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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2/21 11:46:04
Name 피잘모모
출처 나무위키랑 본인 생각
Subject [텍스트] 소설 ‘날개’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소설 날개의 후반부 내용인데요, 화자가 경성 거리를 돌아다니며 든 생각을 묘사하고 있네요

근데 여기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 생각을 하는 장소가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인지, 아니면 ‘거리’인지 해석이 분분하다고 하네요

솔직히 ‘날아 보자꾸나’ 라는 묘사를 보면 옥상이 더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상단의 내용에서 대괄호로 표시한 ‘나서서’ 라는 표현이 실제로 ‘옥상을 나서서’ 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군요 뒤이어 나오는 ‘발길’ 도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걸었다는 뜻이 되는거고요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옥상에서 투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엔딩인지, 거리를 거닐며 희망을 찾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엔딩인지  정해질텐데 흥미롭네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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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nazenon
21/12/21 11:50
수정 아이콘
저는 이 파트를 쨍하게 내리는, 무기질적인, 여름의 새하얀 햇살이 가득찬 거리에서 환상을 보는 걸로 생각했었어요. '나'를 스쳐 지나가는 군중은 너무나 많은데 '나'는 그 안에 섞이지 못하고 유리되어버린 느낌? 거리로 나간 건 맞는데 희망적인 느낌도 못 받은? 뛰어내린 걸로는 한 번도 생각을 못해봤는데 인터넷에서 알게 됐네용
피잘모모
21/12/21 11:54
수정 아이콘
오오 이 해석 되게 와닿네요
시린비
21/12/21 11:54
수정 아이콘
나서서야 뭐 앞으로 나서는 정도로 살짝 앞으로 간걸 말할수도 있고.. 작가도 없는 마당에 모든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겠지요..
신의주찹쌀두뇌
21/12/21 11:58
수정 아이콘
학생 때 본 책에서 투신과 비상의 이중적 의미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당연히 옥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해석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회사에서
21/12/21 11:58
수정 아이콘
저는 투신엔딩이 더 마음에 드네요
21/12/21 12:00
수정 아이콘
떨어졌는데도 날고 있다니 짓궂구나, 라고 아오자키 토우코는 중얼거렸다
BibGourmand
21/12/21 12:19
수정 아이콘
전 옥상에 한 표입니다
Regentag
21/12/21 12:43
수정 아이콘
[나서서]의 바로 앞 문장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가 말 그대로 거리로 다시 나서야겠다는 결심 아닐까요? 그래서 거리로 나왔음이 이어지는 [나서서] 이고요.
다시 거리로 나왔다에 한표 드립니다.
60초후에
21/12/21 16:37
수정 아이콘
저도 여기에 한 표 던집니다.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이후에 아마도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날아라 코딱지
21/12/21 13:31
수정 아이콘
어릴적 이상의 날개를 만화화한 작품들에서는 제기억으론 모두 옥상에 날아오르는 즉 투신하는 걸로
그렸었습니다.
전 이상의 날개를 읽을적 마지막을 희망과 새로운 의욕으로 다시 앞날을 나아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만화화한 작품들은 전혀 아니올시다로 주인공이 투신하는 걸로 그려져
당시 좀 충격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여전히 이건 희망의 메세지로 봅니다
21/12/21 13:35
수정 아이콘
지금 읽으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요
이런걸 중고딩들한테 읽게 하고 감상을 말해보라하면 당연히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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