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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9 14:26
세조 이후로도 조선왕조가 수백년 유지됐고 거기에 세조의 공도 있는데 좀 과하게 까이는 감이 있죠. 오히려 태종이야말로 은근 파파괴인데...
25/09/09 15:09
근데 어쨌든 무리를 정말 크게 한 편이라 평이 좋긴 어렵다고 봅니다. 개인의 능력은 괜찮긴한데 최고 성골 적통을 몰아내고 왕이 된 것의 부작용은 책임지긴 해야 하니;;;
25/09/09 15:18
공신전은 태종이 훨씬 많이 뿌렸고 이게 후대에 수습 안되어서 세조가 직전법 전환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요. 그리고 성골 적통이라고 할거 같으면 태조 재위기엔 조선왕조 최초의 정실왕후인 신덕왕후 소생 이방석이 이방원 따위보다 훨씬 최고 성골 적통이 맞습니다. 신의왕후는 태조 재위기에는 왕후 취급도 못 받았았고요.
25/09/09 16:28
영락제만큼 전임자가 무능해보이는 게 아니어서?(정확히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고 봐야겠지만)
밑에 이야기와 갈음하자면 태조-세조 차이는 면피용 명분-결과론 둘이 얼마나 충분하냐 차이죠. 고려 말기 정도면 도탄에 빠졌다고 평할 만 하고, 그 정도면 유교에서도 역성혁명의 명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맹자 쪽에서 주로 나오는 논리) 결과도 꽤 잘 풀린 편이구요 그러나 세조는.. 단종 시절이 도탄에 빠진 국가인가? 아 그건 좀.. 그냥 대비 수렴청정만 됐어도 불가능한 쿠데타라서.. 보통 세조가 지적받는 문제는 이것으로 인해 생긴 약점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죠. 영락제 북벌은 쓰잘데기없긴 한데 그래도 국내 황권은 영락제가 더 꽉 잡았다봐서 더 고평가하긴 합니다. 세조가 공신들을 꽉 잡았다고 보긴 어려우니..
25/09/09 16:35
(수정됨) 티아라멘츠 님// 그래서 '굳이 왕씨를 갈지 않고 고려라는 국체를 유지하면서 개혁하면 왜 안 되는 거임?'이라는 정몽주 진영에 반대할 논리가 있나요? 이성계와 전주 이씨가 왕되고 싶다는 거 외엔? 심지어 이성게가 흥국사 9공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가 뭡니까? 가짜 왕씨를 폐하고 진짜 왕씨를 세워서 공양왕을 세웠다는 거 아닌가요? 이러면 이미 가짜를 폐하고 존왕의 예로 왕씨를 다시 세운다고 해놓고 이성계 본인이 반역을 한 거 밖에 더 됩니까?
거기에 임금이 부덕하면 폐하고 다시 세운다는 논리도 말이 안 되죠. 공양왕은 적어도 악정은 하지 않았고 맹자는 악정을 저지른 왕을 필부라고 했지 그런 왕이 아닌 사람까지 억지로 폐하고 죽이라는 말은 안했습니다. 그리고 맹자가 어디서 아무리 전 왕조가 실덕했기로서니 이왕삼각 무시하고 전 왕조 왕족들 다 쳐 죽여도 된다고 했나요? 주 무왕은 상 주왕을 토벌했어도 상의 왕족인 미자계를 송나라의 봉국으로 세워 국가의 제일가는 빈객으로 삼고 칭호 또한 모든 제후국 중에서도 으뜸가는 공(公)으로 두었는데요? 삼대의 아름다운 본보기를 맹자가 어디서 씹으라고 했습니까? 삼대의 예를 어기고 잔학한 짓을 했으니 맹자의 논리대로면 이자가 필부이고 이자가 토벌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국내 왕권 잡는거 이것도 웃기는 얘기고 세조 본인부터 수도 한복판에 대궐같은 절 짓고 청기와 8만장 구워댔는데 그 악랄한 대간이나 사관들이 입도 뻥끗 못했습니다. 이거는 조선왕조실록 뒤져봐도 세조가 유일할 걸요? 조선 왕사에서 국내 왕권을 이보다 쥐잡듯이 잡은 왕은 없어요. 신숙주고 한명회고 권람이고 세조 생전에 입도 뻥끗 못했고 예종대까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어리고 즉위 과정에서 잡음 있었던 성종대에나 입이 트인거죠.
25/09/09 16:42
된장까스 님// 그래서 성계육 같은게 나오긴 했죠? 그러나 그건 즉위 후 벌어진 일이고, 즉위하기까지는 어쨌든 '말은 붙일 수 있다'는 거죠. 사실 고려라는 국체를 유지하며 개혁>이거 말은 좋지만 실질 무신정변 최충헌 비스무리한 위치로 남게 되는거고, 정몽주 진영도 대충 그정도쯤에서 우리 타협하자 정도는 각오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그것도 그렇게 성리학적이냐 하면 애매하고 조선이 된 것보다 그게 더 잘 돌아갔을까 하면 더 비관적이고.. 일단 아무리봐도 결과적으로 좋을 일은 아닐테니. 그러나 세조는 이거는 없는게 어지간하면 결과적으로 낫습니다. 뭐 단종이 나중에 폭군이 되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굳이굳이 세조가 나와서 조선이 더 잘됐다고 해석할 건덕지가 없는지라
25/09/09 16:49
티아라멘츠 님// 똑같은 논리로 결국 결과로 보면 우리가 수백년 이후에 보니까 세종이 나와서 한글도 만들고 조선이 후대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거지 당대 논리로 보면 정몽주가 이씨들이 왕되면 뭐 어떻게 될 줄 알고서 찬동해 줍니까? 막말로 이성계 자손들이 유유, 소도성, 주전충의 자손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어디있다고? 실제로도 방원이가 맏아들 그런 놈한테 적통이라며 계승해 주려고 했죠?
