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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8/15 20:33:44
Name 유니콘스
Subject [일반] 롯데자이언츠의 역사 - 3. 고독한 에이스들
1985년부터 1991년까지의 기간을 다룹니다.

절취선----------------------------------------------------------------------------------------------------------------------

1985년, 멤버의 구성은 1984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마운드에서는 그토록 고대하던 "왼손 최동원" 양상문이 입단했습니다. 최동원 - 임호균 - 양상문으로 이어지는 선발 트로이카.

박동수 역시 입단하며 마운드를 어느정도 높입니다.

하지만, 고교무대, 대학무대, 실업무대를 거치면서 혹사당할대로 혹사당한 양상문은 이미 최동원과 맞먹는다는 빠른 직구를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타선에서 주포 김용철이 주저앉았고 홍문종 역시 작년만큼의 날카로운 타격솜씨를 보이지 못하며 롯데는 의외로 많은 곳에 약점이 생겨버립니다.

그러나,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대활약을 펼친 최동원은 아직 펄펄 날았고 임호균등도 아직은 별 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MBC에서 데려온 정영기가 팀내에서 유일하게 3할을 치며 활약했고 한국시리즈 7차전 결승 쐐기 홈런의 주인공 "공포의 1할타자" 유두열과 중심타자 김용희가 타선에서 버텼습니다.

일단, 1984년의 최동원과 1985년의 최동원을 비교해보겠습니다.

1984 최동원 : 51등판, 20선발, 284.2이닝, ERA : 2.30, 27승(9선발승, 18구원승) 13패 6세이브, 223K
1985 최동원 : 42등판, 17선발, 225이닝, ERA : 1.92, 20승(12선발승, 8구원승) 9패 8세이브, 161K

작년보다는 투구이닝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투구이닝은 200이닝을 넘었고 평균자책점은 오히려 1점대로 낮아지는 관록을 보였습니다.

만약, 롯데가 또다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고 가정한다면 최동원이 1, 3, 5, 7차전을 책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기리그에서 롯데는 55경기에서 27승 28패를 하며 4위에 머물렀습니다. 후기리그에서는 초반에 1위를 달렸으나 삼성과의 5연전에서 모두 스윕을 당하며 삼성에게 1위를 내주었습니다. 결국 32승 23패로 후기리그 2위에 머무르고 맙니다.

1985년의 프로야구야 뭐 삼성의 전무후무한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끝났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1986년, 앞으로 10여년간 은은하게 롯데의 앞길을 밝혀줄 대투수 윤학길이 입단한 해. 그리고 홈 구장이 구덕구장에서 사직구장으로 옮겨집니다.

"왼손 최동원"으로 기대를 모으던 양상문이 혹사 후유증으로 작년에는 6승을 했으나 그 해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1승으로 주저앉아버립니다. 임호균 역시 3승 8패로 주저앉아버립니다.

타선 역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가장 불운한 에이스를 꼽자면 꼭 세 손가락안에 들게 될 1986년의 최동원.

일단, 1986년의 최동원을 살펴보겠습니다.

1986 최동원 : 39등판, 21선발, 267이닝, ERA : 1.55, 19승(10선발승, 9구원승) 14패 2세이브, 208K

분명 평균 자책점은 더 낮아졌습니다. 단일시즌 평균 자책점 순위 8위, 단일시즌 탈삼진 7위, 단일시즌 투구이닝 4위에 빛나는 투구를 했지만 빈약한 타선의 지원과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까지 얻으며 불운하게 14패를 떠안습니다.

그리고, 1986년의 최동원 하면 떠오르는 1986년 선동렬과의 2번의 대결.

4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처음으로 맞붙은 둘은 9이닝 완투를 했고 결과는 3회에 솔로 홈런을 맞은 최동원의 0 - 1 패배였습니다.

8월 19일. 또다시 사직구장에서 맞붙은 최동원과 선동렬. 이번에도 9이닝 완투를 한 두 에이스. 이번에는 최동원이 완봉으로 버티며 2 - 0 승리를 합니다.

