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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6 21:15
진짜 지극히 개인적인 제생각인데
오나라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점, 위나라의 인재풀 + 올멀티 먹은듯한 자원때문에 결국은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19/01/26 21:16
자게 삼국지글에서도 몇번 본듯해서 계속 찾아보는데 위촉오 지형도가 안나오네요.
각설하고... 당시 중국의 농업지 태반이 위나라 영토였고, 인구수도 위나라의 압도적인 승리(위>촉+오) 였던만큼, 결국은 위나라가 촉/오를 말려죽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19/01/26 21:18
만약은 없지만 조조가 상당히 빨리죽고 조비도 빨리죽고 위나라도 위태위태했는데 촉이 형주까지 들고 있었다면 모양새가 다르긴 달랐을 것 같아요
19/01/26 21:25
손오가 뒷치기 들어오기 전에 관우가 최소 강릉은 확보할 정도로 상당히 잘 밀고 있었다는 점, 한중 방면에서 유비가 장안으로 진격했을 시 강족의 협력을 얻어 서북 방면을 가져갈 수 있었다는 점(이건 제갈량 - 강유 시절에도 실제로 성공했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조조가 죽고 후계 구도가 상당히 위태로웠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고 봐요.
19/01/26 21:26
운이 따르고 타이밍만 좋았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타이밍이란 게 30년 후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갈량이 그렇게 북벌에 목을 메었던 거라 생각해요.
근데 그노무 쥐새끼가....
19/01/26 21:32
(수정됨) 팩트 : 위나라가 통일 못함
세력도만 놓고 누가 이길거다 라는 이야기는 의미 없습니다. 결국 누가 마무리 짖느냐구 중요한일입니다. 제갈공명이 북벌할때 가장 성공확률이 높았던게 1차 북벌이었는데, 만약 이때 형주 라인이 살아있었다면, 적어도 관중은 그대로 넘어갔을 수 있습니다.(그놈의 가정.... 마속..) 이때의 관중의 생산력은 중원 탑티어인 상황이었죠. (진시황때의 수도가 관중이죠) 위 vs 촉 정도의 세력비에서 뒤집힌 경우도 종종 있었구요. (실전 예시 비수대전.. 정난의변..)
19/01/26 21:42
천하 삼분지계라는 게, 3개로 나눠서 통일을 유비세력이 하자는 거까지 였으면 실현 힘든 계획이고
그냥 당시의 정세나 유비 상황상 3개로 나눠서 후일을 도모 해봐야 한다는 거 까지로 한정 하는 거였으면 이뤄냈죠. 통일을 하든 못하든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에, 해내야 되는 상황이었고 이뤄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19/01/26 21:46
가능성이 아주 높진 않겠지만 아예 얼토당토 않은 소리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 일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가능성을 붙들고 있는 게 중요했겠죠. 적어도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을 당시에는 최선 수였던 건 맞겠죠.
19/01/26 22:00
조조도 반란이 많았어서...
후계구도도 있고 가능성이 0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조조가 원소 이기기보단 난이도가 그나마 쉬울것 같네요
19/01/26 22:22
고대전쟁은 경제논리보다.
부대의 사기와 군대의 질, 장수의 전략이 훨씬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조 조비 사후에 타이밍만 잘잡았어도 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전쟁이 경제논리로만 흘러갔으면 중국이 때마다 유목민족에게 멸망하는일은 없었겠죠. 뭐 이건 조금 다른 측면으로 접근해야겠지만요.
19/01/26 22:58
유관장 다 살아있고 형주땅 유지하고 1차북벌때 마속만 없었다면...
장안먹고 존버하다가 위나라 내부적으로 상태안좋을때 영혼의 한타 성공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19/01/26 23:02
유비나 제갈량이나 대단히 조직을 잘 굴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일 실패했다는걸 생각해보면 삼분으로 통일이 가능했냐? 는 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형주도 멀쩡히 유지하는 쪽이 이상한거라 생각되구요. 다만 성공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은 있긴 했죠...본문에 적혀있던 실패를 안 한다던지. 근데 저는 촉이 제갈량 살아있을때까지는 전반적으로 선택지를 잘 고른 편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잘 고르는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더 잘 고른 사람들도 역사에는 꽤 있긴 합니다만...
