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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24 03:30:08
Name sonmal
Subject [LOL] 내가 기억해온 양심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손으로 말한다 해서 손말, sonmal입니다.

평소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스포츠에 변변한 공헌 한번 해온 적 없지만 그간 e-sports를 지켜보고, 사랑해온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그간의 e-sports와 어제 있었던 경기에 대한 글을 적고자 합니다.

1. 제가 처음 이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빛이라는 팀이 당시 임요환 선수를 주축으로 하던 skt를 7경기까지 가던 접전 끝에 잡아낸 그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은 한빛의 나도현 선수의 팬이었고, 한빛과 sk의 경기에 대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제게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한빛도 엄청 잘하는 팀인데 sk에는 이기기 힘들 것 같다고, 당시 이스포츠를 전혀 모르는 저에게도 그 소녀의 이야기는 신나게 들렸습니다. 누가 누굴이기고, 누가 누굴 이기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떤 종족은 어떤 종족한테 강한데, 사실 한빛이라는 팀이 결승까지는 갔지만, 선수 구성과 종족 구성상 우승은 힘들 것 같다고

그리고 sk가 강팀이라고 말하던 그 소녀의 말처럼 sk라는 팀의 감독은 절대 7경기까지 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시는대로

그 오만한 팀을 한빛은 꺾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스포츠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2. 제가 가장 사랑한 선수는 스피릿이라 불리던 프로토스였습니다.

딱히 그 선수의 스타일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 선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소망이라는 리그의 4강

2:0의 스코어를 황제에게 2:3으로 역전당한 후, 경기를 복기하던 그에게

황제가 악수를 청하자 분한 마음에 경기 리플레이를 보던 중에도 깜짝 놀라 악수를 받고 고개를 숙이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모두 황제의 치켜든 오른손만을 기억하지만, 저는 그의 손을 받아준 그 선수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 리그에서 반대쪽에서 올라온 그의 제자는 임요환의 제자와 임요환 모두를 격파하며 프로토스라는 종족의 촉망받는 왕자가 되었지만

저는 그래도 그보다 스피릿이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최연성이 백조의 우아함을 보여줬다면, 스피릿은 오리의 처절한 물갈퀴질만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저는 그 선수가 좋았습니다.

왜 그 선수가 좋냐고 묻던 제 친구에게

“난 그 선수가 가진 그늘이 좋아.”



3.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스포츠의 순간은 soul과 팬택의 결승전입니다.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당시 soul은 비스폰팀이었고, 팬택은 강력한 스폰을 등에 업은

강력한 팀이었습니다.

멋진 경기 끝에 석패한 후

한승엽 선수에게 인터뷰를 청하던 전용준 캐스터에게 한승엽선수는 비 스폰팀의 설움을 쏟아내며 눈물을 쏟고 맙니다.



“저희가...”

“약체팀으로 평가받던 우리가 결승전무대에 오른게 정말 자랑스럽고...”

“진짜 우리팀을 그렇게 보는 사람들한테 보란 듯이 우승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도 아쉽구요....”



너무도 분해서, 너무도 이기고 싶어서 엉엉 울던 그를 조용히 안아주던 박상익 선수...

이 순간이 저에겐 이스포츠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그들의 의지를 이은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많은 이야기 대신 그 순간의 사진 한 장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기억하는 이스포츠입니다.



4. cj팀 창설이전 wcg의 상금을 받은 이재훈 선수가 조규남 감독에게 상금의 일부를 내밀자 이미 반을 뗐는데 또 무슨 돈을 또 내냐며 돌려준 조규남 감독...

그리고 몇일이 지났는데 조규남 감독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담배가 줄지 않는겁니다.

알고 보니 조규남 감독이 자고 있는 사이에 이재훈 선수가 새담배를 사서 조규남감독의 담배갑을 계속 채워 넣었던 겁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2년 후

데뷔후 12년 만에 은퇴하는 이재훈 선수를 위해 조규남 감독은 그를 화승과의 첫경기에 내보냅니다.

다음은 그당시 기사의 일부입니다.

"출전을 결정한 CJ 조규남 감독은 “이번 출전은 은퇴식을 갖는 이재훈 플레잉코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이기기 위한 엔트리의 일환이다. 이미 2주전부터 출전을 내정하고 준비에 임했다”며 “이재훈 플레잉코치에게도 은퇴식이나 경기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충실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부담 없이 자신이 준비한 것을 마음껏 발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게이머로 마지막 은퇴 경기를 치르는 이재훈 플레잉코치는 공교롭게도 최강의 프로게이머이자 화승 오즈의 에이스인 이제동과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cj팬은 단 한사람도 이재훈 선수와 조규남 코치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던져버린 한 경기를 위해서

한사람은 12년을 기다렸습니다.




