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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1/16 12:21:57
Name 눈시BBver.2
Subject 왕자의 난 - (완) 아버지와 아들


간단히 줄이면...

"아버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왕위를 지키는 중이다 이 후레자식아."

물론 결과는

"아들아... 끝난 것이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죠."

(...)

백운사의 늙은 중 신강이 태상왕을 알현하니, 태상왕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방번·이방석이 다 죽었다. 내가 비록 잊고자 하나 잊을 수가 없구나!”

지난 글에 sungsik님이 말씀하신 게 이건가 보네요. 거 참...

1. 조금 특별한 외출
정종 때의 이성계는 얌전했습니다. 2차 왕자의 난에서 방간을 살리려고 노력한 거 정도를 빼면 딱히 보이지 않죠. 태종 즉위 이후에도 이방간을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했구요. 신하들의 반대로 제대로 된 건 없지만요. 정종은 그를 생각해 호위병을 최대한 줄이고 여기저기 거동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에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_-a

일단 가만히야 있었습니다만... 가슴 속의 응어라기 어디 가겠습니까... 태종 초에도 그의 외출은 계속됩니다. 대충 짚어 보면...

태종 1년 3월 보개산
윤 3월 금강산 ~ 4월까지 머뭄
8월 금강산으로 가려다 명나라 사신 온다는 말 듣고 중지
9~10월 평주 온천
2년 1월 소요산 - 아예 절 짓고 살겠다고 함
3월까지 계속 있음 - 이 시기 저번 편 마지막에 말 한 "먼저 죽은 애들이 서방정토로 간다더라"는 말이 나옵니다
4월 이지란 죽음 - 여진족 출신의 이성계의 의형제. -_-a 나름 개국의 주역이었습니다만 조카 이방원 하는 꼴 보고 열 받아서 은둔했다는군요.
4월 21일 - 박만이 동북면으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들러서 돌아가라고 했는데 안 감.
28일에 돌아왔다가 1일에 다시 소요산으로
5~6월 회암사에 땅 좀 주래서 떼 줌. 이 때 한창 불교 혁파하라고 난리였는데 태종은 사이에 끼어서 어쩌지 못 함. 이 때 회암사로 간 듯
8월 "국왕이 만일 나처럼 부처를 숭상한다면, 내가 마땅히 고기를 먹겠다" 태종 어쩔 -_-a
10월 1일 명 사신 오니까 젭라 돌아와달라고 빔 ㅠ_ㅠ)
10 월 중 - 사신 맞아서 그래도 할 거 다 했는데...! (이 때 사신으로 온 온전은 금강산 보러 갔다죠)

대충 여기까지 보면 참 성질 건드리면서 여기저기 다녔죠. 나라의 가장 큰 어른께서 궁을 비우고 쏘다니는 가운데 하필 다니는 곳도 절들 뿐이었습니다. 밑에 애들은 계속 불교 혁파하라고 하는데 태상왕 눈치 봐서 뭐라 하지도 못 하겠고, -_-; 조금 뭐라 할라 치면 "죽은 애들이 울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 하니... 뭐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냥 틱틱대는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벌어지죠.

10월 27일, 태상왕 이성계는 사신 온전을 맞아 연천 징파도에서 잔치를 베풉니다. 금강산 보라 갔다 오는 길에 본 거죠. 이 때 태종이 기생과 풍악을 보내고, 별시위를 보내서 호종하게 했습니다. 헌데... 잔치가 끝나고 태상왕은 동북면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말립니다만... 이 때 태상왕은 이렇게 말 합니다.



"너희들은 모두 내가 기른 군사인데, 지금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느냐?"

이 말과 함께 태상왕은 눈물을 흘렸고, 이 용의 눈물에 별시위들은 모두 데꿀멍 (...) 그대로 그를 호위해 가게 됩니다. 당연히 조정에선 난리가 났죠. 중국 사신 핑계까지 대면서 돌아오게 하려고 했는데... 그의 말,

"사신이 오면 보고, 반드시 가서 볼 필요는 없다"

지들이 오라는 거죠. 그러면서 홀연히 떠나 버립니다. 11월에 들어서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대충이나마 밝혀집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을 보내서 문안하고 돌아오라고 했으니까요.

