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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2/24 13:26:12
Name 페가수스
Subject [일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스토리 - 11. 거침없는 승부사 최동원
최동원이라는 투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불같은 직구를 보유한 투수? 한국시리즈 4승 투수? 처음으로 삼진 1000개를 기록한 투수? 아마야구 극강의 괴물? 고독한 승부사? 롯데의 혼?

최동원이라는 존재를 이런 단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1980년대 선수들처럼 선동렬, 김성한, 이만수, 김시진등 몇몇경우를 제외하면 최동원이 남긴 기록도 예상외로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프로야구선수들을 모아서 드림팀을 짠다면 언제나 1선발을 차지할 선수.

그러한 선수가 바로 최동원입니다.

특유의 직선적인 성격으로 인해 프로무대에서 활약한 시즌은 고작 8시즌밖에 되지 않지만 그리고 엄청난 혹사로 인해 다 닳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준 선수.

최동원의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살펴보겠습니다.

고교시절의 최동원? 그것은 바로 진정한 사기유닛.

시속 150km이라는 말도 안되는 강속구와 2층에서 떨어뜨리는 것 같이 낙차가 큰데다가 웬만한 강속구 못지않게 빠른 커브를 보유한 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시절 vs 경북고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다음날 벌어진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등판하여 또다시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3학년이되었고 청룡기에서는 김성한이 이끄는 군산상고와의 경기에서 선발로나서 9이닝동안 20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말도안되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1958년 5월 24일에 태어난 최동원은 1977년에 경남고를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외진출에 관한 연락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일본야구 400승의 대투수 가네다 마사이치. 그당시 롯데 오리온즈의 감독이었던 가네다 마사이치는 최동원의 투구를 보고 최동원을 자신의 양자로 들이려고 했으나 일본에 관한 국민정서, 그리고 최동원의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인해 최동원은 일본으로 가는 대신 연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연세대에서도 최동원은 대학무대를 평정하는 활약을 보입니다.

그러나 연세대 3학년이던 1979년. 최동원은 단체기합을 이기지 못해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적 동의서를 끊어달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 이유로 3월 21일, 대통령기 대회에서 준결승 상대인 동국대에게 연세대가 패배하자 연세대 4학년 선수들이 하급생들에게 체벌을 가했고 특히, 나이는 2살많았으나 최동원과 같은 학년이던 박철순이 최동원에게 체벌을 가하게 됩니다.

최동원은 이러한 행위를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였고 최동원의 집안과 연세대측이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66일만에 최동원이 숙소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은 한동안 구타찬반론등을 일으키며 엄청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한 최동원은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거기에 아버지를 채용하겠다는 조건에 응해 실업팀 롯데에 입단하게 됩니다.

실업야구에서도 최동원은 괴물이었고 최동원 신화는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1981년, 롯데와 육군 경리단이 코리안시리즈를 가지게 됩니다. 육군 경리단은 김시진과 장효조라는 공수의 핵을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장효조는 김성한과 함께 프로무대에서 최동원의 천적으로 불리게 됩니다.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벌어지는 살벌한 경기일정.

최동원과 김시진이 대결했던 첫경기에서 최동원은 패배합니다. 2차전, 3차전에서도 구원등판했지만 최동원은 썩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만 4차전부터 모든 상황은 뒤바뀌게 됩니다.

매일매일 연투했음에도 - 하루는 우천으로 쉬었지만 - 또다시 최동원은 선발로 나서 김시진과 격돌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쳐버린 최동원은 또다시 3실점을 하며 무너져버렸고(?) 이대로 가다가는 롯데의 패배로 끝이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7회에 롯데는 김시진과 권영호를 연속으로 무너뜨리며 역전에 성공했고 잠시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던 최동원은 또다시 8회에 구원등판해 팀의 승리와 세이브를 모두 차지하는 진기록을 보유하게 됩니다.

게다가 6차전에서도 완투승을 하며 일주일동안 쉬지않고 계속해서 등판을 한 최동원은 상상외의 내구력과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산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982년, 서울에서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가 열렸고 최동원은 당연히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최동원은 부상을 당하며 제대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국팀의 우승과 함께 병역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시간이 뒤로 흘러가버렸지만 잠시 앞으로 시간을 당겨보겠습니다.

