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5/04 07:17:47
Name 눈시BBver.2
Subject 친일파 - 반민특위
(저번 편에 이어서;)
6.25 때도 무차별 포격이나 양민 학살을 절대 거부했고, 발췌 개헌 때 계엄령 선포도 거부, 조봉암의 사형 집행 역시 재고를 요청했던 사람이죠. 괜히 참군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예요.

망하지 않았으면 어느 정도 친일 청산이 됐을 반민특위, 그들이 군에 한 대우가 이 정도였습니다. 헌데 지금은 군이 친일 청산이 안 된 가장 쉬운 보기로 쓰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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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어요. 특히 전문분야로 갈수록 그랬죠. 친일파를 다시 기용하고도 사람은 부족할대로 부족했습니다. 반민특위에서도 일제 때 교사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잡았는데 그러고도 교사가 부족했습니다. 각종 예술, 과학, 기술 등 전문 분야로 갈수록 그랬죠.

이런 것을 무시한 채 그냥 친일 청산을 못 한 걸 탓 할 순 없습니다. 모든 게 섞여 있던 그 시대, 친일파와 그 친일파를 "봐 준" 사람까지 따진다면 한국인 중에 그와 무관한 사람은 정말 없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친일파는 하나로 묶여 오로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닙니다. 서로서로 대립했고, 각기 민족주의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선택했으며 누군가를 지지하다 누구는 승승장구하고 누구는 몰락해 갔습니다. 이들 친일파들이 다 살아남아서 대한민국을 장악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독립운동가들은 다 몰락했고, 친일파들은 다 승승장구했다, 틀린 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편은 독립운동가든 친일파든 다 승승장구했고, 이들이 몰락한 건 어디까지나 정치 싸움에서의 패배였습니다. 반면 이승만, 박정희의 적이 된 이들은 독립운동가든 친일파든 몰락했고, 자기 재산이나 지키면 다행인 수준이었죠. 그래서 이승만 때보다 박정희 때가 오히려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상이 좋아집니다. 이승만은 바로 그 독립운동가들과 싸웠기에 그들을 인정하면 안 됐지만, 박정희는 그 이후였기에 독립운동가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거든요. 다시 말 하지만 김구의 아들 김신이 5.16을 주도한 이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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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친일 청산을 프랑스 등의 나찌 청산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이는 크게 다릅니다. 프랑스가 점령돼 있던 기간은 5년, 그리고 전쟁 전에 충분히 근대화 돼 있던 나라였기에 나찌에 협력한 이들을 청산해도 대신할 인재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어요. 사회 각 분야부터 해서 당장 나라를 지킬 군인들 역시 일제 때 종군한 군인들을 다시 써야 될 정도였습니다.

비교를 하자면 이런 나찌 청산이 아니라 독립한 식민지 국가에서 이 식민 청산을 잘 한 나라가 있느냐로 따져야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당장 프랑스부터가 나찌 청산은 그렇게 해 놓고 자기 식민지였던 베트남이나 알제리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일관했으니까요. 결국 프랑스에서 독립한 알제리 정도가 청산했다 할 만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민 청산 움직임이야 있었지만, 그냥 집권층만 그 핑계로 내렸거나 그 핑계로 죄 없는 사람들까지 한 케이스밖에 없죠.

당장 나찌 청산만 해도 이게 정당한 청산인지 의문입니다. 독일인과 장사했다, 독일인과 연애했다, 독일인과 뭘 했다... 이러면 무조건 나찌 부역자로 밀어붙였으니까요.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친일파를 어느 정도 등용해야 했던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친일 청산을 하더라도 나찌 청산과 비교할 정도로 몇 만 명을 우르르 죽이고 집어넣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를 가지고 이 사람이 어떻게 했으며 그 때문에 무슨 피해를 주었는지를 따져야 됩니다. 즉, 친일행위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줬는지, 그것도 해방 전의 한국에 어떤 피해를 줬는지를 따져야 되는 것이죠.

"반민족행위"

친일보다는 범위를 더 줄여서 이 말이 "청산"에 더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반민특위가 바로 여기에 어울리는 조직이었다는 거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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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기에 뭔가 성역화 돼 가는 반민특위, 하지만 그 내부를 살펴보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우선 반민특위 내에도 친일파 출신이 있었고, 우익이 주장한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이냐"는 게 꼭 틀린 말은 아니었죠.

