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4/02 22:37:20
Name 공염불
Subject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5)
7. 예정된 결말

이게 머선일이고....
난감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돌아가는 게임을 보면서 모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하고 있는데
개발 총괄 실장이 입을 열었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대표는 무능하다. 퍼블리셔가 언제 떨어져 나갈 지 모른다. 대표의 개인 자금은 벌써 바닥이 났다.
한 마디로 회사는 한계에 부딪친 상황이다. 월급이 언제 끊길 지 모른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

당시에 중국 최대 퍼블리셔가 있었는데 (샨다 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그 쪽에서도 돈을 좀 넣었다가
발을 뺐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국내 투자도 지지부진했었고.
개발 총괄 실장은 당시에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던 중국 퍼블리셔와 가 계약을 맺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곳은 바로 현재 짱을 먹고 있는 '10X트'
당시만 해도 신흥 강자로 부상하기 전이나 직후 정도 였을 것이다. 아무튼 중국이니 돈은 많았을 테지.
게다가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시기였는데, 들리는 말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자금을 뿌리고 다닌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벤처 캐피탈 식 투자랄까? 100억 200억을 5억 10억 단위로 쪼개서 뿌려서 1차 투자하고, 거기에서 될 성 싶은 것들을 건져서
2차 투자하고. 나중에 성공하면 그 수익은 적어도 몇 배, 크게는 수십 배로 돌아오니까.

아무튼 게임은 당시 개발하던 분량의 1/5 수준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 나머지를 채우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온 말이 가관인데
업무 시간이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작업을 해 달라. 퇴근 시간은 정해놓지는 않겠다.
또, 회사 업무 시간에도 가능한 작업은 진행을 해서 이 쪽 데이터에 머지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 혹은 어른이라고 할 지라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할까?
이건 범죄잖아?
이 생각 아닐까?
나도 당연했다.
"이거 괜찮나요? 문제 안 생기나요?"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물었을 때,
개발 총괄은 '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물어보면 모르는 일이라고 해라'
같은 허술한 답변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충격적인 건, 그 자리에서 보지 못한 기획팀장을 비롯한 다른 팀장들도 여기에 가담했던 것이었다.
아니, 이후로 보면 그들이 더 주도적으로 나서서 일을 했던 걸로 들었다.
하긴, 그랬으니 이 정도의 버전까지 만들어졌겠지.

그리고 파파괴라고, 더더욱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 총괄 실장 자리가 회사에서 빠진 것이었다.
갑자기, 한 순간에. 프로젝트를 이끄는 피디 자리가 빠지는 모습을 처음 본 지라 어안이 벙벙했는데
돌아돌아 듣게 된 사유가 더 가관이었다.
개발 총괄이 그 유명한 'Sea story'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
업무 시간 외에 그 쪽 개발을 진행해줬다는 말
개발자들을 소개 시켜 주고 백머니를 받다가 걸렸다는 말
게임장을 운영했다는 말, 혹은 게임장에 투자했다는 말 등등
이야기는 몇 개 있었지만 확인되는 이야기는 물론 없었다.
그럼에도 한결 같았던 것은, 그리고 핵심을 관통했던 것은
정말 어떤 식으로든 실제 'Sea story'에 연루되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다가 얼핏 들은 바로 사실로 믿게 되었다.  

어찌 됐든 그 날, 오피스텔에 다녀온 이후 얼마 간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포풍전야 였을 뿐, 문제는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대표가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보는 눈 듣는 귀가 있으니
문제가 생긴 건 바로 알았을 테고, 결국 조치를 취했겠지.  

그렇게 해서 난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간 것이었다.
물론 일의 경과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저 어느 날, 대표가 모두를 전체 회의실로 모아 놓고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신경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해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하는 말미에 말을 덧붙이긴 했다.
회사 내부에서 생긴 문제로 인해 따로 절차를 진행해야 할 사람들이 있을 테니, 그 분들한테는 잘 부탁드린다, 정도의
이야기만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듣기로는 대표가 고발을 했고, 투자 약속을 했던 '10X트'가 그 때문인지 빠르게 손절했던 것 같다.
당연히 돈이 없으니 백도 없을 테고, 빠르게 GG를 친 것 아닐까 싶다.
이 얘기를 들으니 너무나도 허무했었다. 이렇게 할 거면서 시작은 왜 한 거지?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시작된 경찰서 참고인 진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었다. 한 3~40분 정도 이야기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난생 처음 경찰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니 긴장도 되고 또
나는 물론 가담하지 않았지만, 괜히 쫄리긴 했어도 말이다. 크크

