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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11/23 16:24:01
Name 황무지
Subject 씁쓸한 입맛의 오후, '불법'에 대해서 생각하다.
요즘 네트상의 이런저런 게시판들이 미군 재판 건으로 뜨겁습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사람들끼리 만나도 그 이야기입니다.


그저 원통하고 허탈해서 말을 잃을 지경이라는 사람
당장 동두천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사람
빈 라덴의 2차 공격을 기대한다는 사람
빈 라덴이나 미군들이나 무고한 생명을 죽게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사람
경찰의 '과격한' 진압을 비난하는 사람
'불법'시위는 진압되는 것이 당연하고 경찰도 힘드니까 경찰 비난하지 말라는 사람
우리나라가 힘이 없으니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람

'불법시위'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과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 '불법시위' '불법집회' 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을까. 정말 무서운 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법시위'와 '불법집회' 만이 옳지 못한 것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인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자신있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피흘리고 자신의 몸을 던져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맞서 싸운 우리의 조상... 음... 아니... 우리의 선배들... 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이 나라는 아직 군인 정권하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역사'에서는 상상과 가정이 부질없는 짓이지만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군인독재정권은 어차피 오래 못 가게 되어있지만, 그 오래 못 갔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거나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타국 정부가 도와준다던가 해서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잘 살고자 하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대중의 의지가 모여서 독재를 타도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런 '싸움들'의 주된 방법은 '불법' 집회와 '불법' 시위였습니다.

집시법이라는 것은 결국 정부당국과 개혁을 바라지 않는 쪽의 입맛에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그래도, 지금의 정권이 대한민국 역대 정권들 중 그나마 가장 개혁적이라는, 상대적으로나마 가장 개혁적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
어쩌면, 집회와 시위에 관련된 법은 그 나라, 그 정부의 민주화 정도의 지표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불법'이 아닌 '합법' 시위란 또 무엇일까요... 데몬스트레이션-을 하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주장하고 알리기 위함입니다. 시위대가 진압경찰 지휘부의 '권고'를 따라서 행동하다 보면 그 시위대의 대오 자체가 흐트러지고 맙니다. 시위대는 무언가를 알리고 주장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그러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아갑니다. 미군부대 철수를 외치기 위해서는 미군부대 앞이나 미 대사관 앞으로 가야 합니다. 달리 어디로 가겠습니까? 일본군 종군위안부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수요집회는 어디서 열려야 합니까? 그러나, '합법' 시위가 되려고 하다가는, 경찰당국과 정부당국의 말을 다 따르다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시위대는 흩어져야 하고, 모여서 목소리 높이고 싶으면 사람 없는 곳, '중요한' 건물 없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몇몇 크다는 신문사설들 '훈계'를 따르다보면... 농민은 아무리 농업정책이 괴상해도 고향에서 '농사만' 지어야 하고, 대학생들은 아무리 큰 불의가 보여도 그냥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하고, 노동자들은 아무리 노동만큼 댓가를 못 받아도 '일만' 해야 합니다.
'합법'이라는 것은 어쩌면 기만입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있다지만. 그러나 그 말을 한 그사람은 옛날 사람입니다. 사고체계 자체가 다릅니다. 집회와 시위에 관련된 법, 법규들은 헌법의 기본 정신에 얼마나 충실한 것인가. 헌법은 하위의 법, 법규들에 의해 얼마나 존중되어지고 있는가... 글쎄요?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합법'을 외치는 것은 어쩌면... 기만적인 말 입니다.

불법시위, 불법집회... 라는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사용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 '불법집회' 참가자였습니다.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다 싶으면 삭제 혹은 이동시키셔도 좋습니다.)

(김동수 vs 임요환 경기 못 봤어요 ㅜ.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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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23 17:59
수정 아이콘
황무지님, 살아가다 보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통사고든, 병으로 일찍 죽든... 사실 요즘의 반미 시위는 누군가가... 어떤 세력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할 만큼 순수하게 아마추어들의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조직적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생각해 봅니다. 만약,
만약 내 딸애가... 내 딸 자식이 저렇게 백주 대낮에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면... 그 때도 나는 냉정하게 지금의 이 우리의 피 맻힌 절규들을 누군가의, 어떤 불순세력의 사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가를...
정말 피 눈물이 나오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받아 내야합니다. 그들의 사과와, 비록 고의가 아니고 실수였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그 들에 대한 처벌을...
사람 사는 사회에서... 비록 본의 아닌 실수였다고 하지만, 남의 멀쩡한 생명을 죽여놓고... 아무런 댓가도 치루지 않는... 이런... 천하에...
우리가 만약 우리의 이웃을 차량으로 깔아 죽여 놓고... 몰랐다고... 실수였다고...
미국인을 그렇게 죽였다면... ㅠㅠ;;;
황무지님, 님의 아뒤를 언제나 다정하게 기억하겠습니다.
02/11/23 18:32
수정 아이콘
과실치사는...무죄라는 사상 유래없는 판결이 나오다니...참...

이건 눈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눈뜨고 아웅이라는...완전...ㅜㅜ
황무지
'조직적'입니다. 맞습니다. '대책위'가 있으니... 조직적일 수 밖에요...
그 '대책위'에 있는 사람들도 게임하고 놀고, 술 마시며 노래부르고, 자신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저는 대학 시절 어설픈 '운동권'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별 다를 것도 없지요... 저도 pgr의 레벨 9 회원이 아닙니까 ㅎ.ㅎ;
이곳저곳의 생각들을 보다 보면, 걱정이 됩니다.
사태의 본질은 '생명'과 '인권'과 그리고 '자주, 자존'의 문제인데...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 일견 다른 것처럼 보이는 생각들의 접점도 나올 테지요.

마지막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ㅎ.ㅎ;
황무지
황무지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만 불고
풀 한포기 나지않는 그런 황무지였어요..."

장갑차가 질주하고
장갑차가 질주하며
무서운 바람이 일고
장갑차가 질주하며
시골길이 지워지고
장갑차가 질주하며
지워진 생명
바람에 실려간 이름들

지워진 길 무덤이 되었네
미제 장갑차 바퀴 자국
그 깊은 수렁에 발목 묶이는 나의 조국
무거운 족쇄 달고 어디로 갈까
무거운 족쇄 달고 어떻게 갈까

나의 조국은 황무지, 무서운 바람만 불고...

바람에 눈이 따가운가
들판에 서니 눈물이 흐르네
춥고 메마른,
황무지



- 따옴표로 인용한 부분은 산울림의 노래 '내마음(황무지)'의 가사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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