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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19 12:17:03
Name 오곡쿠키
Subject [정치] 사회 소멸에 관한 전망과 몇 가지 생각들 (수정됨)
안녕하세요. 오곡쿠키라고 합니다. pgr에는 처음으로 글을 남기게 되네요.

아래의 글은 출산율 저하 및 사회소멸 문제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을 관찰하면서 평소에 가져왔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특히나 최근 불거지는 의대정원 논란을 보면서, 관련해서 글을 한 번 작성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의대정원 문제를 언급하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더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의식을 제기해보려는 글입니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출산율 저하와 사회소멸 문제는 곧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 문제와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글의 요지입니다. 물론 '자본주의'니 '체제'니 하는 다소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이 글이 학술적 객관성이나 엄밀성을 담지하는 것도, 그러하고자 하는 것도 모두 아닙니다. 

그럼에도, 출산율 논쟁과 관련하여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가 '문명사적'으로 사유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사실 다 알고들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거대한 차원의 논의이기 때문에 논의에 참여하는 우리를 도리어 공허하게 만들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가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한다면, 제대로 정의조차 되지 않은 문제의 늪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릴 뿐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답'에 관해서는 유효한 대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체제적인 대안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인 논조는 비관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다양한 차원에서 서술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미약하지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자기위안을 해봅니다.

(경어체가 아닌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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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대 정원 논쟁을 통해 살펴보는 인구구조 변동(출산율 급감과 고령화)

 최근 다시금 불거진 의사 증원 논쟁은 다각적인 정책적 논점들을 논의의 장으로 불러 세운다. 이 논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의사 유인 수요(PID) 개념을 논거로 증원을 반대하는 입장과, 의사 유인 수요가 증가하는 의사 수에 정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엄밀히 시장논리로 작동하지는 않지만)의료시장 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찬성 측의 입장의 대립이다. 다만, 더욱 확실해 보이는 것은 찬성 진영이든 반대 진영이든 모두 이 문제에 ‘수가’와 ‘건보재정’ 문제가 핵심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수가 문제와 건보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의료보험체계와 국가재정체계를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이 논의에 참여하는 거의 모두가 ‘바이탈’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상대적‧절대적 처우를 개선하여 해당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과 보장성을 늘리는 것을 최우선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감한다는 것이다. 이를 대체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물론, ‘바이탈 분야에 대한 개선’이라는 목표는 다음과 같은 사회구조적 변화의 흐름을 충분히 견뎌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급속도로 고령화되는 인구구조 하에서, 고령층에 대한 의료적 지원을 최대한 덜 줄이면서도 건보공단(나아가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안정화시키는 방식 말이다. 실노동인구는 줄고, 보험의 혜택을 받는 실질적 피부양자들은 늘어가는 이중고의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사실 비단 이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장기간 허리를 동여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출산율 감소를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대전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급감하는 출산율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이 결코 등한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2. 문제는 경제야, 현자들아(?)

 사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바로 경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돈 문제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기대수입이 하락할 수 있는 불확실한 미래를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대다수의 국민들은 별다른 ‘전문성’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억대 연봉을 쓸어가는 피부과 의사들의 특권에 철퇴를 내리쳐 의사 직종 내의 기대수입을 평준화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할 것이다. 즉, 세수의 증대보다는 의사들이 벌어가는 수입 자체의 분배 혹은 감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재정 측면에서 가능키는 한 일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돌려 말하면, 의대 정원 논쟁은 사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가 예견하는 경제적 난관을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인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회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해결책’같은 것들이 의제화‧정책화‧법제화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아주 근본적인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려는 시도는 아마 높은 확률로 여론의 융단 폭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도 힘들었지만, 장기적 저성장과 고령화 사회의 도래가 암울한 미래적 전망을 직감케 만드는 오늘날의 상황 하에서, 이 문제를 건설적으로 풀어나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3. 급전직하하는 출산율 :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관한 본능적 반응


