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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21 04:11:13
Name MaruMaru
Subject [기타] 극단적인 수비전술에 대처하는 자세. 브라질 vs 스페인 vs 아르헨티나.
# 축구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보는 걸 즐기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전문성은 단 1g도 없습니다.

1. 수비전술의 요점.

2010 남아공 월드컵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동시에, 조별예선에서 누가 통과할지 알 수가 없게 하여 흥미진진하게 만든 두 얼굴의 극단적인 수비전술, 즉 9백은 단순히 수비숫자를 극단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닌 박모해설위원이 하루에 두세번은 언급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인 공간과 템포에 그 본질이 존재합니다.
먼저, 박지성 선수를 언급할때 한번은 무조건 나오는 '공간'이란 말의 해석이 중요한데, 공간은 단순하게 '빈 곳'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공격 상황에서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위험지역을 의미하며, 박지성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로 해외 언론과 전문가에게 고평가되는 이유도 이 위험지역을 찾아들어가는 능력이 특출나기 때문인 것이겠지요. 따라서 현재의 축구전술은 공간을 창출하는 공격 전술과, 공간을 억제하려는 수비전술의 형태로 부딪히게 됩니다.
9백 이야기로 돌아와서, 9백은 기본적으로 포백이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위혐지역을 최대한 방어하며 그 앞에 5명의 미드필더가 수비진과 10~15m간격을 유지한 상태로 역시 공간 중심의 수비를 펼칩니다.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브라질전의 북한과 스페인전의 스위스가 가장 잘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자신의 위험지역을 장악하고 수비하는 상태에서 상대 공격수가 위험지역 바깥, 즉 수비측의 미드필더 라인 바깥에서 공을 잡을 경우에는 무리하게 압박을 시도하지 않고 전진패스 혹은 2대1 패스를 차단하는 거리에서 수비를 하며 공간 안쪽으로 패스가 들어오거나, 공격수가 위험지역으로 침투하려는 시도를 할 경우에는 존을 좁히면서 1인 이상의 수비가 지근거리에서 수비를 하게되는 형태입니다.
이 전술의 최대 강점은 공간을 내주지 않음으로써 현대 축구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템포의 2대1패스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차단할 수 있으며, 포백의 뒷공간을 거의 내주지 않기 때문에 3선에서 1선으로 바로 붙여주는 롱볼에 의한 공격에도 대단히 강합니다. 즉, 빠른 템포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짧은 패스 공격과 느린 템포의 롱볼 형태의 공격에 모두 대처하는 수비전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9백에 대처하는 모법답안 보여준 브라질.

결국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공격측은 필연적으로 공격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중앙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포백과 미드필더가 중앙쪽에서 연결되는 공간을 전부 미리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중앙에서 주로 움직인 카카와 파비아누가 위협적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브라질에는 세계 최고의 오른쪽 풀백인 마이콘과 윙어로도 뛸 수 있는 왼쪽 풀백 바스토스가 있지요. 북한전 전반에서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건 역시 이 두 풀백과 호비뉴였죠.
마이콘은 오른쪽에서 카카와의 연계를 통해 끊임없이 측면 돌파를 시도하고, 바스토스는 호비뉴와 왼쪽 측면을 공략하면서 상대적으로 위험지역 바깥에서의 중거리 슛팅을 통해 세트피스 상황을 이끌어내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마이콘의 첫 골 상황도, 물론 워낙 잘찬 슈팅이긴 했습니다만, 풀백의 공격가담을 통한 공격 숫자의 증가와 카카, 펠리페 멜루, 엘라누등 미드필더들이 측면 쪽 공간에서 빠른 움직을 통한 공간 확보를 통해 그러한 찬스가 나올 수 있던 것이고, 9백이 가장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지점도 중앙이나, 크로스라인 방향이 아닌 페널티 박스의 측면 지점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경기를 통해 보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전반부터 꾸준히 개인 전술을 통해 돌파를 시도하여 몇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한 호비뉴와 중거리 슈팅을 통해 9백의 미드필더라인에 부담을 주는 역할을 수행한 바스토스 등 브라질은 다양한 템포의 공격을 시도하면서 북한의 수비전술에 금이 가게 만들었고, 그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은 것은 역시 브라질의 능력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봐야 되겠죠.

