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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0 21:10
뭐... 그야말로 절대무적의 포스였죠...
매우 유명한 일화로 LG의 정삼흠 선수와 선동렬 선수는 고려대학교 동창으로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한번은 LG와 해태가 붙는데 다음날 선발이 정삼흠 선수와 선동렬 선수였답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새벽까지 양주를 연신 마시면서 밤을 새웠고 같이 사우나에 갔다가 두 분 다 경기에 임하셨답니다. 결과는 1:0으로 해태가 승리를 했고, 선동렬 선수는 완봉하셨답니다. 정삼흠 선수도 굉장히 잘 던졌지만, 선동렬 선수의 그 포스는 정말 굉장하였다는...
05/09/20 21:11
글쎄... 던지는 거 보면 바로 알텐데.. 무슨 직구가 돌덩이 같고, 슬라이더는 커브 이상으로 휘고, 공끝이 전혀 죽지 않으면서 타자들이 알고도 공1개 이상차이로 헛스윙하고, 어쩌다 홈런치면 져도 이긴 것 같고.. 전날 술마시고 등판에도 완봉하고....
05/09/20 21:23
손민한, 박명환, 배영수 선수 다 합쳐도 전성기 선동렬 선수 포스 반도 못따라갑니다.
어떤 인간이 0점대 방어률을 5번(2번은 규정이닝 미달이지만)기록하고 통산 방어률이 1.20이며 통산 완봉을 29번 하고 9이닝당 탈삼진률이 9개를 넘고 피안타는 5개가 채 안되고 1647이닝 던지는 동안 WHIP이 0.8이고 피출루율 0.225에 피안타율 0.170이 채 안되는 기록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146번 승리하는 동안 딱 40번 졌고 세이브만 132개 했습니다. 통산 방어률왕 8번(7년 연속 포함), 다승왕 4번, 승률왕 4번, 탈삼진왕 5번, 구원왕 2번, 정규시즌 MVP 3번 했습니다. 또한... 한경기 최다탈삼진 기록보유자이고(18개), 연속타자 탈삼진 9타자를 2번이나 기록했고(훗날 이대진 선수가 10타자로 경신), 319이닝동안 연속으로 홈런을 맞지 않았으며, 44게임 연속으로 패전투수가 되지 않았고, 3게임을 연속으로 완봉승했으며 노히트노런도 한번 했습니다.
05/09/20 21:26
선동렬 선수 최악의 방어율은 94년의 2.73입니다. 정규이닝 못채운 기록입니다. 정규이닝 채우고 최악의 방어율은 신인 시절의 1.70입니다. 한국에서 11년간 뛰었는데 0점대 5번, 1점대 5번, 2점대 1번 했습니다.
05/09/20 21:46
뭐, 다른 선수랑 맥주 30병을 마시고 다음날 등판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dkgkgkgk님께서 말씀하신 그 이야기인 것 같군요 +_+
그냥 한마디로 요약해서, '안드로장'을 능가한다고 보면 되겠죠?
05/09/20 21:53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박찬호 선수의 LA시절을 손민한, 배영수, 박명환 선수에 비유하자면 선동렬 선수의 전성기는 페드로의 2000년, 랜디옹의 2001년, 산타나의 작년 후반기, 카펜터의 올해를 비유하면 되겠습니다.
05/09/20 21:55
직구, 슬라이더 두 가지만 던져도 제대로 치는 타자는 없었죠. 삼성팬인 저는 선동열 선수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짜증이 확~밀려왔습니다.
05/09/20 21:59
제가 어릴때 야구에 관심은 없었지만 주워들은건 많아서
선동열선수는 그냥 한마디로 "최고 최강" 이었다고 몸만 풀어도 상대팀이 의욕을 잃었다고 합니다.
05/09/20 22:04
오래전에 하일성 해설위원이 선동열선수에 관한 꽤 장문의 글이 있었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는데요...위에 여러분들이 댓글남겨주신내용도 있었고, 그밖에 기억나는건.. 포커게임이나 고스톱같은 게임을 할때 선동열선수 지갑여는모습을 본사람이 없답니다. 계속 따기만 했다는군요(그만큼 영리하다는거죠. 타자와의 머리싸움에서 지지않는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상대선수 이름은 기억안나는데 선동열선수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친 타자에게 인터뷰때 "홈런을 친 구질이 어떤구질이었나요?" 라는 질문에 "기억이 안나는데요. 그냥 휘둘렀는데 넘어갔습니다" 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즉 선동열선수의 공의 위력은 그당시 타자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공략할수 없는 공이었다는 뜻이겠죠.
05/09/20 22:10
또한 선수들에게 꽤 엄한 김응룡감독도 선동열선수에게는 상당히 관대했다고 합니다. 술먹고 늦장부려도 싫은소리를 안했다는데..그럴만한게 일단 경기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흠잡을만한것이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동열선수가 만약 박찬호선수처럼 군면제받고 일찍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철저한 개인관리와 국내에서보다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했으면 박찬호선수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을꺼라고 생각되어지네요. 술을 좋아하여 20대의 대부분을 술로 살아온 선동열선수..과거 33~35세의 나이에도 일본에서 활약당시 150km 이상의 직구를 뿌리지 않았습니까(최고 155km)
05/09/20 22:12
재미있는 기록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선동렬 선수가 통산 1647이닝을 던지면서 맞은 안타수는 968개이고 홈런수는 28개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맞은 희생플라이 숫자는 과연 몇개일까요? 또, 그가 허용한 스퀴즈 번트는 몇개일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안타칠 능력 안되면 희생플라이 쳐서 팀에 도움이라도 되라. 아니면 번트라도 대고 나가라. 그렇다면 선동렬 투수가 안타를 1000개 가까이 맞고 홈런도 30개 가까이 맞으면서 그보다 쉽다는(?) 희생플라이와 스퀴즈번트는 몇개씩 허용했을까요???