분명히 일제에 협력했음에도 "민족을 해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죠. 국회의원들에 대한 조사였는데, 지금 친일 청산 움직임에 비추어보면 허무할 겁니다.

  -李鍾麟 의원:전쟁중에 강연·문필 등으로 日政에 협력한 사실이 있으나 선거 당시에 스스로 그 과오를 고백하여 이미 민중의 용서를 받았다.
- 陳憲植 의원:淸友會의 회원으로서 왜경무국장 池田과 친근히 접촉한 사실이 있으나 민족을 해한 현저한 사실이 없다.
- 申性均 의원은 전남 谷城郡 곡성면장 재임중 왜정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고 민원을 산 점도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 때 면장이면 거의 다 범한 행동이요, 그 다소의 과오는 이미 해방후 該지방 민중의 질책을 받은 것으로 족하니 다시 법의 처단을 받아야 할 정도의 반민족적 악질행위는 없다고 인정된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런 식이었죠. 그 때는 누가 누구를 심판하냐고 했지만, 지금은 이런 말도 나올 겁니다. 누구 멋대로 이들이 죄가 없다고 하면서 풀어주냐구요. 실제로 그 때도 그랬습니다. 이승만이 개입하기 전부터 친일파를 별 처벌도 없이 풀어준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거기다 가짜 조사관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안의 인물도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죠.

문제는 이에 대한 이승만의 대응이었습니다.


노덕술,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반민특위가 생길 당시에는 이승만 역시 싫어하더라도 이를 찬성했습니다. 반민특위에 기소된 인물들 중에 이승만계 인물들은 찾기 어려웠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더라도 곧 이승만의 이익이 되니까요. 반민특위의 표적이 된 각 우익 단체들은 자기 세력에 친일파가 없다고 주장하며 반민특위를 압박해 왔습니다. 이승만이 이걸 잘 이용했다면 자기 정적들은 다 친일파로 몰아 없애면서 자기 편은 살릴 수 있었습니다. 실제 반민특위는 시작하자마자 국회의 인물들 중에 악질 친일파, 반민족 행위자들은 없다는 걸 확실히 했거든요.

둘이 갈라지기 시작한 건 반민특위가 경찰을 건드리면서부터입니다.

해방 후 미군은 일제 때의 경찰을 그대로 기용하면서 처음에는 문제 되는 인물들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곧 경찰에 문제 되는 인물들이 없다고 공언하면서 그대로 유지했죠. 수 자체로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은둔한 인물도 많았고 다른 일을 찾은 인물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본인이 빠진 자리를 한국인으로 채우고 그 수 자체를 몇 배로 늘렸으니까요.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20~30%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들 중 이승만에 의해 중용된 인물들이었죠.

기본적으로 치안을 맡는 경찰의 위치와 그들의 경험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바란 것은 그들이 가진 반대파 척결 실력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제 시대 때 그런 일을 충분히 해 봤고, 그런 방법을 아주 잘 아는 이들이었죠. 그리고 국내에 있었기에 이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역시 잘 알려져 있었으며, 일단 민중들 역시 그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붙잡아 갔으며, 전쟁 중 일반인들을 수탈하고 억울하게 잡아간 일들은 사람들의 기억에 아주 잘 각인돼 있었다는 것이죠.

당연히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고, 노덕술 등이 잡혀갑니다. 경찰은 이 때 자기 조직의 위험을 느끼고 이에 항거해 파업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진 이해가 갑니다.

이승만은 단순히 이걸 넘어서서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없애버리려 했고, 여러 방면으로 압박을 주면서 결국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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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에 대한 신화는 접어야 합니다. 반민특위가 계속 있었다 한들 지금 흔히 말 하는 청산은 불가능했습니다. 분명 문제가 많은 조직이었고, 무죄든 유죄든 그게 적합했는지의 문제는 후에도 계속됐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건국 후에 있었던 적법한 친일 청산 움직임이었고, 그 처벌의 내용 역시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친일파를 다 몰아낼 경우 있을 여러 공백 문제, 반민특위는 당장 필요한 전문인력들은 봐 줬고, 그들 중에 대를 이은 친일파나 악질 친일파들만 붙잡았습니다. 수천 명에 달했을 경찰 출신 친일파도 붙잡은 건 겨우 몇 명에 불과했어요. 재판이 진행됐더라도 그들 중 처벌 받을 이는 오히려 소수, 반민족 혐의로 잡힌만큼 무죄나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는 것은 오히려 친일파에게 "면벌부"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민특위에 애초에 체포도 되지 않고 얘기도 나오지 않았던 친일파는 그걸로 용서를 받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반민특위의 목적은 단지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 아닙니다. 죄가 낮으면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들에게 최소한 반성과 사과라도 이끌어 보자는 것이었죠.