한 번 1986년의 최동원과 1986년의 선동렬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986 최동원 : 39등판, 21선발, 267이닝, ERA : 1.55, 19승(10선발승, 9구원승) 14패 2세이브, 208K
1986 선동렬 : 39등판, 22선발, 262.2이닝, ERA : 0.99, 24승(17선발승, 7구원승) 6패 6세이브, 214K

솔직히..... 1985, 1986년은 최동원을 빼놓으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동원의 이야기만 많아진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최동원의 등판경기.

상대는 OB베어즈였습니다. 그리고, 롯데가 2점 앞선 상황. 최동원은 OB의 2년차 새내기, 하지만 앞으로 OB의 뚝심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선수 김형석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 전 경기에서도 최동원에게 결승 안타를 선물해주었던 김형석. 승부심에 불타던 최동원은 2스트라이크 0볼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결정구를 날렸지만 그 공은 몰렸고 김형석은 그 공을 제대로 받아쳐 동점 2점 홈런을 때려냅니다.

맥이 빠져버린 최동원은 다음타자 신경식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실책으로 인한 끝내기 결승점까지 허용해버리고 맙니다.

이 해의 롯데의 전기리그 성적은 30승 20패 4무로 3위. 후기리그 성적은 20승 32패 2무로 도합 50승 52패 6무. 종합순위는 5위였습니다.

1987년, 임호균을 다시 청보로 보내는 리턴트레이드. 그리고 재기 불능이라고 판단한 양상문을 핵심으로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을 청보로 보내고 청보의 2루수 정구선을 중심으로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를 롯데로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합니다.

대략, 이러한 모양입니다.

롯데 :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 <-> 정구선, 우경하, 정성만 : 청보

하지만, 이 후의 활약을 볼때, 롯데의 이 트레이드는 썩 좋은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임호균이 1987년, 해태전에서 73구 완봉승을 거두는 등 9승을 하며 팀의 마운드를 이끌었고 특히 양상문이 12승을 하며 앞으로 몇년간 인천야구의 마운드를 이끌 주축투수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정구선이 오대석, 이강돈에 이어 3번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삼미 - 청보시절보다는 실력이 떨어졌고 우경하와 정성만도 썩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작년에는 썩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윤학길이 서서히 팀을 이끌어 나가는 에이스로 성장,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최동원을 대신해 팀의 마운드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용희를 대신해 주전 3루수로 성장한 한영준이 3할을 치며 팀 타선의 중심으로 성장했고 김용철 역시 3할을 치며 중심타선을 지켰습니다. 게다가, 홍문종, 유두열등의 타자들이 3할에 가까운 타격솜씨를 보여주며 소총부대로서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일단, 저무는 해(?) 최동원과 새로 뜨는 해 윤학길의 성적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987 최동원 : 32등판, 22선발, 14완투, 224이닝, ERA : 2.81, 14승(10선발승, 4구원승) 12패 2세이브, 163K
1987 윤학길 : 31등판, 20선발, 13완투, 200이닝, ERA : 2.57, 13승(11선발승, 2구원승) 10패 1세이브, 84K

그리고 덤으로 최동원의 데뷔때부터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1983 최동원 : 38등판, 21선발, 16완투, 208.2이닝, ERA : 2.89, 9승(8선발승, 1구원승) 16패 4세이브, 148K
1984 최동원 : 51등판, 20선발, 14완투, 284.2이닝, ERA : 2.30, 27승(9선발승, 18구원승) 13패 6세이브, 223K
1985 최동원 : 42등판, 17선발, 14완투, 225이닝, ERA : 1.92, 20승(12선발승, 8구원승) 9패 8세이브, 161K
1986 최동원 : 39등판, 21선발, 17완투, 267이닝, ERA : 1.55, 19승(10선발승, 9구원승) 14패 2세이브, 208K
1987 최동원 : 32등판, 22선발, 14완투, 224이닝, ERA : 2.81, 14승(10선발승, 4구원승) 12패 2세이브, 163K

5년 연속 200이닝을 넘기며 투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5년 연속 두자릿수 완투를 기록했군요. 그러면서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습니다.