결국 결과론적으로 보면 똑같습니다. 세조가 즉위해서 그가 한글을 열성적으로 보급한 덕에 한글 확산은 초선 초기부터 대중화될 수 있었고 오늘날에 이른거지요. 문종, 단종이 더 살았다고 한들, 세조보다 이걸 더 잘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구요.
25/09/09 16:51
된장까스 님// 그리고 청기와 따위가 아니라 그래서 공신들이 얼마나 견제가 됐는지 봐야한다고 보는데 공신 세력이 견제가 크게 됐냐면 글쎄다 싶습니다.
한명회는 둘째치고 뭔 트루 살인마가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정치적으로 용인해줄만했다쳐도 이런 대놓고 이러는 시대가 조선에 별로 없습니다.
25/09/09 16:55
(수정됨) 티아라멘츠 님// 하륜 이숙번이 각종 축재하고 태종이 그러던 말던 내가 알빠냐 했던게 태종시대고 공신들의 축재나 겸병은 태종 시대가 더 심했습니다. 왕이 공신이나 자기 친족 비호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게 그 시대인데 무슨 선조의 살인마 아들들에게 죽은 사람들 친족들은 선조의 왕권이 대단히 이전보다 강해서 그거 묵인했습니까? 욕하고 처벌하라는데도 선조가 씹으니까 꼼짝도 못하던 시대가 조선시대고, 후대에 사도세자가 각지에서 살인 해대는데도 입 다물던 시대가 그 시대입니다.
+ 25/09/09 20:34
티아라멘츠 님// 성계육은 날조에 가까운 야사죠...세조가 나와서 조선이 더 잘됐다고 해석할 건덕지는 한글보급 있죠 이건 확실히 문종보다도 세조가 더 나서서 한거라 나머진 경국대전이나 외치나 이런건 뭐 단종이 되건 누가 되건 할거할건데 더 잘할지는 의문인 거긴 하고
25/09/09 16:11
에이.. 이건 무리수죠
이방석 세자로 하는 건 멀쩡히 방번도 있고, 신의왕후는 방석을 세자로 해야 하니까 취급이 떨어진 것도 있고, 말자고 말씀하신 논리면 방번이 맞고 장자 상속이면 방과가 맞고 방석은 어디에도 없어서 정통성 이슈가 오히려 크게 발생한 축이죠. 실제로 이성계는 음 방번 세자해줘야지 했던 편이구요
25/09/09 16:22
전주 이씨는 개성 왕씨를 몹시 경계해 멸족에 가까이 이르게 했고 이방번의 장인인 왕우의 아들이자 방번의 처남인 왕조와 왕관은 왕우가 죽기 전까지 외가 성인 노씨로 개성해야 했을 정도였는데 이런 상황에 왕씨를 차기 국구로 만든다고하면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죠.
어쨌거나 말씀하신 논리대로면 태조가 신의왕후를 사후에라도 왕후로 책봉했어야 성립하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성계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상 태조 재위기에는 '서자들'은 신의왕후 소생이 맞고 '적자들'이 이방번, 이방석입니다. 이방번은 처가가 왕씨라서 배제 된거 뿐이고 그래서 이방번 본인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진짜 적장자'는 이 구도에서 본인이 맞았으니까요.
25/09/09 16:37
애초에 즉위전까진 1왕후 소생들이 고려 조정에서 적자 자격으로 있던 것으로 아는데요. 좋게 봐도 '즉위 후 신덕왕후만 정식 왕비로 인정했다' 정도의 문구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작업으로 정통성이 갑자기 생기냐하면 그건 아니고;;
여말선초 문화상 둘은 그냥 먼저 결혼한/나중에 결혼한 차이 정도로 봐야죠 한쪽을 정처/계처로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신덕왕후를 정치적으로 먼저 정처라고 선언했고 그 뒤 패배해서 계처가 된 건데 이런 상황에서 정통성을 논하기는 많이 어렵죠 그것보다는 그냥 유목민식 말자상속을 하려든게 맞지않나 싶습니다
25/09/09 16:44
아니요, 그건 사가의 논리고 왕실에서 정실 왕후를 세우고 이성계가 이 사람이야 말로 나의 유일한 왕후라고 공인한 이상 적자는 신덕왕후고 나머지는 적자 아닌 서자라고 공언한 겁니다. 정말로 신의왕후 소생을 대통을 이을 적자로 공언하려면 신의왕후를 추존했어야죠. 근데 이성계는 왕후로 추존 안합니다. 추존은 다 신의왕후 소생 아들들이 한 거지. 뭔가 착각하시는데 태조가 이방석을 세울때는 완벽한 적자는 이쪽이고 서자들이 신의왕후 소생들입니다. 이걸 무력으로 뒤엎고 적서의 적통을 바꾼게 무인정사고요.
25/09/09 16:59
고려 법으로는 둘 다 경처 향처로 적법한 정처입니다. 조선을 세우고 정처 인증했으니 이제부터 정통성 신덕왕후만 정처임 땅땅 이건 어..
아무리 그래도 그 시절에 갑자기 그렇게 선포한다고 다들 진짜로 그리 받진 않죠. 모두가 고려 시절 법에 익숙해져있는데요.
25/09/09 17:02
(수정됨) 티아라멘츠 님// 고려 왕실의 법도로는 정처 정실 왕후 소생만 계승권이 있고 나머지는 '소군'으로 대하는게 원칙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천한 몸에서 나온 모니노는 적통으로 받을 수 없다'고 명덕태후랑 공민왕이 싸우고 공민왕이 윤색 작업 거쳐서 다른 궁인을 우왕의 생모라고 속이고 추존하고 그랬던 거고요. 고려 왕실은 적서 구분이 조선보다도 훨씬 엄격하고 그거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신의왕후 소생을 소군 취급 안한 것만으로도 이성계가 왕족으로 대우는 해주되 '너희는 적통을 이를 적자가 아니다'라고 취급한게 더 분명해지는 거고요. 사가의 법도와 왕실의 법도 정도는 좀 사실 확인 챙기시고 답변하시죠.
