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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1 01:39
그래도 스승 겸 장인 생전엔 처남들 죽이진 않음.
민제도 제발 아들놈들 살려달라고 저기 멀리 귀양 보내달라고 하고. 하지만 장인 사후엔 가차없죠?
22/03/01 02:32
권력의 가까이에 있다가 실권을 놓친 자가 무슨 짓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증명을 본인이 해 놨으므로
권력의 가까이에 있다가 실권을 빼앗을 처남 등이 벌일 행위를 막아낼 방법은 명백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22/03/01 06:29
최근의 드라마도 그렇지만 태종을 포장하려다 보니 무슨 명분이나 이유, 대의 등을 많이 갖다 붙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답인 경우가 많죠. 자신이 피를 많이 묻히고 심지어 형제와 동지들까지 죽이면서 권력을 잡았으니 누군가도 자신과 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불안감, 죄책감 혹은 집착.. 세종 덕분에 과하게 포장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세종은 그냥 외가쪽 혈통 혹은 엄마 쪽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영민하고, 치밀하고 등등.. 그리고 반대로 아버지를 빼다 박은게 양녕이랑 수양.. 캐릭터 묘사만 따지면 팬픽이긴 하나 뿌나쪽 세계관의 태종이 좀 더 직관적이고 현실적인거 같아요.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점 등등
22/03/01 07:39
그래도 이방원이 여리다고 보는게
1) 동복형제는 절대 죽이지 않았고 2) 정도전은 본인과 큰아들만 죽였고 (반역죄로 낙인 안 찍음) 3) 양녕도 사실 아들이라도 크킹식이면 죽여야하는데 살려둠 4) 생각보다 사람을 덜 죽였죠 킬의 임팩트가 쌜 뿐 그 당시 기준에 죽여야만 하는 최소한의 사람만 죽였다고 봅니다
22/03/01 09:33
태종에게 과한 명분을 갖다 붙인다는 점은 인정을 하지만, 님과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강씨와 이방원과의 다툼은 막 개국된 왕조에서, 당시 이성계의 가계 구조 상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권력 다툼으로 봅니다. 전 이방원에게 명분이 부족한 건 맞다고 생각하고, 이상하게 그걸 현대에서 만들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좀 듭니다만. 하지만, 이방원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글쎄요. 이방원은 조선왕조 유일한 과거 급제한 왕이고, 신하와 유학 배틀에서 신하들 쿠사리 주는 몇 안 되는 왕 중에 하나고, 감히 세조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 감각을 보여주고, 권력 다툼과 관련된 정치말고, 백성을 다스리는 행정의 정치력까지 아주 뛰어 났던 사람이죠. 쿠데타로 왕이 되었음에도, 사병 혁파 하면서 공신들 팔다리 적절하게 자르고, 외척들은 골로 보내서 왕권과 나라를 안정화 시켜버렸죠. 이게 무슨 권력, 집착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건 오히려 드라마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왕권강화를 위한 이방원의 엄청난 정치력이었다고 봐야죠. 보통 나라가 새로 열리면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에 굉장한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도 아주아주 많은데, 태종은 이 정도면 아주 간단하고 깔끔하게 나라를 안정화 시킨 겁니다. 당장 세조는 쿠데타 이후 공신들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주면서 조선 정치가 흔들리는 단초를 제공하는데요.
22/03/01 09:47
권력에 대한 집착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방원 자체가 능력이 워낙 출중하기도 했고, 왕권강화를 통한 국가 안정화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왕이 되어야겠다는 고집 정도는 있었겠죠.
개인적으로 이방원-정도전 라이벌리에서는 정도전이 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막 개창한 왕조인데 왕에게 군림만 하라고 강요하면 정통성 부족한 왕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죠) 이방원 루트가 세종 덕분에 과대평가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세종, 문종 이후로는 기나긴 쇠퇴뿐이었다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요.
22/03/01 09:56
권력 집착이야 당연히 있었겠죠.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권력 집착이 없는 건 말이 안 되고,
제 말은 행동을 단순히 권력집착, 쿠데타를 일으킨 불안감, 집착적인 성격 뭐 이런 거로 풀이하는 거야말로 너무 드라마적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위정자가 권력 집착이 부족한 건 오히려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종 이후이 쇠퇴는..... 사실 왕권 국가의 함정이기도 하고, 신권 국가라 한들 좋았을까하면 그것도 별로 동의는 안 되구요. 영원히 잘 나가라는 법은 원래 없죠 태종이 만든 체제의 한계라고 단정짓기엔 세조의 뻘짓도 있고, 역사란게 깊이 알아아보면 알아볼수록 이런 단편적인 부분으로 결론 짓기는 어렵죠.
22/03/01 18:49
음.. 댓글이 왜 인지 모르겠는데 다 날아갔네요ㅠㅠ
요약하자면 저는 이방원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걸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이용했다고 보는거죠. 왕권 강화를 위해서건 본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건 여러가지 정책을 펼친 것은 사실이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었을 뿐 조선의 왕권강화로 이어지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태종만큼 권력을 누린 왕은 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이는 이방원의 조선과 정도전의 조선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고 조선은 이방원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대부의 나라 유학자의 나라였기 때문일겁니다. 결과적으로 무인정사는 그냥 같은 체제에서 왕의 이름과 권신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죠.
22/03/01 18:08
저도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조선초 영걸 3대중에 가장 뛰어난게 누구냐면 세종보다 오히려 이방원이 더 뛰어나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세종덕을 많이 보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죠
22/03/01 09:17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민씨 4형제 중 특히 아래 둘은 태종이 죽인 적 없습니다. 엄연히 실록에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 [엄중히 감시]하되 죄를 뉘우쳐 자진하고자 하면 [말리지 마라] 말리지 마라 말리지 마라 말리지 마라 보세요. 태종이 어디 사약을 내렸습니까 망나니를 보냈습니까? "죄를 뉘우쳐 자진하고자 하면"이 "자진하지 않으면 죄를 뉘우치지 않은 것"으로 읽히신다면 푸틴 탓입니다
22/03/01 16:00
오 관심이 생겨서 실록을 찾아보니
민무회를 담당한 청주목사와 달리 민무휼을 담당한 원주목사 권우가 의금부도사에게 전달받은 왕의 뜻을 오해해서 민무휼을 자진하도록 독촉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장 70대의 형을 받았으나 원종공신의 아들이라 용서받고 파직에 그치는 사고가 있었군요. 엄연히 "만일 자진하고자 한다면 이를 금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오해하다니 아주 큰 잘못을 했군요. 그 때문인지 2년 뒤에나 복직하는 기록이 보이네요.
22/03/01 14:54
본문 막바지의 내용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외척 작살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막나가는 지아들 양녕대군에겐 한없이 따뜻했던게 정말 두얼굴 보는 느낌입니다..
22/03/01 15:20
이방원의 다른 숙청이야 그래도 권력 기반을 보전하고 공고히 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살펴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다만 알아서 기던 민씨 일가 셋째, 넷째 처남 개같이 죽여놓고, 향후 수양한테 빌붙어먹는 양녕 살려놓은건 이방원의 명백한 실책이라 생각합니다. 역으로 셋째, 넷째 처남은 적당히 벼슬길만 막아놓고 냅둔 다음에 양녕을 죽였어야 앞뒤가 맞는 행보였는데, 자식에 대한 정이 후대를 그르쳐놨죠.
22/03/01 17:10
여흥 민씨는 그 이후에도 조선시대 내내 명문가문였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왕비인 인현왕후 명성왕후도 여흥민씨고 특히 조선말 여흥민씨는 최후에 세도가 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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