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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7/07 11:16:51
Name IntiFadA
Subject [기타] 나카타 히데토시에 대하여...
1
내가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것.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선수 중 하나라는 것.
일본 국대의 중심이자 유럽무대에서도 제법 성공한 선수라는 것.
축구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나 패션에 대해서도 상당한 재질을 가진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이 속한 일본 국가대표팀과 그 선수들과 감독을 사정없이 비판하는 까칠한(?) 남자라는 것.
그리고 최근에 축구선수로서의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물론 나도 다른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처럼 축구라는 운동을 관전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동시에 다른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K리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_-;;)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당연히 한국 축구를 중심으로 관심을 가졌으며, 세계 적으로는 리켈메나
호나우딩요, 혹은 웨인루니를 보며 열광했을 뿐 나카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줄 여지는
별로 없었다.

그저 이웃나라 일본 최고의 플레이어이기에 3g의 관심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전부이다.

2
2006년 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브라질에 참패 했을때, 나 또한 그 경기를 본 다른
많은 한국 사람들처럼 약간의 통쾌함과 약간의 비웃음을 띄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바닥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는 나카타 히데토시의 모습이 보였다.

근성이 없다... 열정이 없다... 라는 이야기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던 일본 국대
에서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패배에 통곡하는 그의 모습은 묘한 언밸런스를 느끼게 했다.
그 눈물의 주인공이 지난 몇 년간 일본 국가대표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일본국대를 실랄하게 비판한 까칠한 남자라는 것 또한 어쩐지 상징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그의 눈물은 나름대로 내 기억에 각인되었나보다.

3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모두 월드컵을 마감한 어느 시점에 그의 은퇴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은퇴를 알린 글을 읽게 되었다.

“인생이란 여행이며, 여행이란 인생이다”

라고 이름붙여진 그 글을 통해 그는 담담히 자신의 축구인생을 돌아보며 그는 '축구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일 따름이며, 그런 한 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의 다음 단계를 여행할 때가
되었다.'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그의 이런 쿨한 모습은 한국적 정서와는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만
29세의 한창 나이이며, 아직도 피치에서 뛸 수 있는 체력과 기량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최후의 최후까지 그라운드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라는 것이 우리에겐
좀 더 익숙하고 박수치고 싶어지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한국과 일본의 차이인지, 대다수의 사람들과 나카타 히데토시
라는 사람과의 차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느쪽의 자세가 올바른가, 혹은 우월한가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무엇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그 글을 읽고, 짧은 지식이나마 그의 커리어를 생각해보며 나는 솔직하게 나카타라는
사람에 대해 경탄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사람, 존경할 만하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
내가 술을 좀 마시고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타이밍이 되면 종종 지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은 한 판 승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인생은 단숨에 승부가 나는 한 판 승부가 아니며 작은 승부의 연속이기 때문에 한 번의 실패에
과도하게 절망할 필요도 없고, 한 번의 성공에 과도하게 기뻐할 필요가 없다... 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한 편으로 자신의 As-is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다음번의 승부에서의 역전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그것이 마음에 쏙 드는 상태라 해도 다음 승부에서 역전패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자기보다 훨씬 성적이 좋지 않던 녀석이 사회에 나와보니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있다거나, 혹은 사회 초년병 시절 취업도 못하고 있던 녀석이 장사에 성공해서 내가 넘보기도
힘든 부자가 되어 있다거나 하는 종류의 경험.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그 사람이 운이 좋았다거나 내가 운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를 앞서있던 시점에서의 성과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을때, 그는 절치부심 다음번의 승부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을 봤을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해하거나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다음번 승부를 준비하는 일이다.

항상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 승리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번의 승리로 인생 전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한 번의 승리에 만족하고, 한 번의 패배에 절망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버리지 못
하는 '자연스러운 악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5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남자는 축구선수로서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아시아라는 척박한 축구 환경에서 그 정도 레벨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서 기본적으로
그를 존경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변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 부드러운
방식은 아니었지만 - 채근하고, 그럼에도 다가온 패배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열정까지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관점에서 차범근,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같은 선수들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당연히...)

하지만 그를 더욱 존경하게 만든 것은 한계에 부딛혔다고 느낀 시점에서 미련없이 자신이 가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쫓는 그의 모습이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는 것이
근성부족 때문이 아니라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또 다른 열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그 모습을 존경한다. 그는 축구선수라는 현 단계에서 그가 임한 하나의 승부에서 제법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다음번의 승부를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하바드 MBA를 겨냥한 그의 목표가 달성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열정과 노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아마도 그가 지금의 삶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 그가 몸담은 피치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노력은 그의 삶이 또 다른 스텝을 밟을 때 엄청난 자양분이 될 것임은 명확하다.


새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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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정석
06/07/07 11:41
수정 아이콘
새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날라보아요
06/07/07 12:48
수정 아이콘
나카타 히데토시.. 처음에는 02년 이후 끝을 모르는 슬럼프에 따른 좌절감 떄문일꺼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의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프리롤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한 요즘 보기 드문 굉장히 멋진 사나이라고 느꼈습니다.

