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1/12/20 18:57:20
Name VKRKO
Subject [청구야담]바람을 점친 사또(貸營錢義城倅占風) - VKRKO의 오늘의 괴담
이익저는 경상북도 의성의 사또였다.

하루는 잔치를 벌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는 여름철이었는데, 갑자기 미친듯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이익저는 급히 잔치를 그만두게 하고 감영으로 가서 감찰사를 만나 돈 5천냥을 꿔서 그 돈으로 햇보리를 샀다.

그 해는 풍년이 들어 보리 값이 무척 쌌다.

그는 보리를 사서 각 동에 나누어 잘 봉해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7월 초 어느 저녁 이익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심부릉종을 불러 후원에 가서 풀잎 하나를 따오게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럼 그렇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구나!] 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혹독한 서리가 내려 초목이 모두 시들어 못 쓰게 되어 버렸다.



그 해 가을 영남 전체의 들에 푸른 초목이 하나도 없고 죄다 말라 죽은 곡식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비축한 곡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곡식을 나누어 주어도 곡물 값은 계속 뛰어올라 초여름에는 3, 4전 하던 보리 한 가마 값이 무려 300전 가까이 치솟았다.



이익저는 보관해 두었던 보리로 의성 사람들을 구하였고, 나머지 보리는 내다 팔아 꾸어왔던 5천냥을 모두 갚았다.

이는 이익저가 바람을 보고 앞일을 점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익저는 이웃 읍의 사또로 옮겨 갔는데, 그 때 감찰사는 조현명이었다.



이익저가 일이 있어 감영에 가서 감찰사를 알현하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고 마구 헝클어져 머리카락이 망건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이익저가 물러나자 감찰사는 이익저를 따라온 아전을 잡아들어 사또의 모습이 흉하도록 가만히 있던 죄를 꾸짖었다.

그러자 이익저가 감찰사를 다시 뵙기를 청하고 들어가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늙고 기운이 다 되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윗분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 어찌 사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께 이를 고해 저를 파면시켜 주십시오.]

감찰사가 말했다.

[조금 전 일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저 의식에 불과한 것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부하가 상관을 섬기는 도리를 알지 못하였으나, 어떻게 하루라도 그 일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빨리 임금님께 알리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또께서 끝내 저를 파직시키지 않으실 것입니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말했다.



[사또께서는 부하에게 꼭 해괴한 일을 시키셔야겠습니까?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이익저는 즉시 하인을 불러 말했다.

[내 삿갓과 도포를 가지고 오너라.]



이익저는 곧 사모관대를 벗고 부신을 풀어서 감찰사 앞에 놓은 뒤 크게 꾸짖었다.

[내가 부신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여지껏 너에게 허리를 굽혔지만, 이제는 부신을 풀어버렸다. 너는 바로 내 옛 친구의 아들놈이 아니냐? 나와 네 부친은 죽마고우로 같은 베게를 베고 자고, 먼저 장가 가는 사람이 신부의 이름을 알려주기로 했던 사이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가서 너희 어머니 이름을 나에게 말해줬던 그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나를 이렇게 괄시하다니, 너는 아버지를 잊어버린 불효자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은 것이 상관과 부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늙도록 죽지 않아 먹고 사느라 네 부하가 되었다만, 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결코 이렇게는 못할 게다. 너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구나.]

이익저는 말을 마치고 비웃으며 나갔다.



감찰사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이익저의 집에 달려가 간곡히 애걸했다.

[어르신, 이 무슨 일입니까? 이 못난 것이 어르신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으니 부디 사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익저가 말했다.



[부하가 공관에서 상관을 질책하고 욕을 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아전과 백성을 대하겠습니까?]

이익저가 매섭게 떨치고 일어나니 감찰사는 어쩔 수 없이 사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






영어/일본어 및 기타 언어 구사자 중 괴담 번역 도와주실 분, 괴담에 일러스트 그려주실 삽화가분 모십니다.
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VK's Epitaph(http://vkepitaph.tistory.com)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1/12/20 18:57
수정 아이콘
부신이란 임금이 수령에게 내려주는 발병부입니다.
말 그대로 수령이 군사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권한의 핵심과도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MelonPang
11/12/21 00:24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있습니다~~~~
착한밥팅z
11/12/21 00:42
수정 아이콘
저희 고향 사또셨군요. 대단한 양반이네요.
유리별
11/12/21 00:53
수정 아이콘
대체 바람을 보고 어떻게 앞날을 점치는지.. 옛사람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6 [번역괴담][2ch괴담]신문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275 12/01/13 5275
325 [번역괴담][2ch괴담]사람이 적은 단지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294 12/01/11 5294
324 [번역괴담][2ch괴담]속삭이는 목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166 12/01/10 5166
323 [번역괴담][2ch괴담]모르는게 좋은 것도 있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745 12/01/09 5745
322 [청구야담]귀신에게 곤경을 당한 양반(饋飯卓見困鬼魅)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5735 12/01/08 5735
321 [번역괴담][2ch괴담]옥상의 발소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710 12/01/07 5710
320 [번역괴담][2ch괴담]썩은 나무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241 12/01/06 5241
312 [청구야담]우 임금을 만난 포수(問異形洛江逢圃隱)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027 12/01/05 5027
311 [번역괴담][2ch괴담]한밤 중의 화장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324 12/01/04 5324
310 [번역괴담][2ch괴담]간호사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502 12/01/03 5502
309 [번역괴담][2ch괴담]제물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502 12/01/02 5502
308 [청구야담]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797 12/01/01 5797
306 [번역괴담][2ch괴담]안개 낀 밤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5621 11/12/31 5621
305 [청구야담]원한을 풀어준 사또(雪幽寃夫人識朱旂)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492 11/12/29 5492
304 [번역괴담][2ch괴담]코토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9] VKRKO 5777 11/12/28 5777
303 [실화괴담][한국괴담]내 아들은 안된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306 11/12/27 6306
302 [번역괴담][2ch괴담]칸히모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230 11/12/26 5230
301 북유럽 신화 - 티얄피와 로스크바 [4] 눈시BBver.28889 11/12/25 8889
300 [청구야담]바람을 점친 사또(貸營錢義城倅占風)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6266 11/12/20 6266
299 [실화괴담][한국괴담]원피스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6663 11/12/19 6663
298 [청구야담]이여송을 훈계한 노인(老翁騎牛犯提督)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6877 11/12/14 6877
297 [번역괴담][2ch괴담]친구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314 11/12/13 6314
296 북유럽 신화 - 토르와 알비스 [7] 눈시BBver.27297 11/12/13 729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