재판이 어느 식으로 진행됐든 그 재판을 열었다는 것의 의의는 낮지 않으며,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진 친일파들은 크든 작든 자기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이 중에는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며 사형을 요구한 최린도 있었고, 변명인지 사죄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과는 한 최남선도 있으며, 변명으로 일관한 이광수도 있습니다. 그 개개인에 대한 불만은 둘째 치고, 이들이 친일 행위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게 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성과라는 거죠.

이걸 무너뜨린 것이 이승만입니다. 그냥 자기 단체의 무력을 이용해 협박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승만은 공권력을 이용해 그들을 제압한 것이었죠. 그것도 정적을 충분히 없앨 수 있는 것을 자기 편 경찰 몇 명 건드렸다고 말입니다.

북한의 친일 청산 역시 우리가 바라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죠. 이들은 최소한 법적으로 친일파를 청산해야 된다고 못 박았거든요. 건국에 공을 세웠다로 넘어간 것은 뭐 -_-; 역시 정치는 더럽다 하겠지만 그 때 북한이 내세운 원칙은 역시 합리적이었습니다. 정말 악질만 처벌하고 다른 이들은 북한에 협조하면 포용한다는 것, 반민특위 역시 이거랑 크게 다를 바 없었어요.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정적 제거에 이용했다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몇 명 정도는 버려야 됐을지 몰라도 그걸로 이승만 정권은 친일 청산에 있어서 확고한 정통성을 가지게 되며 정적들도 없애는,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 시작하자마자 국회에서 "악질 친일파는 없다"는 걸 법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 반민특위였습니다. 하지만 몇 명 잃는 게 싫어서 반민특위 자체를 없애 버렸고, 바로 그 이승만 편의 친일파들이 해방 후부터 참 꼴 보기 싫은 일을 많이 저지른 주역이었습니다.

이승만이 싫은 게 그것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다 때려부숴 버리는 거요.

그가 친일 청산을 했더라도 그의 성향이 그대로였으면 한국의 아침은 여전했을 겁니다. 몰락할 친일파는 몰락하고, 잘난 친일파는 잘 나갔을 것이며 부정부패 저지르는 재벌도 여전했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매국노의 자손들이 잘 먹고 잘 살 리도, 자기 조상 땅 찾겠다고 할 리는 없겠죠. 그 때 확실히 선을 그어 놨으면 누가 봐도 확실한 친일파들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됐을 것이고 그들이 자기 지역에서라도 잘 살았을 가능성도 더 적어졌을 겁니다. 반민특위 해산에서 문제삼아야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런 실리 문제 외에도 후에 무슨 이의가 생기든 일단 초대 정권에서 친일파를 청산했다는 상징적인 의미, 이걸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 대신에 자기 정권에는 친일파가 절대 없다는 걸로 밀어붙였고, 이것이 현대에 큰 반동을 얻고 있다는 것이죠. 그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그는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반민특위가 진행되는 동안 온갖 암살 사건과 4.3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그가 믿을 건 경찰 뿐이었습니다. 전쟁 때 이미 반목을 시작한 군과 달리 경찰은 마지막까지 그의 소중한 방패였으니까요. 어차피 자기 위치를 위협할 수 없는 매국노의 후손들에는 관심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런 친일 청산을 얘기하다가 자기 편까지 끌려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죠. 지금의 분위기를 만든 건 다 이승만의 이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떠도는 친일 청산, 친일파들을 모두 없애야 했다, 친일파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됐다는 얘기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반민특위가 이승만의 어용 기관이 됐더라도 친일파를 어느 정도 청산했으면 이런 식의 말까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이승만은 무지막지했으니까요.

