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0/09/23 17:31:35
Name Finding Joe
Subject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의 무게
안녕하세요.
바다 건너에서 박사과정 밟다가 코로나 터지고 잠시 한국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이나 세미나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데, 평소 같으면 듣기 힘든 세미나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건 좋습니다만, 시차가 좀 힘드네요 왠만한 건 늦은 밤이나 한밤중에 이루어지니까요.

박사과정 합격했을 때부터 어쩌다보니 1년 주기로 관련 글을 쓰는데, 이번에도 2년차 마치고 몇 가지 생각이 좀 들어 한번 이렇게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1.        2년차 소감 – 본격적인 시작

박사과정 1년차가 필수이론들을 가르치는 단계라면, 2년차는 실제로 연구를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에 비유하면 1년차는 신교대, 2년차부터가 이병인 것이죠. 이 때부터 적극적으로 논문을 읽고 토론하고, 세미나에 참가해서 질문을 합니다.
이 중 핵심은 역시 스스로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 과정의 경우 2년차 논문(second-year paper)이 2년차 학생들의 최중요 과제고, 학년말에 교수들/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 뒤 더 다듬어서 이를 제출합니다. (대충 석사논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연구주제를 스스로 찾다가 한 학기 동안 허탕만 친 나머지 결국 다른 교수님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그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일주일 전에 간신히 제출한 뒤 지도교수님께

“교수님 덕분에 2년차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고 메일 보냈다가, 바로 직후에 논문을 다시 읽어본 뒤에 그 쓰레기같은 퀄리티에 멘붕해서
“교수님 죄송합니다 교수님 지도 하에 이딴 걸 논문이라고 써서 제출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라고 메일 보냈어요T.T  지도교수님은 “괜찮아 다들 그래 이거 더 다듬어서 학술지에 제출해보자”라고 격려해주시긴 하셨지만요.

2년차가 1년차와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학생들 개개인의 역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년차는 책 붙들고 시험 공부하는 게 대부분이라 시험머리 정도만 알 수 있다면, 2년차는 다양한 연구 관련 활동들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종합적인 내공이 드러나는 거죠. 예를 들어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찾아낸다든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죠. 그래서 1년차에서 고생했던 친구들이 2년차때부터 두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친구들은 시험머리는 좀 부족할지언정, 연구자로서의 내공은 상당하단 거죠. 그리고 내공이란 것이 그렇듯 단기간에 벼락치기하거나 재능 하나만으로는 쌓이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재능에 더해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노력을 해야만 습득이 되지요.


3.        학문을 업으로 삼는 것의 무게감.

예전에 2년차 갓 시작했을 때 종신교수로 일하다 은퇴하신 친척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학자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 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넌 학자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란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그 답변이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2년차가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제 3년차에 갓 접어든 쪼렙이 보았을 때, 연구자로서 내공을 쌓으려면, 아니 하다못해 살아남기라도 하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1.        [자신의 분야에 대한 무한한 애정]
2.        [여러 가지 일을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효율성]

먼저 연구 자체가 일이 아닌 자신의 취미가 되어야 합니다.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고 TV를 보는게 아니라, 논문을 읽고 연구를 하는 거죠. SNS에 “어디어디 놀러갔다” 이런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발표된 어떤 연구가 흥미있더라~”가 올라오고, 단톡방에 “어디 놀러갈 사람~”이 아니라 “이번에 어디 실린 논문 쩐다 한 번 읽어봐~” 등이 올라와요. 하루에도 수십개의 논문이 쏟아지고 다양한 주제들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애정이 없으면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학부시절 나눈 한 교수님과의 대화가 이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저: “교수님 작년에 B교수가 노벨상을 받았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수: “난 그 교수의 연구를 매우 좋아해. 난 무인도에 몇 가지만 챙겨갈 수 있다면 B교수의 논문들을 가져갈거야.”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태산이라고 해도 만인에게는 평등하게 24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구 말고도 할 것들이 많지요. 대학원생들은 조교도 해야 하고, 교수들은 학생들 논문지도에 수업도 가르쳐야 하고, 가정이 있으면 가정도 돌봐야 하죠. 그래서 애정에 더해 효율성이 필요한 겁니다. 한정된 시간안에 많은 일들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와 박사과정 하는 다른 친구들끼리 헤어질 때 하는 대사가 “담에 보자”가 아니라 “생산적으로 지내(Be productive)”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그런데 전 제가 있는 분야를 무한히 사랑하지도, 또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지도 않거든요. 아직까지는요.