4. 지금껏 유리한 상황의 팀이나 선수가 불리한 상황의 선수를 조롱하는 플레이를 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을 던져야 할 상황에서 돌을 던지지 않는 다는 이유로 소위 관광을 태우는 경우에 선수들에 대한 방어여론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불리하거나 실력의 부족한 팀이 유리하고 실력이 나은 팀을 조롱한 것이고, 경기를 시청하고, 준비한 상대 선수와 시청자 모두를 조롱하는 경기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온게임넷측과 선수단 측은 단 한마디의 언급과 사과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축구선수도 우리팀의 실력이 상대방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살골을 의도적으로 넣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야구선수도 우리팀의 실력이 상대방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을 펜스밖으로 던져버리지 않습니다.

오늘의 경기는 현 이스포츠의 수준과 선수들의 인식을 알 수 있는 경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스포츠냐?'  '이게 뭐냐?'라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누구 보아도 불리한 상황이지만 자신에게 패배해 이 자리에 서지 못한 기사들에 대한 미안함에 끝까지 돌을 던지지 않는 바둑기사를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밤을 새서 연습하고, 패배한 이후에도 팀원에 대한 미안함에 부스를 떠나지 못하는 선수를 원망할 팬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패배와 오만한 강자를 이기는 약자를 보기위해 이스포츠를 보아왔습니다.

최선을 다한 패배를 한 패배자의 그늘을 사랑했고, 12년을 기다린 패배를 지켜보기 위해 이스포츠를 지켜봐 왔습니다.

그리고 이스포츠가 스포츠라 믿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스포츠를 지탱하는 선수들의 열정과 비전, 양심에 대해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런데 제 스스로가 처음으로 부끄럽고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던 열정은 무엇이고, 제가 이야기 해오던 비전은무엇입니까?

무엇이 이스포츠의 양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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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13/11/24 04:33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피지알 게시판에서 과거 스타 전성기 시절의 주옥같은 글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하네요~
13/11/24 04:34
수정 아이콘
프로는 돈인데 상금은 적은데 비해 기대치가 큽니다.
콩먹는군락
13/11/24 11:09
수정 아이콘
그래도 상금의 경우 예전보다는 늘어났다고 생각이 드네요.
일단 개인대회 자체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협회가 프로리그에만 목매달고(현재진행형입니다.) 있는것에 비하면 이것저것 많이 하죠
MLB류현진
13/11/24 04:54
수정 아이콘
글만 읽어도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듭니다..
진짜 오랜만에.. 아름다운글 읽었네요 감사드립니다.
13/11/24 05:02
수정 아이콘
이재훈선수의 은퇴식이 참 기억이 나네요 ..

정말 좋아했습니다 파파곰 ㅠㅠ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퉁 때 진짜 팬으로써 그 아쉬움과 실망은 정말 아 참 미웠는데..

WCG황금곰 탄생했을때 진짜 팬으로써 어찌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fOru 포에버
낭만양양
13/11/24 05:26
수정 아이콘
소울 vs 팬택 경기는 정말 기억에 남네요 군대에서 너무 힘들어서 정말 쉬고 싶어서 외박쓰고 아무도 안만나고 의정부 모텔에서 저경기를 맥주와 함께봤었죠. 두팀다 응원하는 팀이 아니였는데 어느순간 소울을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패배.. 박상익 선수하고 한승엽 선수가 울면서 인터뷰할때 저도 같이 울었죠..

오늘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게시판 분위기와 경기영상을 봤는데 말이 안나오더군요.. 승부조작 사건 터질때와 같이 열이 확 받더군요.. 도대체 뭘 하는행동인지..