1981년, 캐나다에서 열린 대륙간 컵 대회에서 최동원은 당연히 선발로 등판했고 캐나다를 상대로 8.2이닝동안 호투하며 대회의 최우수 선수로 뽑히게 됩니다.

그리고 최동원의 투구에 감탄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영입제안이 있었고 그 중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자신의 팀에 입단만 하면 병역문제는 자신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은 4년간 61만달러라는 계약에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연봉은 그당시 메이저리거중 최하위 연봉에 속했고 그 사실을 알게된 최동원의 아버지는 계약무효를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자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계약위반으로 1982년에 서울에서 열리게 될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 최동원의 참가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주장했지만 세계 아마야구 연맹에서 토론토측의 주장을 무효화하여 최동원은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됩니다.

한국의 우승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최동원의 입단을 제의하지만 이미 최동원은 국내 프로야구 진출을 계획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1983년, 에이스, 그중에서도 최고의 에이스라고 불리던 최동원이 고향팀 롯데자이언츠에 1차지명되었고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미 아마무대에서 너무나도 혹사당한 최동원은 예상외로 부진(?)하게 됩니다.

1983 최동원 : 38등판, 21선발, 208.2이닝, ERA : 2.89, WHIP : 1.21, 9승(8선발승, 1구원승) 16패 4세이브, 피안타율 0.257, 피출루율 0.309, 148삼진

200이닝을 던지며 2점대 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승보다는 패를 더 많이 기록했고 16번이나 완투를 했지만 이 해에는 무려 427.1이닝을 던지며 36번이나 완투를 하며 30승을 올린 삼미의 장명부가 있었고 최동원은 매일매일 연투를 하던 아마야구시절에 비해 "예전의 최동원이 아니다" 라는 평을 듣게 됩니다. - 최동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 -

그러나 1984년, 최동원은 최고의 에이스로 귀환을 하게 됩니다.

자신과 맞대결을 했던 강호 임호균이 삼미슈퍼스타즈에서 롯데자이언츠로 오게되었고 임호균이라는 파트너를 얻게 된 최동원의 부담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비록 전반기에는 9승에 그쳤지만 후반기에 18승을 몰아치며 최동원은 확실히 최고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해에 최동원은 223개의 삼진을 잡아내게 되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1984 최동원 : 51등판, 20선발, 14완투, 1완봉, 284.2이닝, ERA : 2.40, WHIP : 1.04, 27승(9선발승, 18구원승) 13패 6세이브, 승률 0.675, 피안타율 0.224, 피출루율 0.280, 223삼진

최다 등판 2위, 최다 선발 10위, 최다 완투 2위, 최다 완봉 8위, 최다 이닝 1위, 평균 자책점 4위, WHIP 2위, 다승 1위, 최다 선발승 7위, 최다 구원승 1위, 다패 3위, 세이브 5위, 피안타율 4위, 피출루율 2위, 탈삼진 1위

이 외에도 최동원의 뒷이야기가 있다면 최동원은 후기리그 8월 16일, vs MBC전에서 대타로 출장하게 됩니다. 그러자 강병철 감독은 1사 만루이던 상황에서 병살을 막기 위해 최동원에게 번트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최동원은 번트대신 강공을 택했고 그 결과는 2타점 2루타가 됩니다.

전기리그에서 롯데는 4위에 머무르지만 후기리그에서는 최동원을 앞세워 내달렸고 게다가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상대로 껄끄러운 OB대신 그들이 보기에는 최동원만 빼면 해볼만한 롯데를 택하면서 롯데는 후기리그 우승, 삼성라이온즈와 격돌하게 됩니다.

삼성라이온즈 김영덕 감독은 "롯데면 할만하다" 라고 도발을 했고 그러자 롯데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은 "그렇다면 우리는 1, 3, 5, 7차전에 모두 최동원을 선발로 등판시켜 4승을 하겠다." 라고 응수합니다.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이러한 지시에는 당황, 강병철 감독에게 무리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에게 "우야노 동원아, 예까지 왔는데" 라고 대답했고 최동원은 잠시 생각했다가 알겠다고 대답하며 1, 3, 5, 7차전에 모두 선발로 등판하는 모험을 강행하게 됩니다.