"‘내가 즉위한 이래로 조종의 능에 한번도 참배하지 못하여 일찍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행히 한가한 몸이 되었으니, 동북면에 가서 선릉에 참배한 뒤에 금강산을 유람코자 한다. 서울에 들어가면 잠시도 문을 나서지 않겠다. 만일 내가 선릉에 참배하지 않으면, 어찌 다른 날에 지하에서 조종을 뵈올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나의 이번 행차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들도 부모가 있는 자들이니, 자기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마지막 줄이 참 재밌죠.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물론 핑계를 대는 중에 나온 말이겠습니다만... 그의 움직임은 시시각각 태종에게 보고되지만 딱히 조치를 취하지 못 합니다. 기껏해야 그의 소식을 알려주는 이에게 포상하고, 무학 같이 태상왕과 친한 사람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설득할 수밖에요.

그렇게 계속 사람을 보내던 중, 마침내 걱정하던 일이 터져 버립니다.

2. 조사의의 난
11월 5일, 태상왕은 함흥으로 간 게 확인된 상황이었습니다. 급보가 들어오죠. 안변 부사 조사의가 난을 일으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명분은 방번, 방석의 어미 강씨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는 거였죠.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조사의는 1차 왕자의 난 때 숙청된 인물로 태상왕의 요구에 의해 목숨은 건지고 동북면으로 간 상황이었습니다. 동북면 출신도 아니었죠. 거기다 내건 명분 또한 애매합니다. 그런데... 그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일만 명의 병력이 순식간에 모였죠.

이 때 태상왕은 함흥에서 현재 평안남도 맹산군, 맹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함흥에 갔던 박순이 죽고, 맹주로 갔던 이천우가 휘하 기병 백여명과 함께 잡힙니다. 겨우 혼자 돌아온 모양입니다만... 동북면, 서북면 모두 삽시간에 반란군에게 점령된 것이죠. 마치 태상왕 이성계의 발걸음을 따라가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준비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계가 동북면으로 가자마자 바로 일어난 것을 보면요. 왕자의 난으로부터 4년... 병력을 준비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만 하죠. 동북면이 어딥니까. 흥왕지지(興王之地). 조선이 일어난 땅입니다. 이씨 일가가 백 년에 걸쳐 살았던 곳이며 이성계의 본거지였죠. 이성계의 이름을 걸고 이성계의 한을 풀기 위한 전쟁, 설령 반대하는 이가 있더라도 어쩌지 못 했을 겁니다. 거기다 이성계가 직접 왔으니까요.

실록에서는 최대한 이 둘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난리가 일어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태상왕에게 사람을 보내죠. 어느 날에는 중간에 조사의의 병력에 가로막혀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이게 누구의 의지일까요?

조사의의 난은 곧 이성계의 반격이었고, 이는 곧 아버지와 아들의 전면전을 뜻 합니다. 이성계로서는 정말 열심히 준비한 한 방이었겠습니다만...

너무 쉽게 무너지죠. -_-;

"조영무는 동북면으로 향하였고, 이천우·이빈·김영렬·최운해 등은 맹주에 이르렀고, 또 황주·봉주 사이로 군사 4만여 명이 나왔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를 당하려는가?"

조사의의 반란군에 사로잡힌 김천우의 이 말에 안주까지 거침 없이 진격하던 조사의 군은 자멸해 버립니다. orz

급조된 군대의 한계일까요. 차라리 동북면에 그대로 웅거해 있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중앙군과 대결하기에는 부족했겠죠. 생각해 보면 태종도 이에 대해 계속 대비해 왔을 겁니다. 다만 아버지가 있으니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을 뿐이겠죠. 하지만 대응을 결심한 순간, 반란군과는 상대가 안 되는 전력으로 기세를 제압해 버린 것 같네요. 4만 어쩌구는 거짓이겠지만요. 이 때가 11월 27일, 단 한 달도 버티지 못 하고 태조 이성계의 역습은 끝납니다. 허무하게요.

