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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2/15 14:55:28
Name 페가수스
Subject [일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스토리 - 8. 해결사 한대화
야구에 클러치히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타점을 올려주는 타자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클러치히터로는 누가 있을까요?

많은 이름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은 이 선수를 떠올릴 것입니다.

해태타이거즈의 왕조시대를 이끈 3루수 한대화. 비록 통산 기록에서는 이만수,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 김동주등의 타자들에게 밀리지만 그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해결사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남게 하는 선수.

야구장에서 한대화라는 이름이 불리면 홈팀이건 원정팀이건 모두 분위기가 숙연해졌고 그의 방망이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홈런과 안타가 꼭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며 한대화를 응원하는 관중들에게는 환호를 상대팀의 관중석에는 침묵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해결사 한대화를 조금이나마 살펴보려 합니다.

한대화. 1982년 서울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마지막 경기였던 vs 일본전 8회말 결승 3점 홈런을 때려내며 그의 이름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7월 8일 생으로 대전고, 동국대를 졸업했고 연고팀 OB베어즈에 1차지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프로무대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1983 한대화 : 88경기 출장, 타율 0.272, 출루율 0.310, 장타율 0.406, 344타석 313타수, 85안타, 5홈런, 44타점, 4도루
1984 한대화 : 74경기 출장, 타율 0.238, 출루율 0.339, 장타율 0.307, 222타석 189타수, 44안타, 1홈런, 16타점, 5도루
1985 한대화 : 38경기 출장, 타율 0.222, 출루율 0.241, 장타율 0.358, 54타석 53타수, 12안타, 2홈런, 7타점

나날이 출장시간은 줄어들고 급기야는 대타로나마 간신히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만성 간염을 앓고 있어 체력이 부족했던 한대화는 그 당시 OB베어즈의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의 훈련량을 도저히 소화해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훈련량을 소화해낼 수 없으니 감독의 신임을 받기는 힘들었고 결국 한대화는 1985년 시즌이 끝나고 해태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됩니다.

그러나 해태의 감독은 김응룡. 그리고 해태의 분위기는 엄했고 한대화는 연고팀인 빙그레이글스가 아니면 이적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렇지만 신생팀 빙그레가 한대화 대신 줄 선수는 없었고 한대화는 허무하게 선수생활을 접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동국대 시절에 한대화를 지도했던 김인식 감독이 해태타이거즈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한대화를 설득했고 한대화는 김인식 코치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해태행을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인식 코치와 김응룡 감독의 배려로 한대화는 단체훈련에 참가하는 대신 따로 자율훈련을하게 되었고 한대화는 산속에 들어가 손이 얼어터져 피가날정도로 훈련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갔습니다.

1986년, 한대화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습니다.

1986 한대화 : 103경기 출장, 타율 0.298, 출루율 0.372, 장타율 0.503, OPS : 0.875, 394타석 342타수, 102안타, 2루타 24개, 3루타 2개, 14홈런, 66타점, 50득점, 40볼넷, 몸에 맞는 공 2개, 고의사구 1개, 8도루

타율 5위, 출루율 5위, 장타율 2위, OPS 3위, 최다 타석 18위, 최다 타수 20위, 최다 안타 12위, 최다 2루타 2위, 최다 3루타 22위, 홈런 5위, 타점 2위, 득점 10위, 볼넷 9위, 고의사구 22위, 도루 23위

그리고 처음으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합니다.

해태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삼성라이온즈를 4 : 1로 꺾으며 2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손에 쥡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0.000, 출루율 0.182, 장타율 0.000, 2득점으로 부진했습니다.

1987년, 체력이 떨어졌는지 한대화의 타율은 순식간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방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 연속해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합니다.