이 당시 최동원은 "삼성은 정말로 강했다. 아무리 나라도 10판해서 1판이길정도?" 라고 삼성을 상대로 조금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

1차전 선발로 나선 최동원은 김시진과 맞대결을 펼쳤고 그 결과는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첫 완봉승.

3차전 선발로 또다시 등판한 최동원은 9회까지 1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완투승을 합니다.

5차전, 재일교포 좌완투수 김일융과 맞대결하게 된 최동원. 그러나 2 : 3으로 완투패하게 됩니다.

2 : 3으로 몰린 롯데. 게다가 믿는 기둥 최동원이 무너져버린 상황. 그러나 6차전에서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6차전, 임호균의 호투와 롯데타선의 폭발로 3 : 1로 앞선 롯데. 4회말, 최동원은 3번이나 완투한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올랐고 롯데의 리드를 지켜내며 스코어를 동률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7차전, 5차전에 이어 또다시 김일융과 맞대결하게 된 최동원. 그러나 이미 4번이나 등판했고 던진 이닝이 만만치 않았던 최동원은 2회말에 내리 3점을 잃었고 3회초에 롯데가 1점을 얻어내지만 또다시 6회말에서 오대석에게 솔로 홈런을 맞아버립니다.

그러나 최동원은 계속해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고 7회초, 유두열의 안타와 한문연의 3루타, 정영기의 안타로 롯데는 2점을 따라붙습니다.

최동원은 힘을 얻었는지 7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8회초, 2번타자 홍문종이 아웃된 후, 3번 김용희와 4번 김용철이 연속안타를 치며 1, 3루를 만들어냈습니다.

기록원의 배팅오더 미스로 6번대신 5번에 등재된 유두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20타수 2안타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전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기세가 올라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유두열은 힘이빠진 김일융을 상대로 장쾌한 3점 홈런을 때려내는데 성공합니다.

최동원은 8회말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9회말, 삼성의 마지막 타자 장태수를 상대로 자신의 전매특허인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져 삼진을 잡아냅니다.

6 : 4 롯데의 승리. 최종 스코어 4 : 3으로 롯데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

비록, 강병철 감독의 주장대로 1, 3, 5, 7차전에 선발로 나서 모두 선발승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최동원은 5경기에 등판, 4경기에 선발로 나섰고 40이닝(!)을 던지며 ERA : 1.80, WHIP : 1.08, 4승 1패, 35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최동원은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데다가 유두열이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내는 바람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데는 실패합니다.

한국시리즈 MVP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됩니다.

뒷이야기 하나.

롯데의 우승후, 롯데의 선수들은 한국시리즈 우승 파티를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동원은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의 피로도가 몰리는 바람에 쌍코피를 흘리게 됩니다.

아무리 최동원이 무쇠팔이라도 솔직히 너무나도 굴려졌습니다.

1985년, 최동원은 이 해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활약합니다.

1985 최동원 : 42등판, 17선발, 14완투, 4완봉, 225이닝, ERA : 1.92, WHIP : 0.94, 20승(12선발승, 8구원승) 9패 8세이브, 승률 0.690, 피안타율 0.214, 피출루율 0.257, 161삼진

최다 등판 5위, 최다 선발 14위, 최다 완투 1위, 최다 완봉 1위, 최다 이닝 4위, 평균 자책점 2위, WHIP 2위, 다승 3위, 최다 선발승 4위, 최다 구원승 2위, 다패 9위, 세이브 3위, 피안타율 3위, 피출루율 2위, 탈삼진 2위

1986년, 최동원은 더 낮아진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이 터지지않는 바람에 많은 패를 떠안게 됩니다.

가장 불운한 시즌을 보낸 에이스를 꼽자면 언제나 순위권에 오르게 될 1986년의 최동원.

1986 최동원 : 39등판, 21선발, 17완투, 4완봉, 267이닝, ERA : 1.55, WHIP : 0.97, 19승(10선발승, 9구원승) 14패 2세이브, 승률 0.576, 피안타율 0.215, 피출루율 0.262, 208삼진

최다 등판 6위, 최다 선발 8위, 최다 완투 3위, 최다 완봉 3위, 최다 이닝 1위, 평균 자책점 2위, WHIP 2위, 다승 2위, 최다 선발승 9위, 최다 구원승 1위, 다패 3위, 세이브 18위, 피안타율 6위, 피출루율 2위, 탈삼진 2위

지금까지 최동원의 성적을 보면 선발로 등판할 경우 거의 8, 90%로 완투를 하며 구원등판해도 이것은 공 몇개 던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5이닝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뭐......

