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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5 22:01
효종때 벨테브레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이후 벨테브레는 박연으로 이름을 고치고, 우리나라의 총기부대(후에 나선정벌의 주인공)의 훈련을 맡습니다. 일본에서는 포르투갈보다는 네덜란드와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네덜란드학이 굉장히 유행했었습니다.
09/07/25 22:11
조선이 배척한게 아니라 서양인들이 조선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교역하러 찾아왔다고 해도 상당수 배척당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일본은 아무래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중세시대부터 황금의나라 지팡구로 널리 알려졌으니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마자 황금을 벌어들이고싶은 상인들은 너도나도 일본으로 향했겠죠. 하지만 조선이란 지역은 아무것도 없는 아니 존재자체도 잘 몰랐을테니...
09/07/25 22:21
제가 읽은 '부의 역사'라는 책에는 일본측에서 네덜란드가 조선과 거래를 하면 교류를 끊겠다고 했답니다. 네덜란드와 대개 도자기 등을 독점거래하고 있던 일본이 조선에게 그 권리를 빼앗길까봐 그랬다네요.
09/07/25 22:53
보충하자면, 조선이란 존재를 알 수가 없었죠.
사실상 중국의 지방정권인데,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선 북경만 갈 뿐, 조선에 갈 필요가 없었죠. 조선에 온 서양인들은 일본 혹은 중국을 가려고 했다가 폭풍등을 만나 잘못 이륙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09/07/25 23:56
초록불님//
이런말을 제입으로 하는거 자체가 그렇습니다만, 고려와 송의 관계와 고려와 원의 관계, 조선과 명의 관계는 각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고려가 거란과 같은 정권에 의해서 '책봉'의 형식을 빌어 국가로서 인정받았지만, 이것은 말그대로 '형식'일 뿐, 고려는 그 자체로 주체성을 유지했죠. 그것은 고려와 거란의 관계뿐 아니라 송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게 무너지는게 원나라의 등장 이후로부터이죠. 이때는 말그대로 '지방정권'화 된게 확실하죠. 특히 충렬, 충선왕 대에 이르러서, 또 후에 심왕과 고려왕의 책봉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특히 그러합니다. 하지만 공민왕 이후 원과의 간섭체계가 거의 정리될 때 쯤, 그리고 신진사대부가 등장할 때 쯤, 명이 등장하고 후에 조선이 등장하죠. 이때 조선과 명의 관계를 저는 고려-송의 관계 그리고 고려-원의 관계의 가운데 쯤으로 생각합니다. 굳이 삼전도의 굴욕까지 가지 않아도 중국의 간섭이 상당했던건 사실이지요. 물론 저도 조선의 자주성을 인정합니다만, 우리나라와 가까운 국가인 일본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에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를 과연 '자주 국가'로서 생각하는 나라, 혹은 사람이 많았을까요? 특히 서구의 그 당시 동양의 지리적 지식을 생각한다면, 특히 중국의 꼬리에 붙어있는 '지방'정도로 생각하겠지요. '국가'라고 생각할지는 약간 의문입니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요약하자면 '적어도 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조선은 중국의 지방정권 정도이다.'가 되겠습니다.
09/07/26 00:03
起秀님// 실제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이 아닌 서구인들이 보기에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보였다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미국 역사 교과서를 보면 16세기 한반도까지 중국영토로 되있더라고요.)
09/07/26 00:08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외국인들에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겠죠 당시 한국으로 오게된 몇안되는 외국인들도 배가 난파 됐다던지 항로를 잃었던지해서 온 경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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