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5/16 06:43:20
Name 눈시BBver.2
Subject [오늘] 5.16
6.25 전쟁 직전, 이범석은 육군사관학교를 확장합니다. 38선에서 계속되는 북한과의 대립에 맞서 국군을 최대한 늘리려 한 것이었죠. 그 대상이 된 육사 8기생은 무려 1345명이 졸업 후 임관하게 됩니다.

"6.25는 8기생이 막았다."

일선에서 사병들을 이끄는 것은 하급 장교와 부사관입니다. 한국전쟁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6.25 직전에 임관했던 육사 8기생은 전사자만 419명이었습니다. 인원의 1/3이 전사한 것이었죠.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은 강력한 반공의식은 물론 자기들이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자기들의 피를 흘리며 겨우 지켜낸 조국이건만, 독재는 여전했고 부정부패도 여전했습니다. 그나마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그들의 잔당은 아직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으며, 그 뒤를 이은 2공화국도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윤보선이고 장면이고 따지고 보면 자유당에서 잘 먹고 잘 살다 떨어져 나온 집단이거나 친일 지주 계급과 함께 놀던 집단일 뿐이었죠.


정군 운동의 주역 김종필

그들은 우선 군 내의 부정부패를 없애려 합니다. 이를 위해 일어난 것이 정군 운동입니다. 3.15 부정선거에 군의 도움이 컸지만, 정작 4.19 혁명에서 군은 쏙 빠져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들이 요직에 있는 상황, 나라를 위해 싸웠던 육사 8기생들이 나서야 할 때였습니다.

..... -_-a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죠.

육사 8기생에게 다가왔던 가장 큰 문제는 진급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영관급까지 진급하긴 했지만 더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반면 선배들은 몇 년 빨리 군대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자기들끼리 장군직을 노나 먹고 있었습니다. 열불 나는 상황이었겠죠. (...)

실제 군 내에서 부패가 없진 않았습니다. 갑작스레 커진 조직에서 부패가 없다는 게 이상하죠. 6.25 전쟁 중에도 그런 문제가 꽤나 많이 나왔구요. 거기에 군 내의 파벌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컸던 것은 백선엽의 평안도 파벌, 여기에 맞서는 것은 정일권의 함경도 파벌이었죠.

정군 운동 때까지 이들의 대의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이들을 이끌던 김종필 중령은 송요찬에게 직접 가서 이렇게 말 합니다.

송 : "도대체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
김 : "다 아실텐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만두고 나가십시오"

그는 그 이유를 방첩대가 부정선거를 주도했고, 송요찬이 선거 후 "1군 산하에서는 110% 달성했어!"라고 외친 것을 이유로 삼았죠.

뭐... 이 정도면 나름 대의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말부터 2공화국 때 추진한 계획이 있었죠. 군을 10만명 줄인다는 것이요. -_-;

군을 줄이면 필요한 장교는 더 줄어듭니다. 고위층에서야 몇 명 정도고 나름 돈이 있으니 은퇴 후 다른 걸 하면 되지만, 위관급부터 이제 막 영관이 된 경우라면 다르죠. 이 정도면 진급 불만이라고 해도 무리 없을 것입니다.

이 정군 운동의 결과로 김종필, 김형욱 등 주도자는 붙잡힙니다. 일단 이 사건은 군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백선엽, 송요찬 등이 예편되고 김종필 등이 풀려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의외로 군 상층부의 반발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육사 8기의 기대를 채울 수는 없었죠.

창군의 주역들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습니다. 친일 논란부터 6.25 때 보여준 모습들이죠. 부패부터 파벌 문제 등 문제를 일으킨 것도 많긴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군인으로서 정권을 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

1952년 한국 전쟁 중, 대통령 이승만은 발췌 개헌을 시도합니다. 그에 대한 반발이 있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당시 참모총장이던 이종찬은 이를 거부합니다. 이 때 군 내에서도 쿠데타에 대한 얘기가 돌았지만, 이종찬은 끝까지 거부하면서 훈령 217호를 작성, 각 부대에 보냅니다. 그 내용은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로 이승만의 미움을 받은 그는 8월에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 때 그는 훈령 217호를 작성했던 한 대령에게서 편지를 받습니다. 비행기에서 펼쳐 본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중대한 시기에 소관(小官)들은 각하께서 나라를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부당하게 해임을 당하고 이제는 미국으로 옮겨 가시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지난 번에 구국을 위한 행동을 단행할 걸 잘못한 것 같다. 1년 후 귀국하면 다시 지도편달을 받겠다"