 이제, 논의의 방향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자. 의대 정원에 관한 논쟁이 사실은 경제의 문제라는 것을 국민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현재 한국 사회의 거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욕망의 한 차원을 목도하게 된다. 의사들, 그리고 최대한 세금은 덜 내면서 의료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겉으로는 대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은밀히 공조하듯이 공유하는 그 욕망 말이다. 나는 그것이 러프하게 표현해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적어도 자기 자신만은 영위해야만 한다는 서바이벌리즘(단순 경제적 생존을 넘어서는 사회적 생존)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계급적 정의의 문제는 어쨌거나 결국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산층적’이라는 단어 대신 ‘상류층적’이라고 표현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중산층적, 혹은 상류층적이라는 계급적 단어를 엄밀히 정의할 능력은 내게 없다. 다만 이런 것이다. 강남에 거주해야 한다는 욕망. 그게 너무 힘들다면 적어도 서울에 자가는 있어야 한다는 욕망. 아이를 영어 유치원과 대치동에 보내고, 면학 분위기와 진학률이 좋은 중고등학교에 보내 명문대에 입학시켜, 전문직 자격증을 획득하거나 못해도 대기업에 입사시켜야 한다는 욕망. 주말에는 근사한 스테이크를 썰어 먹고 고급 와인을 마시는 데이트를 즐기고, 휴가철에는 부담 없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자신의 중산층적 라이프 스타일을 SNS에 전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욕망. 그리고 이런 삶이 충분히 안정적일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는,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욕망. 바로 이것이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중산층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해야만 한다는 욕망이 의미하는 바이다.
   
 한국 사회의 출산율이 왜 이토록 급전직하 하는 것일까? 나는 한국사람들이 위에서 다소 과격하게 서술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동시에, 이러한 삶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자신에게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력하게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중산층적 라이프 스타일을 걱정 없이 영위할 수 있는 비율은 결코 높지 않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압도적인 경제-사회-문화자본을 물려받을 수 없는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기 위해 넘어서야만 하는, 못해도 이십대 중반, 길면 삼십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문턱들 앞에서 좌초하고야 말 것이다. 자유주의-능력주의 사회이므로 이러한 진단은 옳지 않다는 반대 논평(노력하면 다 된다!)을 내기 위해서는,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기 매우 어려워 보인다는 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청년 세대가 마음의 여유를 잃고 연애와 결혼을 모두 포기하고 있다는 통계적 지표에 대하여 대안적 설명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한국 사회가 과연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술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지를 회의하는 것은 비단 청년세대들 뿐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의 중-장년 엘리트들, 부자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르는지를 살펴본다면 말이다. 공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진보적’ 정치인들조차 자신의 자녀들을 미국이나(1순위) 유럽(2순위)으로 유학 보내는 것을 보면(물론 유학의 목적이야 다종다양하겠으나), 그들은 미래의 한국 사회가 과연 자신의 자녀들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기에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직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제1세계'라는 탈출구가 남아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는 다음과 같은 당연한 전제가 덧붙여져야 한다. 사실 그 탈출구는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장기적-안정적으로 영위하지 못하는 삶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탈출구라고 말이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박탈감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비교군은 한국사회의 중상류층들에 더해, 미국과 유럽이라는 제1세계로 까지 확장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은 '위기의 순간'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자원과 힘을 가진 국가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이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는 것.    