1987 한대화 : 94경기 출장, 타율 0.236, 출루율 0.347, 장타율 0.419, 358타석 301타수, 71안타, 13홈런, 36타점, 5도루

해태타이거즈는 후기리그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OB베어즈와 혈투끝에 3 : 2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550, 출루율 0.591, 장타율 0.900, OPS : 1.491, 11안타, 1홈런, 7타점, 4득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타이거즈는 삼성라이온즈를 4 : 0으로 꺾으며 3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손에 쥡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351, 출루율 0.471, 장타율 0.571, OPS : 1.042, 5안타, 1홈런, 2타점, 5득점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1차전 1회초에 김시진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1988년, 한대화는 타율을 3할대로 끌어올리며 정확성과 장타력을 동시에 갖춘 타자로 군림했고 올스타전에서도 MVP로 선정되는 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3번째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합니다.

1988 한대화 : 101경기 출장, 타율 0.320, 출루율 0.403, 장타율 0.528, OPS : 0.932, 415타석 356타수, 114안타, 2루타 18개, 3루타 1개, 18홈런, 57타점, 51득점, 46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고의사구 1개, 6도루

타율 7위, 출루율 7위, 장타율 3위, OPS 4위, 최다 타석 8위, 최다 타수 9위, 최다 안타 5위, 최다 2루타 8위, 홈런 3위, 타점 6위, 득점 11위, 볼넷 6위, 몸에 맞는 공 11위, 고의사구 25위

해태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새로운 도전자 빙그레이글스를 4 : 2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143, 출루율 0.208, 장타율 0.143으로 부진했지만 3개의 안타로 3타점을 만들어내는등 결정적인 순간에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1989년, 타율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한대화는 리그 정상급 타자로 군림했고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또다시 차지합니다.

1989 한대화 : 106경기 출장, 타율 0.279, 출루율 0.409, 장타율 0.439, OPS : 0.847, 443타석 358타수, 100안타, 2루타 14개, 3루타 2개, 13홈런, 63타점, 52득점, 81볼넷, 몸에 맞는 공 0개, 고의사구 5개, 15도루

타율 20위, 출루율 1위, 장타율 7위, OPS 5위, 최다 타석 8위, 최다 타수 16위, 최다 안타 18위, 최다 2루타 29위, 최다 3루타 24위, 홈런 5위, 타점 6위, 득점 16위, 볼넷 2위, 고의사구 7위, 도루 17위

해태타이거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돌풍의 팀 태평양돌핀스를 3 : 0으로 물리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600, 출루율 0.667, 장타율 0.700, OPS : 1.367, 6안타, 2득점이라는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1차전 선발투수 선동렬이 무너지며 위기를 맞지만 2차전에서 빙그레의 유격수 장종훈의 에러를 틈타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결국 1패뒤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이루어냅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86, 출루율 0.389, 장타율 0.500, OPS 0.889, 4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4회말에 솔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1990년, 한대화는 LG의 노찬엽, 빙그레의 이강돈과 함께 사상 초유의 수위타자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LG의 노찬엽이 타율 0.3333으로 시즌을 마치며 타율 1위에 올랐으나 곧바로 빙그레의 이강돈이 마지막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타율 0.33486을 기록, 1위에 오른 상황.

그러나 한대화도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태평양과의 경기에서 안타를 몰아치며 타율 0.33493을 기록, 사상 초유의 모와 사단위까지 가는 수위타자경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습니다.

홈런역시 16개를 때려내며 정확성과 파괴력을 동시에 보유했음을 과시했고 또다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합니다.

1990 한대화 : 119경기 출장, 타율 0.335, 출루율 0.432, 장타율 0.505, OPS : 0.937, 500타석 418타수, 140안타, 2루타 20개, 3루타 3개, 15홈런, 86타점, 73득점, 76볼넷, 고의사구 7개, 10도루

타율 1위, 출루율 1위, 장타율 5위, OPS 2위, 최다 타석 2위, 최다 타수 5위, 최다 안타 2위, 최다 2루타 7위, 최다 3루타 14위, 홈런 5위, 타점 2위, 득점 2위, 볼넷 1위, 고의사구 2위

해태타이거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삼성라이온즈에게 0 : 3으로 패배하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73, 출루율 0.467, 장타율 0.546, OPS : 1.012, 3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 1도루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그 경기에서 팀이 거둔 유일한 득점을 기록합니다.