5년 연속 200이닝 투구는 최동원을 제외하면 현대유니콘스의 정민태가 유일하며(1996 ~ 2000) 4년 연속 200이닝 투구와 두자릿수 승수 기록은 정민태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투구와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깨버립니다.

그리고 1987년 5월 16일. 다시 한번 맞붙은 최동원과 선동렬.

이 날의 경기는 15회까지 이어졌고 롯데가 먼저 2점을 선취했지만 해태 역시 2점을 따라붙으며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승부는 무승부로 끝이 났습니다.

이 날 최동원이 던진 공은 209개, 선동렬은 232개를 던졌습니다.

한편, 롯데의 성적을 살펴본다면 전기리그에서는 27승 25패 2무로 3위. 후기리그에서는 27승 24패 3무로 3위. 종합순위는 54승 49패 5무로 3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합니다.

1988년, 최동원이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며 전반기에 출장하지 않습니다. - 최동원의 부친을 롯데 구단 직원 1명이 모욕했다고 전해지며 그 이야기가 최동원의 귀에 들어가 부친을 욕한 것을 사과하라고 주장. 결국 전반기에 구단과의 마찰로 최동원은 출장하지 않습니다. -

반면, 타선의 지원은 훌륭했습니다.

주전 1루수로 성장한 "자갈치" 김민호가 0.323이라는 고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롯데의 4번타자로 성장과 동시에 중장거리 타점머신으로 성장했으며 중심타선의 핵 김용철 역시 0.292라는 고타율에 팀내 최다 홈런인 18개를 때려내며 녹슬지 않음을 과시했습니다. 유두열, 홍문종등의 타자들도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투수들에게 지원을 충분히 해 주었으며 1987년에 3할을 넘긴 한영준이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또다시 3할을 넘기며 활약합니다.

타선의 지원을 받으며 최동원 대신 롯데의 에이스로 성장한 윤학길은 최동원이 빠진 롯데의 마운드를 훌륭하게 이끌어 나갔습니다.

1988 윤학길 : 35등판, 25선발, 234이닝, 17완투, ERA : 3.15, 18승(13선발승, 5구원승) 10패 3세이브, 123K

그리고 해태의 이상윤, 선동렬, 빙그레의 한희민등을 제치고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합니다.

후기리그에 합류한 최동원은 16경기에 4번 선발로 등판했지만 7승을 거두며 "나는 최동원이다."를 과시합니다.

한편, 성적을 살펴보자면 전기리그에서는 29승 24패 1무로 4위. 후기리그에서는 28승 25패 1무로 빙그레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으며 통합순위는 4위였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합니다.

1989년, 전후기리그제도가 사라진 1989년. 그리고 대형 트레이드.

1988년 시즌 후 선수협의회를 결성한 주동인물 최동원. 구단의 입장에서 말썽만 일으키는 최동원은 이제 실력도 바닥났고 이제 치워버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성. 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 연속해서 한국시리즈 제패에 실패한데다가 에이스 김시진이 한국시리즈에서는 한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하며 한국시리즈용 에이스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최동원과 김시진이 옷을 바꿔입습니다.

롯데 : 최동원 <-> 김시진 : 삼성

또다른 선수들의 트레이드.

롯데 : 오명록, 김성현 <->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 : 삼성

그리고 또다시 이어진 대형 트레이드.

롯데의 김용철과 삼성의 장효조를 중심으로 한 또다른 트레이드.

롯데 : 김용철, 이문한 <-> 장효조, 장태수(투수) : 삼성

하지만, 이 대형트레이드는 결국 모든 선수들을 시들게 하며 - 몇몇 선수들, 장효조, 김용철, 허규옥, 김성현등은 제외합니다. - 화제에만 오르내립니다.

그리고 재일교포 타자 홍문종은 태평양으로 보내버립니다.

작년의 타선 지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3할을 기록하는 타자들은 사라졌고 - 언제나 3할치는 장효조는 제외합니다. 그나마도 0.303으로 충격적인 부진을 겪습니다. - 김용철이 사라진 중심타선을 김민호가 홀로 지켜나갔습니다. 허규옥 역시 2할 9푼대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지만......