애정에 관해서 쓰자면, 딱히 제가 있는 분야를 싫어하진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지요. 하지만 단순히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취미로 사랑할 수 있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까지 논문이나 최신 동향에 손이 쉽게 가지는 않더라구요. 이미 있는 취미를 바꿔보려고도 했습니다. 게임을 끊어보려고 몇 천시간 플레이한 스팀 계정도 삭제했고, 스위치도 팔았고 (직후에 코로나 터져서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요), 그 외 있던 게임 계정의 거의 대부분을 지웠습니다. 그래도 전 아직까지 게임이 좋고, LCK도 챙겨보고, 새로 나오는PS5에 또 관심이 생기고 그러더라구요. 평생을 즐겨온 취미인데 그렇게 쉽게 이별할 수 없겠죠.

효율성의 경우에도 시간활용이야 노력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재능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더라구요. 한 논문을 읽는데 나는 거의 반나절을 붙잡아야 하는데 다른 머리 좋은 친구들은 한두시간이면 충분하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슬픈 일입니다. 특히 정해진 시험범위가 있어 어쨌든 절대적인 시간투자로 따라잡을 수 있던 시절과는 달리, 이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테니까요. 심지어 고등학교나 학부때랑은 달리 평생 같은 업계에서 얼굴 보고 살 친구들인데요.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지 뜻이 있는 친구들끼리 매주 정기적으로 (온라인으로) 모여서 서로서로 점검하고 연구결과 피드백도 해주곤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하려구요.


4.        그래도 할 만하다.

뭔가 부정적으로만 글을 쓴 것 같지만, 그래도 당장 쫓겨날까봐 아예 마음의 여유가 없던 1년차보단 어느 정도 심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지라 읽고 연구하는 것이 나쁘진 않았고, 올해는 논문만 제출한다면 쫓겨날 걱정이 없다 보니 설렁설렁 하기도 했죠. (그리고 항상 중간보고 직전마다 벼락치기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연구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적당히 삶의 질도 신경쓰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학업을 취미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는데, 그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워라밸을 잘 지켜야겠죠. 운전면허 학원도 다니는 중이고, 얼마 전 집 앞 헬스장에서 PT 할인행사하길래 대학원생 용돈 틈틈이 모은걸로 등록했네요.

