하고 감히..언급드려 봅니다. 글에 대한 의견은 항상 감사합니다.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09:34
수정 아이콘
하지만 전 두 의견 모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흐흐
24/10/17 10:12
수정 아이콘
정성스레 써주신 본문 잘 봤습니다. 메세지 부분에 있어서는 호평에 크게 반대하진 않습니다. 저 또한 조커2는 감독의 의도대로 제법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2억불의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로서는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망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제작비를 들이는 대중영화 중에, 주인공을 하강-하강-하강-하강 시키다가 끝내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아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작품이 조커2 외에 또 있습니까? 수많은 비극이 있지만 보통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대중의 특성을 고려해서 숨쉴 구멍은 만들어줍니다. 주인공이 대부분 악인이고 파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느와르 장르조차, 중반부에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후 화양연화 같은 회상씬들을 동원하고 최대한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보이게해서 어떻게든 미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조커2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서 플렉은 끊임없이 압박 당하고 부정 당하고 실패만 반복하는 와중에, 고담수용소라는 환경은 후보정까지 동원해서 최고의 미장센으로 추저분하고 불쾌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의도적으로 연출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가창과 화면과 춤들은, 아서 플렉의 비참함을 더 부각시킬 뿐입니다. 조커2는 영화적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아서 플렉을 끊임없이 짓밟고 또 짓밟습니다. 이걸 보고 대중들이 즐거워 할꺼라고 생각했나요?

물론 글쓴분처럼 조커2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아서 플렉의 심리적 변화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보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조커2를 무작정 재미없게 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확실한건, 그런 사람은 한줌이라는 겁니다. 1차원적으로 어떤 카타르시스도 멋짐도 즐거움도 감동도 행복도 사랑도 주지 않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영화에서는 어떻게든 즐거움을 끼워넣어 줍니다. 그걸 무시하고 만들어진 2억불 제작비의 영화는 망작이라는 평가 외에는 드릴게 없습니다.

[혼자 망상을 해보자면], 전 토드 필립스가 조커2 생각이 전혀 없었을꺼라고 추측합니다. 조커1은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이고 애초에 2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영화란 영화는 싹 다 말아먹은 dc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조커를 시리즈화 하기 위해서 약 48,000번 정도 토드 필립스를 조른겁니다. 지긋지긋하게 시달리던 토드 필립스가 "좋다, 찍자, 안그래도 1가지고 개소리 해대는 인간들 꼴보기 싫었는데 잘됐네. 대신 나 하고 싶은대로 할꺼다, 시나리오 수정 X, 제작사 간섭 X, 제작비 간섭 X, 이 조건이면 찍고 아니면 안 찍음." 했고 헛발질만 열심히 하고 있는 dc 답게 그걸 받아들인거죠. 그래서 토드 필립스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영화를 찍었고, 2억불의 제작비를 들인 작가주의 성향의 예술영화라는 괴물이 튀어나온겁니다.

100퍼센트 망상인건 인정하는데, 이게 아니라면 제작사 단계에서 이 기획이 컷 되지 않은걸 설명할 수가 없어요. 2억불을 들여서 주인공을 짓이겨버리는 코믹스 히어로 기반의 영화가 승인이 난다고?? 뮤지컬씬이 그렇게 많은데 이런 가창과 춤이 OK가 떨어진다고?????
윤석열석방하라
24/10/17 16:06
수정 아이콘
완벽히 동의합니다. 저도 조커2 본 직후에 들었던 최대의 의문이 와.. 대박 이거 제작비 어떡함?? 이었습니다.
데스티니차일드
24/10/17 10:38
수정 아이콘
영화를 안본 뻘플이라 죄송합니다만..

깔끔하게 결말 낸 퍼스트 건담 후속작으로 제타건담 만든 대머리 영감 심정이랑 비슷하지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생기네요.
그래도 장난감이랑 프라 팔아야하는 스폰서에 대해서 어느정도 타협을 한 토미노.. 그런거 없이 정말 자기 하고 싶은대로 간 토드 감독..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486 [일반] 최근 제가 주목한 소식 두개(신와르 사망 / 북한의 파병) [34] 후추통7900 24/10/19 7900 12
102485 [일반] 저작(인접)권 보상금 분배에 대한 글 [4] evil4664 24/10/19 4664 6
102484 [일반] [2024여름] 남프랑스 빙하와 바다 [11] Ellun4576 24/10/18 4576 7
102483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2. 일할 로(勞)에서 파생된 한자들 [5] 계층방정3515 24/10/18 3515 2
102482 [일반] [2024여름] 여름색 [2] 판을흔들어라4662 24/10/17 4662 2
102481 [일반]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 발표 [35] 유료도로당12384 24/10/17 12384 57
102480 [일반] 지금이 인적 서비스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시대가 아닐까요? [22] 럭키비키잖앙9174 24/10/17 9174 4
102479 [정치] 이문열 “한강의 노벨상 수상, ‘문학 고급화’ 상징 봉우리 같은 것 [44] 기찻길11256 24/10/17 11256 0
102478 [일반] 항상 건강 관리 잘 하세요 여러분 [235] 모래반지빵야빵야10962 24/10/17 10962 198
102477 [일반] 공립 고교가 사라지고 있는 일본 고교 야구 (feat. 고시엔의 존폐) [15] 간옹손건미축6110 24/10/17 6110 51
102476 [일반] [2024여름] 일본 시마네현 아다치 미술관 [16] Karolin5636 24/10/17 5636 6
102475 [정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김건희·최은순 불기소 [152] 전기쥐12866 24/10/17 12866 0
102474 [정치] 재보궐 2:2/교육감 진보 [65] DpnI10108 24/10/17 10108 0
102473 [정치] 검찰, 통일부 압수 수색. 문 전대통령 방북전세기 특혜의혹 [69] 빼사스12784 24/10/16 12784 0
102472 [일반] [2024여름]여름 막바지 대만 여행 [3] Nothing Phone(1)4541 24/10/16 4541 3
102471 [정치]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나라인가? (목숨값, 국감, 하니) [101] 호루라기장인10072 24/10/16 10072 0
102470 [일반] <조커2 : 폴리 아 되>에 관한 옹호론 (1,2편 스포有) [155] 오곡쿠키6594 24/10/16 6594 7
102469 [일반] [2024여름] Fourteen years ago and now [5] 제랄드3003 24/10/16 3003 8
102468 [일반] 2024년 노벨경제학상 - 국가간의 번영 격차에 대한 연구 [30] 대장군8851 24/10/15 8851 2
102467 [정치] 문헌일 구로구청장 사퇴.. 내년 4월 보궐선거 [40] 버들소리13413 24/10/15 13413 0
102466 [일반] 카리스마와 관료제 그리고 그 미래 [14] 번개맞은씨앗5520 24/10/15 5520 0
102465 [일반] [2024여름] 아기의 터 파는 자세 / 덤 사진 (움짤 용량 주의) [23] 소이밀크러버5842 24/10/15 5842 23
102464 [일반] [2024여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여해봅니다. [6] 뿌루빵3831 24/10/15 3831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