3. 다시 서울로
그 후에도 태종 이방원은 계속 사람을 보냈고, 태상왕 이성계는 하릴 없이 돌아오게 됩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딱 한 번 틱틱거린 기록은 남아 있네요.

"내가 동북면에 있을 때에 국왕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맹주에 있을 때도 역시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감정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번 보냈고 나머지는 조사의 때문에 길이 막혀서 못 갔다고 하니까 하는 말,

"걔네들은 나랑 친하니까 달래려고 보낸 거고!"

조사의는 12월 초에 붙잡혔다가 18일에 처형당합니다. 이 때 반란군 수뇌부 대부분이 죽은 듯 하구요. 한편 태상왕은 8일에 서울로 돌아옵니다. 얼마만의 부자 상봉이니 참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적혀 있어야 되는데, 실록에는 "왔다" "왔다" 이 정도로 간단하게 적어 놓습니다. 차마 적을 수 없었겠죠. 한편 박만, 신효창 등 애초에 태상왕을 모시다가 반란에 참가한 이들은 폐서인 되는 정도로 그쳤고, 아래에서 계속 벌을 주라고 했지만 듣지 않습니다. 직접 칼을 빼들지 않은 이상 이성계의 눈치를 봐서도 더 벌을 줄 순 없었겠죠.

한편 이성계 역시 더 이상 뭘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왕이 이방원인 이상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반역이 될 뿐이고, 자기야 무사하겠지만 자기를 따르던 이들은 목숨을 잃게 되는 거니까요.

이 일들은 조선 역사에서 흑역사로 남게 됐고, 대신 함흥 차사라는 야사로 남게 됐습니다. 함흥에서 조사의에게 죽은 박순이 주인공 급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이겠죠. 이러면서 은근히 이방원 디스도 하면서 그냥 집안 문제였을 뿐이다고 사건을 축소한 겁니다. 대신 화살을 쐈는데 기둥에 박혀서 "천명이로구나" 했다든가 다른 신하에게 술을 올리게 하니 철퇴를 내려놓으면서 "천명이로구나" 했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보여주죠. 그러면서 이런 계책을 알려 준 것이 하륜이었다는 걸로 그 때의 실세도 보여주구요.

태상왕이 개경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별로 만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긴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을 테니까요. -_-; 대신 그제야 태종은 안심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재개합니다. 한양 천도도 다시 얘기가 나오게 되죠.

그나마 좋은 모습이 보이게 된 게 7월 말, 한 반년은 지난 후였습니다. 그 매개가 된 것은 역시 상왕 정종이었죠. 그가 태상왕을 만나고 온 후 태종은 기뻐하며 눈물로 맞았고, 역시 술 마시고 같이 춤 춥니다.

다음달, 8월 7일에는 마침내 좋은 모습이 보이네요.

"임금이 태상왕께서 술과 고기를 드리는 것을 싫어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소찬을 드리고 다음에 고기를 드리니, 태상왕이 허락하였다. 임금이 기뻐하여 여러가지 풍악을 들여와서 연주케 하였다. 매우 즐거워서 태상왕과 주상이 모두 취하여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한참 뒤에 잔치가 장차 끝나려고 하니, 태상왕이 호상에 걸터앉아 잔을 잡고, 임금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여 마시게 하였다. 임금이 추창하여 앞으로 나가서 잔을 받아 근신에게 주고, 점위에서 스스로 잔을 취하여 태상왕 앞에 드리고 나서, 도로 잔을 들어 스스로 마시니, 태상왕이 임금이 다 마시기를 기다려서 마시었다. 임금이 앞으로 나아가서 말하였다"

"신이 처음에 예궐하여 듣자오니, 불경을 보시기 때문에 술과 고기를 드시지 않는다 하시기에, 오늘의 즐거움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였사온데, 특별히 허락하여 주셨으니, 기쁘고 다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태상왕이 술과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은 일단 불교 문제 때문에 걸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죽은 자식과 사위, 동지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 것, 즉 이방원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정말 중요한 문제였는데... 결국 고기와 술을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뭐 얼마 후에 다시 고기 안 먹겠다고 하고 아프니까 오지 말라고도 했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나 봅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만남은 잦아지고, 말도 좋아집니다. 가령 급히 태종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너 격구 나한테 져서 벌 줄 거다"고 놀리기도 했죠. 물론 그 다음엔 이런 진지한 말을 했지만요.