나카타 선수정도의 근성과 의지가 있다면 경영학석사정도는 문제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까지의 알 수는 없지만 수많았었을 고통과 시련, 포기, 좌절 그것을 극복하는 인내와 끈기, 플레이의 영리함에서 느껴지듯이 두뇌 또한 명석하겠지요.
무엇보다도 도전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는 이미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코리안
06/07/07 13:01
수정 아이콘
나카타는 그의 축구실력이 잘하고 못함을 떠나 그의 인맥만으로도 모든것을 나타내죠.... 아마 우리 해외파선수들이 알고 있는 선수들보다 더 많은 선수를 알고 있을듯...
피플스_스터너
06/07/07 13:03
수정 아이콘
나카타 박지성 선수하고도 친분이 있죠. 암튼 아시아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판타지스타라고 생각합니다.
Eye of Beholder
06/07/07 13:08
수정 아이콘
와...좋은 글입니다. 월게에서 본 베스트네요. 저도 최근 인생에 이런 저런 좌절을 좀 겪다가 보니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06/07/07 13:19
수정 아이콘
나카타...일본인 답지 않게 개성이 있는 선수라고 느껴집니다. 이전에 욕을 먹었던 이치로도, 그당시 WBC때의 논란을 제외하면 참으로 개성 넘치고 배울게 많은 선수죠.
여담이지만, 간혹 일본인 선수에 대한 긍정적인 글이 올라오면 무조건 까칠하게 구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일본에 대한 반감은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가질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점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29살때 과연 난 뭘하고 있을지....
06/07/07 16:04
수정 아이콘
나카타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이긴 하죠 ^^
한 98년에서 2002년 사이의 국대에서의 나카타를 보고 있으면
요새 박지성을 보고 받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선수들이 나카타의 플레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매직존슨이 노룩패스로 어시스트를 했는데 같은편까지 속아서
패스한 공에 얼굴을 맞아버린다...그런 느낌이랄까요
일본선수 중 예전의 나카야마와 함께 유일하게 괜찮게 생각했던 선수라서,
은퇴가 아쉽네요
마술사얀
06/07/07 16:39
수정 아이콘
굉장히 좋은글이네요. 감사합니다.
06/07/07 19:01
수정 아이콘
웬지 야구의 이치로를 연상시킨다는 느낌...
Timeless
06/07/07 23:12
수정 아이콘
아 글 너무 좋습니다.

나카타 선수를 통해서 IntiFadA님의 인생관이 느껴지내요.

두 분 다 멋지세요.
06/07/07 23:49
수정 아이콘
일본의 명선수들 많죠. 한일전을 하도 안해서 다 까먹겠는데 한창 나카타가 활약할때나 그전의 일본선수들은 어떻게 보면 참 정겹고 낭만도 있었죠... 미우라,조 쇼지,마에조노,소마,이하라 밖에 이젠 기억이 잘 안나지만;; 절대 개발;;아닌 포워드에 홍명보를 연상케 하는 이하라 라든지..;;..뭐 물론 요새애들도 알긴 알지만 정감이 잘 안가네요 ^^
김영대
06/07/08 02:24
수정 아이콘
오.. 멋진 글입니다.
파블로 아이마
06/07/08 04:01
수정 아이콘
나카타에 대해 제가 가졌던 편견을 없애주는 참 좋은글인것 같네요^^
사상최악
06/07/08 04:17
수정 아이콘
월드컵 게시판에서도 추게로 글을 보낼 수 있다면 이 글을 추천하겠습니다.
(안되면 에이스게시판이라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고뭉치
06/07/08 04:32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은근슬쩍 방황하고 있던 저로서는.. 마지막 문장이 심히 따갑네요.

(추천 한표입니다!)
06/07/08 11:25
수정 아이콘
나카타로 인해 과거 일본 축구가 한단계 성장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듯
농심저글링
06/07/08 13:34
수정 아이콘
나카타가 아시아축구를 한단계 발전시켰죠..일본인들의 유럽진출의 신호탄을 터트린선수..덩달아 중국선수들도 마케팅효과로 속속히 유럽무대를 경험하고..뭐 한국선수야 적었지만..안정환선수도 페루자가 나카타같이 한번 제대로키우려고 데려온거라고 들었는데..나카타로 인해 많은선수들이 유럽러쉬했으니..거기다가 나카타는 일본인 답지않게 쿨하죠.
아레스
06/07/08 17:29
수정 아이콘
6-7년전쯤인가.. 나카타의 인터뷰중에 이런내용을 본적이있습니다..

Q:축구를 왜 하는가?
나카타:단지 돈을 많이 벌수있기때분이다..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Q:그러면 단지 축구를 돈벌목적으로 하는것인가?
나카타:그렇다.. 경기장에서 숨을 헉헉거리면서 뛰는것을 좋아하는것은 아니다.. 축구를 즐기는것도 아니다.. 난 인생을 즐기고싶고,그러기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축구를 선택한것뿐이다..
Q:그렇다면 돈을많이벌면 축구를 그만둘수도 있다란말인가?
나카타:물론이다.. 난 여러분야에서 즐기면서 보낼 그시간이 기다려질뿐이다..

이 인터뷰를 보고, 그당시 전 충격을 좀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보통 일반적인 축구선수라면 "난 축구를 사랑한다.. 단지 그라운드에서 뛰고있을때가 가장행복하다.." 머 이런 인터뷰를 했을텐데, 그당시 제겐 나카타는 많이 특이(?)하게보였습니다..
한편으론 대단하게도 보이더군요.. 무지 솔직한 사람이란 인상까지도..
그렇지만, 그를 축구선수로서 존경한다거나 대단하게 생각하지는않습니다.. 그는 단지 목표의식이 뚜렷한 직업인이었을뿐이죠..
Timeless
06/07/08 20:43
수정 아이콘
아레스님 말씀처럼 축구선수로서 멋진 사람은 아니겠지만 인생 모델로서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돈을 벌려면 역시 실력이 따라야 하고, 그만큼 노력을 했을 테니까요. 이제 돈이 생겼으니 다음 목표를 향해 가겠죠. 인생은 짧지 않고, 할 일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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