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와우를 하다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마눌림은 서버 넘버원 막공대장이었고 저는 그 공대의 천민 냥꾼이었죠.
십자군에서 시작된 여정은 데스윙 하드를 잡음으로서 막을 내렸고 생업에 바쁘지만 헤비 게이머이던 저희들은
원할때만 할수있다는 매력(적어도 처음에는)에 빠져 lol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와우 6년에 이어 롤로 인생의 2년이 삭제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일은 점점더 바빠져서 더이상 게임은 할수 없게 되었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서 시청하는 롤챔스만이 유일하게 하루중
기다릴만한 이벤트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네요.

아내는 mig부터 시작된 깊은 팬심을 가진 CJ극성팬이고, 저는 EDG때부터 나진을 응원한 진성 나진빠입니다. 덕분에 3연짜오와
랜덤트런들등으로 화제가 되었던 그 결승이 끝난 후에는 3일동안 제가 말을 걸지 못했던 때도 있었네요.

저는 왠지 CJ가 정이 가질 않아서 CJ 경기가 있을때면 항상 저도 모르게 상대팀을 응원하고 있더군요. 오늘은 나진경기도 아닌데
CJ를 응원해서 기분 좋게 해줘야지 싶다가도 어느새 한타가 일어나면 주먹을 불끈쥐고 "라교수 힘내라!" "썸데이 발라버려!" 등등의
액티브한 구호를 외치며 CJ의 패배에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만 망할수 없지'라는 물귀신 심리가 아니었나 합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저도 평생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아내와 함께 CJ를 응원했습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롤챔스에 대한 예의로 족발은 시켜놓고 티비앞에 앉았습니다.

1경기는 그저 "역시 SKT1은 정말 잘하는구나. 한순간도 불리한 타이밍이 없었구나. 트릭 왜 내보낸거지?" 이런 한탄을 하던중
2경기의 믿지못할 쉔의 활용에 아내가 흥분했습니다. "역시 우리 샤이오빠가 최고지. 쉔 짱짱맨, 아지르 킹왕짱"등등을 외치며
아내가 기뻐합니다.

"난 이제 여한이 없어. 그저 CJ가 호구가 아니라는것을 증명했으니 이제 져도 화가 안날것 같아"

3경기가 시작이 되고 팽팽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데 마눌림이 울먹거립니다. "마린 나뿐놈, 왜 우리정글몹을 지가 다먹어? 트릭은
왜 누누를 골라놓고 자기정글도 못지켜?" 등등 서러움에 목매인 멘트를 쏟아냅니다.

10:5에서 10:10이 되었던 시간차 에이스가 나왔을때 저는 티비를 끄는것을 제안했습니다. "여기서 그만 우리의 소중한 멘탈을 보호하자.
이변은 없다. SKT1은 너무 강하다."

하지만 팬심은 강했습니다. "지더라도 어떻게 지는지 보고싶어. 아직 한타 한번은 기회가 남아있잖아."

마지막 한타에서 대승할때 밑층 할머니 할아버지께 죄송하게도 서로 껴안고 방방 뛰었습니다.
아내는 SKT1의 억제기를 밀고 마지막 쌍둥이가 깨질때까지 "몰라 아직몰라.. 이거 정말 이기는거야?" 등등 설레발을 최대한
자제하며 긴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승리가 확정되자 현장의 많은 팬들처럼 엉엉 울더군요. "이겼어. 진짜 이거 꿈은 아니지? 정말 이긴거 맞아?"
"마린 저놈이 우리 정글 다 먹고.. 엉엉.. 샤이 손도 아픈데... 메라 정말 잘했지? 우리 롤드컵 혹시 갈수도 있는거야?"

결국 아내는 VOD가 뜨기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2,3경기를 복습하고 있습니다.

이놈의 게임이 무엇인지, 또 팬심은 뭔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군요. 그저 오늘은 CJ선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오늘은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