4.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길들인 방식의 지속가능성


 19세기 중반 이래, 특히 서구를 중심으로 진행된 인류의 역사는 이념 대립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출현은 인간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뿌리부터 뒤흔들어놓았고,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다종다양한 사회 혼란과 부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사회주의’라는 개념-용어-상상력은 바로 이러한 사회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한다. 나는 근현대의 인류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지지한 것은 인류의 절반이 가령 자유를 거부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결코 시작부터 완전한 체제가 아니었고, 사회주의(적 상상력)는 바로 그러한 불완전한 자본주의 체제의 병리현상에 대응하고자하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시도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근현대를 회고해보자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충분히 체제 내적으로 포섭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는 안티-자본주의 담론들마저 모두 먹어치운 상태로 몸을 불린 괴물이 되었다. 자본은 노동을 충분히 순치하였다. 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길들인 방식은 결국 생산력의 증대라는 하나의 답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대안적 체제를 강구하기에는, 지금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아들딸들인 우리는, 사실 먹고 살만 한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분진 가득한 공장에서 유년기의 아이들이 장기간의 노동 착취를 당하는 현상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와는 거리가 매우 먼 이야기다. 맑스는 여전히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들의 위선과 기만을 냉소할지도 모르지만, 현대 문명이 구축해놓은 압도적인 생산력이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주었는지를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제기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길들인 방식은 과연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는 정말 역사의 최종장을 장식하는 인류의 이데아와도 같은 체제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사회(국가)의 자원, 그리고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있다는 점을 반드시 검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그 모든 안티-담론들에 관하여 생산력의 증대와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매력적인 대답을 제공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금의 방식으로 생산-소비-폐기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가령 한국 사회의 인구들이 나눠먹을 수 있는 파이도, 전 세계인들이 나눠먹을 수 있는 파이도 모두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축소시켜보자. 이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욕망하게 되었지만, 그 욕망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충족할 수 있는 것일까? 경제성장, 과학기술의 발달, ‘인적자원’과 지식의 축적은 그래도 ‘충분히’ 많은 한국인들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 또 다른 많은 이들이 불만 없이 그것을 꿈꿀 수 있도록 생산력을 유지시켜 줄 것인가?
   
 만약에 위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면, 나는 우리가 분배 정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시작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분배 정의 문제의 결론은 크게 다음의 두 갈래로 나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째,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삶과 그런 삶에 다다를 수 있는 미약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작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 둘째, 장기적으로 성장의 동력을 잃은 체제의 부담을 시민들이 평등하게 부담할 수 있도록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실시하는 것.

 물론, 이 모든 고민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우리에게는 존재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세속화 시대의 신앙의 대상인, 과학이다. 그러나 적어도 절대 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이 과학이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미래에 자신의 삶을 걸만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급전직하하는 출산율은 오히려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위한 파이의 크기가 갈수록 감축될 것임을 많은 이들이 예견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리고 내가 다소 놀라운 것은, 이러한 현상을 맞닥뜨리면서도 우리 모두가 결코 분배정의의 문제를 최우선 해결과제이자 화두로서 논의의 장으로 올려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 외면과 냉소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명령이다 : 
 80억 인구의 생각은 ‘칼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고정된 하나의 종착역쯤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이 지금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위하며 사회를 조직해온 역사가 길어봤자 채 300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추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작금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는 반드시 에너지, 식량, 생태문제의 차원에서 중차대한 전 세계적 혼란‧갈등의 상황을 초래할 것이고, 19-20세기와 유사한 수준의 격렬한 이념 대립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인데, 우리는 너무 많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고 폐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의 규모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증대시켜나가고 있다.
 