이를 바꿔 말 하면, 지금 친일 청산을 하며 나오는 말들은 그 친일파 자체가 아니라 이승만 정권에 향한 것입니다. 즉, 문제는 친일파가 아니라 이승만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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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지금 친일 청산 분위기는 과열됐습니다. 단지 과거사 문제를 떠나서 이것 때문에 한국 현대사가 이렇게 됐다는 것으로 옮겨갈수록 본질을 비껴나고 있는 겁니다. 친일파가 청산이 됐든 안 됐든 이승만 정권의 패권주의와 미친 듯한 반공, 여러 부정부패는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여기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게 친일파 출신이냐 독립운동가 출신이냐는 것은 그 뒤의 문제입니다.

박정희 역시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그는 박흥식, 김지태 등 살아남은 친일자본가들을 부정축재 혐의로 잡아들였고, 이것이 그가 큰 인기를 얻는 이유가 됐습니다. 민정 이양 후 시작된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그는 개혁 진보의 모습이었고, 그에 맞선 윤보선은 친일 기득권을 대표하게 됐죠. 이승만 때의 기득권은 이걸로 크게 무너집니다. 명분이 아니라 실제로서의 친일 청산이라면 이 때 어느 정도 이뤄진 편이라는 겁니다. 박정희 때의 기득권은 나이도 좀 더 어렸고, 친일 정도도 좀 더 낮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부정부패는 계속됐고, 그가 쿠테타를 한 것 역시 변함이 없으며 이후 장기독재를 한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친일파가 문제가 아닌 겁니다. 박정희가 독재한 것에 대해서 그의 출신이 친일파든 독립운동가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친일파의 탓으로 묶으면 안 됩니다. 이승만의 문제는 이승만의 문제고, 박정희의 문제는 박정희의 문제인 거니까요. 친일에만 묶을 필요 없고, 친일파와 손 잡았기에 역시 친일로 몰 필요 없습니다. 친일파든 독립운동가든 이승만 정권, 그 안의 인물들의 문제는 비판해야 마땅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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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청산하자는 말을 저는 거부합니다. 이미 청산될 사람도 죽고 그들을 청산할 사람도 죽었습니다. 그들의 자손을 법으로 엮는다는 건 연좌제죠.

친일파에 대한 평가 역시, 단지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끝내면 안 됩니다. 그들을 살려준 것은 독립운동가였으며, 그들의 업적을 말 한 것도 역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당시의 상황, 각 분야의 특수성, 각 인물들의 상황까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차피 지금 비판 받는 친일파들은 단지 친일 행각 뿐만 아니라 해방, 건국 후의 행위들까지 합쳐져 욕 먹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가를 할 때도 이걸 모두 감안해서 해야죠.

각 분야에서 살고 여전히 업적을 세운 친일파, 그가 일제 때 한 것과 해방 후에 한 것을 공과를 합쳐서 따로 봐야 됩니다. 이에 대한 옹호를 그냥 친일파 살리기로 보면 안 됩니다. 기득권의 변명으로만 봐도 안 되요. 분명히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사람마다 다를 거니까요.


반민특위 투서함

제가 중시하는 기준은 역시 반민특위입니다. 이는 당시 친일 청산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반민특위에 체포된 사람들은 우선하되 그 반민특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도 중시해야죠. 최소한 악어 눈물이라도 그 때 반성의 모습을 보인 인물은 평가가 조금이라도 달라야 됩니다. 최남선과 이광수는 같이 욕 먹더라도 따로 봐야 된다는 거죠. 그들이 친일한 기간 역시 마찬가집니다. 매국노와 전쟁 후 변절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져야 되고, 그들이 변절하기 전에 세운 공이 있으면 마냥 무시하면 안 됩니다. 개인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해방 후 그 시대, 문제가 되는 인물이 청산이 가능한 인물이었는가, 그가 청산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도 따라야 하죠.

그보다 덜한 친일파들은 친일의 행각 자체보다는 대부분을 차지할 해방 후의 모습에 집중해야 됩니다. 몇 년 친일과 해방 후 수십년 간의 업적, 전자로 후자를 덮을 순 없습니다.