25/09/09 17:20
된장까스 님// 말씀하신게 맞는데 문제는 우선 왕실 쪽 인물이 아니고 경처 향처는 지방 인물에게서 발생하는 문제죠. 애초에 왕실에서는 터질 수 없는 이슈고 이성계가 지방쪽 출신이니까 생기는 문젭니다. 사가 쪽 법도로도 원래는 누군가 하나는 첩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처 쪽이 그걸 납득을 못하니 그냥 둘 다 정처 해라 라고 대충 때워서 생긴 사가의 법도고.. 그래서 1왕비소생 아들들은 원래 서자가 아니었으니 과거 급제도 가능했죠. 원래 적자로 살아왔으니 가능한 일. 뭐 당연히 이따위 누더기 법도가 왕실에서 적용되는 건 아니라 말하실 것 같긴한데 그래서, 태조의 뜻에 따라 후처만 갑자기 정실 되고 장자도 놔두고 나머지 장성한 아들들 놔두고 실질 아무것도 안한 막내가 적장자 취급을 받는데 이게 정통성이 있다? 말씀대로 무리하게 정통성 없이 뒤집어 엎은거면 반발이 관측되어야 하는데(종친/백성/사대부 기타등등 어느쪽이든) 그런거 없죠. 오히려 모두가 음 태종이 그럴만했네로 끝나는데 선생님 말처럼 정통성없이 무리했다면 그런 결과까진 나오기 힘듭니다.
25/09/09 17:26
티아라멘츠 님// 반발이 왜 없습니까, 태조 본인이 반발해서 직접 아들 상대로 칼을 들이밀었는데요. 크크크 우리야 이방원이 승리한 세계관에서 살고 있으니 응 그럴만 했네라고 여기는거지 무인정사나 조사의의 난에서 이방원이 패한 세계관에서 이방원이 뭐 음 그럴만 했네라고 할까요. 위대한 건국군주에게 감히 대든 '서자' 난신적자라고 하지. 결국은 그 정통성을 결정하는건 힘이라는 사실만 증명하시는 꼴이 아닙니까. 힘 없는 정통성은 정통성이 될 수 없고 이성계, 이방원, 세조의 예는 그걸 그대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25/09/09 17:34
된장까스 님// 아뇨 그게 아닙니다.
태조 말고 난 당일 말하는 겁니다. 계유정난이나 영락제같은 경우는 사실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는데(정통성 없는 쿠데타가 그렇지만) 무인정난은 오히려 딱히 큰 걸림돌이 사료상 발견되지 않습니다. 정통성이 정말 없는 무리한 쿠데타라면 어딘가에선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사료상으론 궁궐수비대조차도 전투 의욕이 별로 없습니다. 힘으로 다 된다 그건 맞긴 하지만 애초에 1차 무인정난 당일 딱히 막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조차도 보이지 않았단 이야기에요.
25/09/09 17:38
티아라멘츠 님//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계유정난 역시 왕실 종친들과 사대부들의 합의하에 김종서, 황보인 박살내고 후일 사육신이 되는 이들마저 공신으로 복록을 받은 완전히 성공하고 찬위까지도 무리없이 흘러간 순탄한 쿠데타 아닙니까? 크크크 무인정사와 계유정난을 두고 그런 논리를 대시면 안 되는거죠. 막말로 당대엔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보다 조사의의 난이 더 파급력 컸을 걸요?
25/09/09 17:40
티아라멘츠 님// 진짜 파고들면 들수록 조손이 아주 똑같은 인물에 가깝고, 원천석이 어린 세조를 두고 조부랑 다를게 하나도 없는 아이라고 평가한 건 거의 예언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이 이야기 자체가 태종이나 세조나 근본적으로는 다를게 없다는 후대인들의 통찰이겠죠.
25/09/09 17:44
된장까스 님// 계유정난은 사료상으로도 딱히 순탄하게 진행된 물건이 아닌데요;;;
오히려 계유정난은 사료상에 "어차피 이제 무를 수도 없다" 식으로 그냥 진행시킨 것에 가깝습니다. 당장 병사중 일부 이탈/최항 소극적 반발이 나오는데 무인정사는 그런 묘사조차도 없습니다.
25/09/09 17:50
티아라멘츠 님// 무인정사 당시에도 세자 이방석을 위해서 절의를 지키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자꾸 말장난 하시면 안 되는거죠. 모든 논리가 파탄나니 지엽적인 면을 들고 오시는데, 결국 당일에 매우 순탄하게 전개되었고 반대파의 거두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척살되었고 사대부나 종친들의 지지를 받아 순조롭게 대권 가도를 달린건 똑같습니다. 그냥 조손이 같은 인물들인데 그 본질적 논의 집어치고 논리가 파탄나서 지엽적인 부분에 집착하시는건 안쓰러울 뿐입니다.
25/09/09 17:54
된장까스 님// 전 무인정난은 에효 태조가 저 막내를 세자로 세웠으면 그 감당은 태조랑 방석 니들이 알아서 해라 정도로 일반 사람들은 받아들였다고 봅니다. 안 그러면 그정도로까지 쿠데타가 프리패스 되기는 힘듭니다. 그 시절 사람들 기준으로 방석이 정통성 넘치는 세자라 보긴 무리죠 그럼.
전체적으로 금강을 태자로 삼은 견훤과 진행 상황이 매우 유사해요 차이점은 태종은 견훤 박살낸 신검일 뿐. 그 케이스는 신검이 불효자 소리는 들었어도 정통성 이슈는 없었죠 태종도 비슷한거고.
25/09/09 17:58
티아라멘츠 님// 아 그래서 태조가 군사를 일으키니까 신덕왕후 쪽 친척 조사의가 자기랑 별 상관없는 곳에서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한성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거군요. 결국 전쟁 초기에 멍청하고 힘아리 없게 아들한테 사로잡힌 이성계 잘못인거지 이성계가 무도한 아들을 죽이겠다고 수만명의 대군을 이끌 명분은 충분했다는 거 아닙니까?