 문제는, 설령 이 같은 비관적 전망이 혹여나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굉장히 난망해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가령 내가 아는 한 오늘날의 사회이론가들은 전 지구적인 ‘사회복잡성’ 문제 앞에서 거대이론-분석을 내놓는 것을 거의 반쯤은 포기하였다. 누군가 ‘문명사적 진단’이랍시고 특정한 시도를 해보았자, 그것이 예견하는 해결책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축’  따위의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차원 정도에 머무를 뿐이다.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소 규모를 좁힌 ‘미시적’ 차원의 해결책, 가령 게임이론적인 정책이나 기본소득같은 사회실험을 내놓는 것 정도다. 나는 이런 노력들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의 사회복잡성 문제가 갖는 압도성은 우리를 여전히 숨 막히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80억 인구의 생각은 ‘칼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 합리적-이성적 주체로서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자신감은, 복잡하게 분화되어있고 그 규모마저 방대해진 현대사회라는 괴물 앞에서 좌초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 이론화되기조차 쉽지 않은 사회복잡성 문제 앞에서 ‘비판적’ 지식인들은 더 이상 시대의 지성이자 예언가로서의 역할을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절대적으로 신성시되며 팽창하는 인간의 욕망, 그것이 전 지구적으로 얽히고설키는 방식으로 폭주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력, 이론화되기도 쉽지 않은 사회복잡성 문제, 그 무엇에도 재갈을 물릴 수 없고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현명한 우리는 직감한다. 이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결혼을, 출산을 포기하고 후세대의 삶은 뒤로 미룬 채 어떻게든 내가 중산층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혈안이 된다. 분배 정의나 사회의 지속가능성 문제 따위는 지금 나의 쾌락과 효용을 증강시키는 문제에 비하면 사실 신경쓰는 것조차 사치인 것이 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 사회통합, 합리적 문제 해결이라는 철지난 계몽주의적 이상을 냉소하게 된다. 나는 바로 이러한 종류의 숨막힘, 모든 결론을 외면과 냉소로 이끄는 이러한 종류의 숨막힘이 현대사회가 명령하는 현기증이자 우리가 처한 막다른 길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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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9 12:23
수정 아이콘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초반부 인명 보고 호다닥 내려서 댓글부터 씁니다만
저 분 이름 언급하시는 순간 카테고리가 정치가 됩니다. 카테고리를 수정하시던가 언급을 삭제하시던가 해야...
오곡쿠키
23/10/19 12:3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정치글 관련 공지는 읽어 보았는데 인명 언급이 중요한 요소인지는 몰랐네요.
카테고리를 정치로 해야하나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만,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일반으로 지정하였는데요. 문제제기가 된다면 카테고리를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23/10/19 13:18
수정 아이콘
현대 문명의 생산력의 공을 자본주의 체제에 돌리는 것은 컴퓨터 업무의 성과를 윈도우즈에 돌리는 것만큼 범주의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글 전체적으로 1세계적 관점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문제는 그 괴물을 이제 다스리거나 물리칠 수 있는지이긴 합니다.
오곡쿠키
23/10/19 13:27
수정 아이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체제경쟁 당시의 공산권도 어쨌든 생산력 증강 노력을 기울였고 일시적으로는 성공하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저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로 만드는 그 고유한 특성은 무제한적 축적 강박(혹은 논리)이라고 배웠습니다. 임노동도, 시장도 아닌 자본의 무한 축적 논리요. 근데 사실 이것도 자본주의=현대문명이라는 걸 당연 전제한 관점이고,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현대 문명'이, 나아가 압도적 기술력과 자연지배력을 획득한 인간이(그것이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뭐든)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polariss
23/10/19 13:59
수정 아이콘
"분배정의의 문제를 최우선 해결과제이자 화두로서 논의의 장으로 올려놓지 않는다는 사실"은 논의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 분배정의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손해를 볼 사람들 이라는 이야기 이지요.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80억 인구가 칼라로 연결된 것 처럼 80억 인구의 생각을 모두 대변 할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개편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오곡쿠키
23/10/20 13:43
수정 아이콘
80억을 수용할 수 있는 공론장..따위는 사실 불가능한 것이겠죠. 또 논리적으로는 우리가 꼭 공론을 거쳐야만 좋은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고요. '칼라'이야기를 한 것은, 이 문제가 달리 말하면 이해관계가 각자 다른 80억이 연관된 문제라 매끄러운 해결책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차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그래서 정책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프뤼륑뤼륑
23/10/19 14:02
수정 아이콘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바를 명쾌하게 글로 정리해주신 거 같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냉소와 외면이 구조적 당위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동의합니다.
많은 이들이 게임체인저적인 안티테제의 등장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올 수 있을지, 온다 한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모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직감하기에 다들 이토록 '적자생존'의 기치 아래 회피적 삶을 영위하는 거겠지요.
인간실격
23/10/19 14:43
수정 아이콘
[한국사람들이 위에서 다소 과격하게 서술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동시에, 이러한 삶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자신에게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력하게 직감] 이게 좀 중요한 대목같은데요. 지금까지 SNS로 상류층의 삶이 적나라하게 공유되면서 누구나 그 일부를 경험해보고 또 그런 경험을 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라면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개개인들이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봅니다.

