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언제부터 SKT에 있었을까요.
처음 이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인지했던 건, 그것이 한 정글러의 오른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떠안게 된 이 불가사의한 힘을 컨트롤하지 못한 벵기는 이리저리 소환사 협곡을 방황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그 힘을 자유의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곧 협곡 그 자체가 되었죠.
우리는 그 두려운 힘의 원천을 '검게 불타오르는 용'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검은 용이 떠나버리자, 벵기는 거짓말처럼 협곡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것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정글러의 기묘한 호기심에 의해서였습니다.
유난히 칼날부리를 좋아했던 정글러, 블랭크는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은 채 협곡을 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블랭크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에 당황했고, 칼날부리의 악령이 씌였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악령의 정체는 바로 '검게 불타오르는 용'이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받아들이기에 블랭크는 아직 어렸고 미숙했으며, 제멋대로 날뛰는 그 존재에 하릴없이 휘둘릴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다시 그 힘을 되찾기 위해 벵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협곡에는 다시 '흑염룡'이 강림했죠.
벵기는 떠나며, 남겨진 자신의 제자 블랭크에게 '그 힘'을 다루는 요령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블랭크는 온전히 그 힘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한정적으로 활용하며,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블랭크는 '어둠 속의 구원자'로서의 길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어린 주인의 때이른 각성을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지만...
블랭크가 선발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무분별하게 힘을 남용하면서부터, 그것의 반응은 갈 수록 약해져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블랭크는 '그것'이 자신을 떠나버렸다는 것에 크게 당황합니다.
철갑은 무뎌지고 망토는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떠나버리고 만 것일까. 블랭크는 망연자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 있었습니다.
뱅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을 하지 않아도 모두를 이겨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기를 잃고 순박한 듯 또랑또랑해진 눈망울은 그가 나약해졌다는 하나의 방증이었지만
그는 '검은 힘'에 이끌려 넘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죽고 또 죽어도, 전진만을 거듭했습니다. 후퇴를 몰랐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만의 환상속에서 승리의 개선행진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그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예전과는 달리 '인중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는 것만이 달라보일 뿐이었습니다.
한바탕 광란의 연회가 끝난 후, '그것'은 다시 자취를 감췄습니다.
검은 기운 가득하던 뱅의 인중엔 어느새 황금빛이 눈부시게 자리 잡았습니다.
갈 수록 풍성해지는 황금빛 기운은 다시 뱅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뱅이 돌아왔다고 기뻐하던 사람들은, 이내 뜻밖의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맙니다.
'검은 수염'이 페이커의 인중에 생긴 것을 봐 버렸기 때문이죠.
검고 어두운 이것... 과연 SKT의 선수에게 지옥같은 슬럼프를 가져다주는 저주스런 악령일까요.
아니면 깊은 어둠을 몰고 온 끝에 다시금 서광을 비추게 만드는 존재일까요.
이제 이 '검은 기운'은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섰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블랭크는 이 검은 기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지난 시즌에 이루지 못한 완전한 '어둠 속의 구원자'로서 진화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