"너의 마음으로 재결하였겠지만, 회안이 이미 쫓겨나고, 익안군이 이미 죽고, 상왕이 출입하지 않으니, 친척 가운데 살아 있는 자가 몇 사람이냐? 일이 이루어질 때에는 돕는 자가 많지만, 일이 낭패할 때에는 돕는 자가 적다. 사생지간에 돕는 자는 친척 같은 것이 없다. 네가 그들을 보전하면, 국가의 재앙이나 천변·지괴가 적어질 것이다. 이 일은 큰 것인데, 나는 장차 큰 근심이 있을까 두려워한다"

여전히 잊지는 않았지만 용서했다... 는 거겠죠. 이후에는 불러서 잔치를 열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진지하게 충고를 해 주기도 합니다. 특히 태종의 첫번째 전위 파동을 벌일 때 불러서 디게 뭐라고 했죠.

"나라를 전하는 것은 국가의 대사인데, 왕이 나에게 고하지 아니함이 옳겠는가? 더구나 왕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벌써 희어졌나? 학문이 아직 통하지 못하였나? 사리를 알지 못하는가? 갑자기 물러나 편안히 쉬려 하는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내가 백세를 맞은 뒤에는 자의대로 행하게 두겠지만, 아직 죽기 전에는 다시는 이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꾸짖은 다음에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서 벌주를 먹였죠. - -a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때 진짜 전위했으면 나라에 상왕만 세 명이 되고, 무엇보다 첫째 양녕대군이 왕이 되게 됐었습니다 (...) 물론 진심은 아니었겠지만요.

그렇게 살던 태상왕 이성계는 태종 8년 5월 24일, 1408년에 눈을 감게 됩니다.

"병이 급하매 임금이 도보로 빨리 달려와 청심원을 드렸으나, 태상이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 승하하였다. 상왕이 단기로 빨리 달려오니, 임금이 땅을 치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영웅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4. 그 후
이성계가 이방원을 완전히 용서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기들만 알겠죠. 다만... 어쨌든 자기가 세운 나라를 자기가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을 겁니다. 거기다 미우나고우나 자기 자식이었구요. 거기다 마지막에서 좋은 모습들이 나오고, 이방원도 자기 자식 양녕 때문에 고생한 점 등이 있는데다 어쨌든 정치는 잘 했기에 용의 눈물에서 이런 모습이 가능했을 겁니다.



이성계가 죽은 후에도 이런 장면이 있죠.

고려의 마지막 명장으로서의 모습,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세우는 모습부터 1, 2차 왕자의 난으로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비극까지 봤으며, 마지막에는 자식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모습까지... 정말 다양한 면모를 보여 준 왕이었고 덕분에 수 없이 많은 소재거리를 만들어 줬습니다. (...) 지금은 단물이 다 빠졌는지 거의 안 나오지만요.



그는 함흥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태종은 함흥의 억새를 가지고 그의 무덤을 덮습니다. 이런 꼼수를 통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 모습은 그의 인생을 참 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무인으로서의 이성계, 왕으로서의 이성계, 그리고... 모든 걸 잃은 후에 슬퍼하다가 결국 그 자식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던 이성계의 모습까지요. 향년 73세. 긴 삶이었습니다.