어쨌든 '나는 정말로 이 일을 사랑하고 또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란 질문은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네요. 쓰레기같은 2년차 논문도 어쨌든 논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는 더 다듬어야 하고, 졸업 논문 주제도 찾고, 내년에 볼 자격시험(A-Exam. 보통 3년차 마칠 때 보는 시험으로 여기서 통과해야만 박사과정에 남을 수 있음)도 준비해야죠. 재능이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시간 관리는 단련하면 되고, 어떻게든 정 붙이고 매달리다 보면 애정은 생기지 않을까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가야겠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7-30 17:20)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0/09/23 17:41
수정 아이콘
어제 박사논문 첫 번째 디펜스를 마치고 멘붕에 빠져있는데 참 시기적절한 글이네요. 크크
Finding Joe
20/09/23 17:44
수정 아이콘
디펜스라니 대단하십니다 흐흐 분명 다 통과하실 겁니다!
20/09/23 17:45
수정 아이콘
이름만 디펜스고 온 몸으로 오펜스를 받아내기만 했습니다 ㅠ
Finding Joe
20/09/23 17:47
수정 아이콘
아이고 ㅠㅠ 보통 그래도 결과는 잘 나오니까요
20/09/23 17:50
수정 아이콘
지도 교수님께서 '억지로 우겨서 졸업하겠다고 하면,다들 그렇게 매몰찬 사람은 아니니 졸업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셔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ㅠㅠ
20/09/23 19:07
수정 아이콘
...정말 무서운 말씀이네요. ㅠㅠ
20/09/23 17:47
수정 아이콘
오펜스를 막는 아니 맞고 죽지 않으면 디펜스..
20/09/23 17:50
수정 아이콘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ㅠ
항즐이
20/09/23 18:12
수정 아이콘
몸에 힘을 빼고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궁극의 디펜스입니다.
20/09/23 18:35
수정 아이콘
디펜스란 오펜스를 받는 것입니다.
선넘네
21/09/27 05:10
수정 아이콘
답이 없어 보여도 교수님들도 인간이어서 본인들 피드백을 학생이 정말 열심히 반영하려 했다는 노력을 온몸으로 보여주면 결국 졸업을 하긴 합니다. 힘내세유.
20/09/23 17:46
수정 아이콘
학문에 장도를 걷고 계시는군요. 우선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학문에 푹 젖게 되실텐데, 꼭 한 분야에만 머물러 계시지는 마시고, 전공하시는 분야를 베이스캠프 삼아 다양한 학문을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있을 때 그러한 다양성 탐구가 가장 유리하고 편합니다. 장도의 길을 걸으시면서 꼭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Finding Joe
20/09/23 17:48
수정 아이콘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저도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ㅠㅠ 사실 1-2년차가 그러라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너무 아깝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넓게 알아봐야겠죠.
초록옷이젤다
20/09/23 18:02
수정 아이콘
일로 하는 연구가 아닌 취미로 연구하고 싶습니다....
타인(주로 교수님)의 연구비로 살다가, 본격적으로 연구로 밥 벌어먹는 입장이 되니 연구를 대하는 입장이 바뀌게 되네요. 흐흐
그래도 나름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데 자부심이 있습니다.
Finding Joe
20/09/23 18:04
수정 아이콘
그런 사명감이나 성취감이 이 바닥에서 계속 구를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Philologist
20/09/23 18: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2년차면 아직 멀었습니다..크크 아직 가벼운 거니, 몸 잘 만들어 놓으세요. 코넬이라면 많이 외로우실 텐데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꼭 만들어 놓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Finding Joe
20/09/23 18:25
수정 아이콘
진짜 멀었죠 ㅠㅠ 본문에 PT끊은것도 젊은 친구들 사이에 체력 달려서 더 열심히 하려는 의도도 있구요. 운동이 스트레스 관리에도 도움 되니까요.
20/09/23 18:21
수정 아이콘
석사 두번째 학기입니다. 슬슬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20세기 미국문학사와 비평이론에 대해서는 잠을 자기 전의 시간도 쪼개서 함박웃음 피우면서 알아볼줄 알았는데,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시간 쪼개서 잡아본 좋아하는 크킹도 몇분 못 붙잡고 꺼버리는 걸 보고 (그렇다고 논문을 마저 읽었냐 그것도 아니고...) 뭔가 크게 잘못됬다는 불안한 느낌이 척수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세상에 퍼포먼스 이론에 대한 현상학적인 비평이니 뭐니 하면서 글을 읽는데...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이 학자들은 왜 다 처음보는 이름이지? 왜 예시에 나온 작품 중에서 절반 밖에 모르는거지?

흐흐 세상에 박사님들도 많으시니, 석사나부랭이는 잠시 멘붕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Finding Joe
20/09/23 18:27
수정 아이콘
남일 같지 않네요 저도 1년차때 교수한테 '넌 이것도 모르면서 왜 여기있냐' 란 소리도 들어본지라 ㅠㅠ
그래도 고생하다보면 어쨌든 마무리는 되더라구요. 2년차때 논문 쓰셔냐 할 텐데 파이팅입니다!
비온날흙비린내
20/09/23 18:43
수정 아이콘
이런 얘기 하면 좀 눈치없는 건 알지만 대학원 진학 고려중인 학부생 입장에서는 박사 2년차 진입하신 것만 해도 너무 대단해보이십니다.

