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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4 18:39:49
Name Judas Pain
Subject [일반] 노바타 양 웬리
먼저 링크의 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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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은영전 비평 : 양 웬리와 탈정치성 -한윤형-
http://yhhan.tistory.com/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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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근대 정치를 엮어 보는 건 묘한 일이겠지만 은영전에서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 양 웬리의 정치적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노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양 웬리의 군사철학은 손자병법의 철학을 그대로 배껴다 쓰는데 손자는 전쟁터의 노자임. 중국역사덕후인 다나카 요시키가 양이란 캐릭터에 부여하려 했던 일관성을 읽을 수 있는 부분)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근대로부터 시공간을 한참 벗어난 우주세기에서 근대적 정치 문제가 등장하는 SF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로 유명한데 실은 동아시아의 삼국연의류 땅따먹기 역사소설에 근대정치를 끼얹은 무국적적 패러디에 훨씬 가깝습니다.



애초에 삼국연의류 소설에서 노자 패러디 같은 캐릭터로 민주정치를 논하려 했으니 근대정치학관 영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점에서 우리들이 종종 그랬었던 것처럼 서구에서 수입된 근대정치 및 민주주의를 은영전을 통해 이해하려는 태도는 좀 무리수입니다만 소설 그 자체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동아시안들이 서구정치사상을 자기화 없이 딱 그대로 이식 받을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기도 합니다.



사회철학서로 보는 <<노자>>의 키워드를 몇 개 추출하자면 이렇습니다. 정복전쟁에 대한 냉소, 권력에 대한 회의(와 충고),  생명의 보존, 그리고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거부.

춘추전국 이후 필요에 의해 천차만별로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지만 역사적 <<노자>>는 늙은이의 노래고 오랜 난세를 거친 뒤 나온 회의적이고 노회한 사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노자는 주나라 역사서를 관리하는 도서관장이고 노자학파인 도가는 사관이 민간에 내려와 발전했다는 설이 있는데 양은 원래 역사학도를 지망했지요?


<<노자>>는 ‘감히 무엇을 하려는 용기’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고 ‘감히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용기’로 장구(長久)하길 권하는 책이기도 한데, 양 역시 연금을 받으며 가늘고 길게 살 그 날을 기다립니다.

또, 허름한 갈포로 옥을 감싸듯이 허술한 외면과 깊이있는 내면이 접착된 질박한 캐릭터는 <<노자>>가 기리는 인물상이기도 합니다. 是以聖人被褐而懷玉


제국(전제국가)에 대한 저항감 역시 노자식 방임주의 이상의 맥을 찾긴 어렵고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역시 노자식 자유주의를 근대에서 투영가능하게 하는 틀 이상으로 보는 정치적 깊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치활동엔 심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나에게 있어 정치권력이란 하수처리장과 같다.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진 않다.”




무엇보다도 노바타 양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태도는 무엇을 억지로 이루거나 하고자 하는 것-인위(人爲-)에 대한 거부입니다. 이는 인간이 강한 신념을 갖는 것에 대한 혐오로 나타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은 양 나름의 목적과 신념이 있고 그것을 무엇을 억지로 하려들지 않으면서 잘 이뤄냅니다. 노자가 그럴 수 있다 주장하듯이.




-보너스

본격 은영전 비평 : 양 웬리와 탈정치성 중에서
http://yhhan.tistory.com/1238

<그런 이가 신념에 대해 혐오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양 웬리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의 능력치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나, 남들이 듣고 배울만한 진술은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군사적인 것 일체를 혐오하던 양 웬리는 부하를 구타하는 지휘관을 보면 가차없이 군복을 벗겨 버리는데, 그런 행동은 그런 지휘관 없이도 양 웬리가 훨씬 잘 싸운다는 전제 하에서 정당한 것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몽고메리 장군은 부하를 구타한 패튼 장군을 옹호했더랬다. 목표수행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무심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그들보다 더 잘 이기고 나름의 목표수행을 위해 진력하는 양 웬리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능력치는 모방할 수 없고 그 무심하고 시크함만을 모방할 수 있는 거다. 그 무심한 자세가 그 특유의 정치혐오의식과 결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

=> 무위이무불위(無爲以無不爲) '하지 않음으로서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한윤형님은 소설 속의 양이 목표에 안간힘을 쓰지 않음에도 목표를 탁월하게 성취하는 것을 그의 능력치가 현실의 사람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소설 속의 '먼치킨' 양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자류 '무위의 공능'으로서 능력치의 양적 차이가 아닌 스타일의 질적 차이입니다.

