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인공 강인구는 어렸을 때부터 생존을 위해 카센터-미군납품-단란주점 등 온갖 일을 하며 사업수완을 익힙니다. 사업에 계산이 서는 사람이지요. 그렇다고 자수성가하여 가업을 크게 일으킨 건 아닙니다.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그는 아파트 전세 대출금 갚기에도 허덕입니다.
그런 그에게 불알친구 박응수가 찾아옵니다. 홍어를 바다에 버리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인구는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경찰에게 후리기 한판 선보이고, 수리남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전교 꼴등을 했던 친구가 못미더워 계산을 할 줄 아는지 시험하지요. 그것이 구구단 7x8. 응수가 답을 하지 못함으로서 계산이 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암시를 합니다.
2.
계산이 서지 않았던 친구 박응수는 머나먼 타국에서 허망한 죽음을 당합니다. 출소 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같이 머물던 방으로 다시 찾아간 강인구. 그 방에서 응수가 공부하던 검정고시 수학책을 봅니다. '안목은 없어도 성실'했던 응수는 당장 인생의 계산식을 세우기 힘들어해도 중졸이라는 자신의 인생을 끌어올리기 위해 남몰래 수학(계산)을 공부할 만큼 성실했지요.
수학책을 펼치자 가운데에 응수의 가족 사진이 끼워져 있습니다. 벽을 넘어오는 돌고래들을 배경으로아이를 안은 응수 와이프와 응수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 페이지에 유독 한 문제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좌우 어느 페이지를 보아도 형광펜으로 강조한 문제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찬찬히 되돌려보면 형광펜으로 별표까지 한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제 지문은 이렇습니다.
"어떤 수와 그 수의 제곱의 합이 42일 때, 그 수를 구하면?"
이걸 식으로 변환하면
"x + x^2 = 42"
이차방정식입니다. 감독은 왜 이 문제를 이리 눈에 띄게 하고 가족사진까지 옆에 뒀을까요? 사진과 문제를 겹쳐 보시면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x는 응수나 인구, 바로 자신들이며 x^2은 자신의 분신들인 아내와 자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x에다 사진처럼 자식을 꼭 안은 아내x^2을 더하면 42, 즉 사진을 보고 있는 인구와 응수의 현재 나이가 나옵니다.(인구는 68년생이고, 위 장면 전 씬의 국정원 안전가옥에 2009년 달력이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쎄빠지게 배 탔는데도 아 하나 키우기 힘든 현실’, ‘뭐라도 해야 될 거 같다고, 안그러면 인생 좆될 거 같다고’ 느꼈던, 가정을 진 어느 40대 중년들이 풀어야 하는 이차방정식.
그들은 사진 속 돌고래처럼 벽을 뚫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고국을 벗어나 머나먼 수리남에 왔고, 희망을 담아 홍어를 배에 실어 한국으로 보냈죠. 그런데 그 배에서 코카인이 발견되며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돌고래가 아니었습니다.
"내 돌핀호 김선장이다. 그 강사장 홍어에서 코카인이 나와뿟서!"
코카인을 실은 배의 이름이 돌핀호였습니다. 인구와 응수는 뚫리는 벽의 벽돌쯤...
이 방정식의 해, 즉 정답은 -7 혹은 6입니다. 둘은 주사위 6이 뜨길 간절히 바랐겠지만 결국에는 unlucky seven이 뜬 42살이 되었습니다. 응수는 더 이상 문제를 받을 수도 없죠.
가장으로서의 삶이 걸린 방정식에서 주사위 6이 뜨느냐, 언럭키세븐이 뜨느냐. 이것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문제이고, 강인구는 어떻게든 주사위 6을 띄우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3.
강인구는 국정원과 협상하여 전요환 조직에 잠입합니다. 자신에게 당했던 사람이 같이 일하자 하니 의심스러울수밖에 없던 전요환이 묻습니다.
"수리남엔 왜 돌아오셨습니까?"
