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길이가 길고 품도 넉넉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프리사이즈형이 대세였다.
좋은 옷감을 많이 사용해 크게 만들어 입는 것이 신분 과시나 미적 기준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전기
신체 치수를 고려한 ‘맞춤복’이 등장한다. 저고리 종류도 축소되고 적은 양의 옷감으로 만드는 등 실용적인 변화를 보인다. 품도 작고 길이도 짧아진다.
잇따른 임진왜란과 호란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3. 중기
중·후반기 들어 치마허리(치마의 맨 위 허리에 둘러서 댄 부분)가 보이고 저고리가 신체에 착 달라붙으며 ‘보디 라인’이 드러나는 옷이 유행했다.
실학자 이덕무 등이 “창기들이 남성에게 아양 부릴 때 입는 옷이 귀천(貴賤) 가릴 것 없이 유행하니 한심스럽다”며 개탄할 정도였다.
4. 후기
치마와 저고리 사이를 가리는 가슴가리개가 필수품이 됐다. 이 시기 사진에서 종종 보이는 가슴이 노출된 여인은 가슴가리개를 하지 않은 탓이다.
5. 개화기 이후-현대
양장의 영향을 받았다. 저고리는 다시 길어지고 붕어배래가 생겼으며 치마가 A라인으로 펑퍼짐해졌다.
ps.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시대구분은 14-5세기가 초기, 16-7세기가 전기, 18세기가 중기, 19세기가 후기, 20세기가 개화기인가 봅니다.
전기에 나오는 임란이 1592년, 호란이 1636년이고, 중기에 나오는 이덕무의 생몰이 1741년-1793년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