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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02/03 10:32:46 |
Name |
불행 |
File #1 |
주석_2020_02_03_103124.jpg (6.7 KB), Download : 62 |
출처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11219043&exception_mode=recommend&page=1 |
Subject |
[텍스트] (단편소설)무림아파트 |
0.
모처럼 쉬는 날, 죽부인과 뒹굴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문 밖에서 있어선 안될 기가 느껴졌다.
“옆집에 이사온 사람 입니다. 이사떡을 돌리러 왔는데요.”
문을 열자 녀석이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꺼냈다.
나는 되물었다.
“이사떡이라?”
“예, 소림의 영약을 섞어 직접 찐 것입니다. 내공이 예전같지 않다 들었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대는…….”
내 입에서 절로 침음이 흘러 나왔다.
“소림을 박살낸 장본인이지 않소? 훔쳐낸 영약으로 떡을 만들어 내게 가져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내 내공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도 마교와의 혈투에서 입은 상처 탓임을 알고 있을테고.”
“송구합니다.”
녀석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왔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맞짱을 까자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天魔) 소백련. 또 무슨 개짓거리를 벌일 셈이야?"
“그것이 아니오라…….”
내가 다그치자 소백련이 말끝을 흐렸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얼굴을 숙이고 죄인처럼 돌아섰다.
“다음에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떡은 두고 갈테니 따뜻할 때 드십시오.”
나는 멍하니 서서 소백련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옆집, 302호에 서서 익숙한듯이 비밀번호를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이웃이 된 듯 했다.
당현종 천보12년 4월 병오일.
우리 아파트에 천마가 이사왔다.
그것도 무림맹주인 내 옆집으로.
나는 머리를 짚으며 무림맹(武林盟) 단톡방을 켰다.
1.
나: 야이 XX 새끼들아.
천산호(소림): 왜 그러십니까, 맹주.
나: 너는 소림 박살낸 천마가 내 옆집에 이사왔다는 거 알고 있었냐?
천산호(소림): ?
강철수(화산): 아니 진짜로?
심상수(개방): 아 액정 또 나갔네. 뭐라고요?
나: 철수 네가 관리인으로 있으면서 쳐먹은 금이 얼마인데 이런 일 하나 처리를 못해?
강철수(화산): 시대가 어느 땐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합니까? 요즘 천마라고 입주 거부하면 난리나요, 청원 올라오고. 형님 늘그막에 탄핵 당하고 싶으십니까?
나: 너 그 말 산호 앞에서도 꼭 해라.
천산호(소림): 그 개같은련 지금 어딨습니까? 302호 입니까?
심상수(개방): 아 뭐라는 거야 다 깨져서 보여.
나: 아무튼 지금 당장 경로당으로 와라. 집합이야.
2.
의자에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자 단톡방의 멤버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 XX련 어딨냐니까요?”
얼굴이 시뻘개진 천산호가 열을 올렸다.
나는 비닐봉지에서 꺼낸 떡을 내밀었다.
“정사대전 끝난지가 30년이다. 이제와서 그 지옥을 다시 되풀이할 생각이냐? 이거 먹으면서 좀 진정해.”
“떡에서 익숙한 맛이 나는데요?”
“몸에 좋은 거야. 꼭꼭 씹어 삼켜.”
점소이가 가져다준 식수로 목을 축인 뒤 내가 말했다.
“좋은 대책 있으면 얘기해봐라.”
“허락만 해주시면 조용히 목을 따겠습니다.”
일전에 이름을 날렸던 살수가 음침하게 웃었다.
“안된다니까. 저 년 죽으면 마교 새끼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그럼 어쩌자는 거요?”
“평화의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봐야지. 지성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으냐? 폴리티칼 코렉트니스 적인 면모를 두루두루 겸비해야 돼.”
곤륜파 상수리가 말하자 심상수가 놈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씨발럼이 청나라 물 먹었다고 잡소리 섞기는. 알아 듣게 말해, 개새끼야.”
“거지새끼가 더러운 손을!”
“뭐? 거지?”
“핸드폰 액정이나 바꾸고 입을 놀려라, 제발. 나온지 오년이 지난 것을 뭘 더 아끼겠다고……”
“입 닥치지 못해?”
천산호가 심후한 기를 내뿜자 소란이 잦아들었다.
나는 탁자를 두드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결국 아무도 그럴듯한 대책은 없는거냐?”
“형님,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이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강철수가 중얼거렸다.
“저기를 좀 보십시오.”
경로당 창문 너머 소백련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여자 아이가 함께였다.
“저 년 아이가 있었어?”
“부모를 조지지 못하면 아이를 조지면 될 것 아닙니까?”
살수가 다시금 비열한 웃음을 띄었다.
“제 아이가 주변 유치원을 꽉잡고 있습니다. 이틀만 주시면 제 발로 떠나게 만들지요.”
“이 새끼가 진짜…….”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때, 아미파 한선화가 입을 열었다.
“천마가 여자였습니까?”
“그런데 왜.”
“그럼 맹주께서는 여자를 내쫒으려 한 겁니까? 이 중남충 새끼가 미쳤나?”
“와, 돌겠네.”
미칠 것 같아.
이 무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와 협이 사라진 것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아무튼 아미는 언제나 여자의 편입니다."
그 당당함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재밌어보여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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