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선생님들이 더는 가정 방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형식적으로나마 남아있던 시절. 담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한 친구의 사연을 전했다.
A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교실에서는 잠만 잤다. 왜 그런가 가정 방문을 해보니 A군에게는 병든 할머니와 어린 여동생만 있었다. 소년 가장이었던 것이다. '아이템 거래' 초창기 무렵, A군은 게임 아이템을 팔아 여동생의 학비와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했다.
지금은 '앵벌이'니 '쌀먹'이니 게임으로 현금을 버는 행위도 체계화되고 조직화 되어있지만, 그 시절 어린아이였던 A군에게 큰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하루종일 밤을 새워 '노가다'를 하는 것으로 게임머니를 채운 A군은 학교에 오면 그제서야 잠을 잤다.
현실적으로 A군을 도와줄 방법도 없고, 그나마 학교에서 혼나지 않고 잘 수 있도록 과목 선생님들께 귓띔을 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담임 선생님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은 현실과 마주한 선생님의 상처이기도 했으리라.
나는 그 A군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도, 중학교 1학년 때도 A군과 같은 반이었기 때문이다. A군은 학업에만 집중을 못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겉도는 존재였다. 같이 놀지도 떠들지도 못하고 잠만 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옷차림마저 남루한 행색이었으니 괴롭힘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촌동네였으나 A군을 은근히 감싸는 친구들이 많은 학교였음이 새삼 자랑스럽다.
A군의 학업과 상식은 확실히 뒤떨어져 있었다. 중학교 당시 시점으로 거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을 것이다. '드림위즈 지니' '네이트온' 등 인터넷 메신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가끔 채팅으로 대화를 나눌 때면 맞춤법이 엉망진창이었다. 삼국지가 우리나라 삼국시대랑 똑같은 말이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시험 성적은 0,0,0,의 항연이었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그 친구를 좋아했다. 종종 그가 하는 게임에 대해 물어볼 때면 전문가의 향기를 뿜어내면서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곤 했으니까.
나의 친구 A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노파심과는 다르게 가정 환경과 가난을 극복한 멋진 어른이 되어 사회 한 켠에서 일하고 있을까. 혹은 게임 작업장 따위를 전전하며 합법과 범법 어딘가에 위치한 그늘진 인생을 살고 있을까. 전자를 상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찌든 어른이 되어 버렸다. 롯데 야구를 10년쯤 보다보면 7회말 쯤에서 역전승에 대한 꿈을 접어버리게 되듯이, 인생에 반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A군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A군의 현재에 대해 어두운 상상을 하고 만다. 만약 반전의 기회 없이 A군이 그대로 자라났다면 그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맞춤법으로 글을 쓰고 중학생 평균에도 못 미치는 상식으로 말을 하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A군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으리라.
누군가 왜 A군의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많이 부족해보이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함부로 손가락질을 한다면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대답하리라. 그는 손가락질 받을만한 삶을 살지 않았다.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그가 ABCD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
그는 불행히도 미숙하고 배울 것이 많은 학생이었을 뿐이고, 내 실례되는 추측 속에서 - 운이 따라주지 않은 어른으로 자라났을 뿐이다. 마치 까막눈 노인들이 그러했듯이.
인터넷에서 쉬운 맞춤법 하나를 가지고 모욕하는 댓글이 달리거나, 온갖 커뮤니티를 불태우는 상식 논쟁을 볼 때면 나는 A군의 그림자를 본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부족한 사람 모두가 A군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지니고 있지는 않겠지만. 혹여 그게 그냥 무식하고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라 해도 그게 나에게 무슨 피해를 주었길래?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경멸은 인간이 짐승으로서 가진 본능이다. 장애인, 병자와 환자, 가난한 이, 덩치가 작은 사람, 못생긴 자. 사회적인 열등함과 맞닿아 있는 요소들은 그들이 아무 죄를 짓지 않아도 경멸과 분노를 일으킨다. 마치 농경 사회에서 몸이 약한 이들이 경멸 받았듯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적 수준이 얕아 보이는 이가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다.
상식이 부족한 사람을 모자르다 욕하지만 그렇게 사람에게 쉽게 이빨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야만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이유가 있어서 싫어하는 경우가 있고 싫어해서 이유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숫제 '반지성주의'까지 들고 와서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상식을 모르는 것,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후자가 좀 더 부끄러운 행태일 수는 있으나 반지성주의와는 궤가 다르다. 백신이 뭔지 모르는 것과, 모를 수도 있지 않냐고 우기는 것, 백신은 가짜다 라고 외치는 것은 각각 다른 행위이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 제대로 배운다며 비난과 망신 주기를 합리화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틀렸다. 부끄러움은 오히려 배움의 장애물일 뿐이다. 배움은 필요와 기쁨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다면 좋은 화자가 되어야지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은 욕구를 합리화 해서는 안된다.
그 고상한 비난과 고결한 분노가 정녕 무지에 대한 미움으로 불타는 것이라면, 전략적으로 무지와 무식을 박멸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음성화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마치 질병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되듯이.
그것들은 모두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이 된다. 무지한 자는 숨어버릴 것이며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던 쉬운 상식 분야에서조차 바보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머글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연이 하나 있다. 외국인 친구가 쓴 글인데 자신은 '프란시스 베이컨' 이라는 위인을 한참 동안이나 '프랑스 이즈 베이컨(프랑스는 베이컨이다)' 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한 번 잘못 들은 뒤엔,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누구나가 부족해질 수 있다. 조금만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삼국지가 백제 신라 고구려의 얘기냐고 묻던 A군의 순진한 눈동자가 그대로이길 빈다. 괜한 허영심과 동물적인 공격성에 상처 받아 모르는 것을 묻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기를. 모두가 조금만 관대해져 보면 어떨까. 오늘도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일본 만화계가 낳은 위대한 시인의 시 한 수를 읊는다.
내가 이렇게나 어리고
이렇게나 미숙한 것이
늙어 빠지고
완전무결한 어른들한테는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것인 듯하다.
-쿠보 타이토, 블리치 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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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향이 강릉이라, 어렸을때는 바닷가 근처가 못사는 동네였거든요. 해풍불고 그래서요.
지금이야 양양, 안목, 주문진 하지만 그땐 그냥 가난한 어촌이 뭐 살기 좋을까요.
명태는 잘 안잡히고 오징어 잡기 아니면 섭따기. 혹은 두부만들어 팔기 정도가 근근히 먹고사는 방법이였을것 같아요.
무튼 어렸을때 바닷가에 사는 가난하고 학업수준은 낮지만 착한.. 이런 친구 있었는데....
나중에 들려온 얘기로는
조부모께 물려받은 땅값이 거의 300~400배 가까이 올라서 지금은 엑싯하고 잘 먹고산다고 @.@
결론은 땅이 최고? 는 아니고.. 흐흐..
그 친구도 나름 자기 역활에 맞게 잘 살고 있을수 있을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