그에 관련된 인물들도 마찬가지죠. 단지 이승만 정권에 충성했다고, 친일파와 친하게 지냈다고, 친일파와 손 잡았다고 그냥 한 패로 다 몰아붙이면 안 됩니다. 그 때의 이유와 그 때의 상황, 그 자신의 공과를 제대로 따져봐야 됩니다.

하지만, 친일파에 대한 기록 역시 멈추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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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구성한 초대 내각에 두세 명의 친일파가 포함되었다는 여론이 일자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악질적인 독립운동 방해자 이외에 친일파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악질적인 친일파가 정부에 중용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점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대한민국 이야기

이전 편에서 저는 식근론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마지막에 일제 때와 해방 후의 서술의 느낌이 너무나도 다르다고 했죠.

식근론은 기본적으로 친일파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 이론입니다. 이들이 주목하는 친일파는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 하고 몰락해 가던 매국노가 아니라 조선 말부터 개화파로 등장한 이들과 자본주의가 들어온 후 성장해 간 중인, 노비 출신들입니다.

전봉관 교수가 그 부분에선 일인자지만, 이영훈 교수 역시 필부필부의 이야기, 그 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해방 후의 서술에서 그걸 찾을 수 없죠.

이승만을 옹호해서 그런지 이승만과 같은 논리입니다. 많은 부분에 찬성하긴 합니다. 그들을 모두 민족반역자로 몰 순 없고 그들이 한국의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야 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도 분명 민족 반역자라 할 수 있는, "민족에 해를 끼친 인물"들은 있거든요.

그는 반민특위 얘기를 하며 가장 먼저 체포된 박흥식 얘기를 꺼냅니다. 제가 봐도 박흥식의 재판 기록에서는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반민특위 중 가장 강경한 노일환이 재판을 맡았는데도 박흥식의 확실한 죄는 꺼내지 못 했습니다. 결국 병 보석으로 풀려난 후 공민권 정지 2년이라는 (최고 15년까지 가능했습니다) 가벼운 벌을 받았고 이마저도 취소되죠. 그는 이걸로 반민특위 무위론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박흥식에 대한 논의는 둘째 치고, 이걸로 다른 반민특위 체포자들까지 덤으로 끼워버린다는 것이죠. 너무 많아서 박흥식 하나밖에 찾아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위에 인용했듯 그는 악질적인 친일파는 중용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민특위 해산의 결정적인 이유인 노덕술은 어떨까요? 보도연맹 사건을 주도한 김창룡은 어떨까요? 정작 중요한 얘기를 빼고 있다는 것이죠.

같은 집단이라도, 같은 데에 발을 담궜더라도 각 인물들의 평가는 그들의 행동과 언행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간단히 현 정부만 해도 그렇잖아요. 하나의 깃발 아래 있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릅니다. 출신만 따져도 독립운동가 후손도 있고 친일파 후손도 있으며 운동권 출신도 있죠. 정권 자체에 대한 비판이야 다 같이 받더라도 이들 각각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죠. 헌데 이것이 새누리당은 친일파 후손밖에 없으니 다 없애야 된다와 새누리당은 잘못한 거 하나 없으니 다 덮고 넘어가자는 것과 같은 겁니다.

아, 여기에 하나 더 있죠. 괜히 아픔을 들추지 말자구요.

헌데 어쩝니까. 그들 역시 과거의 아픔을 들추고 있는데 말입니다.

식근론이 옳고 글렀든 간에 그들은 한국인의 가장 큰 아픔인 일제시대를 들춰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길을 가고 있죠. 근데 그 반대편을 들추는 것은 들추면 안 될 아픔일까요?

지금 와서 친일파의 후손을 청산하자는 건 안 된다고 봅니다. 한다면 정말 매국노, 나라를 판 1세대 친일파들의 후손들에게만 해당해야 된다고 보구요. 하지만, 친일에 대한 기록은 다릅니다.

친일의 정도가 컸든 작았든, 그들은 분명히 친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큰 공을 세웠든 그 친일 자체를 덮을 순 없습니다. 차라리 박정희의 군인 생활과 혈서를 부정하지 않은 조갑제는 나은 거죠. 그들의 친일은 역사에 남는 부분이고, 역사에 남아야 되는 것을 아픔이라는 이유로 묻어둘 수는 없습니다. 그럴 거면 역사학 자체가 필요 없죠.