그가 바로 박정희였습니다.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는 여순 사건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납니다. 이 때 그가 살아난 이유에 대해서 같은 조직원들을 다 불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만, 이것만 이유로 볼 수는 없습니다. 빨갱이가 맞든 아니든 다 불어야 겨우 목숨이라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당시, 설령 그것 때문에 살아났다면 그건 말 그대로 목숨만 건지는 정도였을 겁니다. 남로당원이었던 그가 살아나서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을 그만큼 인정했다는 것으로 봐야 됩니다.

풀려난 박정희는 정보국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이 때 만난 것이 바로 육사 8기생, 김종필을 필두로 5.16의 주역들이 박정희 휘하에 배속됩니다. 한국전쟁 중에 이미 쿠데타를 꿈꾸고 있었던 군인과 역시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에 젖은 부하들간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때 맺어진 인연은 정군 운동까지 이어졌고, 5.16으로 이어집니다.

----------------------------------------------------------


곽상훈 민의원 의장, 장면 국무총리, 윤보선 대통령

제 2 공화국은 혼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정권이 아니기도 합니다. 겨우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신구파로 갈라져 싸웠고, 이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승만 독재 동안 쌓여왔던 것들이 터지면서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죠. 북한에게도 이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터져나오는 각종 운동에 2 공화국은 국가보안법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_-;

이건 박정희가 이끄는 쿠데타 세력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니 사실 좀 늦었어요. 그들의 원래 계획은 1960년 5월 8일, 이게 4.19로 인해 막힙니다. 이들을 경계했던 곳은 오히려 미국, 몇 차례나 "박정희"라는 이름이 나왔는데도 윤보선과 장면은 이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당일, 윤보선은 쿠데타를 묵인했고 장면은 도망갔죠.

------------------------------------------------

12.12와는 달리 5.16은 아직도 혁명이라는 용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공식 용어인 군사정변 역시 갑신정변에서 보듯 비교적 부정적인 면을 줄인 용어죠. 후에 박정희의 경제성장만을 가지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후에 박정희의 유신 때문에 5.16 역시 더 공격받는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들이 아직 "혁명"이라는 말을 놓지 않는 이유는, 그 당시로 가 봐야 됩니다.

"1년 전 우리나라의 젊은 학도들은 그 꿈 많은 청춘을 바쳐, 부패와 탐욕과 수탈과 부정에 도취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사경에서 회생시켰다.

그러나 정치생리와 정치적 행상과 사고방식에 있어서 자유당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민주당 정부는 혁명 직후의 정치적 공백기를 기화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나머지 스스로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 정권을 마치 전리품처럼 착각하고, 혁명과업의 수행은커녕 추잡하고 비열한 파쟁과 이권운동에 몰두하여 그 바쁘고 귀중한 시간을 부질없이 낭비해 왔음은 우리들이 바로 며칠 전까지 목격해 온 바이다.

그러는 동안 국민경제는 황폐화하고 대중의 물질생활은 더 한층 악화되고 사회적 부(富)는 소수자의 수중으로만 집중하였다. 그 결과로 절망, 사치, 퇴폐, 패배주의의 풍조가 이 강산을 풍미하고 있었으며 이를 틈타서 북한의 공산도당들은 내부적 혼란의 조성과 붕괴를 백방으로 획책하여 왔다.

절정에 달한 국정의 문란, 고질화한 부패, 마비 상태에 빠진 사회적 기강 등 누란의 위기에서 민족적 활로를 타개하기 위하여 최후 수단으로 일어난 것이 다름 아닌 5.16군사혁명이다.

4.19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

- 장준하


학생들의 5.16 지지 행진

5.16을 지지한 사람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고 4.19를 주도했던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재야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준하부터 각 학생회가 이 5.16을 지지했죠. 시민들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시민 10명 중 4명이 지지하고 2명은 지지하지만 시기가 일렀다고 대답합니다. 헌법을 무시한 쿠데타에 이 정도 지지는 컸죠.

