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우정
-싸움에 질 자신이 있다
가을비가 거실 창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다.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타요 버스 장난감을 바닥에 굴린다. 나는 가만히 서서 이번 추석의 일정을 가늠하고 있는데, 번개가 쳤다. 아들이 보지 못한 듯하여 아쉬워하는 찰나에 천둥소리가 난다. “쿠콰콰콰쾅-.” 깜짝 놀란 아이는 타요를 손에 쥔 채 황급히 달려왔다. 옥시토신이 솟구친 나는 더할 나위 없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 올렸고, 그걸 본 아내는 “아빠 닮아서 큰일이다” 했다. 아내 말의 저의는 겁쟁이라는 것이고, 나는 사실이라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동네북 출신이다.
1980년대의 골목에서 유년기를 보낸 여느 아이들처럼 우리 동네도 서열이 있었다. 과일집 아들내미였던 개구리는 귀한 아들이었는데, 위로 누나가 셋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첫째 누나는 거의 엄마였다. 남자 이름이 붙은 셋째 누나는 언니와 엄마의 눈을 피해 개구리를 괴롭히곤 했지만, 매번 검거되었고, 항상 억울해 했다. 둘째 누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개구리의 과일 가게가 우리집 가게의 바로 앞에 있었다. 그래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귀한 아들을 흔한 아들이 이기기는 힘든 법일까? 나는 매번 졌다. 어제도 졌고, 오늘도 졌고, 내일도 질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내가 던진 무언가가 개구리의 대가리를 쳤고, 흉도 냈다. 무심코 던진 돌은 아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같이 놀다가 수가 틀린 개구리가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대항하기 위해 땅에 떨어져 있던 뭔지 모를 것을 던졌다. 그걸 맞고 개구리는 울며 자기네 집으로 갔고, 곧 그의 엄마와 세 명의 누나가 우리 가게에 쳐들어왔다. 그동안 자기 아들이 때린 건 기억하지 않는 행태에 엄마는 세상 억울해 했다. 얼마나 얼울했던지, 그 이야기를 30년째 하고 있다.
나는 얼마나 맞았던가.
개구리 가게 옆에는 철물점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내미가 우리 동네통이었다. 개구리는 걔를 매번 형이라고 불렀는데, 동급생이었기에 나는 의아했다. 알고 보니 통은 개구리의 사촌이고, 생일이 몇 달 앞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개구리는 특별히 강한 아이가 아니었다. 덩치도 작은 편이고, 성격도 대범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더 작았고, 더 겁쟁이였다. 개구리는 강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흔한 아이였다. 원통했던 엄마는 나를 태권도장에 보냈지만, 나의 전투력은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 애들 싸움은 기술이 아니라 기세로 한다. 어른 싸움도 뭐 그리 다를까 싶긴 하다만. 무엇보다 당시의 나는 도장을 다니며 무도인이 되었기에 일반인을 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믿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자랐다. 그리고 더 이상 개구리는 통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시기의 어느 날이었다. 통이 옛날이야기를 했다. 그건 내가 얼마나 맞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듣고 보니 그건 내가 얼마나 모자란 아이였나에 가까웠다. 이런 이야기다.
그날도 우리는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았고, 놀다 보니 개구리가 술래가 되었다. 내가 개구리를 잡았다. 그랬는데 어쩌라고. 개구리는 이 상황을 자신의 뒷다리 탓이 아니라 나의 얍삽함 때문이라고 여겼다. 나는 룰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 맞았다. 맞다 보니 코피가 났고, 코피가 나면 우는 게 국룰이기에 울면서 집에 갔다. 집은 가게 옆에 붙어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장사한다고 바빴고, 나는 코피가 계속 나서 수도꼭지를 쥐고 계속 닦았다. 한참 그러고 있었는데, 개구리가 왔다. 다시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응, 코피 닦고 나서 갈게.” 했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들은 동네통은 의아했다. ‘아직도 코피를 흘리고 있는 쟤는 어디가 모자란 아인가?’
그런 이야기였다.
동네에서 놀면서 맞은 건 그런 성격의 것이지만, 교회에서의 구타는 또 달랐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대형교회도 많지만, 그때의 교회는 대개 동네교회였다. 동네교회는 동네 애들이 다니는 교회고 그래서 거기에도 개구리가 있었다. 개구리는 귀한 아들이었고, 교회는 아이들을 함부로 하는 기관이 아니기에, 그곳에서의 개구리는 개차반이었다. 우리 학년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간절히 기도했다. ‘개구리가 오늘은 결석하기를, 제발 다른 교회로 가버리기를!’ 세상에 그런 교회 선생이 어디 있냐고? 이건 구라가 아니라 선생님이 직접 증언한 내용이다. 우리 동기 중에 첫 결혼을 하는 녀석이 있어서 같이 교회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땐 그랬지’라며 풀었던 썰이다.
개구리는 유년부 예배가 시작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쳐 날뛰었고, 선생이 제발 좀 방석에 앉아라고 해도, 그걸 허공에 날리는 놈이었다. 그 방석은 설교하던 목사님에게도 날아갔고, 선생은 죽고 싶거나 죽이고 싶거나 했다. 그때의 선생은 결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젊고 여린 각시였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건 역시 기질 탓일까?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같은 유전자라 하더라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발현되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개구리는 여간해서는 어른 말을 듣지 않던 개구쟁이였고, 귀한 집 아들이었다. 대개의 흔한 아들이었던 나는 여느 때나 말을 잘 듣는 동네북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말하게 된다. 개구리에게, 매번, 동네북의 반만이라도 해보라고, 좀 닮아보라고. 선생이 나를 칭찬할수록 나는 착한 어린이의 표준이 되어 그 역할을 해야만 했고, 개구리를 향한 훈육은 그것이 매개가 되어 반복됐다. 나는 선생에게 점점 더 많은 칭찬을 받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
예배가 끝나면 선생은 한숨 돌리지만, 내게 교회 밖은 위험했다. 개구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 때문에 선생에게 갈굼 당한 것이 되었기에 죄책감 없이 나를 쳤다. 선생에게 예쁨 받을수록 나는 밉상이 됐고, 그래서 맞을 만한 존재가 됐다. 그러니까 제발 좀. 훈육을 위한 비교가 이렇게나 위험한 법이다. 천둥소리에 놀라서 내게 뛰어오는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다. 나는 아들을 꽉 안아 주면서 행복하다. 하지만 집 밖은 천둥소리와 비교할 수없이 무서운 곳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 친구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놀러 왔다.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둘은 만난 지 반년이 조금 지났지만, 곧 식을 올린다. 10년을 보고 결혼한 우리로서는 놀라운 결정이지만, 세상에는 더 알쏭달쏭한 것도 많다. 나는 친구의 공주에게 자기소개를 올린다. “저와 예비 신랑은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예요. 앞으로도 함께 늙으며 인생을 보낼 사이고요. 그러니까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눠요.” 유치원 교사이기도 한 예비 신부는 꼭 그러자고 답하면서 우리 아이를 안았다. 친구는 그 모습을 보며 마냥 행복하다. 세상은 알쏭달쏭한 것이, 그 친구가 바로 개구리다. 그러니까 동네통은 뭐라고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