친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얘기가 진행돼야 됩니다. 무조건 없애야 된다, 무조건 덮어야 된다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왜 친일파가 됐고, 그들이 일제 때와 해방 후 어떻게 살았으며, 어느 정도를 이해해야 되고 어느 정도를 비판해야 되는지, 얘기는 계속 돼야 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와 같이 가야죠. 왜 한국은 그들을 청산하지 못 하고 넘어갔고, 그들이 이 해방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잘 했는지 끝 없이 논의돼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양극단으로 나눠서 무조건 죽어야 했다 무조건 끌어안아야 했다와는 전혀 다르죠.

가령 저는 요즘 이광수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 같은 개화파 지식인들의 후예가 어떻게 친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들이 내세운 "민족개조론"은 현재에도 생각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그들은 분명 조선을 발전하려 했고, 조선의 독립은 원했지만, 나중에는 "조선을 위해" 일제에 협력합니다. 그들의 변절의 이유는 민족개조론에 있습니다. 조선인들을 미개한 것으로 여겼던 그들은 조선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을 무시하게 됐고, 일제에 기울게 됐습니다. 여기에 일제의 탄압에 의한 "살기 위해서"라는 더 구체적인 합리화도 있었죠. 그 합리화는 해방 후까지도 이어졌구요.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게 있죠. 국개론이요. 이런 식이예요. 그들에게는 분명 배울 점도 있고, 그들의 변절을 통해 지금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배우든,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하며 자신을 돌아보든, 식근론에서 주장하는대로 "필부필부의 이야기"로 그들이 사는 모습에 집중하든, 그들의 모습은 더욱 더 공개돼야 되고 더욱 많이 연구돼야 합니다.

친일파는 이제 역사의 영역입니다. 그들이 다 없어졌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안 됐다는 식의 대체역사소설식 얘기도, 괜히 아픔을 건드리면 안 되고 정통성도 건드리면 안 되니 다 덮고 넘어가자는 식의 이야기도 안 됩니다. 이런 정치적인 프레임 자체를 넘어서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이 친일파입니다.

학문의 영역 안으로 가둘 수 있는 얘기도 아니고, 언제나 정치 싸움 영역으로 넘어갈 문제긴 하죠. 생존한 마지막 반민특위 간부였던 정철용 선생 역시 친일 청산 문제가 정치권 싸움으로 변질되는 걸 안타까워 했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사 문제에서 정치로 넘어가지 않는 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친일파 문제가 정치로 넘어가는 걸 생각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안 될 얘기인 겁니다. 친일, 그것은 분명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 중 하나니까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한 쪽은 역시 인정, 애초에 이들이 인정하지 않고 건국 후 자기들, 자기 조상들의 업적만 내세웠기에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최소한 인정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인정 후에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든, 사과든 말입니다.

다른 쪽에서 필요한 건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친일파 출신으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든 안 했든 정말 업적을 세운 사람도 많고, 부정부패와 관련 없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적당히 살았다 갔다면 모를까 공을 세운 게 있다면 그 공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 공 자체가 조작된 거라면 모를까, 친일이 반민족이었다면 그 공은 분명 "친민족"적이니까요. 후자로 전자를 덮을 순 없지만, 전자로 후자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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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친일파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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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구와레오
12/05/0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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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보면 결론이 친일을 했더라도 친민족때문에 했으니깐 공과 사를 비교해서 같이 보자는 말씀인가요??
글세요.. 현재 친일파들에게 가장 지속적으로 재기되는 문제는 애초에 사는 싸그리 무시하고
애초에 공만 인정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아니면 사는 공으로 덮으면서 합리화 시키거나 감추고 있고요.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친일파나 그 후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후회한다라는 얘기라도 있었으면
공으로 사를 덮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태반이 사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님의 마지막 문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아래글이랑 해서 대충 읽어보았지만 한대 뉴라이트쪽에서 주장한 친일보다는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공을 인정하자라는
논리랑 차이를 못느끼겠네요.
그리고 이 논리를 좀더 설득력을 가지게 하시려고 돌아가신 2분의 대통령까지....
어찌보면 비겁하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연좌제 문제같은거도 애초에 그 후손들이 갖게된 재산의 근원이 선조의 친일행동으로 인한 부당이득을 국가가
회수하는건데 그걸 가지고 법으로 묶지말라는거도 좀 아이러니하네요..
Je ne sais quoi
12/05/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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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해서 잘 읽었습니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네요. 아마 눈시님 글 읽은 중 가장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글 일듯 합니다 ^^; 어쩔 수 없는 문제겠죠.
대학 때 독립운동사를 들을 때 교수님이 한 마디 하셨죠. "독립운동가도 정치인이다". 이 한 마디로 충격을 받기도 했고, 또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해가 된다고 동조하진 않지만요. 잘 읽었습니다.
그리메
12/05/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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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유당 독재의 이기붕을 파해쳐달라면 눈시비비님 지치시겠죠 크
12/05/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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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치 부역자의 청산은 그 상황과 기간으로 봤을 때
친일부역자가 아니라 6.25 당시의 부역자 박해와 비교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동의하시듯 6.25 당시의 부역자에 대한 색출과 처단은 거의 박해라고 할 정도로 철저했고, 지금도 현대사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죠.