군정은 참 군인답게 밀어붙입니다. 2 공화국 때 제정된 법들을 이용해 1공화국 당시 자유당에 아부한 정치인들의 활동을 규제했고, 부정축재한 기업가들을 붙잡아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킵니다. 이 때 흔히 말 하는 친일매판자본가들이 많이 몰락했죠. 이승만 때는 자기의 정적들이었기에 제대로 안 됐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상이 박정희 정권 들어 제대로 시작됐고, 좌익이라면 몰라도 우익 독립운동가들은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해 특히 김구는 지금 독립운동가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을 구속하는 것도 모자라 거리행진을 시킨 것도 유명하죠.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던 것이었고, 2공 때 제대로 안 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당대의 지식인부터 농어촌까지, 남로당 경력 덕분에 좌익 인사들부터 북한까지도 박정희의 쿠데타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소련 쪽으로 흐르는 게 아닐까 했지만 윤보선의 묵인과 장면의 도주로 인해 미국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서 김종필이 직접 쿠데타의 당위부터 자신이 구상한 조직을 직접 설명해 주고 반공 등 미국에 손해 볼 것 없는 것이 확인되자 묵인합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약속했던 민정 이양이 아닌 군정이 지속되자 등을 돌리는 이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본래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함은 하나의 정치적 법칙이다. 이러한 권력의 자기부식작용에 걸리지 않고 오늘의 청신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시급히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최단시일 내에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쾌히 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엄숙한 혁명공약을 깨끗이, 군인답게 실천하는 길 이외의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국군의 위대한 공적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사상에 영원히 빛날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군사혁명은 압정과 부패와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후진국 국민들의 길잡이요 모범으로 될 것이다."


위에 장준하의 혁명 지지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5.16을 지지하면서도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 김종필이 직접 와서 문제 삼고, (이 때 장준하는 그 비판을 "충언"이라고 설득했습니다) 민정 이양이 늦어지자 반대파로 돌아섭니다. 그게 계속된 끝에 그가 받은 대접은 실족사였죠.

+) 이 무렵 유력 정치가들의 행보도 엇갈립니다. 기본적으로 민정 이양을 빨리 하라는 것은 공통됐지만, 이범석은 이 때 이승만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했죠 -_-;

그러고도 그에 대한 지지는 계속됩니다. 민주공화당 창당 후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지금 상식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박정희에 맞서기 위해 송요찬, 허정은 후보에서 사퇴, 야권단일화(-_-)를 합니다. 그리고 이 대결은 "혁명을 이룬 군인 출신 정치인"과 "낡은 보수 정치인"이 돼 버립니다. 오히려 박정희 쪽이 개혁을 원하고 실제 개혁을 했던 정치인이 돼 버린 것이죠. 여기에 윤보선 최고의 자살골이 터지니, 박정희의 사상 문제였습니다. 그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은 것이죠.

결과는 영호남부터 제주도(80%)의 몰표에 힘 입은 단 15만표차의 아슬아슬한 승리였습니다. 이후 박정희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지지도는 오히려 올라갑니다. 지금도 문제 되는 한일기본조약과 베트남 파병이 있었음에도 다음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여유롭게 따돌렸죠.

-------------------------------------------------------


혁명 후의 혼란, 그에 따른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과 독재로의 연결은 세계사에서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부터 그렇죠. 피로써 혁명에 성공한 프랑스였지만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이 나타납니다. 그의 손에서 프랑스는 전 유럽과 전쟁을 벌이면서 승승장구했고, 독재 정권의 진격 속에서 전 유럽에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퍼지는 아이러니를 낳습니다. (...)

이후 황제가 됐고, 후에 그의 이름을 건 나폴레옹 3세가 다시 황제가 되는 부분까지... 5공화국과 연결해도 참 비슷한 부분이 많죠. 지금이야 아예 그의 딸이 대통령을 노리고 있으니 왠지 이 쪽으로 비교하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근대에 민주주의가 전세계에서 퍼지고도 이런 쿠데타는 심심하면 일어났습니다. 혁명이 없었더라도 혼란 후 강력한 지도자, 특히 나라를 지키는 군부가 그 힘으로 나라를 잡은 경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죠. 그들 중 온갖 문제를 저지르며 쫓겨난 이도 있고, 다른 쿠데타에 쫓겨난 이도 있으며, 독재를 하고도 평가가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박정희도 이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혁명"이라는 말을 놓지 않습니다. 이것 자체에 대한 반박보다는, 이 혁명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문제 삼아야 된다고 봅니다.