1991년, 2년 연속해서 3할을 기록했고 홈런도 20여개를 때려낸 한대화는 6번째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삼성의 이만수가 보유했던 5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기록을 넘어섭니다.

1991 한대화 : 92경기 출장, 타율 0.301, 출루율 0.392, 장타율 0.565, OPS : 0.957, 398타석 336타수, 101안타, 2루타 17개, 3루타 3개, 22홈런, 73타점, 62득점, 53볼넷, 몸에 맞는 공 2개, 고의사구 3개, 8도루

타율 11위, 출루율 7위, 장타율 3위, OPS 3위, 최다 안타 26위, 최다 2루타 26위, 최다 3루타 26위, 홈런 4위, 타점 8위, 득점 14위, 볼넷 11위, 고의사구 15위

해태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빙그레이글스를 3 : 0으로 꺾으며 6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손에 쥡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214, 출루율 0.294, 장타율 0.500, 3안타, 1홈런, 5타점, 5득점, 1도루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1차전, 2회말에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1992년, 타율은 떨어졌지만 홈런 20개를 때려내며 파괴력을 보유한 한대화. 그러나 이 해에 20 - 20을 기록한 LG의 3루수 송구홍에게 밀려 7년연속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수상에는 실패합니다.

1992 한대화 : 110경기 출장, 타율 0.268, 출루율 0.379, 장타율 0.483, OPS : 0.862, 436타석 362타수, 97안타, 2루타 16개, 3루타 1개, 20홈런, 74타점, 69득점, 66볼넷, 몸에 맞는 공 1개, 고의사구 4개, 8도루

타율 27위, 출루율 15위, 장타율 16위, OPS 15위, 최다 타석 25위, 최다 타수 30위, 최다 2루타 29위, 홈런 9위, 타점 9위, 득점 13위, 볼넷 9위, 고의사구 8위

해태타이거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롯데의 고졸신인 염종석의 역투에 밀리며 2 : 3으로 패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333, 출루율 0.429, 장타율 0.444, 6안타, 3타점, 1득점을 기록합니다.

1993년, 나이때문인지 한대화는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입니다. 게다가 1983년 이후로 20개의 에러를 기록하며 수비에서 부진한 면모를 처음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7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을 하게 됩니다.

1993 한대화 : 107경기 출장, 타율 0.266, 출루율 0.364, 장타율 0.427, 394타석 335타수, 89안타, 13홈런, 46타점, 4볼넷

해태타이거즈는 마운드의 힘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숙적 삼성라이온즈와 혈투끝에 4 : 2 - 그리고 1무승부 - 로 승리합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192, 출루율 0.300, 장타율 0.308, 5안타, 1홈런, 1타점, 3득점, 1도루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1차전 8회말에 솔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이 끝난후, 한대화는 신동수, 그리고 신인 허문회와 함께 LG트윈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대신 LG에서 김상훈, 이병훈이 해태로 이적했습니다.

1994년, 8년간 입던 빨간 유니폼대신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된 한대화. 하지만 한대화는 유지현 - 김재현 - 서용빈으로 이어지던 상위타선에 이은 4번타자로서 극적인 클러치능력을 과시하며 LG트윈스의 신바람에 한몫하게 됩니다. 그리고 8번째로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게 됩니다.

1994 한대화 : 106경기 출장, 타율 0.297, 출루율 0.384, 장타율 0.429, OPS : 0.813, 414타석 357타수, 106안타, 2루타 15개, 3루타 1개, 10홈런, 67타점, 49득점, 48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고의사구 2개, 3도루

타율 9위, 출루율 6위, 장타율 14위, OPS 10위, 최다 타석 21위, 최다 타수 24위, 최다 안타 16위, 최다 2루타 23위, 홈런 18위, 타점 9위, 득점 21위, 볼넷 10위, 몸에 맞는 공 18위, 고의사구 20위

새 팀 LG트윈스는 타석의 신인 3인방, 이상훈 - 김태원 - 정삼흠으로 이어지는 선발 삼각 편대에 또다른 신인 인현배의 활약, 차명석, 차동철, 김기범등의 계투진과 노송 김용수로 이어지는 마무리등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태평양돌핀스를 4 : 0으로 물리치며 2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손에 쥡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067, 출루율 0.125, 장타율 0.067, 1안타로 극히 부진했지만 단 하나의 안타로 2타점을 기록했습니다.