끈기도 학문에 대한 열정도 애매한 제 입장에서는 학계에 있는 분들이 그저 한없이 빛나보일 뿐입니다.

박사과정의 상당수가 강한 압박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는데.. 그 똑똑해보이는 사람들조차 못 버티는게 박사과정이라면 과연 저따위 범인이 꿈꿀만한 자리가 맞나 싶네요.

그래도 본문 보면 작성자님은 대학원 생활이 어느정도 적성에 맞으시는 거 같습니다. 주제넘지만 점점 발전하시는 거 같아요.

연구분야에서 꼭 성공하시길 빕니다. 힘내시길!
Finding Joe
20/09/23 20:40
수정 아이콘
저도 학부때는 열정이고 뭐고 별 생각 없었습니다. 그냥 공부가 할만하고 성적 나오다보니까 '이 참에 이걸로 한번 가볼까?' 라고 생각했고, 밖에서 한동안 구르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더 공부하는거죠.
개인적으로 박사과정에서의 좌절감은 95% 이상이 겪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살자고 구르면서 버티다 보면 1년 살아남고, 1년 또 살아남고, 그러다보면 끝나는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합니다.

꼭 대학원 오세요! 정말로 박사과정에 생각이 없어도 공부 조금만 더 하는 수준이라면 석사도 좋아요~
Enterprise
20/09/23 18:50
수정 아이콘
흐허허... 석박통합 N년 하다가 때려치고 나서 이 글을 보니 제가 고민했던 것과 비슷한 게 느껴지는군요. 저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왔지만요. 길고 긴 그 길 끝까지 견뎌내시고 학위와 h-index의 무한한 떡상을 기원합니다.
Finding Joe
20/09/23 20:4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요T.T 그저 어디서 밥이나 빌어먹고 살면 좋겠네요.
20/09/23 19:00
수정 아이콘
부럽네요... 석박사 같은 건 하고 싶지만 제 가지 않은 길이라 그런가 이런 분들 보면 마냥 부러워요
Finding Joe
20/09/23 20:43
수정 아이콘
전 정말 공부말고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이리로 온거라서요T.T
사기업에서 인턴도 해보고 좀 굴러봤는데 '야 난 공부말고 딴 거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긴 하루의 끝에서
20/09/23 19:29
수정 아이콘
그 어떤 일이든 대가가 되거나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문의 2번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열정과 애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건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학문이란 전문성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일 중 하나이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길의 개척을 모색하는 창의성을 늘 필요로 하기도 하며 그게 결코 쉽지도 않고, 순수 학문에 가까울수록 수익을 창출하는 일도 아니며 일상의 보편적인 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진 세계 속 삶이기 때문에 학문을 업으로 삼으며 우뚝서거나 최소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문이 삶에 녹아들 정도로 더욱이 열정과 애정(적어도 그에 준하는 노력만큼은 반드시)이 크게 있어야만 하는 법인 것이죠.
Finding Joe
20/09/23 20:44
수정 아이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애초에 박사가 '이 세상의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란 건데, 제가 그걸 할 재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항상 회의가 들더라구요.
남들처럼 무슨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론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미 있는 방법론을 다른데다가 적용하는게 고작이니T.T
좀 더 애정과 열정에서 비롯되는 내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09/23 19:49
수정 아이콘
저도 1년차때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1년만 더해보고 안되면 그만두자'고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존버하다가 디펜스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사기업에서 전혀 상관없는 업무하고 있지만 그때 내공이 쌓여서 모르는 분야도 일단 논문보는데는 거부감이 없네요.
Finding Joe
20/09/23 20:45
수정 아이콘
대단하십니다. 저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끝을 보고 싶네요.
20/09/23 20:17
수정 아이콘
누가 박사쯤 되면 "남들도 다 모르는구나.."라고 깨닫는다는데 왜 피어리뷰 받을때마다 급소만 푹푹 찔리는지 모르겠어요.
Finding Joe
20/09/23 20:46
수정 아이콘
저도 곧 본격적으로 발표하면서 피어리뷰 받을 수순인데, 얼마나 날카로운 지적들이 들어올까 모르겠습니다T.T
떠주니
20/09/23 20:32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
Finding Joe
20/09/23 20:4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데브레첸
20/09/23 20:59
수정 아이콘
저는 내년에 석사 올라갈 계획이니, 4년 뒤 제 모습이 되겠네요.