어자피 내가 못하더라도 남도 못하면 배가 덜 아픈게 이 사회의 태생적 본능이라서요. 국가단위의 분배구조 개편보단 눈 가리고 문제가 없었다는듯 서로 못사는 (또는 못사는것처럼 위장하는) 사회로의 회귀가 더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느끼기엔 그게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오곡쿠키
23/10/19 16:42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라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들 어련히 포기하고, 체념하고, 순응하기를 '원한다면',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인데 딱히 문제될 것은 없겠죠. 그런데 저는 실제로 뭔가 광범위한, 개혁적인 실천의 흐름이 발생할 수 있냐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순응'일변도를 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체제가 '상승욕구'를 끊임없이 부추겨 왔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은 이미 너무 똑똑한(눈이 높아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기본권 향유 가능성이 문제시되기 시작하는 상황까지 가버린다면(가령 의료 붕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김은동
23/10/19 15:21
수정 아이콘
사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소리야 싶겠지만, 미래의 자식의 고생이 뻔히 보이는데 아이를 낳으려면 국가적인 위기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그 위기를 돌파할수 있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출산 반등이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는게, 저출산으로 힘들어지고 미래가 더욱 팍팍해질수록 더 안낳을겁니다.
육아비용을 줄이고 육아 혜택을 늘리고 이런게 있더라도 내 아이의 미래가 불행해보이면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덜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층방정
23/10/19 22:40
수정 아이콘
저출산이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건 물질적인 문제도 있을 겁니다.
옆집이 애를 안 낳는다는 건 내 애 키울 비용도 올라간단 얘기거든요. 당장 육아물품 가격이 올라갑니다. 기업들은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을 올려서 대응할 테니까요.
23/10/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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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분배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죠.
부채를 늘려 현세대에게 분배하는 것은 가뜩이나 엄청남 부담을 질 수 있는 미래세대에 더 큰 짐을 지우는 거고요.
법인세를 일부 올릴 수는 있지만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성장성을 꺽어버릴 수 있고요.
그러면 분배를 크게 늘릴 재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을 찍어 분배를 하면 인플레가 엄청나게 될 겁니다.
오곡쿠키
23/10/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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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정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시작하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이론적 이상향은 '파격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재)분배 정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법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연히 '사회주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구요. 물론, 이런 과정도 결국은 시민사회의 공론장과 의회를 거쳐 정책적 지지를 얻는다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 도리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사람들이 원해야 하는 것이지 의사결정자 한 두명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무튼, 이 재분배 정책이란 것은 경제 성장률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 고통 분담을 위한 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을 포기한다라? 사실 반 쯤은 이미 궤변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글의 관점은 '무한 팽창'으로서의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결국 우리가 같이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3/10/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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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으로 분배하자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논의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뭘 분배할지를 생각해 봐야되고 그냥 삼성전자 팔아서 국민들한테 나눠주자는 식이면 성장률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엄청 마이너스 성장으로 꼴아박는 게 될 겁니다...
오곡쿠키
23/10/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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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꼭 당장 기업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기업에는 임원들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매우 장기적으로 1)최초 분배(임금)의 차원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바꾸어간다 2)재분배의 차원에서 재산세를 올린다. 큰 틀에서 이런 방법인 것이겠죠. 물론 당연하게도 강력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로메인시저
23/10/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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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돈문제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돈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워 사람들에게 온전한 사유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 외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기준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없게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장마의이름
23/10/2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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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돈과 자본으로 일원화하는 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프레임이니까요.