혁명 자체는 "단기간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이 말에 긍정적인 의미를 담죠. 만약 이 혁명이라는 것이 방법을 문제삼지 않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라 한다면 5.16이 혁명이냐는 것은 좋고 싫고에 좌우될 뿐입니다. 후의 유신을 이야기한다 해도 혁명 후에 독재자가 됐다 해서 과거를 소급할 수는 없는 것이구요.


그런 이유로 공주님은 유신이라면 모를까 5.16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이 5.16을 누가 주도했느냐는 것이죠. 전 세계에 있는 혁명을 정의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주체입니다. 4.19가 혁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주체가 일반 민중이어서입니다. 하지만 5.16은 군, 그것도 군 내에서도 소수가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민중과 협의해서 한 게 아니라 (그러면 발각되는 거죠 -_-a 하긴 들키기야 했지만) 그들 소수가 단독으로 헌법을 무시하고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았든 지식인의 지지를 받았든 그건 쿠데타일 뿐인 거죠. 그가 잘 했고 못 했고, 이후 대통령이 된 후 잘 했고 못 했고는 5.16이 쿠데타라는 것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실제 박정희는 4.19 때문에 쿠데타를 못 하게 되자 그들을 욕 했다고 하죠. 이후야 5.16이 4.19의 연장선이고 4.19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말장난일 뿐입니다.

-----------------------------------------------------------------------

여기에 이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강력한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푸간지

부정부패 등 "구악"을 쓸어버리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원하는 것은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의 경우 광개토대왕이 있죠. 최대한 애민 내지 민주주의적인(-_-) 모습을 강조하는 세종대왕에 비해 광개토대왕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세종대왕에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를 투영한다면, 광개토대왕에는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를 투영하는 것이죠.

가령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푸틴에 대한 평가들을 보면 살짝 무섭기도 합니다.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 대한 말들에는 왠지 동경이 느껴지죠. 심지어는 박정희는 싫어한다면서 스탈린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이걸 넘어서 박정희를 들며 히틀러를 좋게 보는 경우도 있죠. 이쯤 되면 왠지 불쌍합니다. (...) 아마 위에서 나폴레옹과 비교하는 것에도 불쾌해 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그리 다를 것 같지 않아요.

강력한 지도자는 이미 대한민국 역사에 나타났습니다. 그게 박정희죠. 실제 푸틴은 박정희를 참 좋아하기도 하구요. 여러 나라에서 후진국의 국가 발전 모델로 박정희를 꼽고 있고, 심지어 김정일도 좋게 평가했습니다. -_-; 재선에 성공하고 3선 개헌도 국민 투표로 통과됐다는 건 그만큼 박정희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젊은 정치인, 그와의 대결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부정선거를 펼치며 겨우 이겼다는 것은 국민들이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할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들 알고 있죠.

저 구악들을 다 쓸어버렸으면, 이 혼란을 한 방에 안정시켜줬으면, 내 삶을 확실히 좋게 해 줬으면, 좀 무력을 동원해도 상관 없다... 이런 걸 해 준 것이 바로 박정희인 것이죠. 그 결과는 구악을 대신한 신악, 부정부패, 몰락한 재벌 대신 신흥 재벌들, 장기 독재, 방해가 되는 세력은 좋은 핑계 붙여서 쓸어버리는 것 뿐이었죠.