아직 학부생이지만 열정이 강하게 들고, 전업으로 삼으면서도 취미처럼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제겐 있습니다. 이걸로 석사논문 써볼까 싶은 주제도 몇 있고요. 연구를 직접 해 본 적도 없고, 논문의 방법론 부분은 아예 읽지를 못하며, 어떤 주제가 학술적으로 가치있거나 검증가능한지 가늠도 안 잡히는 학부생 나부랭이라 웃기게 들려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대학원에는 성직자 마인드로 가야한다고 하던데,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의 스트레스와 애환 속에서도 경건하게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됩니다. 그래서인지 농반진반으로 대학원 오지 말라는 인터넷 밈이 돌고 있지만, 성향상 대학원-연구원/학계 루트 말고는 답이 없는 인간인지라 힘들더라도 대학원에 가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책도 그렇고, 이 글을 읽으니 힘들더라도 대학원 가는 게 맞겠다는 확신이 더 듭니다.

좋은 결과가 따르기를 빕니다.
Finding Joe
20/09/23 21:07
수정 아이콘
훌륭하십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로요.
전 학부때 딱히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도, 졸논 쓸때 읽은거 빼면 논문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방법론 부분은 사실 아직도 힘들어요T.T 그런 저도 막연한 마음가짐 하나로 올라와서 살아있는데, 데브레첸님같이 열정도 있고 이미 연구하고싶은 주제도 있는 분들은 꼭 성공하실 겁니다. 실제로 제 동기들 중에서도 그런 애들이 두각을 드러내거든요.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열정과 애정이 있다면 버텨낼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버텨낼 수만 있다면 이 길은 정말 좋은 길임이 틀림없습니다.

격려 감사하고, 꼭 대학원 오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데브레첸
20/09/24 03:29
수정 아이콘
과찬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도 관심이 많을 뿐, 논문을 제대로 읽지는 못합니다. 초록과 결론 정도만 읽는 논문이 수두룩해요..
므라노
20/09/23 22:11
수정 아이콘
어릴 때부터 학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했고, 이래저래 성격상 그 쪽으로 가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정작 제 열정이 그걸 견딜 수 있느냐?에 대해선 꽤 회의가 들더라고요.

배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대학원을 견딜만큼 단단하진 않거든요. 그리고 제 능력의 한계라는 것도 눈에 보여서 참 발을 못디디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관심 분야에서 완전히 떨어지고 싶지도 않고, 가능하면 취직하고 회사에서 유학 보내주면 좋겠다(뒷배가 든든하면 할만 하다)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게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야 뭐 무리겠지만 영 미련을 못버리겠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난관을 다 넘어 대학원 진학 하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결단력과 의지력이 진짜 어마어마 하셔서 대단하고, 한 편으론 부럽고 그러네요.
Finding Joe
20/09/23 23:16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전 열정은 후천적으로라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전 진작에 나갔거나, 아예 오지도 않았겠죠. 의지력은 말할 것도 없구요.
시작하는건 아주 조금의 의지만으로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버텨나가면서 조금씩 성정하는 거겠죠.
성야무인
20/09/23 22:32
수정 아이콘
이게 참 학교의 경우 테뉴어라는 것만 보장하면 갑자기 연구욕구가 사그라 지는것도 있고

한국의 경우 교수 한명에 짊어진 짐이 너무 많습니다.

보직 맡으면 그야말로 헬이죠.

그게 싫으면 영미권 국가에서 교수직 맡아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구요.