강인구는 이렇게 대답하죠.
"왜긴 왜예요, 돈 벌러 왔지."
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극한으로 가면 호모이코노미쿠스가 됩니다. 효용 극대화, 경제적 합리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주의적으로 활동하는 인간. 돈을 위해서라면 마약, 살인, 뇌물공여, 사주 등을 가리지 않고 범하는 극한의 호모이코노미쿠스 전요환은 남미 수리남에서 목사를 사칭하고 사람들도 pastor라고 부르는데, 목사를 지칭하는 스페인어 파스토르pastor에는 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pastor
1. 목동 2. 성직자 3. 돈
그는 강인구를 보고 자신과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며 호감을 갖고(박찬호 싸인볼까지 주고!) 동업까지 하려 하지만 오히려 강인구에게 당하죠. 6화에서 강인구가 '쥐새끼'였음을 깨달은 전요환이 내뱉는 대사입니다.
"큰돈 벌게 해 줄랬더니 아니,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야?"
그는 강인구를 끝내 이해하지 못합니다.
실제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류경제학이 상정하는 호모이코노미쿠스처럼 행동하지 않지요. 전요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하지만 '진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고, 그에 의거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현상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의 기본 이론 중 하나가 프로스펙트 이론의 '가치함수'입니다. 아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차드 탈러의 '행동경제학'에 나온 가치함수입니다.
100달러 이익, 손실이 같은 크기 효용의 +/-여야 하는데, 실제 사람들은 손실을 훨씬 더 싫어합니다.
'행동경제학'에 나온 지문 일부를 보시죠.
사람들은 이익의 측면에서 위험 회피적(문제1)이고, 손실의 측면에서 위험 선호적(문제2)입니다. 손실을 복구할 수 있다면 모험을 무릅씁니다.
강인구가 당한 5억의 손실은 10억 이익 이상의 효용을 지녔고, 그 손실을 제거하기 위해 위험에 뛰어들었습니다. 전요환이 보기에 이건 멍청한 짓이었고, 거기에 강인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족끼리의 사랑, 행복, 응수와의 우정, 아이에게까지 코카인을 먹이는 반인륜에 대한 적대 등을 지녔기에 전요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강인구는 국정원으로부터 받기로 한 특수활동비 5억 중 일부를 매달 응수 가족에게 보내달라 했습니다. 가치 함수에 의하면 응수 가족은 그래프 좌하 어느 깊은 바닥에 있으므로 그 돈은 자신보다 그 가족에게 훨씬 큰 효용을 주기에.
국정원이 남은 3억을 단란주점 2개 운영권으로 갈음하자 한 제안은 거부했죠. 그 길은 자기가 걸어본 길이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기에.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익이 가져다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주는 슬픔이 더 큰 현상'인 '손실회피' 때문에 강인구는 국정원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죠.
4.
한국으로 돌아온 강인구는 아내가 일하는 분식집에서 아이들과 포옹합니다. 전요환은 코카인을 주님의 은총이라 불렀지만 강인구에게는 이곳이 에덴입니다.
에덴분식의 전화번호 뒷자리를 보시죠. 4412. 아까 인구와 응수의 현재 나이가 42살이라고 했는데, 응수는 그 전 해에 운명을 달리했으므로 살아생전 나이는 41입니다. 먼저 떠난 응수(41)를 현생의 인구(42)가 품고 사는 것, 이것이 강인구의 인생 계산법입니다.
이처럼 드라마 수리남은 수학적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했으며 제목은 나라 이름뿐만 아니라
수리14 (數理)
[명사]
1. 수학의 이론이나 이치.
2. 수학과 자연 과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렇게 '수리에 밝은 남자'라는 중의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물론 자동차 수리남도 포함!)
참고로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수리남 대통령은 마약전과가 있고 군인 출신인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 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이나 시대적 배경인 2008~2009년 당시 실제 수리남 대통령은 로날트 페네티안이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수학자였죠. 수학자가 다스렸던 나라가 수리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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