25/09/09 18:00
된장까스 님// 사료상 시작하자마자 일부 병사들이 어 이거 역모네 하고 도망가는 서술까지 있었던 쿠데타를 매우 순탄히 전개되었다고 하는건 전 동의 못하겠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하시는데 정통성이 충만하다면 사료상/야사상 그런 반발이 나온다는거고, 세조/영락제는 그래서 그런 반발이 꽤 관찰되는데 태종은 그런게 관측되지 않는다, 심지어 신검도 정통성적인 면으로는 반발이 나오지 않았다(아버지 카리스마가 셌을뿐) 그래서 서자가 무리한 반란한 것보다는 적자쪽의 말자 상속 반발에 가깝다고 서술하는데 계유정난도 순탄했다는건 무리한 반박이죠 너무 핵심 논리에 모든걸 끼워맞추시는데 뭐 그럼 박정희 쿠데타도 순탄했던 물건이 됩니다.
25/09/09 18:00
티아라멘츠 님// 자꾸 '우리 방원이는 걔 손자에 비하면 잘못 없고 정당해요'로 논의가 수렴하는데 이건 팬심이죠. 세조 이유보다 더 팬이 많아서 우호적으로 실드치는 여론도 많은 '태종 이방원이라는 역사적 아이돌'이요.
25/09/09 18:04
티아라멘츠 님// 얘기해볼까요? 무인정사 당시 이방원의 가병들 밖에 없어서 몽둥이 밖에 없었는데 이방원이 비징하게 결행했다. 식의 일화나 역모네 해서 도망가려다가 세조의 탁월한 통수 능력으로 이를 진정시키고 거사를 성공시켰다는건 아주 전형적인 쿠데타 성공 당시의 묘사입니다. 박정희 쿠데타요? 그거 초기엔 4.19 혁명의 혼란상 속에서 장준하조차 '박정희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 기대 품은 쿠데타인거 모르십니까? 박정희 개인이 술병나발 불 정도로 불안해 했다는 일화가 있기는 한데 본질적으로 무인정사, 계유정난이랑 다를게 없어요. 쿠데타 수뇌부가 초장부터 5.16 군사혁명 운운하던게 5.16 쿠데타인거 잊어버리셨는지?
25/09/09 18:06
티아라멘츠 님// 자꾸 들고 나오는 예시가 성공했고, 당대에 권력으로의 여정에 아주 순탄했던 쿠데타 예시만 들고 오면 논리의 빈약함과 결국 힘이 정통성을 지배했다는 논의를 바꿀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국체적 정통성이 없었나요? 그런 정부가 정통성이 있는데 왜 박정희한테 정권을 빼앗겼습니까?
25/09/09 15:10
부적법하지만 유능하고 강력한 왕권이라는 레토릭이 박정희 전두환 때 유행했을 거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근래 들어 과도하게 욕먹는 감이 있는 거 같습니다
25/09/09 15:15
전번에도 얘기했지만 조선 왕조에 인간 쓰레기들 참 많은데 세조 혼자만 덤탱이 맞는감이 있죠.
어떻게보면 태세문 라인에 대한 이상한 환상이 좀 있는거 같기도 하고 크크크.
25/09/09 16:02
그게 다 정통성 있는 정실왕후 소생 이복동생 죽이고 왕된 조부님 보고 배운게 아니겠습니까, 원천석 인증으로 제일 조부랑 많이 닮은게 세조 아니었나요? 크크크
25/09/09 19:07
야사 중에서 원천석이 제자인 이방원을 이 데려온 자기 일가들 보고 세조더러 지 할배랑 똑같다고 한 일화가 있습니다.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43983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 다시 스승을 찾았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원천석은 흰옷을 입고 태종을 만났다. 그때 태종은 여러 손자들을 불러 스승에게 보이면서 물었다.“우리 손자들이 어떠합니까?” 원천석은 여러 손자들을 훑어보다가 한 아이를 가리키며…“이 아이가 할아버지(태종)을 무척 닮았구려!”“모름지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원천석이 훈계하고 타이른 그 아이는 훗날 단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首陽大君)이었다.'
25/09/09 16:46
광릉수목원도 좋고 광릉 자체도 좋아서
올라가보면 아~ 이런 곳이 왕을 묻을 만큼 명당이구나 싶어요 죽어서 좋은데 묻히는 건 좀 부럽네 생각이 들었습니다
25/09/09 17:29
세조 재평가할거 없죠 아무리 인기많은 역사인물들 끌고와서 까내려봤자 비슷하지도 않고 명분유무가 결정적인데 이 무슨..
25/09/09 18:03
현대인들이 흔히 역사를 특히 조선사를 바라볼 때 간과하는 것이 한 왕조의 사회가 고정 내지는 정체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 몽골 천호장 가문에서 고려주류로 편입된지 1세대밖에 안지난 이성계 시절과 유교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세종 이후 시대는 사회 분위기도 다르고 가치관도 차이날 수밖에 없습니다.
태종과 세조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근본적으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봅니다.(물론 세종 아빠 버프도 무시 못하겠지만요.. 아니 더 클지도?) 권력 획득 과정을 떠나 통치 그 자체만 본다면 태종은 중앙집권과 유교 정치라는 조선 정치의 두 축 중 전자를 확립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신을 다루는 기술도 노련했고 통치도 생각보다 부드러웠죠. 반면 세조의 통치가 당시 조선의 시대정신에 부합했는가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즉위 초에는 유교 이념으로 무장한 사육신과 생육신의 도전을 받아야 했고 왕권 역시 태종과 비교하면 취약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공신을 견제하기 위해 또다른 공신세력을 육성하는 식의 정치는 결국 예종 대 파행을 맞았죠. 잘한 부분도 분명하고 부국강병이라는 나름의 목표의식도 있긴 했지만 당장 그의 정책과 집권과정은 후대의 후손들로부터도 부정당하거나 수정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태종과 세조를 굳이 구분한다면 태종이 더 상위호환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물론 이게 본인들의 역량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살던 시대 자체가 달랐다는 점도 크겠지만요..