한편 이방원은 피로 물들었던 과거를 떨치고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시작합니다. 특히 공신들을 숙청한 것은 정말 잘 했다고 할 만 합니다. 그것도 죽인 사람은 민무구, 민무질 등 자신의 처가 정도로 생각보다 죽은 사람은 적었습니다. 정도전의 유족 또한 죄를 용서했구요. 똑같이 나라를 뒤집었는데도 이렇게 핀포인트로 살생을 덜 했으며 자기가 싼 걸 확실히 치운 점 때문에 손자 세조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일 겁니다. 당한 공신 입장에서야 불쌍하겠습니다만... 처가 민씨는 몸을 사리긴 했어도 외척으로서 너무 성장해 버렸고, 이숙번은 정종조차 무시할 정도로 권세를 부렸었으니까요. 장인 민제나 하륜이야 나이가 너무 들었지만 나머지는 세자를 위협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죠.

이방원이 정말 속죄를 했을지... 그건 상상에 맡겨야겠죠. 어쨌든 지은 죄보다야 덜 하겠지만 그 역시 아들 때문에 골머리 앓기는 했으니까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조선의 초기를 장식한 두 왕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

뭐 아직 태종의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지만요.

외전으로 따로 빼려고 했습니다만... 우선 이 이야기를 끝내는 게 나을 듯 하네요.

지금까지 다룬 것들을 보면... 맨 처음에 했던 신라의 삼국 통일 이야기와 후삼국시대 이야기를 빼면 다 조선시대네요. 어느새 안 건드려본 왕은 몇 명 안 남았습니다. 대충 따져보면...

연산군-중종 / 효현숙 (북벌 이야기는 했지만) / 헌철고순 정도인데요. 그 외에 성종이나 명종도 있지만, 이들을 시리즈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역사 시리즈물은 이것으로 쉬겠습니다. 당분간은 단편들만 여러 개 올리면서 연재게시판의 북유럽 신화 얘기에 집중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시리즈물은 처음부터 힘이 너무 들어가고, 끝날 때까지 긴장하게 돼서요.

뭐 그렇다고 역사 얘기 안 올리는 건 아닙니다. 훈민정음 시리즈 마지막 편이 남아 있고, 그 외에도 훈민정음 가지고 여러 개 더 쓸 예정이구요. 안 다룬 왕들 역시 단편에서 2, 3편 수준으로 짧게 짧게 쓸 생각입니다. 다만 5편이 넘어가는 중장편은 올해는 이게 마지막일 듯 싶네요. 그리고 이전에 밝혔듯 조선 말에서 일제시대까지, 이른바 "근대"는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외전으로 다루려 했던 태종-세종대의 대명관계입니다. :) 조만간 올릴테니 기대해 주시길... 주로 조공 문제와 동북면 개척 문제를 다룰 거니까요.

그럼 지금까지 왕자의 난 편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__)

에 그리고... 오늘은 뿌요일 >_<;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1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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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16 12:23
수정 아이콘
선리플 후감상! >> 이건 첫플을 먹기 위한 싸구려 트릭이었고요, 이제부터 진짜 댓글입니다.

- 저는 이번화의 짤방이 저 그림일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측을 했었습니다. 정말 너무 잘 만든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성계/ 이방원 부자는 좀 심하게 멋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 인물들이야 많이 힘들었겠지만, 뭐 영웅이라는 게 원래 사람 사이에 용이 태어난 것이니,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 완결 감사합니다! 눈시님의 근성에 경의를 표합니다 :)
Je ne sais quoi
11/11/16 12: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송시열 이야기 기대했는데 더 이상 시리즈가 없다니 ㅜ.ㅜ 외전으로라도 좀... 굽신굽신
11/11/16 12:43
수정 아이콘
앗 브금이 레퀴엠이군요!!
11/11/16 13:08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조선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됐네요.
11/11/16 13:15
수정 아이콘
음.. 정신없이 봤습니다. 이번편도 재밌군요
그림자군
11/11/16 13:55
수정 아이콘
용의 눈물은 정말 너무 잘 만든 드라마에요. 저 오래된 드라마가 지금 봐도 너무 좋은 걸 보면...

BB님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승리의기쁨이
11/11/17 17:58
수정 아이콘
이글보면서 용의눈물을 본적이 없었는데 용의눈물보면 디게 재미있겠다 생각을했는데
리플에 용의눈물글이 많네요
좋은글 감사하고 외전도 항상 기다리고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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