1995년에도 LG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지만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같은 플레이는 잘 나오지 못했습니다.

1995 한대화 : 98경기 출장, 타율 0.241, 출루율 0.300, 장타율 0.366, 324타석 295타수, 71안타, 8홈런, 37타점, 1도루

LG트윈스는 막판에 OB베어즈에게 밀리며 반경기차이로 2위에 머물러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롯데자이언츠에게 2 : 4로 패배하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한대화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529, 출루율 0.600, 장타율 1.059, OPS : 1.659, 9안타, 2홈런, 7타점, 3득점의 불방망이를 보여주며 노장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대화는 플레이오프 2차전과 4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1996년, 이제 한대화는 간간히 백업멤버로 이름을 올리며 은퇴를 준비합니다.

1996 한대화 : 52경기 출장, 타율 0.232, 출루율 0.312, 장타율 0.377, 154타석 138타수, 32안타, 5홈런, 16타점, 1도루

1997년, 한대화는 LG트윈스에서 쌍방울레이더스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짓습니다.

1997 한대화 : 43경기 출장, 타율 0.225, 출루율 0.344, 장타율 0.351, 132타석 111타수, 25안타, 4홈런, 24타점, 1도루

1997년, 쌍방울레이더스는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삼성라이온즈와의 경기끝에 1 : 2로 패배하여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그리고 한대화는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이 끝난 후, 한대화는 15년에 걸친 선수생활을 마무리짓습니다.

통산 1331경기 출장, 타율 0.279, 출루율 0.370, 장타율 0.450, OPS : 0.820, 4982타석, 4264타수, 1190안타, 2루타 190개, 3루타 20개, 163홈런(22위), 1918루타(30위), 712타점(20위), 610득점, 608볼넷(17위), 몸에 맞는 공 33개, 고의사구 29개, 79도루, 희생타 38개, 희생플라이 38개, 실책 172개(4위)

한대화가 15년에 걸쳐 남긴 기록입니다. 이 밖에 수위타자 1회, 3루수부문 골든글러브 8회 수상, 올스타전 MVP 1회 수상이 있습니다.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 올스타전은 동군소속으로 2번, 서군소속으로 9번 참가했습니다. -

포스트시즌

56경기 출장, 타율 0.296, 출루율 0.390, 장타율 0.481, OPS : 0.872, 228타석 189타수, 56안타, 8홈런, 34타점, 29득점, 31볼넷, 3도루

올스타전

13경기 출장, 타율 0.310, 출루율 0.375, 장타율 0.476, OPS : 0.851, 48타석 42타수, 13안타, 1홈런, 5타점, 8득점, 4볼넷, 0도루

한대화. 비록 기록지에 적힌 숫자는 다른 대타자들에 비해 부족해보여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 대단했던 대타자. 세월이 계속 흘러 수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한대화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결사로 남아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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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미키
09/12/15 15:03
수정 아이콘
Mr. 올스타..Mr.해결사 해태팬에게는 참 고마운 선수.. 믿음직한 선수였습니다.
한화 리빌딩 (이라고 쓰고 재창단; )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설탕가루인형
09/12/15 15:04
수정 아이콘
해결사라는 별명이 이 선수보다 잘 어울리는 선수는 없겠지요.
뭔가 부족해보이고 심지어 대타로 들어서더라도
뭔가를 해줄 것만 같은 포스를 가지고 있었죠.
Zakk Wylde
09/12/15 15:16
수정 아이콘
한대화 선수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서 보니 생각보다 좋지는 못하군요.
설수 시절의 한대화는 정말 믿음직한 타자였습니다.