이것도 아니면 국책연구소나 기업체 연구소에서 일을해야하는데

이건 자기 연구하고 맞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구요.

정 아니다 싶으면 창업해야 돈 끌어와서 해야하는데

이건 일반적인 연구비 따 내는것 보다 쉬운 일도 아닙니다.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

말은 쉽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영유하는 일외에 나머지를 연구로 돈을 쓴다는 건

할게 많습니다.
Finding Joe
20/09/23 23:16
수정 아이콘
그걸 다 감안하고서라도 자기 분야가 너무 좋으니까 그 길을 가는 거겠죠. 진정한 의미의 열정페이죠...
뒹구르르
20/09/24 00:27
수정 아이콘
추후 학위 과정을 진행하면서, 혹은 학위 취득 후 학문이 업으로 되었을때,
학문에 대한 순수성, 열정에 집착하느라 힘들어하지 마세요.
세계적인 대가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수의 박사 혹은 교수는 그저 평범한 직업인일 뿐입니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 자기가 그나마 좀 잘 하는 행위를 하고 돈을 버는 것 뿐이지."라고 생각하면 많은 스트레스를 피해갈 수 있어요 흐흐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아드오드
20/09/24 01:3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거 진짜 동의합니다. 과한 애정과 집착을 버려야 롱런할수 있습니다. 첫사랑 대하듯 하면 첫사랑처럼 힘들어집니다.
Finding Joe
20/09/24 10:07
수정 아이콘
조언 감사합니다.
인류 지식이 이바지한다는 거창한 순수성/열정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 정도의 애정이나 적어도 자기 분야에 관한 열정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T.T
꺄르르뭥미
20/09/24 12:30
수정 아이콘
뒹구르르 님의 조언에 너무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바라보는 지도교수님들은 그만큼 실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환경도 뒷받침이 되었기에 저런 자세를 보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저런 마음가짐으로는 스트레스만 받지 테뉴어는 못 받을거예요. 돈은 벌어야하니까 더러워도 빨리빨리 적당히적당히 편법도 써가면서 실적을 내는게 미덕이지, 내가 만족하는 수준이 나올 때까지 즐겁게 일하는건 압도적인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죠.
20/09/24 09:04
수정 아이콘
국내에서 겨우겨우 학위를 받고 회사원으로 지내고 있는 사람으로 지금 겪고 계신 어려움을 공감합니다. 한 편으로 많이 부럽네요. 회사에 몸 담고 있어서 더이상 학문에 대한 열정은 잊혀진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남아서 더 그런 듯 합니다. 랩 선배나 동기들 중에 교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가슴이 저려오는게 크크. 앞으로 이겨내야 할 산들이 겪어오신 것들 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훌륭히 이겨내시고 애정과 효율이 높은 학자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나저나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pgr에 학문을 업으로 삼으신 분이 참 많군요.
Finding Joe
20/09/24 10: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전 일반 기업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이쪽을 선택한 것도 있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선 이미 자리잡고 안정된 삶을 사는 애들도 많구요.
그런 애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언제쯤 안정된 삶을 살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지기도 해요. 그것도 박사과정의 어려움 중 하나겠죠.
맛있는새우
20/09/24 10: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제 해외에서 박사 과정 진학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네요. 지난 해 어학 준비하면서 그냥 석사에서 종지부를 찍고 사회로 나갈까 아니면 학교에 남을까 고민 많이 했고, 결국 학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 했는데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걸 안다는 것, 사유의 지평이 넓어지는 그 순간의 희열이 너무 좋아서 계속 학업을 이어 나가겠지만요.