이점은, 정부 체제가 아니고 집단 내 권력의 문제긴 합니다만  양 함대(그리고 양의 세력)에서 양이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하지 않고 방임함에도 삐딱하고 개성 강한 함대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어 나름의 질서를 갖고 양의 지시를 따르(거나 거스르)며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양은 상명하복식의 권위적 리더쉽도 그렇다고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민주적 리더쉽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은 독재자가 될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정치가가 될 인물도 아닙니다. 그는 노자적인 캐릭터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저 시크하게 굴어봤자 쿨게이가 될 뿐으로 무위의 공능을 부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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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4 18:43
수정 아이콘
오우 요즘 다시 읽고 있는데, 반가운 글이네요.
얀 웬리가 라인하르트를 없앨 수 있을 때, 없앴으면 좋았겠지만 그게 얀 웬리의 매력이죠.
9th_Avenue
10/08/04 18: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한참 은영전에 빠져있었을 당시에도.. 양 웬리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벽증에 걸린 것 같다라는..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보는 듯한;; 오만함이 은연중에 느껴졌거든요. 작가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조금
들어가 있다는 느낌도 받았구요.
10/08/04 18:48
수정 아이콘
전 솔직히 은하제국의 시민들과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요. 어떤 체재나 어떤 인물이 통치한다 해도 이상적으로 통치할 수만 있다면 독재적인 왕정 체재라 해도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순모100%
10/08/04 19:04
수정 아이콘
문득 <묵공>이란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예전에 묵가라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평등, 박애 뭐 이런 풍의 학문이라 지배층에게는 인기가 없던 그런 사상이었는데...
이 묵가의 전략가가 전쟁에서 백전백승하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이 묵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이영화를 보면서 전쟁이란 게 전략, 전술을 잘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죠.
정치력이 없다면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다한들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없고, 승리후 세상을 안정화시킬 수 없습니다.
적절한 승리후 적장과의 합의라는 정치적인 수를 놓친 결과 상당히 비극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고 말죠. 승리자는 없는 형태로요.
반면 <킹덤오브헤븐>이란 영화에선 살라딘과 발리안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도가 튼 장수로서 합의를 통해 양쪽 모두 이익을 얻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정치란 것은 전쟁을 포함한 상당히 상위개념의 능력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은영전의 양웬리는 정치엔 냉소적인 탈정치적 인물이죠.
아마 전쟁에 최적화되고 깔끔한 이미지의 소설캐릭터로 만들어진 인물이다보니 탈정치적이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실제로 양웬리의 주위에 몰려든 인물들은 양웬리의 군사력, 전략적 힘, 이미지들을 보고 제각기 무언가 정치력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소설내에선 체게베라처럼 저항의 상징? 마지막 남은 자유의 햇불 뭐 그런 셈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탈정치적 인물이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인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보역시 상당히 정치적 의미가 많았습니다.

정치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원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서와 통제 그리고 통합, 갈등해소라는 큰 의미로 본다면
양웬리가 정치를 싫어라한다는 건 정치인이나 낡은 정치구조가 싫다는 것 일 뿐.
정작 스스로는 소설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혁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셈입니다.
은영전은 특히나 따로 정치적 영웅이 없기때문에 군사적 영웅인 양웬리가 그 역활을 해줘야했죠.
안그러면 소설이 안되었을거에요.;;;
(솔직히 제대로 된 민주주의개념으로 보자면 정치적 영웅은 따로 있었어야 했습니다. 권력분립이랄까?;)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작가가 정치에 회의를 가졌기에 대신 군사+정치력의 절대군주를 원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양웬리는 라인하르트에서 권력욕만 뺀 인물일 따름입니다.
그럼으로서 교묘히 라인하르트와 극을 이루는 상징적 인물로 만들어버렸죠.
아시다시피 양웬리도 그다지 민주적인 인물이 못됩니다. 박애주의자 이상주의자 정도인데...
소설의 끝을 내기 위해서 막판에 상당히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예지자가 되어 버리죠.;;; 상당히 모순적인 행보랄까.
이해는 합니다. 안그러면 소설이 끝이 안나요.
전쟁으로는 상대방을 완전히 박멸하여 굴복시키기전에는 절대 끝이 안나듯이... (묵공의 비극)
마지막은 정치가 해결할 수밖에는 없지요.
Judas Pain
10/08/04 19:09
수정 아이콘
<<노자>>가 탈 정치적인 텍스트가 아니고 외려 매우 정치적인 책인 것처럼

소설 속에서 양 역시 역설적인 과정을 통해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 되었죠.
10/08/04 20:23
수정 아이콘
얀웬리는 민주주의는 최고의 가치는 아니고 그저 수많은 정치체제중에 그나마 나은 차선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Siriuslee
10/08/05 01:30
수정 아이콘
양웬리는 그저 역사학자를 꿈꾸는, 언제라도 퇴역하고 싶은 군인이죠.

소설속의 역사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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