그래도 투수에서 타자로 전업하며 앞으로 롯데 타선의 기둥이 되어줄 "호랑나비" 김응국이 시즌 후반기에 투입되어 29타수 14안타 1홈런을 기록해줍니다.

마운드는 윤학길이 외로이 지키는 가운데 신인 서호진, 김청수등이 가세해나갔습니다.

하지만, 48승 67패 5무로 6위 MBC와 반경기 차이로 꼴찌를 합니다.

그러나 1989년의 윤학길은 주목할 필요가 있으니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1989 윤학길 : 38등판, 30선발, 18완투, 250이닝, ERA : 2.70, 16승(14선발승, 2구원승) 11패 2세이브, 141K

팀이 거둔 48승중 16승이 윤학길의 승리였습니다. 팀이 3번 이긴다고 할때, 그 중 1번을 윤학길선수가 챙겨주었군요.

1990년, 기대하고 기대하던 그 선수. "슈퍼 베이비" 박동희선수가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삼성 킬러"로서의 전설.

박동희는 윤학길이 무너져버린 마운드에서 145이닝을 던지며 10승. 팀의 무너진 마운드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7승을 한 김청수가 11승을 올리며 팀의 마운드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반면에 윤학길은 그동안의 무리가 쌓여버렸는지 143.2이닝밖에(?) 못던지며(?) 3승 12패를 기록합니다. 그나마도 2번은 완봉승이었습니다.

한편, "자갈치" 김민호와 "호랑나비" 김응국이 팀의 타선을 이끌어나가며 타선의 세대교체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반면에 주전 3루수 한영준이 멘도사라인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기대했던 유망주이자 전설의 사구왕 공필성이 2할 3푼대의 빈약한 타격에 어이없는(?) 수비를 보여주며 기대를 무너뜨리는 활약아닌 활약을 해주었습니다.

롯데는 44승 71패 5무를 기록하며 6위에 머무릅니다.

1991년, "슈퍼 베이비" 박동희는 부산팬들의 기대에는 약간 못미치지만(?) 189.2이닝을 던지며 2점대 자책점으로 대활약, 14승을 올리며 마운드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이제는 터줏대감이라고 불려도 될 윤학길이 작년의 추락을 딛고 또다시 200이닝 이상 던지며 17승을 올리며 부활합니다. 그리고 신인 김태형이 11승, 김청수가 10승으로 마운드가 준수해진 롯데.

일단, 윤학길과 박동희를 살펴보겠습니다.

1991 윤학길 : 34등판, 26선발, 11완투, 205이닝, ERA : 3.25, 17승(15선발승, 2구원승) 12패, 99K
1991 박동희 : 30등판, 22선발, 10완투, 189.2이닝, ERA : 2.47, 14승(13선발승, 1구원승) 9패 3세이브, 152K

윤학길과 박동희의 원투펀치가 빛나며 롯데는 오랜만에 암흑기를 벗어났습니다.

타선에서도 장효조가 다시금 0.347이라는 고타율로 재기에 성공했으며 김민호가 3할에 20홈런을 기록하는 리그 정상급 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리고 김응국이 3할을 기록하며 미래의 롯데의 타선의 빛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악바리", "탱크"로 불리며 롯데의 혼으로 자리매김할 박정태가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전준호.

일단, 장효조, 김민호, 김응국, 박정태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1991 장효조 : 122경기 출장, 타율 0.347, 424타석 346타수, 120안타, 4홈런, 54타점, 56득점
1991 박정태 : 122경기 출장, 타율 0.285, 528타석 463타수, 132안타 14홈런, 74타점, 69득점
1991 김민호 : 111경기 출장, 타율 0.303, 419타석 363타수, 110안타, 20홈런, 68타점, 66득점
1991 김응국 : 121경기 출장, 타율 0.300, 504타석 436타수, 131안타, 9홈런, 51타점, 77득점, 25도루

전력의 안정화가 이루어진 롯데는 61승 62패 3무로 4위에 올라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상대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던 삼성라이온즈.

1차전 : 김시진을 구원등판한 박동희가 무너지며 3 : 8로 패배합니다.