추천했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Finding Joe
20/09/24 10:12
수정 아이콘
학문이 그렇게 힘들고 심적으로 괴로운 일들이 많아도 자기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간다는 그 느낌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이 길을 놓을 수가 없죠T.T 쉽지 않은 길 선택하셨는데 파이팅입니다. 저 같은 놈도 버티는데요.
AaronJudge99
21/08/06 09:28
수정 아이콘
피지알엔 고학력자분들이 무지 많네요 크크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되니 신기합니다
AaronJudge99
21/08/06 09:33
수정 아이콘
저 혹시 너무 좋은 글이라 그런데 출처 표기하고 퍼가도 될까요..?
21/08/06 09:58
수정 아이콘
저도 이제 박사를 하러 미국으로 나가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물장수
21/08/13 19:30
수정 아이콘
건강하십시오!
레이미드
21/09/17 10:29
수정 아이콘
여담이고 글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왜 우리나라 대학원은 유학온 사람에게 (특히 잘) 교수직을 주면서
자교 학생에게는 대학원 오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https://blog.naver.com/amhoin/222508482656

고생이 정말 많으십니다. 건강하세요.
방과후계약직
21/09/21 02:30
수정 아이콘
물박사는 박사의 정도를 걷는 사람이 부러울뿐입니다.. 흑흑
서대원
21/11/04 11:25
수정 아이콘
저도 대학원생이라서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저도 학문을 업으로 삼지는 않을것 같고, 졸업만 하고 마칠 것 같네요.
연구실 생활 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연구실 후배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같은 연구실 동기가 '노예 한명 들어온다'고 이야기한 거네요.
농담반 진담반이었겠지, 진담 반도 섞여 있는게 불편하더군요.
석사 박사 과정중에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휴학도 못하고, 교수님이 부르면 주말이든 밤이든 달려나가고, 월급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100만원 이하)를 받고 생활비를 지출해야 되고 ... 대학원생 처우 및 인권 문제는 공론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23 [콘솔] 아들과 함께 BOTW의 추억 (부제:아들아 아빠는 무쌍류 게임 싫어한단다) [55] likepa5561 20/12/07 5561
3222 BASS 아세요? 베이스의 소리를 찾아서 [41] 형리6311 20/12/19 6311
3221 닌자는 어떻게 일본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상편- [17] 라쇼7386 20/12/18 7386
3220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전투식량의 역사 [44] 트린6428 20/12/15 6428
3219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 살던 선조들은 운석 충돌로 전멸했을까? [44] cheme8114 20/12/10 8114
3218 혹시라도 달리기 취미 붙일 초보자들을 위한 조그마한 추천아이템모음.JPG [86] insane16652 20/10/12 16652
3217 친구의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며 [15] azrock8077 20/12/09 8077
3216 고스트 바둑왕. 사이와 토우야명인의 마지막 대국 [26] Love&Hate11080 20/12/05 11080
3215 [LOL] LCK에서의 에이징 커브 [140] 기세파24001 20/11/22 24001
3214 [LOL] 지표로 보는 LCK의 지배자들 [49] ELESIS17675 20/11/14 17675
3213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관련 FAQ 및 최신 정보 (2020.01.31. 1530) [377] 여왕의심복64857 20/01/27 64857
3212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방탄복 [19] 트린9655 20/12/12 9655
3211 어떻게 동독 축구는 몰락했는가 [9] Yureka7745 20/12/01 7745
3210 [콘솔] 양립의 미학 - <천수의 사쿠나 히메> 평론 및 감상 [35] RapidSilver7866 20/11/20 7866
3209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 [48] Brasileiro11127 20/11/24 11127
3207 우리가 요즘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몹쓸 상상들에 대하여 [39] Farce247945 20/11/15 247945
3206 나이 마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대하는 자세 [54] 지니팅커벨여행219543 20/11/12 219543
3205 (스압주의)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책 가격이 정말 내려갈까? [130] 아이슬란드직관러208874 20/11/10 208874
3204 1894년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 [47] 이회영206146 20/11/09 206146
3203 영화 "그래비티"의 명장면 오해 풀기 [39] 가라한204058 20/11/06 204058
3202 주님, 정의로운 범죄자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58] 글곰52307 20/10/06 52307
3201 예방접종한 당일에 목욕해도 될까? [66] Timeless43428 20/10/06 43428
3200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의 무게 [55] Finding Joe44102 20/09/23 4410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