한대화 선수를 정말 좋아했는데, 특히 해태선수 같지 않은 외모 때문에.. 그때도 참 스마트해 보이셨는데... ^^
2010 시즌은 한화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켈로그김
09/12/15 15:43
수정 아이콘
포스만 가지고 친구들과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망신당하게 했던 한대화..
그만큼 기록을 뛰어넘는 포스가 있었죠.
성야무인Ver 0.00
09/12/15 15:44
수정 아이콘
전에도 김성한 선수글에서도 이야기 할려고 했지만 유니콘스님이 스텟을 줄줄줄 올리시는건 좋은데요. 누적스텟에 대한 건 다르게 써 주셨으면 합니다. 80년와 90년대 경기수는 다릅니다. 그리고 80년대와 2000년대의 경기수도 더욱더 다릅니다. 80경기혹은 100경기했던 기록과 133경기기록은 조금 다르게 표현해야 된다고 봅니다. 김성한 선수의 경우 지금 기준으로 뛰었다고 한다면 과거기록인 총경기, 안타수에서 1.3정도를 곱해야 될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누적안타수는 제기억으로는 랭킹 5위권안에 듭니다. 한대화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산 1331경기를 뛰었지만 만약 2000년대부터 뛰고 은퇴했다면 1331경기가 아니라 1771경기정도고 1190안타가 아니라 1547안타정도고 이럴경우 실제순위는 38위이긴 하지만 조정스탯으로 판단할경우 11위권입니다. 물론 누적스탯도 중요하긴 하지만 현재 야구에 맞춰 조정해서 비교한다면 좀더 특정선수의 누적스텟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분들이 판단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니콘스
09/12/15 15:56
수정 아이콘
성야무인Ver 0.0009님//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은퇴한 해까지의 기록을 해서 올려볼까요?

예를들면 김성한선수는 1995년까지 활동했으니 1982년부터 1995년까지의 누적스탯을 올리고 그 때의 순위를 매겨보고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성야무인Ver 0.00
09/12/15 16:01
수정 아이콘
유니콘스님// 그것도 괜찮을듯 합니다. 사실 80-90년대의 경기수가 작아서 아무리 포스가 대단했다하더라도 누적 스탯순위가 30위권밖이라면 이선수가 정말 잘했는지 평가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아니면 경기당 안타수나 홈런수를 계산해서 1000경기정도로 끊어서 현재 현역중에 1000경기 이상뛴 선수랑 비교하면 어떨까요?
민주아빠
09/12/15 16:58
수정 아이콘
한대화 선수는 공을 잘치고 수비를 잘해서 기억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순간 팀의 승리를 안기는 안타나 홈런이 많았기에 그를 해결사로 기억하는 겁니다. 어린시절 김성환과 한대화는 지고있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길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지금은 한화의 미래를 밝혀주었으면 합니다. 감독으로서도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혁이아빠
09/12/15 18:21
수정 아이콘
한대화선수는 타이거즈입장으로 트레이드로 우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보심 되겠죠,
올해 김상현선수 처럼..
블레이드마스
09/12/15 23:32
수정 아이콘
세계 야구 선수권에서 일본 상대로 8회말 역전 스리런은 그냥 영원한 레전드일겁니다
애이매추
09/12/15 23:38
수정 아이콘
제 인생 최고의 안경고수였어요. 안경 쓴 사람은 왠지 약하다는 이미지를 가질 때였는데, 한대화 선수는 안경 뒤에 감춰진 눈빛이 오히려 더 강해보였달까? 외유내강의 캐릭터란게 저런거구나 싶었죠.
정말 글쓴분 말대로 한대화 선수가 타석에 서면 숨죽이며 봤습니다. 제겐 최고의 타자에요.
09/12/16 11:30
수정 아이콘
마동탁을 떠올리게 한 선수이자 정말 훌륭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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