롤을 보면서 옛 스1시절 학창시절과 제 20대를 함께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라 너무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또 한번 저한테 상처를 주는 경기였습니다..
롤 게이머들한테 바라는건 정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애착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좀 지켰으면...
꿈꾸는사나이
13/11/24 05:59
수정 아이콘
우와 이런 글은 정말 몇년만인 것 같아요
추천하고 갑니다.
물만난고기
13/11/24 06:38
수정 아이콘
오늘 팀다크의 플레이는 대한민국 e스포츠 메이저대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트롤 그 자체였죠.
예전 gsg의 이기기 위한 트롤픽과는 차원이 다른 승패와 무관한 트롤러들 였습니다.
좋게 봐주면 순전히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경기였으나 보는 관점에 따라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승리가 빠진 재미가 메이저경기에서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는바 팀다크는 이번경기로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겝니다.
사쿠라이카즈토시
13/11/24 07:21
수정 아이콘
gsg건은 차원은 커녕 언급 자체가 해당 선수들에 대한 실례인거같네요. 이기려고 철저하게 준비해온 전략과 이따위 꼴픽을 같은 선상에서 거론하는 거 자체가 안맞다고 봅니다.
물만난고기
13/11/24 17:37
수정 아이콘
저게 같은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으로 보이시나요?
차원이 다르다고 써놨을텐데요.
그나마 밴픽까지는 유사한게 gsg밖에 없기에 예를 든 것인데 실례운운하는건 저에 대한 결례라곤 생각못하시는지요?
사쿠라이카즈토시
13/11/24 17:50
수정 아이콘
밴픽의 유사함으로는 레지날드의 티모픽이라던가 이런쪽에 훨씬 가깝죠. 하이머딩거 픽은 분명히 준비된 전략이었으니까.
실례라고 해서 기분나쁘셧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디멘시아
13/11/24 08:09
수정 아이콘
축구로 치면 경기중에 스마트폰하고 춤추다가 자살골 넣고 그런 꼴이죠.
13/11/24 08:54
수정 아이콘
구기선수들 특히 축구 선수들 보면 축구 자체를 존중한다는 말을 많이 하죠. 개인사가 어지러운 사람들도 축구 자체는 더럽힌 적이 없다고 인터뷰하기도 하고요.. 직업으로서의 게임자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뜨거운형제들
13/11/24 09:04
수정 아이콘
LOL를 하지 않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었는디 궁금해서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백번 양보해서 게임을 던졌다고 치죠. 근데 부스 안에서 스마트 폰이라뇨?
동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주최사 측에서나 온겜 쪽에서 사과까지 할 일인가?? 생각했는데 이건 사과해야겠는데요.
이번 일은 롤 뿐만이 아니라 이 스포츠를 무시하는 일인데요.
많은 프로게이머와 지망생들이 저 부스 안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하는데 게임을 던진 것까지 모자라 핸드폰이나 쳐하면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악플러가 게시판에 어그로 끌고 사람들 반응 보면서 낄낄 대는 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선수들이겠죠?? 실력도 실력이지만, 진짜 인성 교육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호철
13/11/24 09:25
수정 아이콘
그리 어리지도 않습니다.
13/11/24 09:34
수정 아이콘
소망배 >> 소원배 수정해주세요.
그리고 어제 그 팀 다크의 경기는 진짜.. 보다가 멍... 이랬습니다.
내가 응원하는 e-sports와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대회에서
이런 일이 나오는게 너무 화가나서 말도 안나오더군요...
하지만 어제 경기 평중에 진에어 경기를 보며 희망을 보았다는 분들처럼
저 역시도 진에어 경기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결국 1/1 무승부가 나온 그 모습이 너무 멋지다.
이것이 프로고 자신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3/11/24 19:10
수정 아이콘
So1 스타리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보다

그 스폰서 네임이 의미 한 소망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어서 본문에서는 소망이라는 리그라고 했습니다.
민머리요정
13/11/24 09:51
수정 아이콘
어제 팀다크의 트롤링은 진짜 하, 말이 안나오더군요.
그에 응수해서 오존이 맞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임해준 그 자체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휴, 어제 전상욱 선수의 땀방울 글도 그렇고 글이 참 좋네요 ㅠ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다리기
13/11/24 10:08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축구 자체를 존중하는 축구선수나,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선수 등에 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롤 자체를 기만하고 농락하는 행위를 밥먹듯이 하던 애들이 대회 나왔다고 해서 게임과 승부를 존중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 ㅡ.ㅡ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orschach
13/11/24 10:14
수정 아이콘
이미 기울어진 경기의 후반에 이름도 못 들어본 신인 투수를 마운드에 올릴 수도 있고, 심지어 중요한 경기에서도 경험을 위해 새가슴 투수를 마운드에 올릴 수도 있습니다.
우승이 확정 된 이후에 골키퍼든 수비수든 공격수든 유망주를 넣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 상황이 어찌되었든 포수를 마운드에 올린다거나 최전방 공격수를 골키퍼로 세우는건 말이 안되죠.
철컹철컹
13/11/24 10:37
수정 아이콘
그 이상이라고 봅니다. 야구하다가 질것 같으니까 구석에서 지들끼리 캐치볼하고 축구하다가 구석에서 족구하는 정도... 돈 때문에 나왔으니까 상금 몰수하고 아마들을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콩먹는군락
13/11/24 11:07
수정 아이콘
여담이지만 소울같은경우는 그 준우승이후 결국 프로리그 우승을 할 때 뭔가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물론 해체하고 지금은 연맹이라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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