25/09/09 18:21
냉정하게 태종 이방원이나 세조 이유나 다를 것도 없고 그냥 방원이가 '세종 아빠 버프' 받고 이유가 '세종 아들 너프' 받은거 맞다고 봅니다. 이 고고한 '세종왕조' 서사에서 '세종의 업적을 유지하고 확산시킨 인물'보단 '그 세종을 낳은 인물'이 당위적으로 옳다는 쪽이 서사적으로는 매력적이긴 하니까요. 근데 이 모든 논쟁의 총핵이자 세종 평가의 핵심인 '한글의 창조와 보급'에 있어서 태종이 세종을 낳아서 공이 있다면 세조도 그 누구보다 아버지의 창조물을 유지 보급하는게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매력적인 안티 히어로 이방원'이 '아이돌'이라서 더 평가가 좋다는 결론밖에는 못 내겠네요.
25/09/09 18:41
(수정됨) 현대의 이미지나 세종의 서사를 모르는 당대인들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신지..
이방원은 조선 왕조 세운 데 있는 공 + 변방 호족 집안의 과거 급제자 + 조선 초기 혼란한 와중에의 쿠데타 등등의 배경이 있고 세조는 이미 안정된 왕조에서 그냥 넙죽 엎드려 살면 멀쩡히 살 수 있던걸 왕하겠다고 찬탈한거라 얘기가 완전 다르죠. 중국사만 봐도 당태종과 영락제의 찬탈에 대한 평가가 같습니까? 둘 다 명군이었지만 후대에 훨씬 비난을 받는 건 영락제죠.
25/09/09 19:02
예, 저도 그게 완벽하게 안티 히어로의 서사에 성공한 '중국의 이방원' 이세민과 어설프게 서사 구축에 실패한 '중국의 이유' 주체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여기서 명성을 떨치셨던 신불해님의 글에서 이세민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자기 미화 서사에 성공한 인물인지 나왔던 것처럼, 전 이세민과 이방원이 비슷한 과고 그런 서사를 만드는데 실패한 주체와 이유가 비슷한 과라고 보거든요. 이세민처럼 지만 잘났고 대항하는 놈들은 다 쓰레기들이라고 하면 자기 인생은 물론이고 후대에도 편한데 주체랑 이유는 건문제와 단종을 '대업을 방해하는 인간 쓰레기'로 만드는 그 마지막 한 걸음 못 내디어서 지금까지 욕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25/09/09 19:09
서사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 당대와 그리고 현대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왕조에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인물들과 왕조의 초기 쿠데타로 형제들을 제거한 인물들을 같이 평가하지 않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이 댓글타래에서 많이 반복된 얘기지만 현대에도 거의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이세민과 이방원보다 주체와 이유의 명분이 훨씬 취약하다고 생각하고 이는 당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형제를 제거하는 행동보다 이미 왕위에 앉은 조카의 제위/왕위와 목숨을 빼앗는 걸 훨씬 부도덕한 행위로 생각한단 겁니다. 그게 본문에서 광릉이 별점 테러를 받는 이유고 댓글들에서 세조가 비난을 받는 이유입니다. 세종대왕의 서사니 안티히어로 이미지니 세부적 공과니 하는 문제보다 더 1차적으로요.
25/09/09 19:16
(수정됨) 형제는 2촌이고 숙질관계는 3촌인데 결국 권력을 위해서 지친을 죽이는 건 다를게 없습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자기와는 다른 종족의 피를 하나 더 물려받은 조카보다 형제 쪽이 더 심한게 아닌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명분이 취약하다고 보는건, 서사에 불과하다는 걸 이거만큼 잘 보여주는 증거가 있나요? 권력을 위해서 형제를 죽이는 게 조카를 죽이는거 보다 훨씬 정당하다는 주장을 생각해보면 이 이상한 도덕율의 비틀림이야 말로 서사라는게 얼마나 중요하는지 보여주는 산 증거죠.
아 그러고 보면 이성계 애비인 이자춘도 지 조카 이천계의 천호 자리를 찬탈했죠. 근데 이 때는 조카가 삼촌한테 사양했다고 윤색(거짓말)을 했고 결국 이천계는 이성계를 죽이고 자리를 빼앗으려다 실패했습니다. 뭐 이건 잘 아는 사람도 없고...저 집안 내력이 본래 이렇습니다.
25/09/09 19:26
이건 일반적인 사람의 도덕적 기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1. 형제간의 상쟁은 같은 왕자의 입장입니다. 왕위를 찬탈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신하가 왕을 직접적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입니다. 동서 어느 국가건 정상적으로 왕의 통치행위가 펼쳐지는 나라에서 그게 왕위를 목표로 하는 거라도 권력자끼리의 상쟁보다 왕위를 찬탈하는 게 훨씬 더 비난받았습니다. 2. 영락제와 세조의 공통점으로 장성한 어른이 소년 왕을 핍박해서 왕위를 빼앗고 찬탈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도 어디든 마찬가지로 장성한 어른이 어린이을 핍박하는 행위는 동서양 고금을 가리지 않고 비판받습니다. 그게 왕위와 목숨까지 빼앗은 거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3. 이방원과 이세민, 주체 모두 상대 세력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명분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유는 반대 세력이 본인을 견제했을지언정 제거까지 갈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최소한의 정당방위에 대한 명분마저도 가장 약하다는 겁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세조와 영락제의 명분이 취약하다고 보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된장까스님이 타인은 못 보는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라요.