2차전 : 윤학길이 9이닝동안 2실점으로 버텨내며 10 : 2로 승리합니다.

3차전 : 희대의 투수전. 롯데의 선발투수 김태형을 구원등판한 박동희가 긴장했는지 보크를 범하며 2 : 1로 앞서나가는 삼성. 하지만, 롯데의 조성옥이 "부시맨" 김성길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때려냅니다. 그리고 시작된 전설.

박동희는 15회가 끝날때까지 15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초반의 실수를 제대로 만회했으며, 삼성의 김성길 역시 롯데의 타선을 조성옥의 홈런 이후로는 롯데의 타선을 잘 틀어막습니다.

결국, 3 : 3 무승부가 선언됩니다.

이 1991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다음해에 있을 한국시리즈 박동희 신화의 출발점이 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4차전 : 윤학길을 상대로 삼성으로 옮겨간 김용철이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내며 롯데는 그만 준플레이오프의 문턱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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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15 20:59
수정 아이콘
부산은 최동원을 낳았고 최동원은 롯데팬들을 낳았다 라는 말이있죠.
정말 최동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롯데자이언츠 팬 문화도 없었을거에요.
국산벌꿀
09/08/15 21:06
수정 아이콘
최동원님과 고독한황태자 군요. ㅠㅠ
Zakk Wylde
09/08/15 21:16
수정 아이콘
저 당시 투수들을 보면 요즘 투수들은 과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되는군요.
제가 어렸을때 선동렬과 최동원이 붙는다고 하면 길거리에 차가 없을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항상 맥주와 제 과자를 사들고 일찍 들어오셨던게 생각 나네요.
저 시절 야구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 방어율이 0점대가 나오는지..
09/08/15 21:19
수정 아이콘
'고독한 황태자'라는 닉네임이 너무도 잘 맞는 것 같아요. 100완투... 롯데 투수혹사의 계보를 잇는..
ChojjAReacH
09/08/15 21:27
수정 아이콘
아... 고독한 황태자 등장하네요. 그리고 고 박동희 선수까지.. 정말 고독한 에이스들입니다..
퀘이샤
09/08/15 22:33
수정 아이콘
최동원, 윤학길, 박동희... 생각만해도 참,,,
86년 20승 달성을 실패했을 때, 3루수 실책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3년연속 20승이었다면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한국시리즈 4승에 버금가는,,,)
투수대비 타자 쪽에서는 역시,,, 롯데(라고 쓰고 거인이라고 읽습니다)가 전통적으로 좀 약했었나 봅니다.
몽키.D.루피
09/08/15 23:43
수정 아이콘
선감독의 86년 방어율 0.99...후덜덜
Hobchins
09/08/16 01:03
수정 아이콘
여기서는 그렇게 길게 언급이 되지 못했지만
롯데팬으로서 1991년 준PO 3차전은 제 인생 최고의 경기 중 하나입니다.
류중일의 미친듯한 활약, 공필성의 실책에 이은 신경식의 적시타
조성옥의 극적인 홈런, 박동희 생애 최고의 투구...
권보아
09/08/16 02:03
수정 아이콘
아.. 윤학길 ㅠㅠ

가슴이 아련해 지는군요..

그이름 윤학길.. '고독한 황태자', ' 학다리 ' 윤학길 ㅠㅠ
09/08/16 04:07
수정 아이콘
음...윤학길 선수의 평균투구수나..그런걸 알수 없을까요?
제 기억의 윤학길 선수는..1~2회에 난타..당하지만 어떻게 꾸역꾸역 막으면서..그 뒤로는 설렁설렁 던지다보면은 어느새 완투-_-;였거든요;;
09/08/16 05:15
수정 아이콘
Ikaruga님// 네 맞아요;
윤학길 선수는 경기 결과만 들어도 대충 답이 나왔었죠 ㅡ_ㅡ;
보통 실점이 1,2회에 다 일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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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12 [일반] [방산] 인도네시아는 KF-21사업에 분담금 3분의1만 지급할 예정 [28] 어강됴리5333 24/05/06 53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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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05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11) 시흥의 막내딸, 금천 [6] 계층방정2793 24/05/05 279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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