19/01/26 23:28
통일 자체는 불가능하다 생각되고, (형주를 뺏기지 않았고, 읍참마속이 없었다면,) 북벌은 절반은 성공해서 서북쪽 영토는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19/01/27 00:39
방통이 죽고 형주 병력 추가 동원 + 촉 공략에 1년을 더 소모한 시점에서 가능성이 많이 낮아 졌다고 봅니다.
방통 생존 상태에서 오나라 뒤치기 없었으면 양양 먹고 번성 진격 후 한중과 형주 방면에서 협공이 가능했을 거고, 마침 그 타이밍 전후에 조조가 병사했으니 그 이후 일은 정말 엄대엄이지 않았을까요? 전략가 1명과 1년의 시간이, 인재가 많지 않고 장년에 접어든 개국공신들 위주였던 유비군 상황에선 매우 크다고 판단되거든요. 방통은 죽었지만 관우는 안 죽고 오나라 뒤치기 없이 형주 먹었더라도, 대국을 보는 전략가가 제갈량 한명이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인 비의의 전성기는 한참 뒤에 왔기 때문에, 게다가 촉 정벌에 동원된 형주 병력의 공백을 극복하기 어려웠던 점 등으로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요.
19/01/27 02:08
천하삼분지계가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던 유비에게 기반을 마련해준 것만 해도 거의 기적같은 일이라고 봐서.... 조조가 하북 중원 다 차지할 때까지도 아무것도 없이 강릉으로 도망치던 게 유비였죠. 손책이 기반 잡기까진 북쪽에서의 위협이라도 없었지 유비는 점령을 목표로한 조조의 대군이 몰려오는 상황... 솔직히 천하삼분지계를 당시 사람들이 들었다면 그냥 비웃었을 겁니다. 미친소리라고..
19/01/27 02:27
북벌 나갔을때가 마치 이영호의 타이밍 러쉬처럼 최적의 타이밍에 나갔을텐데 그 때의 마속 등등의 생각치도 않은 변수만 없었으면 가능했을거라 생각해요 다만 유비 때 통일은 못했을 거 같네요..근데 후계자가 유선이라 안 되겠네요
19/01/27 07:36
제갈량이 조금 더 건강했다면[1. 일찍 죽지 않았고, 2. 건강 때문에 북벌 타이밍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천하 삼분 굳히기 까지는 되지 않았을까요???
장기전 굳히기 전략을 가지고 나왔는데, 2세가 아두고, 제갈량이 자기 수명이 얼마 안남아서 더블 타임 리밋 두고 하려니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해봄니다.
19/01/27 10:03
부하놈이 등산만 좀 덜 좋아했더라면...
은 반 농이고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 못 일어날 일이 없죠. 그 정도 변수는 언제나 있다는 걸 가정하면 (상사가 이릉에서 털렸다거나...) 가능성은 낮지 않았나 싶습니다
19/01/27 10:33
사실 오나라 뒷치기가 없었어도 그 전에 이미 관우는 서황에게 막힌 상황이었고,
마속이 없이 가정을 확보하고 천수 남안 안정을 굳히기 했다고 쳐도 그 다음 단계로 가려면 지형적 이점이 없는 관중평야에서의 회전이 필수라 쉽지 않죠. 천하삼분 굳히기는 이미 공명이 이뤄낸거고, 통일까지는 좀 더 변수가 필요했어야 할걸로 보입니다. 다만 5호 16국이나 독발수기능의 난을 보면 버티기만 제대로 됐으면 강유 말년엔 제대로 된 기회가 있었을 거 같아요.
19/01/27 11:56
가능하죠. 유관장 살고 형주 먹고 이릉대전에서 죽은 인재 킵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90퍼니 몇퍼니 확률따지는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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