모든 건 느리고, 보이는 건 혼란 뿐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기를 끌어줄 강력한 지도자가 아닌 우리 이익과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죠. 정말 국민의 행복만을 위해 뛰는 지도자는 설령 있더라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두 정치인이니까요. 5.16에서 무력을 동원했지만 정말 국민의 뜻을 이뤄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그게 박정희의 표로 연결됐죠. 지금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정치인들이, 개혁을 말 하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느니 서민들을 위해 싸워왔다느니 하는 이들이 저지른 일은 우리가 실시간 생중계로 똑똑히 봐 왔죠. 믿을 건 아무도 없습니다. 민주화의 주역? 5.16은 나라를 지킨 주역들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투표는 우리가 믿고 존경하는 지도자에게 우리의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거래처럼 나의 한 표를 투자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주는지 계속 감시하는 것이죠. 어느 정도 밀어붙이기를 잘 하는 강력한 지도자는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 방법 역시 우리의 감시 속에 민주주의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야당에게 그렇게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까요? 이제까지 도덕이 무너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봐 왔으니 그런 것이죠. 어차피 똑같은 놈일 뿐이라면 자기의 이익이든 지역적 이익이든 정책에 대한 판가름이든 이기는 쪽을 욕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네,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박정희를 그렇게 추억하는 이들, 정책이 마음에 드는 이들, 찍으면 지역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대북관을 보고 찍는 이들, 최근에 내세우기 시작한 복지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녀를 찍을 겁니다. 여자 대통령을 원치 않는 이들은 좀 멀어질 거고 여자 대통령을 원하는 이들은 일부러 찍겠죠.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때를 얘기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을 얘기합니다. 굳이 자기가 말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말 해주고 지지해주는 층이 있고, 조중동이라는 훌륭한 지원군도 있습니다.

여기에 여당보다 적은 고정지지층으로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죠. 하지만 민주주의 방식으로 싸워야 됩니다. 고정지지층을 유지하면서도 부동층을 최대한, 상대보다 많이 끌어들여야 됩니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이게 옳고 한국에 필요하며 자신들의 이익에 맞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이죠.

힘든 일이지만, 그 길밖에 없죠.

--------------------------------------------------------

과거보단 현재 얘기에 치중했군요. 5.16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야 많이들 아실 테니 이 쪽 얘기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박정희라는 인간, 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한 백년은 더 가야 좀 차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한국에 남긴 발자국은 너무나도 크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제 2의 박정희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 머리 벗겨진 양반이 있으니 제 3의 박정희라고 해야 될까요.

지금은 박정희가 말했던, 대머리도 말 했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시대이고, 마지막 독재 정권이 내려놓으려 하지 않아 국민이 직접 뺏어 온 시대입니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선경제 후민주화가 맞다 하더라도, 지금은 독재가 있으면 안 되는 시대인 것이죠.

정치인으로 봐도 그렇죠. 정치인에게 돌려주고 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부터 깨졌습니다. 다시는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한 것 역시... 에 뭐 그 다음부턴 국민에게 달라고 하지는 않았군요. -_-a 그가 밀고 나간 방식부터 반대파를 억누르고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까지...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연좌제니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야 되는 거죠. 그녀의 고정지지층이 박정희를 그녀에게 투영하듯, 그녀를 대 놓고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뒤에 박정희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요. 5.16이나 (이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_-a) 유신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어려울진대 그런 건 없구요. 유신에 대해서 "민주화에 헌신한 분들께 죄송하다" 정도? 아마 이건 그녀가 정계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의심일 겁니다.


이 분 볼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요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아닌 것 같고 야당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봐도 그리 다를 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포기가 아닌 감시가 있어야 되죠. 혼란이 지겨워질수록, 힘으로 다 쓸어버리는 강력한 지도자를 꿈 꾸게 될수록 박정희는 그가 필요없는 이 현대에 재림할 것입니다.

-------------------------------------------

너무 많은 얘기가 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뺐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많네요. 5.16과 박정희 정권 내에서의 김종필의 비중도 대충 설명했고, 5.16의 전개에 대해서는 아예 빼 버렸죠. -_-a 그 외에 2 공화국의 모습과 쿠데타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나" 등... 참 많은 얘기가 필요한 부분은 다 뺐습니다. 뭐 이걸 원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을 것 같지만요 ( - -)a 전체적으로 "잘 했든 못 했든"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박정희의 전체적인 모습에 대한 얘기는 [오늘] 수준이 아니라 1년 수준으로 잡고 얘기해야 될 것이고, 간단히 다루기엔 역시 힘든 인간이네요. 뭐 그래도 다음에 예정된 것들은 그의 확실한 "과"니까 그나마 낫겠네요. -_-a 역시 이 양반 얘기하기에는 아직 제 지식이 많이 모자랍니다.