이 해에 최동원은 자신과 한국 최고의 에이스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될 선동렬과 2번 맞대결을 하게 됩니다.

4월 19일, 사직구장에서 둘은 처음으로 맞대결을 벌였고 그 결과는 최동원이 3회초에 송일섭에게 솔로 홈런을 맞는 바람에 0 : 1로 최동원의 패배로 기록됩니다. - 최동원의 12연승이 저지되었습니다. -

8월 19일, 정확히 4개월 후에 사직구장에서 또다시 맞부딪힌 두명의 에이스는 또다시 완투대결을 벌였고 이번에는 2 : 0으로 최동원의 완봉승이었습니다. - 그나마 2실점도 비자책이었으니....... -

참고로 선동렬과의 맞대결에서 최동원이 완봉승을 하면서 최동원은 최초로 10번의 완봉승을 기록한 투수가 됩니다. 그나저나 저 두명의 에이스들은 정체가 무엇일까요?

1986시즌의 최동원이 패한 경기에서의 평균 자책점은 불과 2.52.........

단일시즌 평균 자책점 8위, 탈삼진 7위, 투구이닝 4위에 빛나는 1986년의 최동원이었으나 7번의 완투패, 그나마 그중에서 2번은 10이닝 완투패. 4번은 타선이 0점으로 침묵, 구원등판해서 9.1이닝 던지고도 무승부가 된 적도 있었으니......

자책점 0을 기록해도 비자책점으로 패배가 기록되기 일쑤. 게다가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vs OB전에는 김형석에게 동점 2점 홈런을 얻어맞고 신경식에게 3루타, 그리고 실책까지 터지며 역전패.

3년 연속 20승이라는 도전도 실패로 끝나버립니다. - 나중에 선동렬이 비슷한 패턴으로 3년 연속 20승에 실패합니다. -

1987년, 3년간 66승을 기록한 최동원. 그동안의 무리가 쌓였는지 최동원은 주춤합니다.

1987 최동원 : 32등판, 22선발, 224이닝, ERA : 2.81, WHIP : 1.25, 14승(10선발승, 4구원승) 12패 2세이브, 피안타율 0.262, 피출루율 0.317, 163삼진

이 해에도 14번이나 완투를 했고 5년 연속 200이닝 투구라는 현기증나는 기록을 달성합니다.

4년 연속 200이닝 투구와 두자릿수 승수. 나중에 현대유니콘스의 정민태가 5년 연속 200이닝 투구와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하지만 그 당시의 현대유니콘스는 2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강팀이었고 최동원이 뛰었던 당시의 롯데는......

1987년 5월 16일, 사직구장에서 운명의 라이벌 최동원과 선동렬이 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결과는 2 : 2 무승부.

1988년, 롯데의 구단직원이 최동원의 부친을 욕하는 말이 들렸고 아버지를 지극하게 생각했던 최동원은 구단직원의 사과를 요구하며 전반기에 등판하지 않았습니다.

구단직원의 부인과 최동원의 사과요구가 계속되었고 후반기에 가서야 간신히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며 최동원은 후반기에는 마운드에 오르게 됩니다.

1988 최동원 : 16등판, 4선발, 83.1이닝, ERA : 2.05, WHIP : 1.21, 7승(2선발승, 5구원승) 3패 3세이브, 피안타율 0.244, 피출루율 0.298, 83삼진

1988시즌이 끝나고 최동원은 선수협의회를 결성하려 합니다. 그 계기는 바로 해태타이거즈의 투수 김대현의 사망. 다행히 동승자였던 이순철은 큰 부상이 없었지만 최동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의 복지를 상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무명의 선수들이나 생계가 어려운 선수들을 돕기위한 최소한의 복지상향을 위해 선수협을 결성하게 됩니다.

항간에는 최동원이 자신의 명예욕을 과시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벌인다고 했지만 그 당시 최동원의 연봉은 1억, 그 당시에 그 돈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정도로 많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최동원의 선수협 결성 시도는 구단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좌절되었고 연봉협상으로 인한 난항, 선수협 결성등 구단내에서 골칫거리로 찍혀버린 최동원은 삼성의 김시진과 옷을 바꿔입게 됩니다.