+ 25/09/09 19:29
(수정됨) 아 그렇군요. 그럼 이자춘이 조카 이천계의 자리를 빼앗아 찬탈한 것도 같은 도덕률로 비판받아야 하겠군요. 그럼 이성계 집안은 애초에 자신들이 고려에서 출세한 원인인 쌍성총관부의 천호로써 고려에 투항했던 것이라는 것에 아무런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지 않나요? 이것도 숙부가 조카의 자리를 찬탈하여 이득을 챙긴 사례인데 말입니다. 애초부터 이성계 집안의 권력 원천부터 최소한의 명분과 도덕성 따윈 없었고 오로지 힘과 속임수, 찬탈만이 있었다 인정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 25/09/09 19:34
이자춘이 이천계 찬탈한 건 저도 처음 듣는 사실인데 비난할거면 하셔도 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왕위를 빼앗은 건 아니니 같은 비판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 어렵겠구요. 지금 말하는 건 세조의 찬탈행위가 도덕적으로 더 비난받을만 하냐는 건데 갑자기 왜 이성계 집안의 권력 원천으로 이야기를 튀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성계 집안의 권력을 얻는 과정의 부도덕성에 대해 논하는 글이 아닌데 말이죠. 저는 조선 왕조 500년간 벌어졌던 모든 성공한 쿠테타와 반정 중에서 가장 명분 없던게 세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게 전부입니다.
+ 25/09/09 19:39
Meliora 님// 권력의 원천에 대해선 왕위를 빼앗는 건 되고 동북면의 왕으로 군림하던 전주 이씨 집안의 천호 자리는 빼앗아도 같은 기준은 아니군요. 이성계 집안 자체가 가문의 시조격 되는 인물부터 수많은 반정 반란으로 집안끼리 권력으로 다툼하던 자리고 삼촌과 조카 사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거 뿐입니다. 같은 삼촌 조카 관계에서도 도덕률이 지금 마구 튀고 있는데 결국 이자춘 이천계 서사를 잘 모르셨던 것만 봐도 얼마나 사람들이 강력한 서사 말장난에 넘어가기 쉬운지 증명하고 있네요.
뭐 반대로 조카가 삼촌의 자리를 찬탈한 인조반정도 한때는 인조가 암군이라면서 가장 도덕적으로 명분없는 찬탈로 평가 받기도 했으니 그려려니 합니다.
+ 25/09/09 19:45
된장까스 님//
다 좋은 이야기인데 그래도 1. 정상적으로 통치가 행해지던 왕위를 찬탈하고 2.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며 미성년이라 자기보호능력이 미약하며, 3. 권력에 대한 욕구 외의 명분이 없는. 이 세 조건을 만족하는 건 세조밖에 없네요. 보면 볼수록 도덕률이 튀는 게 아니라 그냥 비난받을만 해서 비난받는 것 같습니다.
+ 25/09/09 19:52
Meliora 님// 정상적으로 통치가 행해지던 왕위->김종서 황보인의 황표정사는 당대 왕족들부터 사대부들 까지 정상이 아니라고 비판받았습니다. 사육신이 괜히 이들 처내고 좋다고 공신자리 받아먹은게 아니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며 미성년이라 자기보호능력이 미약하며->이건 이자춘도 이천계가 이러다가 찬탈했으니 조상의 행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권력에 대한 욕구 외의 명분이 없는->정말 세조가 계유정난 할 때 이랬으면 그 사육신이 왜 세조한테 공신위를 받아 먹습니까? 당대 대신들에 대한 불만은 왕족들부터 해서 사대부까지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죠. 애초에 다들 권력에 대한 욕구가 우선이고 명분은 내세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봤을 때, 그냥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 절대악 세조를 절대악으로 만들 것인가 논리 짜맞추시기 놀이를 하시는 것에 불과하다는 감상입니다.
+ 25/09/09 19:53
된장까스 님// 세조가 왜 태종에 비해 많은 비난을 받는가에 대한 얘기인데 이자춘 얘기는 왜 꺼내는 거에요? 지금 이씨 집안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가 따지는 건가요? 단종에 대해 무슨 억하심정 있으신 분인가............
+ 25/09/09 19:54
프리오이 님// 아니오 딱히 억하심정은 없구요. 그냥 전주 이씨 전체의 권력 투쟁사에서 얘만 특별하게 더 절대악으로 욕을 먹을 필요는 있나 그걸 좀 따지고 싶을 뿐입니다.
+ 25/09/09 19:56
된장까스 님//
세조를 절대악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구요. 다만 셋을 동시에 한 사람은 조선왕조동안 세조밖에 없는 건 사실이네요. 명분이 가장 약한 반정, 미성년자인 왕의 작위를 찬탈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은 건 유일하긴 하죠. 이걸 이렇게 열심히 물타기하고 실드치시는 게 더 신기하긴 합니다.
+ 25/09/09 19:58
Meliora 님// 계유정난에는 명분적 목표가 있었고 왕족과 사대부들이 동의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려도 이러신다면 어쩔 수 없죠.
+ 25/09/09 19:58
된장까스 님// 왜 욕 먹겠어요? 조선에서 왕을 끌어 내리고 그 왕을 사살한 인간이 세조가 유일하니까 그런거죠. 연산군/광해군도 사살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단종은 미성년자 였으니 사람들이 더 감정이입하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 25/09/09 20:01
된장까스 님// 당시 왕족과 사대부들의 분위기를 정확히 아시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시는지...
황표정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완전히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세조가 기록했기 때문) 생육신의 존재나 민담, 야사만 봐도 당대 사대부가 어떻게 봤냐는 갈릴수 있는데 혹시 조선 중기 전공의 사학도신가요.
+ 25/09/09 20:02
프리오이 님// 아 그런가요, 저는 그런 기준이라면 조선에서 임금 세명(단종보다 어린 미성년자 한명 포함) 끌어 내리고 그 왕들의 목을 배어 사살하고 지켜주겠다 거짓말 한 후 왕족들을 바닷속이 수장한 인간 딱 한명을 알고 있어서 그 인간보다 악질적이다 싶지는 않네요.