아, 저 오피스텔 방문 이후, 나는 그 쪽 일은 하지 않았다. 딱히 이야기가 들어온 것도 없었고.
왜냐하면, 그 다음 날부터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들어오는 불이익 같은 건 없었다. 다들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는 상황.
솔직히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발을 들일 생각도 없었기에 그냥 생각을 끊어 버렸다.
경찰서 들어서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크크

아무튼 조사 내용을 기억하자면
"그 쪽에서 업무 강요를 받았나요?"
"아뇨. 강요는 없었구요. 도와달라는 정도의 말이었는데 하진 않았습니다."
"게임을 베껴 만들었다는 것에 동의 하시나요?"
"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베낀 것인지, 간단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 음...우선 게임 진행 방식이 똑같아요. 던전 구성도 그렇고. 보상 주는 방식하고 아이템 습득하고 강화하는 방식도 그렇고."
"그러니까, 게임이 완전히 똑같다?"
"아, 완전히 똑같다는 게 어떤 의미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게임이 구성되고, 또 진행하는 방법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네. 그리고 다른 부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어...그러니까, 캐릭터 모션이나 구동 방식이 똑같아요. 본을 같은 걸 썼기 때문에 평타나 스킬 모션도 똑같고. 판정 방식도 그렇고요.
충돌이나 체크 박스도 똑같이 구현되었으니, 스킬이 다 고만고만하고요.
발사체 궤적이나 스킬 이펙트도 지금 회사에서 개발 중인 것들을 복붙해서 처리하고 있어서..."
"....아, 네. 음...그렇군요."
"그리고 제가 해 놓은 설정이나 스토리 라인도 섞여 들어가 있는 것 같고. 캐릭터나 몬스터 설정도 일부 그렇고...블라블라."
"아, 음...네."
진술한 내용을 기억하자면 대략 이런 정도였던 것 같다.
경찰관들이 일반인에게 수사 관련 용어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는 것과 비슷한 것일테지. 크크

조사를 하는 형사님은 내 얘기를 열심히 들으며 받아 적었지만,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고 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카피한 것들로 만든 게임이 맞다는 말씀이신거죠?' 라고 확인사살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
"그 쪽 사람 몇몇이 아주 비협조적이라 죄질이 안 좋아요. 또 거기 실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바X이야기' 때문에 이미 걸려 들어간 것 같더라구요? 조사중이라고는 하는데."
라고 형사님이 말미에 이야기했다. 난 더 묻고 싶었지만 (소문 들은 게 있으니까)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귀찮은 일은 없을 거다'라고 하고 사무실을 나가는 터에 더 물을 수는 없었다. 
경찰서 행 때문에 꽁으로 하루 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눈누난나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일찍 가서 게임하면서 맥주나 까야지 하면서.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더 춥고 혹독한 겨울로 접어들 것이라는,
그렇게 진행될 내 운명은 아무 것도 짐작하지 못한 채 말이다. 크크

