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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11 21:21
정규시즌 한정이면 류현진 --> 이대호 선수와 MVP 경쟁이 이슈가 커서
포스트시즌 포함이면 염종석이죠. 한국시리즈에선 박동희 선수가 주역이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염종석은 대단했죠. 바깥쪽 슬라이더 제구가(좌우로 긴 스트라잌존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청나서 그냥 못 치는 공이었죠.
25/08/11 21:45
염종석 WAR이 그 해 MVP였던 41홈런 장종훈보다, 트리플크라운 류현진보다 높습니다
정규시즌 한정해서 염종석이 더 위였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을 정도.. 41홈런 임팩트와 팀순위 땜시 요즘 기준으로 투표해도 장종훈이 탔겠지만, 세이버가 발달한 현재에 염종석이 그 해 최고 선수란 의견이 상당했을 겁니다
25/08/11 22:11
성적이 아니라 임팩트를 얘기한 겁니다. 그래서 근거를 엠브피 이슈를 든 겁니다. 짧은 댓글이라...
서로 다른 시즌 평가할 때 워가 비교하기 편하기도 하고 시대가 다르고 경쟁상대도 달라 저도 존중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염종석 선수가 더 낫다는 거 압니다. 그때 대학 신입생 시절이고 롯데를 응원하지 않고 고졸과 대졸 신입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서 염종석 선수가 정규 시즌에 류만큼 임팩트가 있었는지 모랐기 때문에 전 류를 우위로 두었습니다. 포스트 시즌은 플레이오프 한정 염종석 선수보다 나은 선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라 기억합니다.
25/08/11 22:17
인기도 염이 우위였나요? 제가 롯데를 응원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고 매일 중계도 아니어서 서울에 있던 저로선 체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25/08/11 22:49
전 서태지를 싫어해서 그와 비교하면 와 닿지가 않아요(농담) 롯데를 응원 안 해서 모르겠네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타 팀 팬과 소통이 힘들지 않나 싶네요.
25/08/12 11:54
빙그레팬은 염종석의 임팩트가 잊혀지지 않아요 ㅜㅜ
92염종석 93선동열 임팩트가 06 류뚱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죠 야구 인기도 틀리고 인지도도 틀리고 06류뚱임팩트는 팬한테는 엄청났지만 일반인한테는 베이징까지 듣보투수(ㅜㅜ)급이여서
25/08/12 13:59
오래된 빙그레-한화 팬 분은 이렇게 기억하시는군요.
저는 류뚱 이후로 한화 팬이 되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가 프로야구 암흑기여서 일반인까지 큰 영향력은 없었겠네요. 반면, 부산, 경남에선 작성자이신 포스트시즌님 말처럼 서태지급 인기도 가능했을 것 같네요. SBS개국이 얼마 안 됐고 부산쪽 민방은 핵심 프로그램만 공급받고 나머지는 자체 제작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지역 야구팀은 거의 전 경기를 중계했다는게 사실이라면 엄청 대단했을거라 봅니다. 시대와 지역이 다르니 각자 느끼는 게 차이가 나네요. 많이 배우네요.
25/08/12 14:41
류의 위대함은 순간의 폭발력이 아니라
자타공인 최강의 투수인데도 10승도 못챙겨주는 암흑기의 한화, 두번의 어께수술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그의 강인함이죠. 순간 그보다 더 위대했으면 어떻습니까. 류현진은 근 20년을 위대했는데요.
25/08/11 22:41
WAR로 따진다면 그렇죠.
시대를 달리하는 평가요소로 절대평가처럼 느껴지는 지표지만 양과 박 시절엔 타율, 타점이 중요 지표였고 도루도 가치가 높았죠. 쓰잘데기없는 투수 승률도 3관왕 중 하나였던 시기였고... 지금 본문은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이 평가한 걸 얘기하는거니까 war만 말할 순 없게죠. 염종석 선수는 지금 더 좋은 평가를 받죠. 그 시대의 평가도 중요하고 현재의 새로웅 평가도 중요하죠. 근데 염은 포스트 시즌 활약이 너무 좋아서 더 좋아질 재평가도 있나 싶긴 해요. 바같쪽 슬라이더를 본 사람은 이견이 있을 수가 없죠.