+ 25/09/09 20:04
Meliora 님// 아이고 그럼 무인정사도 태종의 오른팔이자 복심인 하륜이 '옛 신하가 죽기 전에 이전 일을 다 기록해야 한다'면서 어거지 부르고 스스로 나서서 태조실록 다 뜯어 고쳤으니 그 부분은 좀 '같은 기준으로' 참작해 주세요.
+ 25/09/09 20:04
된장까스 님// 이것도 말도 안되는 게 이건 역성혁명이잖아요.
역성 혁명에서 전 왕조 숙청한 거 비난하는 건 그럴 수 있는데 이걸 반정에 들고오는건 너무 물타기죠.
+ 25/09/09 20:12
Meliora 님// 역성혁명도 역성혁명 나름이죠. 여기서 툭하면 까이는 조조나 사마씨도 각각 유씨나 조씨를 몰살한게 아니잖아요? 이왕삼각의 유교 윤리에 따라 예법을 지켜서 전조의 왕족을 보전하고 선양받았고, 유유나 소도성, 주전충 같은 인간은 역성혁명을 하더라도 그냥 전조 황족을 죽여버렸지요. 근데 이성계는 처음에는 종족을 보전해주겠다가 하다가 속이고서 개성 왕씨와 공양왕을 통수치고 처죽인건데 더 악질적이지 않습니까? 정말로 유교 윤리를 따르는 도덕국가 조선의 건국군주 치고 이만큼 유교 도덕 안 지키는 난신 적자가 어디 있다고요.
자꾸 위에서 맹자도 역성혁명을 옹호했다고 하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맹자가 그리워하던 삼대에 '전조의 왕족를 몰살시키는 예법은 없었습니다.' 왜 유교 윤리를 집대성 했다는 조선의 건국 군주가 가장 비유교적 난신적자의 모습을 보이나요? 진짜 좀 토론이 하찮아 지는 감도 있네요.
+ 25/09/09 20:14
된장까스 님// 되도 않는 소리를 계속 하시네요.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을 멸하던 시대 아니었어요? 왜 억울하게 연좌제를 했느냐 이런거 따지실 양반이네. 지금의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시면 안되죠.
단종을 죽인건 지금의 관점이 아니라 당시의 관점으로도 엄청나게 욕 많이 먹은 사건이에요. 그러니 나중에 단종으로 복위되고 사육신/생육신 등이 충신으로 간주되었던 겁니다
+ 25/09/09 20:16
된장까스 님//
저도 지금 토론이 완전 이상해지는 걸 느끼는데, 원 글 -> 세조의 광릉이 욕먹음. 댓글 흐름 -> 세조는 명분이 없다, 욕먹을만 하다. 갑자기 난입하셔서 아니? 그렇게 치면 태종 이방원도 욕먹어야한다. 이성계도 욕먹어야한다, 이성계도 모자라 이자춘까지 욕먹어야한다. 이게 무슨 토론인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냥 세조의 행위 자체가 당대든 현대든 비난받을만 하다고 보는데 그걸 아니? 얘는 이짓했으니까 얘도 그럼 같이 욕해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보여요. 욕 하세요 그냥. 세조한테 공신첩이라도 받으셨어요? 왜 세조 욕먹는거만 그렇게 열심히 물타기하시고 못 받아들이세요? 원글이나 댓글이나 딴 왕들 잘못한 거 없다는 것도 아닌데.
+ 25/09/09 20:21
프리오이 님// 당대에 무조건 욕을 먹었다면 단종에 왜 200여년 후에나 복권됩니까 당대의 관점은 단종 동정론도 있었겠지만, 집권층과 사대부들의 논리는 세조 쪽에 손을 들어주었고 후대에 집권 세력이 바뀌면서 점점 시선도 바뀐거죠. 그나마도 세조를 완전히 욕하는 여론은 조선이 멸망하고 부터 나온 것이고요. 지금의 관점으로 보는 건 님도 똑같은데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헛웃음만 나오네요. 그리고 요즘 관점으로 치면 그 사육신 조차 단종이 복위 거사에 연류되었다고 주장함으로서 그의 명을 재촉했다는 평가도 알고 계시겠군요.
+ 25/09/09 20:23
프리오이 님//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라...
이 사이트에서 앞으로 망탁조의 욕하면서 깔깔거리는 유머 나오면 님이 여기에 동조하는지 살펴봐야겠네요.
+ 25/09/09 20:25
된장까스 님// 그럼 예종이 세조의 둘째아들이고, 성종이 세조의 손자인데 바로 복권 시킬수나 있나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로고 나니 단종/사육신 이런 사람들이 재평가 된 거죠. 연산군, 광해군은 복권 안 된거 보면 모르겠어요? 조선 시대에 복권 되었다는건 단종 폐위가 정당성이 없었다는게 조선시대에 통용되었다는 겁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이성계가 왕씨들에게 한 악행 끌고와서 쟤는 이랬네 저랬네 하면 계유정난의 정당성이 강화되기라도 한답니까?
+ 25/09/09 20:27
프리오이 님// 아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혹시나 모를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조위나 서진의 선양은 악질난신 적자 이성계와는 달리 님이 말하는 억울한 희생은 좀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유학 예교의 도리에 따라서' '이왕삼각을 충실히 따른 정석적인 선양 과정'임을 알려드립니다.
+ 25/09/09 20:28
된장까스 님// 혹시 LLM 쓰시면 댓글타래 복사 붙여넣기 하고 누가 더 논리적이고 더 토론에 적합한 태도인지 한 번 물어보세요.
LLM의 결과를 꼭 믿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한 번 해보세요.
+ 25/09/09 20:29
프리오이 님// 아니 세조 이유 얘가 특별히 다른 전주 이씨 다른 애들이랑 비교해서 절대악 수준으로 욕 먹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건데요. 그런식으로 따지면 조선 후기에 '태조가 왕우, 왕창을 신우, 신창이라고 부른것은 잘못이라'는 논의도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는데요.