1989년,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최동원. 그러나 트레이드사실 발표후 잠적, 결혼과 훈련부족으로 인해 불어난 체중등으로 150km대에 달했던 라이징 패스트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직구의 구속이 120 ~ 130대까지 떨어지는등,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사실, 최동원은 불같은 구위를 소유했지만 한편으로는 정확한 제구력을 소유한 투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공의 속도가 줄어들었어도 기교파 투수로 변신해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최동원은 그러한 선택을 거부했습니다. - 그나마도 이때에는 제구력도 많이 흔들리며 볼넷도 많이 허용한 상황 -

1989 최동원 : 8등판, 4선발, 30이닝, ERA : 2.10, WHIP : 1.80, 1승(1선발승) 2패, 피안타율 0.313, 피출루율 0.410, 9삼진

이 해에 삼성은 믿었던 최동원대신 재일교포 김성길과 신인 류명선의 활약을 바탕으로 4위에 올랐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돌핀스와 부딪히게 됩니다.

태평양의 영웅 박정현의 활약과 주포 김동기, 이적생 김일권에게 밀리며 1 : 2로 패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최동원은 1차전과 3차전에서 선발투수로 출장했지만 단, 6.2이닝을 던지는데 그쳤고 평균 자책점은 4.26, WHIP : 1.74, 그리고 3차전에서 이광길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습니다.

1990년, 다시 한번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모든 힘이 다해버린듯 최동원은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1000개의 삼진을 기록했고 김시진에 이어 2번째로 100번의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1990 최동원 : 22등판, 15선발, 92이닝, ERA : 5.28, WHIP : 1.82, 6승(4선발승, 2구원승) 5패 1세이브, 피안타율 0.317, 피출루율 0.402, 24삼진

삼성라이온즈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모두 휩쓸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LG트윈스에게 0 : 4로 패배하며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문턱에서 좌절하고 맙니다.

최동원은 1번 구원등판해 2이닝을 던지고 1자책점, ERA : 4.50, WHIP : 2.50, 1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해를 끝으로 최동원은 33이라는 젊은 나이에 프로무대를 떠나게 됩니다.

그 후, 최동원은 프로야구무대의 지도자로 활동하려 했지만 이미 사고뭉치로 찍혀버린 그를 받아주는 구단은 아무도 없었고 TV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야구선수가 왜 오락프로그램에 나오느냐" 라는 반응만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동원은 다시 야구장에 돌아왔고 2001년, 한화이글스의 투수코치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번의 시행착오 후, 코치직에서 물러났으나 2005년에 다시 한화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됩니다.

2006년, 신인으로서 처음으로 투수부문 트리플크라운을 수상한 류현진이라는 괴물투수를 길러냈고 2007년에는 한화의 2군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 그러나 2008년에는 병때문에 제대로 2군을 지도하지 못합니다. -

현재는 KBO 경기감독위원으로 활약하는 최동원.

2009년 7월 4일, 사직구장. 롯데와 SK가 경기를 벌이기 전. 마운드에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옛 롯데자이언츠의 푸른 유니폼, 그리고 등번호 11번을 달고 나타난 사람.

드디어 최동원이 21년만에 롯데의 유니폼을 입고 사직에 돌아온 것입니다.

최동원의 짧고 굵었던 선수생활, 그가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산 248등판, 124선발, 1414.2이닝(24위), 80완투(2위), 15완봉(10위), 478실점, 387자책점, ERA : 2.46(2위), WHIP : 1.15(7위), 103승(17위), 56선발승, 47구원승(8위), 74패(26위), 26세이브, 승률 0.582, 피안타율 0.241(27위), 피출루율 0.297(5위), 1019삼진(20위), 372피볼넷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포스트시즌

8등판, 6선발, 48.1이닝, 13실점, 12자책점, ERA : 2.23, WHIP : 1.22, 4승 1패, 40삼진, 17피볼넷

올스타전

4등판, 2선발, 11이닝, 3실점, 3자책점, ERA : 2.45, WHIP : 0.91, 0승 1패, 5삼진, 0피볼넷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활동했고 동시대의 투수인 선동렬이 속했던 해태타이거즈나 김시진이 속했던 삼성라이온즈에 비해 소속팀 롯데자이언츠가 약했기때문에 누적기록에서는 많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최동원.