희생플라이는 딱 14개. 스퀴즈 번트는 딱 2개. 선동렬 투수한테 타점 올리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05/09/20 22:53
스퀴즈 번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주자와의 머리싸움을 포함한 주자 견제 능력과 투구 후 수비전환 동작 등. 단순히 던지는 것만 최고가 아니라 기타 다른 부분에서도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국보였겠지요. 선동렬 선수가 한창 마무리로 나올때에는, 해태가 1-2점 이기고 7-8회정도에 선동렬 선수가 몸풀기 시작하면, 그냥 이겼다.생각했습니다. 정말 아무런 의심도 하지않고 아 이겼다.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방어율이 0점대니.. 말 다했죠. 올해 올드 올스타전에선가도 나와서 한회 정도 던졌는데.. 여전히 구위가 장난 아니더군요. 그 묵직한 공..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05/09/20 23:08
당시의 피해자?인 빙그레팬 입장에서볼때에는
말그대로 선감독은 나오면 이기는거였습니다. 한국시리즈1차전때 양팀의 에이스가 맞붙어야되는데,빙그레는 에이스인 한용덕선수를 2차전으로 빼버렸죠.1차전은 버리고 시작한다는거죠. 제가 아는것만 적어보자면, 공이 살아서 움직이는것같습니다.선감독의 공 특징중하나가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작다는것인데요. 정말 뱀처럼 꿈틀거립니다.그이후에 보이는 에이스들투구를 봐도 그만큼의 볼끝은 안보이더군요. 날라가는느낌이지,선감독처럼 꽂히는느낌이 아니네요. 주자견제도 엄청 잘합니다.견제사는 거의 안나오는데 가끔보이는건 거의 선감독이 잡는거였죠.
05/09/20 23:18
당시 경기가 해태 : 다른팀이 었다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동열 : 다른팀으로 보였죠. 국보라 칭하기에 전혀 손색없는 선수였었죠.
만약 제대로된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천명이면, 천명, 만명이면 만명만장일치로 헌액될 선수셨죠.
05/09/20 23:51
한국야구에서의 선동렬의 포스는 MLB의 그 전설의 투수라는 월터존손+사이영의 포스와 맞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전 스퀴즈 2번보다 희생플라이 14번이 더 덜덜덜이네요.
05/09/21 00:22
당시에 해태가 다른 팀을 상대로 한두점차로 앞서 있는 경우 7회쯤에 선동렬 감독이 몸을 풉니다. 이때 다른팀 왈 '에이~ 또 졌네..' 말 다했죠. -_-;; 괜히 국보급 투수가 아니죠.
05/09/21 01:46
'에이~ 또 졌네..'는 저 초등학교1,2학년 시절..두번째로 본 야구중계에서 삼성이 8회쯤 1점인가 2점지고 있을때 선동렬투수가 몸푸는것을 보고나서 한말이군요-_-;; 사실 야구 보기 시작한것도, 선동렬투수에게 유린당하는 삼성을 본 이후였습니다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ㅁ<;;;)
05/09/21 11:19
82년 개막 경기부터 프로야구 광팬이었습니다.. 그땐 중학생이었는데 대학 갓 졸업한 백수 삼촌 손 꼭 붙잡고 당구장과 야구장을 밥먹듯 다녔죠. 서울에 살았는데 심지어 지방투어까지요^^
원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장명부와 OB 베어스의 박철순 2강 구도였습니다. 우승팀의 주역인 박철순은 대부분 기억하지만 장명부 선수는 지나친 혹사로 바로 은퇴했죠. 3X승 3X패-_- 팀이 하는 경기는 절반이상 던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프로야구 초기는 대부분 일본에서 선진야구를 배웠던 선수들이 주름잡았습니다. 감독겸 선수라는 특이한 형태로 출전했던 백인천씨의 4할 타율은 아직도 꿈의 기록이죠.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등의 드림타선과 막강 투수라인을 앞세워 해태의 독무대가 제법 지속되다가, 삼성의 반격도 만만찮았습니다. 85년이었나 86년이었나-_- 전기리그 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생략된 적이 있었죠. 당시 삼성에는 최고 좌우완 투수 김일륭, 김시진이 50승을 넘게 합작했고, 황규봉이라는 훌륭한 백업투수도 있었죠. 장효조, 이만수, 오대석, 강기웅, 류중일, 함학수 등의 초호화 타선을 앞세워 전기/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 없는 우승이었고, 돈지이~랄에 져주기 등 말이 많았던 시즌으로 평가됩니다. 그후로 일본처럼 양대리그로 분리됩니다. 이후로 롯데와 해태의 강세가 두드러집니다. 그 중심엔 최동원, 선동렬이라는 괴물 투수가 있죠. 당시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150km가 넘는 강속구와 다른 투수의 직구구속을 넘어서는 슬라이더, 현란한 커브.. 선동렬이 나오면 그냥 99% 이겼다고 보면 되었고, 해태는 지다가도 혹시라도 7,8,9회 역전을 일궈내면 어김없이 선동렬이 나왔고 무조건 이겼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실제 경기장에서 선동렬 선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 글러브에 캐취되는 순간 '퍽'하고 나는 소리가 다른 선수하곤 확연히 다르고, 관중석에서 보아도 그 힘과 구속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3박4일을 얘기해도 끝이 안보이므로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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