그리고 일단 내용에 대한 판단을 떠나서, pgr 분위기상 엄청난 파이어가 예상되는 주제를 들고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제가 다 후덜덜하네요. 흐흐.
감모여재
12/05/0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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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틀에서 해방 6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 청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친일파에 대한 연구와 친일파를 밝혀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을 같이 합니다. 결론은 그런데, 상당히 이야기를 격하게 끌고 나가셔서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던져주시네요. 저같으면 무서워서 못할 이야기들을 하실 수 있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저는 학자가 되기는 글렀나봐요.
12/05/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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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친일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말씀하신 민족개조론이었죠.
늘 제가 생각했던 바가 본문에 이미 다 나와있어 더 보탤말이 없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코큰아이
12/05/0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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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할 수 없는 글이어서 슬프네요 기존 글들이 제 생각과 같은 것이 많아 무릎을 치면서 읽었는데...흐흐흐
그렇군요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은 일제 고등계 형사와 일본군 오장출신이 대한민국 반공투사가 되어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치에 부역하였지만
이게 다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어쩔수 없는 것이다??
어쩔수 있을 가정한번 해볼까요?
그 반역자들대신 새피로 젊은이로 꼭 독립운동가가 아니더라도 물갈이를 했다면 안되었을까요?
가령 일본군 출신 백선엽, 정일권같은 자도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에 국군장성이되어서 날뛰었던데
위 두사람같은 예를 들어도 까짓것 더 어린 사람들이 국정을 맡았어도 무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일파하면 떠오르는 인물 바로 ...일본군 헌벙대 오장출신 국군 특무대장 김창룡은 이야기 없네요
아직도 보안사 아니 국군 기무사령부죠 이 기무사령관실에 김창룡의 사진이 붙어있다고 하던데요
이자도 대한민국 건국공헌자네요 눈시님의 논리라면은요....
아우디 사라비아
12/05/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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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이글에 결론이 있군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치밀하고 공정한 역사기록(그게 가능하는냐...는 별개로)이라고 생각합니다
Montreoux
12/05/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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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신 제 아부지는 일본어에 능하셨죠. 식민지시대의 청년이셨으니.
일본서적 사러 대구도심의 책방에 절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일본어까막눈인 제눈에도 책들 땟깔은 있어보였음.
문예춘추를 포함한 온갖 잡다한 책읽기를 좋아하셨지요. 식민지 시대의 여느 청년들이었던 분들처럼.... 흠.
세대. 경험치. 정치관. 가치관. 승자. 왜곡. 자부심. 치욕. 그리고 기록된 &기록되지 않은 역사... 삶은 계속 된다. 뭔말이냐.
생각할 거리 주셔서 늘 잘 읽고 있습니돠.