박정희의 시대는 유신 전과 후로 나뉩니다. 그리고 유신 전에는 쿠데타를 일으켰음에도 지지를 받았구요. 쿠데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참 머리 아픈 문제죠. 그나마 유신 후는 편하겠네요.

위에서는 나폴레옹과 잠깐 비교해 봤습니다.


"나는 프랑스 대통령으로서의 직권 행사를 중지한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효력을 갖는다"

10월에는 이 양반이랑 비교해 봐야겠네요.

이틀 후에 곧바로 [오늘]이 예정돼 있습니다. 후... 떨리네요.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23 11:2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5/16 09:04
수정 아이콘
역시!!
후후 좋은글 감사합니다~
모레가 기대되는군요...
그리메
12/05/16 09:43
수정 아이콘
마지막 드골의 위엄이군요 박정희는 누구랑 비교해야할까요 철의 아이젠하워 아니면 카다피나 카스트로 경제적 성공의 푸틴? 역사에 한번쯤은 나왔어야할 시대적 필연물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 시대에 요구에 의해 탄생되었고 잘살고자하는 국민의 근면성과 결합한 결과였고 박정희는 그 마지막 욕구까지는 채워주지 못했기때문에 유신과 총탄이라는 비극으로 끝맺음게 아닐까 싶습니다
군인동거인
12/05/16 10:00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과거'는 그야말로 '과거'이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것, 후에 행하는 일이 과거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본질을 바꿀 수는 없는거라 생각합니다. '평가'는 개개인의 판단과 가치관에 따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등짝이가살아나야제.
12/05/16 10: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2/05/16 10:48
수정 아이콘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가 8기생이셨는데, 가담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5.16 당일에 지하에 갖혀(구금) 계셨답니다.
거사 후 즉시 제거당할 뻔 했는데, 어찌어찌 군복만 벗고 끝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불우한 중-노년을 맞으셨습니다.
철없던 시절, 만약에 당신께서 그 일에 가담하셨으면 그 후 2-30년 동안 집안 분위기가 어떠하였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트릭랜드
12/05/16 11:19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과감한 가지치기 덕분에 더 일목요연하게 다가오는 글이네요. 물론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으로 다시 태어나도 흥미롭게 읽을 독자(?)이자 팬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호흡에 읽을 수 있는 짧지 않은 글에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 [m]
율리우스 카이사르
12/05/16 11:20
수정 아이콘
저 개인적으로도 유신전까지의 박정희는 크게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4/19로 인한 민주세력의 집권을 박정희가 가로막았다.. 는 간단한 도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12/05/16 11:20
수정 아이콘
김종필도 당시 사진으로 올려주시지.

관련 내용은 아무래도 정치적인 결정이 될테니 언급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박정희의 정반대의 공과를 이룬 것이 김영삼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기는 참...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결국 기존이 못났고, 직후가 막장이어서 그 상대평가란 건데. 그런 면에서는 정말 억울할 사람도 많죠. 대통령중에서도요. 대통령직선제를 선택한 것도 박정희에게 가장 유리했기 때문인데, 그걸 그대로 지켰다면 또 모르겠는데 부정선거까지 하다가 유신으로 선거자체도 막아버렸죠. 결국 처음의 '그 나름의 정당성'이란 것조차 여유가 있었으니 지켰던 여유였을 뿐인거죠.

김정일도 94년부터해서 17년인데, 박정희는 20년이었죠. 유신이 워낙 막장인거지, 유신 이전도 10년이 넘는 동안 부정선거까지 동원했던 그 모습이 자유당보다 그닥 나은 모습도 아닙니다.
12/05/16 11:41
수정 아이콘
오오 좋은 글입니다!!!
12/05/16 11:43
수정 아이콘
유신전까지로 한정하면 너무 관대한 거고, 딱 3선개헌 이전까지죠.
흔히 박정희 신화로 일컬어지는 포철이나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등은 재선 기간 동안 대부분 가시화되어 있었고,
오히려 그 이후에는 박정희였어야 할 명분은 점점 사라지는데 권력욕만 반대로 쌓여가면서 결국 비극을 불러오게 됩니다.
괜히 이환경 작가가 외압으로 인한 영웅시대 조기종영을 앞두고 이제부터가 박정희에 대한 공과가 극명히 드러나는 시기인데
오히려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과를 그려내지 못하게 막는다고 한탄했던 게 아니죠.

