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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21:46
여러 이설이 있지만, 우선 유방 이전의 관중은 후한말과 달리 한중과 파촉에서 넘어가는 방어체계가 튼실하진 않았습니다.
거기에 한대에 있었던 홍수로 촉에서 한으로 넘어가는 길이 바뀌어서 한중에서 넘어가는게 엄청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 국력 차이가 더 심했죠. 한중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모를까 한중도 없이는 답이 없었죠.
24/03/20 22:14
사실은 위나라 강역이 축소되었습니다.
한반도의 평안도 일대(낙랑/대방)까지도 위나라의 영역이었거든요. 실제로 조조가 낙랑 태수를 임명해서 보냈는데 공손씨에게 낙랑태수가 사로잡힌 일도 있었고......
24/03/20 23:34
공손씨 멸망 이후 관구검이 고구려랑 뜰때면 맞는데 저 지도가 그 시점인가요? 북벌의 필요성에 따른 지도면 훨씬 이전일텐데; 그땐 공손씨들 존재했구요
24/03/21 01:01
그 전이라고 해도 딱히 다르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공손강이 원담과 원희의 목을 베고 조조에게 항복을 했었기 때문에, 공손연이 통수를 치기 전까지 위나라의 강역이긴 했죠.
특히 218~228은 공손공의 치세라(1차 북벌이 228년일 겁니다) 그냥 공손공이 태수인 위나라 강역이라고 해도 뭐.......
24/03/20 21:55
저 때도 영토 크기의 개념이 있었나요? 아니면 곡류 생산량 차이로 아 저기가 대충 땅이 어느 정도 더 크겠구나라는 느낌으로 판단한건가요?
24/03/20 22:01
제 짧은 식견으로 대동여지도가 그려질 시절쯤 지도라는 개념이 잡혔나 싶었습니다 흐흐 이미 중국 삼국시대에도 영토 크기와 지형 지도가 있었나보네요.
24/03/20 22:20
보통 저런 지형도는 10배 과장합니다 (1000미터를 10000미터로) 그렇지 않으면 우주에서 볼 때 지구 지형은 그냥 평평해보여서요.
24/03/21 01:04
마속 때문이 맞죠.(...) 옹양 4군 중 3군이 항복을 하고 나머지 하나도 언제까지 지원군이 안 오면 항복하겠다 이랬는데 마속이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바람에.......
24/03/21 01:41
제갈량이 노린건 위나라 돌파! 가 아니라 옹양겸병을 통한 3국 시대의 정립이었거든요.
그 근본적인 대전략이 실패한건데.... 솔직히 따지면 유비의 죄가 제일 큽니다. 그건 그때 상황에서 제갈량이 짜 낸 최후의 도박이었고. 모든 남조의 북벌은 형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걸 날려먹은게 사실은 관우고 거기에 결정타를 박은게 유비었지요.
24/03/21 09:28
오나라 장강 이남 지역(특히 강릉, 남군 아래 형남 지역)도 사실은 색깔을 좀 더 빼기는 해야 합니다.
당시 저기 개발 상황을 생각해보면 면적 지배는 어림도 없고, 점 단위 거점이었을테니까요. 여기에 오나라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무릉만이나 장사산월 같은 이민족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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