하지만 최동원이라는 투수는 아직까지도 국내 최고의 선발투수가 누군가라는 논쟁에서 유일하게 선동렬과 맞상대를 할 수 있는 투수이며 그들이 실제로 맞붙었던 경기에서도 1승 1무 1패를 기록했을 정도로 그 둘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아마시절에 당했던 엄청난 혹사, 강팀이라고는 할 수 없는 팀. 그 속에서도 최동원은 굴하지 않았고 승부를 즐겼습니다.

홈런을 얻어맞더라도 주저앉거나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웃으며 다음타자와의 승부를 기다렸던 격렬한 승부사 최동원.

만약, 한국 프로야구에 등장했던 모든 선수들을 뽑아 드림팀을 구성한다면 최동원은 에이스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혹 그가 전날의 중요한 승부에서 완투를 했더라도 다음날 다시 한번 선발로 등판, 완봉을 할것이라는 변치않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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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
09/12/24 13:40
수정 아이콘
완투 기록을 찾아봤는데.. 지금 봐도 윤학길의 100완투는 정말...
C.P.company
09/12/24 13:40
수정 아이콘
불꽃남자
09/12/24 13:40
수정 아이콘
남자의 야구네요.
유니콘스
09/12/24 13:44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 평균을 내보자면 윤학길은 약 8.4회, 최동원은 10회입니다.
정Marlowe
09/12/24 13:51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이 외에도 최동원의 뒷이야기가 있다면 최동원은 후기리그 8월 16일, vs MBC전에서 대타로 출장하게 됩니다. 그러자 강병철 감독은 1사 만루이던 상황에서 병살을 막기 위해 최동원에게 번트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최동원은 번트대신 강공을 택했고 그 결과는 2타점 2루타가 됩니다.

이것은 그 시합의 결승타였죠. 최동원 선수의 유일한 타자기록이며, 이 덕분에 그는 타율 10할, 출루율 10할의 타자가 됩니다.
장타율도 10할인 셈이니 그러면 OPS가....아아...
Ms. Anscombe
09/12/24 13:51
수정 아이콘
유니콘스님// 네.. 연간 완투 횟수죠.. 아마 더 중요한 건 선발로 등판시의 완투 비율일텐데.. 윤학길이 43.3%, 최동원이 64.5%, 선동렬이 62.4%네요.. MLB에선 그나마 현대 야구에 속하는 워렌 스판이 57.4%니.. 저 분들도 대단한 거죠..
유니콘스
09/12/24 13:51
수정 아이콘
정Marlowe님// 장타율은 20할, 그래서 OPS는 30할입니다.
정Marlowe
09/12/24 13:52
수정 아이콘
유니콘스님//
아 그렇군요. 제 리플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룡선생
09/12/24 13:55
수정 아이콘
최동원의 희생 84년
염종석의 희생 92년...
롯데야 희생없이 우승한번 하자!! ㅜㅜ
달덩이
09/12/24 14:01
수정 아이콘
읽고 싶은데, 꼭 이런 날 안경이 없어서 힘드네요