3, 9백에 대한 대처에 실패한 스페인

물론 스위스가 북한보다 개인기량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비슷한 수비전술을 들고 나왔고 그에 대한 전술적인 움직임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브라질에 비해서 가장 안된 부분이 다름 아닌 풀백의 공격 가담에 있는데, 유로2008 때의 비해 라모스와 카프데빌라는 확실히 공격력에 있어서 폼이 하락한 모습을 보여주며 전,후반을 걸쳐 크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미드필더 조합인 사비 - 사비 알론소 - 부스케츠 조합은 공격지역에서 공간을 창출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측면 공간에서 이니에스타나 실바의 개인전술에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위험지역 안에서 움직여주는 선수의 숫자가 비야, 실바, 이니에스타 밖에 없는 스페인으로서는 공격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죠. 스페인 또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는 알론소의 중거리 슈팅이나, 사비가 페널티 지역까지 침투하여 공간에 의외성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스페인과 브라질 모두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미드필더 펠리페 멜루 - 질베르투 실바//알론소 - 부스케츠 를 기용하면서 중앙에서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공격적인 풀백운용을 통해 공격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한 브라질과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공격에서 특별함을 만들어내지 못한 스페인의 차이가 두 경기 결과의 차이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3. 아르헨티나가 왜 나올까? 라고 생각하신 분이 분명히 있을겁니다.

사실 스위스나 북한의 9백 완성도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9백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팀은 아니죠.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강이다보니 수비 전술보다는 상대적으로 공격전술에 비중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상대하는 팀은 아시아 팀들이고 그 팀들은 대부분 우리를 상대로 수비적으로 나오기 때문이죠.
그 이전에 사실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안내서를 이미 확인했습니다. 비록 세트피스에서 한골을 실점하긴 했고, 현재까지 2010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인 엔예야마 골키퍼의 선방이 있긴 했습니다만 결국 필드골을 실점하지 않은 나이지리아가 잘 보여주었죠.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 전에서 상대적으로 1명 적은 8백에 가까운 수비전술을 사용했는데요. 1명이 적은 대신 페널티 박스 안에 5명을 배치하고 그 앞선에 3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상대적으로 사이드 쪽에 공격진과 최전방의 야쿠부는 상당히 윗선으로 올라가 있었죠. 에인세가 공격가담을 거의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때문에 상대적으로 2선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메시에게 페널티지역 바로 바깥에서 여러번의 슈팅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이 장면은 대부분 메시가 혼자 두,세명을 제쳐내고 만들어낸 찬스이고 실제로 최전방의 이구아인이나 테베즈에게 위협적인 공격찬스가 주어지지는 않았죠. 결국 테베즈나 메시는 상대 진영 중앙에서부터 공을 잡아 개인전술로 돌파하려는 시도를 많이하고 그게 성공하긴 하지만 그것은 '메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플레이인 것이지 전술적인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는 베론이 빠지고 막시 로드리게스가 투입되면서 오히려 이것이 우리나라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고 보는데, 나이지리아 전에서 베론은 상대적으로 수비전술을 펴고 있는 상대에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공격에 템포를 오히려 늦추는 경우가 많았고 센터서클 중앙에서 볼을 잡고 전진패스보다는 좌우를 향한 패스가 많은 모습이었죠. 그에 반해 막시의 경우는 물론 위협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왼쪽의 디 마리아와 메시에게 집중됐었기 때문이지, 끊임없이 오른쪽의 위험지역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가 보다 확실하게 수비전술을 펼치려면 기본 9백 전술처럼 공간을 확보하고 위험지역이 아닌 곳에서 공을 잡는 선수에 대해서 적은 압박만 가해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무리하게 위험지역 바깥에서 공을 잡는 메시나 테베즈에게 두 세명이 붙어서 협력수비를 하고, 결국 크로스만 막으면 되는 위치에서 돌파를 안주기 위해 무리하게 파울을 한 첫번째 실점장면은 비록 불운이 겹쳐졌다고는 해도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 됐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이나 브라질에 비해 효율적인 9백을 파훼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메시나 테베즈와 같이 개인기량을 통해 촘촘한 수비를 뚫어내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나이지리아전에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 디 마리아를 활용한 공격 전술은 마라도나 감독이 평가만큼 전술에 능하지 않은 것은 아님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강점이 될 수 있겠지요. 물론 그럼에도 아르헨티나의 주 공격전술은 메시나, 테베즈에 의한 개인기 돌파가 주이지만 말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뭉태기로 늘어놓다보니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시간도 많이 걸렸네요.
나름대로 세팀의 강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분석해본다고 적었는데, 글을 보는 분이 제 생각만큼 그 차이에 대해 느끼실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는 현재 브라질과 함께 우승후보 1순위에 올라갈 수 있는 전력이라고 봅니다. 수비라인이 약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백업이 좀 약할 뿐 주전 포백은 단단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중 한명인 마스체라노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메시의 존재는 뭐...사실 7경기만 이기면 되는 월드컵에서 2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전력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태극전사들의 나이지리아전 승리와 16강 진출을 기원합니다.
근데 쉽게 이길거 같은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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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Vgoodtogosir
10/06/21 04:12
수정 아이콘
저도 잔뜩 긴장하고 볼거 같긴 한데 왠지 나이지리아가 카메룬에 이어서 개그축구를 할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10/06/21 05:2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축구란게 참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전술이 필요한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워낙 스케일이 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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