25/08/12 00:32
정규시즌 임팩트 한정이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습니다
당시 그냥 투수 신인왕이라고 하면 비슷한 급의 선수들이 있었거든요 순수 고졸이라는 보정이 들어가니 엄청난 전대미문급이 된겁니다만 그건 그해 정민철도 같이 등장해서 잘하니 임팩트가 좀 희석된 점이 있죠 근데 어차피 그때부터 이미 포스트시즌 절대강자였던 해태를 상대로 압도하면서 유일무이한 임팩트를 남긴것이 염종석의 데뷰시즌이라 거기서 굳이 정규시즌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건 막상 한국시리즈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삼성과 함께 정규시즌 강자임에도 포스트시즌 약자로 취급받던 빙그레를 상대로 비교적 쉽게 우승한 터라 그건 별 티가 나지 않았죠
25/08/11 21:25
(수정됨) 염종석 100승 찍네마네 하던 시절에 야구를 보기 시작해서 잘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선수였군요. 꺼무 뒤져봤는데, 데뷔시즌 혹사 때문에 100승에서 딱 7승이 모자란 채 은퇴했다 하니 아쉽습니다.
25/08/11 21:41
염종석의 슬라이더는 진짜였어요.
하 그때 선수님께서 제 머리 쓰다듬으시고 사인만 안 해주셨어도 지금까지 꼴빠로 고통받지는 않았을건데 ㅜㅜ 크크크크
25/08/11 21:51
안현민도 대단하긴 한데 23살때 데뷔 시즌이고
염종석은 그냥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막 프로 입단해서 저런 성적을 낸거라 차이가 크죠.
25/08/12 13:37
제가 kt팬이지만 두 시대를 다 체감해 본 입장에서 염종석입니다.
이건 당시 시대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에 혹사 소리가 나오면 지금 기준으로 정말 심한 혹사. 물론 현민이가 남은 기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지만.
25/08/11 22:22
92년에 저 형님 덕분에 꼴데에 심장을 바친 이래로 30년 넘게 고통받는 중입니다.
설마 그 뒤로 우승을 한 번도 못 할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꼴데까지 되버릴줄은 진짜 몰랐네요.
25/08/12 00:01
92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삼촌 같이 생긴 사람이.. (절대로 작년에 고등학생이었다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실력으로도 얼굴로도…) 어떻게 저렇게 던지는거지??
25/08/12 02:08
95년도 초3시절 야구잡지(였나 스티커북이었나)에 나와있는 염종석 집주소보고 친구들이랑 우르르 찾아가본게 인생 자랑이라면 자랑입니다 크크(염종석 선수는 없고 아버님만 계셨는데 '종석이 결혼식 갔다' 하시며 미리 사인되어 있는 종이 나눠주셨어요)
25/08/12 10:03
(수정됨) 최근엔 야구 잘 안봐서 가물가물하긴 했는데, 염종석이 롯데 영구결번이 아니었네요? 왜 된 줄 알았지? 왜 아니지? 될법하지 않나? 란 생각이 막 떠오름.
25/08/12 14:04
기억에만 의존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안 찾아봤는데
염종석 선수는 준플, 플레이오프에서 엄청났다는 제 기억이 맞네요. 더불어 준플, 플레이오프에서 혼자 캐리하고 한국시리즈에선 아니었던... 염종석 선수의 타자 버전이 김용국 선수였나? 삼성의 내야수네요. 물론 이때는 삼성이 우승을 못했던 걸로 기억하고, 김용국(?) 선수 때문에 처음으로 삼성을 응원했네요. 아마도 우승은 해태였을 거고... 우승팀보다 준우승팀 선수 하나가 더 기억에 남는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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