*에디터 버튼을 처음 눌러 보네유...크크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구라리오
22/04/02 22:41
수정 아이콘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다음 편은 언제...
22/04/02 22:4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임회사도 암투가 덜덜덜 기업극화 같습니다
헤으응
22/04/02 22:57
수정 아이콘
이거 보고 있으니 저도 게임 회사 입문하던 시절 얘기를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스믈스믈...
(근데 전 대기업이라 이렇게까지 극적이진 않습니다. 네임드들이 많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척척석사
22/04/02 23:23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개재미있는 연재가...
경험을 팔아서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흑흑
깻잎튀김
22/04/03 00:56
수정 아이콘
저한테도 최근에 nft 관련된 일 하자고 연락이 오던데 사실상 거절하고 좀 지나니까 트위치 nft 사건이 터지더군요
사람의 탐욕이란 참 뻔하다 해야되나
12년째도피중
22/04/03 01:25
수정 아이콘
솔직히 처음 올려주실 때만 해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줄줄 나오리라고는 예상못했습니다.
그리고 글빨도 너무 좋으신 것 같아요.
방구차야
22/04/03 08:30
수정 아이콘
벤처시대 격류의 현장이네요.. 다음편도 기대리게 만드는 경험담의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22/04/03 09:48
수정 아이콘
여기서 바다이야기가
고스트
22/04/03 12:58
수정 아이콘
바다이야기면 진짜 오래전이군요.... 낭만시대 일 들어보면 장난 아니긴 했어요
raindraw
22/04/03 15:26
수정 아이콘
회사 사정이 안좋아져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아마도 메인 개발자들이 연루 되었을테니 프로젝트는 거의 망한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편하실 때 편하게 올려주세요.
그럴수도있어
22/04/03 18:56
수정 아이콘
재미있어요! 글안쓰시고 설마 노시는거 아니시죠? 크크 차근차근 오래오래 올려주세요~
이웃집개발자
22/04/03 20:59
수정 아이콘
아..........이런일에 연루될수있다니 너무 멋있어요(?)
22/04/03 21:25
수정 아이콘
건강보다 연재입니다 얼른 써주심씨오
신류진
22/04/04 10:22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사정이 딱하게 되었습니다만 다음편은요?
22/04/04 11:46
수정 아이콘
아직도.. 프롤로그인가요???
야크모
22/04/04 13:07
수정 아이콘
아 재밌게 봤습니다. 모쪼록 건강보다 빠른 연재에 유의해 주세요
22/04/04 13:17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합니다. 다음편 주세요~~
22/04/04 13:32
수정 아이콘
맥주를 까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은 바로 고생 시작 플래그 아닙니까!
리니시아
22/04/04 16:22
수정 아이콘
와... 다음화까지 숨참습니다
상큼발랄개구리
22/04/04 16:47
수정 아이콘
다음편....다음편 어서요~
22/04/04 18:37
수정 아이콘
꿀잼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376 [일반] [펌] [번역] 어떻게 경제 제재가 러시아를 죽이는가 [14] 판을흔들어라12364 22/04/06 12364 21
95375 [일반] 오늘로서 소송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39] BK_Zju16709 22/04/06 16709 23
95374 [일반] 40대 아재의 백수 이야기 - 2달 후 이야기 [32] 간옹손건미축8987 22/04/06 8987 20
95372 [일반] 보이스 피싱의 발전 - [엄마]로 전화가 온다면? [16] 42년모솔탈출한다9248 22/04/06 9248 2
95371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8) [28] 공염불8864 22/04/06 8864 28
95370 [일반] 서울대공원 - 과천과학관 - 렛츠파크런 여행 [24] 그때가언제라도7416 22/04/05 7416 2
95369 [일반] 어쩌다 인생 첫 소개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37] 데브레첸10939 22/04/05 10939 12
95367 [일반] Hyena는 왜 혜나가 아니고 하이에나일까요? - 영어 y와 반모음 /j/ 이야기 [30] 계층방정10755 22/04/05 10755 15
95366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7) [31] 공염불9472 22/04/05 9472 45
95365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6) [13] 공염불8912 22/04/04 8912 29
95364 [일반] [추천] 바이럴에 낚여 보게 된 기괴한 상상력의 드라마 [23] 로각좁15010 22/04/04 15010 0
95363 [일반]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주 완전 확보 선언 [125] kapH28020 22/04/03 28020 19
95362 [일반] 소규모 회사에서 나타나는 개발자의 도덕적 해이 [89] 시드마이어17280 22/04/03 17280 42
95361 [일반] 대학병원 처음 가본 썰 푼다 [15] seotaiji9940 22/04/03 9940 6
95360 [일반] 봉준호가 선택한 소설 [미키 7] [9] 우주전쟁7067 22/04/03 7067 2
95359 [일반] 그것이알고싶다 가평계곡 익사사건 후속보도 예고 [67] 핑크솔져13783 22/04/03 13783 4
95358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5) [21] 공염불9951 22/04/02 9951 42
95357 [일반] 꿈을 꾸었다. [20] 마이바흐6687 22/04/02 6687 25
95356 [일반] (스포)요즘 본 만화 후기 [6] 그때가언제라도8582 22/04/02 8582 0
95355 [일반] [팝송] 뫼 새 앨범 "Motordrome" 김치찌개3995 22/04/02 3995 2
95354 [일반] 나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가취있기를 [14] 요슈아8475 22/04/01 8475 9
95353 [일반] 크림과 무신사의 대결 결과. 크림이 완승을 거뒀습니다. [34] Leeka14958 22/04/01 14958 9
95352 [일반] 만우절 기념, 넷플에서 최근 본 녀석들 나름의 소감 [11] 공염불9649 22/04/01 964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