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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마을금고 직원이 고객 예금 4억5천만원을 횡령했는데, 피해자가 새마을금고에 이를 배상하라고 한 민사소송에 대해 법원이 그에 대한 개인의 책임도 있다며 일부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사기죄의 공소시효와 채권의 만기시효를 내세운 판결일 테지만.. 저는 그 사건을 보며, 지난 2016년에 판결이 있었던 반포주공3단지재건축조합(현 반포자이)와 GS건설의 소송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사실관계를 정리하자면, 2001년 GS건설과 조합이 맺은 도급(가)계약에는 초과이익 조합원 공유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도급계약 당시에는 분양가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GS건설의 브랜드파워로 일반분양가를 높여서 사업의 이익을 충분히 벌어 오면 그 이익을 조합원들에게 나눠준다는 조항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LG건설이었고, 최초의 자이가 등장하기 전이었습니다. 최초의 자이는 GS건설보다 빠른 2003년 이촌동에 지어진 LG한강자이였습니다.)
보통 초과이익공유제는 개발이익공유라고도 불리는데, 브랜드파워가 영향을 끼쳤다고 봐서 시공사의 몫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반포주공 조합원들이 자신의 몫으로 한 계약을 맺은 것은 그만큼 당시의 반포자이가 재작년 한남3구역만큼이나 재건축 시장의 대어여서 시공사가 다소 출혈을 감수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습니다. 재건축 사업이 흔히 그렇듯이 사업은 지연되고 지연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가상승비를 반영한 공사비 증액(흔히 에스컬레이션이라고 합니다.)을 고려하니 시공사가 요구한 공사비 증액분이 약 2,000억 원이었습니다. 여기서 시공사와 조합의 흔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줘라, 못 준다. 한참 실갱이 하던 끝에, 정 그렇다면 조합이 초과이익공유를 포기하는 대신 GS건설이 에스컬레이션 분 2천억원을 부담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조합원 총회 결과 55% 동의로 과반수 동의하였기에 조합장 명의로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믿기 힘들지만 반포자이가 분양된 2008년경, 반포자이는 미분양이었습니다. GS건설이 분양가를 사정없이 불렀기 때문입니다. (평단가 3천만원 가량)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완판에 피가 엄청나게 붙었죠. GS건설은 결과적으로 1,600억원을 벌었습니다. 초과분양이익이 3,600억원이어서였습니다. 계약할 당시에는 GS건설이 손해인 것처럼 보였지만 시공사의 혜안이 돋보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최초 계약조건과 다르게 초과이익을 다 뺏겨(?) 억울해하던 차에, 최초에 초과이익공유 포기에 반대하던 45%의 조합원들이 절차상의 하자를 찾아내었습니다. 도정법상 재건축조합의 정관은 "중대한 의사결정"의 경우 전체 조합원 2/3의 찬성을 얻도록 되어 있고 반포자이도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담금에 영향을 주는 공사비 증액-초과이익 포기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속합니다. 하지만 조합원 총회의 의사 결과는 과반수(55%) 동의에 불과하였기에 해당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며, 따라서 초과이익을 공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법정싸움이 시작되었고, 1심과 2심은 시공사가 이겼습니다. 조합장의 명의로 체결된 계약이므로 적법의 추정은 당연하며, GS건설 입장에서 해당 재건축조합의 총회 동의율을 알 수 없으므로 해당 계약의 공신력을 의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지였습니다. 아울러 시공사가 재건축조합의 정관을 숙지할 의무도 없으며, 조합원 총회에서 추인한 것이 정관상 규정된 내용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 판결은 결국 조합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논지는 간단했습니다. 정관상 2/3 찬성을 해야 하는데 그에 미달하므로 "원래 무효인 계약"이고, 그 계약에 따른 제반 사항도 무효라는 것입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눈뜨고 코를 베였고, 조합원 입장에서는 세대당 약 2억 가량의 초과분담금을 벌어 쾌재를 부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017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불장에 돌입하게 되니 반포자이 조합원들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물론 아파트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다양한 법리적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2016년 있었던 이 대법 판결은 제게는 "반포자이 살려주기 + 대기업 돈뜯기" 의 징벌적 판결에 다름아니라 생각합니다. 저 조건대로라면 시공사는 조합과 계약을 맺기 전 정관과 총회의 결과부터 제출받아 검토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논리라면 사기업간의 거래라도 계약 전에 각 기업의 정관상 규정된 계약관련 결재권이나 정관 절차상 하자가 없는지부터 상호 검토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민사소송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입니다.
이번 사례에 저 법리를 적용시키면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새마을금고측이 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실질은 새마을금고 (전)직원이 예금주를 기망한 것이고, 범죄행위에 의한 계약이므로 "원래 무효인 계약"입니다.
(물론 질권 설정 및 대출에 걸친 서류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입니다. 부동산 담보대출계약조차도 인감과 인감증명서는 기본으로 필요한데 해당 직원이 어떤 핑계를 대고 피해자의 신분증 외 제반 문서와 인감을 수령한 것인지, 아니면 없이 무단으로 진행한 것인지.. 문서, 절차상 하자가 존재한다면야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원래 무효인 계약이지만 사기죄의 공소시효가 지났으므로 계약이 유효하게 된다는 것인지.. 아마 민법상 규정된 소멸시효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 - 소멸시효 10년)가 판결의 주요 근거가 아닐까 싶은데, 소멸시효의 기산일을 무엇으로 삼았는지도 궁금하네요. 2009년의 만기일인지, 최초에 질권을 설정한 2007년인지.. 만약 피해자가 1,000명이 넘는 수천억대의 사기 사건이었어도 이렇게 판결하였을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항소심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요즘 피고가 누구냐 원고가 누구냐에 따라 사법부의 법리해석이 고무줄 잣대가 되는 일이 자주 보입니다. 사법부의 일원들은 대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이 천칭, 칼을 들고 눈을 가린 이유를 다시금 되새겼으면 하네요.
천칭은 공명정대함을. 칼은 엄정한 신상필벌을. 그리고 눈을 가림은 고관대작부터 거지까지 그 누구도 법 앞에 평등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