깨어있고 유연하고 열려있다고 착각하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생긴대로 살다 죽을래 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위의 통진당 호떡집에 불난 글에도 486(엔엘도 이 세대니까요)꼴보수(맥락은 공감이 감. 절절히) 라는 말까지 보입니다.
보수라는 말이 이땅에선 참 욕보고 있지요.
식민지 때문에? 단절된 품격있는 전통이 그리운 나는 흑백사진속의 먼저 살다간 분들을 뵈니 보수고 진보고 나발이고...
친일이고 뭐고(는 아닌가 아무튼).... 애잔하네요.
결론이 뭐냐면 눈시님 글은 경직되어 있지 않아 좋습니다.
균형감각. 적절한(김대기는 아니고;) 분별심.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경직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미덕을 가지신 거임.
넘 대놓고 핥나요?^^; 크흐흐.
일단 흑백사진이 이뻐=,.= 대충 읽어 내렸네요. 다시 읽어야쥐.
타테시
12/05/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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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들은 어찌 되었든 친일을 했습니다.
당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책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친일파는 정말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최고의 특권층이나 다름 없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친일파들이 과연 나라를 위한 사명으로 친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친일파들 특히 1930년대 이후 친일파로 돌아선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솔직히 머리를 잘못 썼다고 봅니다.
왜냐구요?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철저히 내선일체니 뭐니 해서 조선색을 지우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친일파들은 거기다대고 자치어쩌구를 해대고 있었으니 말이죠. 내선일체가 말만 번지르르하지.
실제로는 조선을 없애자는것이었는데, 그것을 동의하고 나선 것이죠. 거기다 종군위안부나 강제징용 등도 죄다 동의했고
도대체 뭐가 친일이 용서가 될 수 있는지조차 궁금합니다.
해방 이후의 행적 때문에 친일파를 보는 것 때문에 문제라 하시는데 정작 그 친일파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때를 봐도
딱히 달라보이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게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다른 말도 옹호해줄 가치도 없다고 봅니다.
루크레티아
12/05/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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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근론이나 본문과 같은 친일파 객관론(임의로 붙여봅니다.)이나 사실은 정말 아무런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조사와 그 결과' 일 뿐이죠.
문제는 이런 조사결과에 살을 제멋대로 붙여서 해석하고 이용하는 세력들이고요. 전 개인적으로 반민특위를 비롯해서 건국 초기에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은 이런 쓸데없는 논쟁거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완벽한 불행이라고 봅니다. 안 그래도 혼탁한 정치판에 혼란을 가져올 씨앗을 크게 남긴 셈이니까요. 반민특위의 기준이 어떠한 기준이던지간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든 안 되든 간에 청산이라는 명목의 행위는 완료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승만은 그런 행위 자체를 방해하고 탄압한 점에 있어서는 독재와 더불어 후대에 큰 짐을 떠넘긴 것이고요.
12/05/0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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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처럼 명백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공헌한 사람들은 뭐 나름의 대접을 이미 받고 있지 않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한국에서 친일했다는 이유 하나로 매장당한 명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꼽자면 서정주가 있긴 할텐데 이양반은 친일+친독재 더블을 달성한 양반이니 굳이 친일 문제만으로 평이 깍이는 것도 아니고요.(평만 좀 깍인다 뿐이지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교과서에 작품도 거의 다 실리곤 했었으니...)

좌익쪽 행적으로 매장당한 명사들과 비교하면 '친일 했다고 우리 까는거 너무한거 아냐?'고 징징거리는건 애교 수준이죠. 어차피 좀 까이기만 하면서 누릴 건 다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라 별로 까이는게 안타깝거나 하진 않네요.

이제와서 친일 청산을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그런 소리가 나오는건 역시 첫째도 이승만, 둘째도 이승만, 셋째도 이승만 때문이니 하여튼 이양반 안 좋은 쪽으로 영향력은 엄청나요.
담배피는씨
12/05/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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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4화 중 스타니스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선한 행동이 악행을 씻어내지 못하며 악행이 선행을 씻어내지도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진영 다툼, 전쟁, 쿠데타, 군사독재등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더욱 더 일그러져 가고 있으니..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12/05/04 19:32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결론은 이승만 개객...
HealingRain
12/05/05 01: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주제를 꺼내셨고, 글도 정말 잘 쓰셨는데... 입맛이 참 쓰네요.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기가 힘들고...
정말 결론은 이승만!! 아오~ ㅜㅜ
슈퍼엘프
12/05/05 01:03
수정 아이콘
세상 간단한게 아니며 그 시대사람들이 다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다...

정도의 결론일려나요...

어쨋던 어려운 주제인데 잘 풀어서 쓰셨습니다. 좋은글 계속해서 감사히 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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