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 말기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메이지 유신 세력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욱 깨어있었고 또 유능한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친구와 적 모두 그를 무서울 정도로 유능한 인물로 보았기에 그가 쇼군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요시노부는 나름대로 정력적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추진하였고, 프랑스는 그런 그를 지원하였다. 그는 애국자였다. 애초에 국뽕(?)을 학문으로 하는, 즉 국학을 내세우는 미토번 출신 아니던가. 그가 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 사츠마와 쵸슈도 마찬가지였다.
요시노부와 유신세력은 정국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웠다. 유신세력은 도바 후미시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 기세를 몰아 에도성(도쿄)까지 진격하여 요시노부를 포위하였다. 그런데 유신세력이 반드시 승리할 운명이었던 건 아니다. 쇼군을 지원하기 위해 동북에서 원군이 오고 있었으며 병력숫자는 막부 측이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농성전을 펼치면서 원군이 왔다면 유신세력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 것은 요시노부였다. 일본이 서로 싸우다가 피폐해지게 된다면 서양열강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국강병이란 방향성을 공유하는데 여기서 서로 싸우게 되어 일본이 약소국화되어 세계무대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안된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요시노부는 에도 무혈입성을 허용하고 투항하였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성공적 근대화를 목격한 막부의 충신 카츠 카이슈는 훗날 진정 용기있었던 것은 요시노부 공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야권주자들도 대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되, 내가 당선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주길 바란다.
CC. 홍준표, 유승민, 김종인, 김무성 등 특히 이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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