1) 그런 자본주의 프레임에서도 출산을 하도록 가치를 변경 (인센티브, 싱글세 등...)
2) 자본주의에서 새롭게 나아간 새로운 프레임 도출 & 사회적 확립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도 2번에 가깝고 글쓴분 의견도 2번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요.
로메인시저
23/10/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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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합의된 단일 프레임이라는건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80억 개개인 모두가 다를 수 있으며, 그러한 각자의 프레임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공통된 프레임, 단일한 세상 속에 살아가기를 강요받지만, 실은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싸움을 하고 권력관계를 생각하고 수지타산을 따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가스라이팅 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가족, 연인, 친구에게마저 내려놓지 못한 채 이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준을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확립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상대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내려놓고 허물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죠. 저출산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화된 세상? 저는 그래선 안된다고 봅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동물이고,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빠르게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오곡쿠키
23/10/2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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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궁극적으로는 저도 탈물질주의적-가치지향적인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가치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우리가 꼭 지금 수준의 생산력을 유지해야만 하느냐,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덜 누리더라도 훨씬 '행복한'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분배 정의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관점이 더욱 널리 받아들여진다면, 논의는 더욱 수월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가령 시저님과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물질적인 것'이 중요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죠. 결국은 이 '물질적인 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생각할지의 문제인 것으로, 달리 말하면 우리는 경제의 문제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겠죠. 우리는 생물학적 기관을 지녔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가치체계에 관한 논쟁은 필수적으로 분배정책과 같이 진행되어야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압도적으로 호화로운 물질적 삶을 누리고 있는데, 탈물질이 중요하다는 구호만 외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반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들만 돈 많이 벌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빈낙도 하라고 하네, 이거 기만 아니냐..(!) 하는 종류의 비판이 당연히 있을 것이구요.
로메인시저
23/10/20 13:43
수정 아이콘
위에 단 댓글과 비슷한 맥락으로 시작해서 답변을 드리고...
탈물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탈물질도 물질적 세계관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자가 어떻게 기준을 잡느냐에 달렸다는 것이고요. 문제는 물질적 세계관이 다른 생각들을 모두 박해한다는 것에 있지요.
또한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의 논조가 바로 생각이 전환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마지막 허들입니다. 사실 그건 물질적 세계관이 변하지 않는 공통의 절대진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외에 파생적으로 각자 개인의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러한 전제부터가 부정될 수 있다는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러한 논의는 진짜 해결책으로 다가가기 어렵게 됩니다. [경제적 유물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23/10/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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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몇 번 더 정독해야겠습니다.
피우피우
23/10/20 17: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이렇게 정갈하고 구체화된 글을 읽으니 생각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만, 저는 근본이 낙천적이라 그런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요새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몇몇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정말 '디스토피아'일까요? 중세 봉건사회나 조선시대의 사람이 지금 우리 세상을 보면 신분 질서나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너지고 타락해버린 그야말로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멋진 신세계'같은 세상이 지금 우리 눈에는 디스토피아로 보일지는 몰라도 막상 그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자유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세상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에 대한 욕망을 거의 신성시하면서 안빈낙도하는 삶은 위선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매도해버리는 지금의 사회도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글 중간 [물론, 이 모든 고민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우리에게는 존재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세속화 시대의 신앙의 대상인, 과학이다.] 이 부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과학의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맹신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경계하는 편인데도 인류가 더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을 꼽으라면 과학기술의 발전을 꼽을 것 같거든요. 또 어차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답이 없으니 거기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생각해보면 심지어 여러 창작물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마저도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제하고 있지요 크크.. 어쩌면 현대 인류의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자본주의보다도 합리주의가 더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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