+ 25/09/09 20:31
Meliora 님// 아마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같은 애들이 '이 토론은 된장까스가 압도적으로 비논리적입니다'라고 일러주기라도 했는가 보군요. AI의 권위를 빌어서 반박하고 싶으시다면야.
+ 25/09/09 20:32
프리오이 님// 예, 사마염 정도면 이성계에 비해서 도덕군주 맞죠. 조씨, 유씨, 손씨를 보전해주고 작호내리기 까지 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선 사마염은 착하고 이성계는 나쁜놈 맞습니다.
+ 25/09/09 20:35
된장까스 님// 압도적으로 비논리적이라고 하진 않았구요. 된장까스님께서 논점 이탈과 피장파장의 오류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소위 물타기라 불리는 행위죠.
참고로 된장까스님의 언어가 더 공격적이라고도 합니다. 이건 그냥 참고 사항으로 알아 두시구요. 처음부터 그럼 세조가 단종을 찬탈한 건 잘못했다. 하지만 다른 왕들도 이런 잘못을 했다. 세조를 절대악으로 비판하는 분위기는 잘못됐다라고 의견을 개진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구요. 물타기를 아무리 해도 세조의 찬탈이 조선왕조 사상 가장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반정인 건 맞는 거 같아요. 이자춘 잘못했고, 이성계 잘못했고, 이방원도 잘못한 거 맞아요. 근데 세조가 특히 더 욕먹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구요. 이걸 이해를 못하세요?
+ 25/09/09 20:37
된장까스 님// 세조가 특별히 욕 많이 먹은 이유는 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셨으니 패스하고, 된장까스님은 이성계의 악행에 대해 널리 널리 알리시면 됩니다. 일단 pgr자게에 글부터 하나 파서 쓰시고요, pd수첩 스트레이트 이런 곳에다가 제보도 좀 하셔서 많은 분들이 이성계의 악행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노력 하시길 바랍니다
+ 25/09/09 20:45
프리오이 님// 와 여기에 진짜 동의하는 게, 차라리 자게에 이런 내용을 모아 쓰셨으면 훨씬 좋았을 거 같아요.
조선 전기 왕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악행들, 혹은 전주 이씨 왕조의 부도덕성 같은 주제로요.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왜 대체 세조가 문제라는 얘기를 하는데 제가 이자춘이 조카 권력 빼앗은거까지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 25/09/09 20:40
이방원이 조선 왕조 세운데 공이 있다는 서사부터 사실 이방원이 얼마나 노련하고 꼼꼼하게 + 세종대왕까지 거들어서 잘 꾸며냈는지를 보여주는거라 세조는 그게 부실했던거죠
+ 25/09/09 21:11
윤정, 2019, 태종대 정몽주 추증(追贈)의 정치사적 의미, 포은학연구 vol.23 이런거 보시면 될 듯요. 이방원이 숙부와 형에 해당하는 이성계의 최측근들과, 직속부대를 동원해서 정몽주를 죽이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건 무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죠.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나요? 이방원 혼자 훼까닥해서 진짜 직접 철퇴로 친거라면 몰라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막내 도련님이 야당 당수급 죽이자고 해서 따라가는 아저씨들이란게 이상하다는 점이?
+ 25/09/09 21:27
그냥 이유가 딱 눈 감고 '노산군은 어렸을적부터 성질이 포악하여 사람 죽이기 좋아했으며...'이런 대놓고 곡필했으면 방원이 보다 덜 욕먹었을 겁니다. 방원이는 방석이 더러 '얘는 세자의 자격이 없는 허랑방탕아'이런 서술 넣었거든요 크크크
+ 25/09/09 20:11
굳이 현대인이 아니더라도 조선왕조 거의 내내 세조에 대한 평가는 불호에 가까웠고 그의 행적과 정책 역시 후대에 부정 내지 수정되었다는게 제 댓글의 요지이긴 합니다.
25/09/09 18:25
결국 조선의 역사를 보면 현대까지 내려오는 핵심 업적이 한글인데, 이 공로에 세조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예전에 누군가들은 나무위키에다가 '세조는 문종을 질투해 아버지의 업적인 한글 보급을 방해한 호로자식'이라고 반달까지 했죠. 얼마나 이 서사가 위협적이면 '태정태세문 팬보이'들이 그런짓까지 했겠습니까, 쯔쯔쯔...
+ 25/09/09 20:19
흠... 다른 모든 분들이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조선 왕조에 딱히 호불호도, 평가도 할 생각이 없는...
그런 지나가던 갑돌이 입장에서 말씀드려 본다면요.... 거 어차피 지나간 몇백년 전의 과거사인 만큼,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가보다... 하면 될 일 아닌가 합니다. 누가 명분론적으로 정당하냐..를 굳이 따진다면야 어차피 명분론으로 약점이 있긴 태종이나 세조나 마찬가지일테고, 그나마 참작사유가 있느냐..의 문제에서 다투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데요. 그것이야말로 그저 각자의 취향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 25/09/09 20:43
정통성이라는게 얼마나 허상인지를 태조 태종 세조 중종등이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정통성은 덤인거지 정통성 있다고 뭐가 되는건 아니죠
+ 25/09/09 20:48
+ 위의 논쟁에 대한 생각인데 태종이라는 왕이 순수하게 세종이라는 한반도 goat 지배자를 정자가챠 성공해서 뽑았을 뿐 자신이 해낸 업적이라는게 변변치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제 조지고 외교 조지고 국방 조지고 내치 한거없고...) 세조와 즉위 과정은 비슷한데 왜 태종은 욕을 별로 먹지 않고 세조에게 무수한 비난이 꽂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존재하죠
+ 25/09/09 21:24
단순히 그것만이라고 보면 이방원, 이성계도 똑같지 않습니까. 결국 범인찾기 놀이에서 서사적으로 덜 매력적인 이유가 범인이 된 거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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