집에가서 차근차근히 봐야 겠습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2010년에도 좋은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성야무인Ver 0.00
09/12/24 14:0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선수시절의 최동원씨는 요즘 말하는 야구 엔터테인너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실력외에도 야구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구요. 사실 송진우 선수를 회장님 회장님 하기는 하지만 선수협이 저때 결성되었다면 회장님이라는 칭호가 어울릴만한 사람이 최동원씨라고 봅니다. 다만 악의는 없겠지만 무툭툭하면서 툭쏘는듯한 말투가 사람을 자극했을지도 모르고 일련의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구단 상충부에선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혀버려 좀더 나은 스텟을 쌓을수 있으해도 불구하고 저정도 성적으로 남아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 그리고 가네다 마사이치 양자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국민정서 때문이 아니라 가네다 마사이치의 발언때문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가네다 마사이치는 재일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입니다만 자신을 조선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발언때문에 그당시에 와장창 까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양자로 들인다는 문제로 반발이 일어난게 아닙니다.
최동원씨 보고 또 한명 생각나는 선수가 하나 있습니다. 롯데의 최동원의 후계자가 될수 있을 포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크지 못했던 박동희 선수가 생각나네요. 지명 1순위로 들어와서 처음 등판할때 생중계로 보여줬는데 구속이 무려 150킬로가 나와서 흐뜨뜨했었습니다.
유니콘스
09/12/24 14:07
수정 아이콘
성야무인Ver 0.0009님// 가네다의 경우에는 그래서 장훈과 비교되면서 많이 까였죠. 그리고 박동희선수는 출현예정입니다.
정Marlowe
09/12/24 14:10
수정 아이콘
성야무인Ver 0.0009님// 얼마전에 누군가의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요미우리 기념관에서 `장훈 선수 유니폼이랑 글러브는 어디 전시되어 있어요?`히는 한국인 관광객은 많아도
가네다는 아무도 안 찾는다고.
Ms. Anscombe
09/12/24 14:14
수정 아이콘
생각나서 가네다 기록을 찾아봤는데.. 정말 다시봐도....
유니콘스
09/12/24 14:19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 통산 944등판, 569선발, 365완투, 82완봉, 5526.2이닝, ERA : 2.34, 400승 298패, 4490K.

MLB에서 왕정치의 홈런기록은 인정하지 않아도 가네다의 다승과 탈삼진기록은 인정하고 있죠.
09/12/24 14:32
수정 아이콘
최참치!
아름다운달
09/12/24 14:37
수정 아이콘
투수하면 생각나는 3단어...아직은 최동원이네요 ^^ 고맙습니다. 그가 던지던 그때로 잠시 여행다녀온 기분이네요.
국산벌꿀
09/12/24 15:12
수정 아이콘
부처님 예수님 최동원님
09/12/24 15:20
수정 아이콘
"부산 싸나이"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 남자에게만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말입니다.
어떤 점에선 아주 까칠한 듯 보이지만 맘이 내키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자신을 활활 태워버리는 진짜 남자의 향기를 제대로 풍기는 사람이죠.
84년 한국 시리즈는 세계 어디에서도 두번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그때 삼성팬이던 친구놈이랑 1만원빵 내기 했었는데 얼마나 통쾌했던지. 크하하!!! 그 당시 일만원빵이면 상당했던 금액인데...

가끔씩 오락프로에 나올 때 재밌었는데 통 안보이더니 코치생활 하고 있군요. 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정이 가는 사람이라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니콘스
09/12/24 15:30
수정 아이콘
국산벌꿀님// 롯데 2회가......

빈 터님// 와우!!!!!! 대단하시네요 1만원빵. 그당시에 짜장면이 몇그릇이었죠??
09/12/24 17:32
수정 아이콘
역시 최동원은 참치가,,, 파워커브 참치
09/12/24 17:40
수정 아이콘
유니콘스님//
짜장면이 1200원 하던 시절. ^^
유두열의 역전 홈런이 터지자 패배의 분노와 생떼같은 일만원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두가지 분노로 좌절하던 친구의 모습이 생생하군요.
하하. 지금 생각해도 즐겁습니다.

그러고 보니 짜장면 값은 참 안오르네요. 저때 짜장면은 1200원 안팎이었고 생맥주는 500cc에 300~500원 사이였는데 지금 생맥주 가격은 후덜덜... 당구장비도 10분에 100원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ㅠ.ㅠ
FuroLeague
09/12/24 17:46
수정 아이콘
올해 사직에서 시구하는 장면을 보고 정말 울음이 나더군요. 롯데가 정신차려서 부산 야구의 대명사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wish burn
09/12/24 18:48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의견으론 선동열선수가 최동원선수보다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최동원선수가 좀더 일찍 프로에서 뛰었다면,
조계현,이강철,이상윤선수등 선동열을 든든하게 호위했던 에이스급 투수들이 최동원선수 주변에 있었더라면,
결과가 바뀔 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카리스마론 최동원선수를 뽑고 싶습니다.
데이터만으로 말해버리긴 힘든 투수죠..
_ωφη_
09/12/25 15:23
수정 아이콘
내용중에 장명부선수427.1 이닝 말이안나오네요...
팀수도 그렇고 경기수도 훨씬 적은데 저 이닝이라니....
정말 예전야구는 투수가너무 혹사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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