5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JP라는 최상급의 후계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 독재를 향해 달려갔다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고 현대사의 비극일 뿐이죠.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합법적인 선거를 기반으로 절대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는 푸간지는 정말 독재의 완성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_-;;;;
자유수호애국연대
12/05/16 13:2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민이 아닌 시민으로서, 주체로서의 국민의 역할에 대한 강조가 깊이 와닿네요.
이틀 뒤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케타로
12/05/16 14:34
수정 아이콘
훌륭한 글입니다. 추천 합니다.
역사가의 눈으로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글입니다.
12/05/16 15:06
수정 아이콘
역시 오늘도 훌륭한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권력은 항상 그 끝이 가장 중요한 법이죠. 끝이...
아케르나르
12/05/16 18:47
수정 아이콘
예전에 제3공화국이라는 소설(?)을 참 재밌게 읽었더랬습니다. 5.16 세력들이 민정이양을 앞두고 많이 불안해 했고 - 이후 들어설 정권이 어느쪽이든 군부를 견제하거나, 최소한 5.16을 일으킨 자신들을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 그래서 박정희 소장이 군복을 벗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이다.. 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뭐 그 사정이 사실이든 소설이든,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가 재선까지만 하고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할 수가 없네요. 아마 그랬더라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겠죠.
생선가게 고양이
12/05/16 23: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75 [야구] 최고대최고 - 감독편 [42] 가양역턱돌신9339 12/06/08 9339
1474 해방 후 - 김구의 마지막 길 [32] 눈시BBver.29902 12/06/08 9902
1473 해방 후 - 거인이 쓰러지고, 옛 동지가 돌아오다 [25] 눈시BBver.211206 12/04/01 11206
1472 다시 보는 스2 밸런스의 역사 [48] 캐리어가모함한다10658 12/06/07 10658
1471 MSL, 스타리그 테마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32] Alan_Baxter16443 12/06/05 16443
1470 1989년 - 바다를 사랑했던 사람들... [9] Neandertal9737 12/06/06 9737
1469 [오늘] 현충일 [45] 눈시BBver.211007 12/06/06 11007
1467 수도사 불지옥 가이드 [52] Cand11619 12/06/04 11619
1466 니가 진심을 주니깐 그녀가 널 받아주지 않는거야. [80] Love&Hate19156 12/06/01 19156
1465 [야구] 최고대최고를 모티브로 만들어봤습니다. [25] 가양역턱돌신9757 12/05/31 9757
1464 [LOL] Spring 시즌 하이라이트 영상입니다. [20] Cherry Blossom8576 12/05/30 8576
1463 [LOL] 원거리 딜러의 템트리에 대해... 피바라기vs무한의대검 [57] 작업의정석17666 12/05/29 17666
1462 기록 앞에 무너진 자, 기록 위에 서다. [25] 王天君11647 12/05/26 11647
1461 미친놈들의 축제는 막이 내리고 [22] nickyo11373 12/05/24 11373
1460 [LOL] 비주류 챔피언 탐구 - "전략적인 선택이군요, 소환사님" [19] 별비13290 12/05/23 13290
1459 [GSL 결승 리뷰] 4경기~5경기 [23] 캐리어가모함한다8893 12/05/22 8893
1458 [GSL 결승 리뷰] 1경기~3경기 [10] 캐리어가모함한다7671 12/05/21 7671
1457 Excuse me, where is the toilet? [22] Neandertal9516 12/05/19 9516
1456 [LOL] 통계로 보는 LOL The Champions & NLB 스프링 시즌 결산 [22] The_Blues8057 12/05/19 8057
1455 [오늘] 5.18 (2) [15] 눈시BBver.29684 12/05/18 9684
1454 [오늘] 5.18 (1) [4] 눈시BBver.28063 12/05/18 8063
1453 금단의 사랑 [16] happyend9920 12/05/16 9920
1452 [오늘] 5.16 [16] 눈시BBver.28505 12/05/16 850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