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푸르에 생각보다 오래 지내면서 슬슬 다음 마을로 넘어갈 시기가 왔다. 벌써 12월 중순이었고 연말 연초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갠지스 강으로 몰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 계획은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보고 수많은 성행위 조각이 많은 카주라호에 갔다가 바라나시(갠지스 강)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카주라호는 계륵이었다.
카주라호에 가면 교통편이 꼬여서 며칠을 낭비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인도는 워낙 큰 나라라서 옆 동네가 말이 옆 동네지 굉장히 멀었다.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는 노빠꾸 여행지였다.
그리고 최근에 심심해서 다녀온 라낙푸르의 자인교를 떠올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카주라호는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우다이푸르 호수 근처의 분위기 좋은 까페에 앉아 가이드북을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라낙푸르 자인교'라는 처음 들어본 종교와 지역이 눈에 보였다. 여행사를 통해서 택시투어로 갈 수도 있지만 3명의 동행을 모집해도 최소 2000루피가 넘는 큰 돈을 쓸 수는 없어서 무작정 우다이푸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래도 이 동네는 버스 터미널다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매표소에 가서 자인교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 영어가 안 통한다. 고민을 하다가 가이드북 사진을 보여주니 '아~ 여기?' 라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종이에 버스 탑승 시간을 알려줬다. 버스 가격은 편도로 100루피.
숙소에 들어와서 내일 가게 될 자인교를 구글맵에 검색해보는데 거리상 100km라서 금방 가겠구나 싶었는데,
다음날 막상 버스에 타니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찌나 이 마을 저 마을 많이 들리던지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버스는 덜컹 덜컹 거리는데 버스 앞 유리가 없었다. 비포장 도로의 먼지들은 순수 자연 그대로 100% 승객들에게 전달이 됐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현장감이라는 것인가.
버스 기사가 다 왔다고 길 한복판에 내려주는데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왼쪽에는 뿌연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덩그러니 대리석처럼 보이는 하얀 건물이 보였다.
짐을 맡겨놓고 입장료 200루피에 들어간 자인교의 디테일한 조각은 내 눈을 의심케 했다. 기둥부터 천장까지 모두 조각으로 만들어진 종교 건물이었다. '와, 어떻게 이걸 만들었지? 조각 잘못 만들면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되잖아?'라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 조각의 신이 있다면 이걸 만든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술이었다. 비슷하게 생긴 조각처럼 보였지만 조각 얼굴 하나하나에 표정이 살아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동양인은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인도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나도 네들이 신기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해도 알아먹겠나 싶다.
우다이푸르에서 괜찮은 여행사 고르기는 쉬웠다. 여행사 앞에 한글로 '여기 사장님 친절해요!'라고 쓰인 곳으로 가서 아그라행 기차표와 아그라에서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결제했다. 그리고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기차를 탔던 순간을 떠올렸다. 무엇을 과연 조심해야 될지.
욕쟁이 누님은 최근에 우다이푸르에서 다시 만났지만 이 마을이 좋다고 더 오래 있고 싶다고 해서 이번 기차여행은 솔플이다.
그리고 저번에는 2등석으로 탔는데 이번에는 SL(Sleeper class)좌석으로 보통 여행객들이나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자리다.
일단 우다이푸르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다행히도 기차는 1시간 지연이었다. 무슨 토익시험 응시장도 아니고 내가 타는 기차역 칸 밖에는 그 칸에 타는 사람들의 이름과 좌석이 적혀있다.
그리고 SL에는 Upper, Middle, Lower라는 좌석이 있는데 Upper는 낮과 밤 상관없이 풀 잠을 자도 되는 곳이다. 단점은 계속 누워있던지 Lower좌석에 앉아 있어야 된다는것. Middle 좌석이 정말 계륵인데 밤에는 잤다가 아침이 되면 Middle 좌석을 접어서 Lower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특히 인도 사람들은 자기 자리도 아닌데 그냥 앉는 경우가 많아서 분명 Middle과 Lower이면 2명이 맞는데 4~5명이 앉아서 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SL은 '마! 우리가 남이가!' 라는 정신을 느낄 수 있다.
SL의 꿀자리는 Side의 Upper와 Lower인데 여기는 Middle이 없어서 편하다.
그래서 아그라행 기차는 Side lower와 바라나시행 기차는 일반좌석 Upper로 신청했다. 2등석은 Upper와 Lower 그리고 이불과 담요가 제공 및 자리마다 커텐이 있는데 SL좌석에 비해서 가격이 3~4배가 비싸다. 1등석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있는데 간혹 강간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2등석보다 2배이상 비싸기 때문에 타본 적은 없다.
혼자 떠나는 기차에는 미리 준비해온 침낭과 에어 베개를 세팅해놓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운 좋게도 Side자리에 220V용 콘센트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유토피아.
인도 기차를 타면서 놀라운 점은 보통 한국에서 기차를 타면 '곧 있으면 대전역에 도착합니다. 대전에 내리실 승객들은 블라블라..'라고 방송을 해주는데 인도에서 탔던 기차들은 그런 초보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시간에 맞춰서 알아서 내리면 된다.
나같은 경우는 일단 다음 목적지까지 10시간이 걸린다고 친다면 일단 10시간 뒤로 알람시계를 맞춰둔다. 어차피 인도기차는 제 시간이 도착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기차 어플을 열어서 현재 내가 어디까지 역을 거쳐왔는지 확인해본다. 혹시 모르니 구글 맵에도 내가 내릴 기차역을 표시해둔다. 마무리로는 창밖에 어디 역까지 왔는지 확인 후 군것질을 하러 정차역에 잠시 나갔다오는 센스.
아그라역에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그것은 바로 택시 정찰제였다. 내가 이제껏 당했던 바가지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최첨단 시스템으로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을 했다. 길거리는 왜 이렇게 깔끔한건지, 소똥이 아닌 꽃길을 걸을 수 있게 길에는 꽃도 심어져 있었다.
우연히 숙소 같은 방을 쓰게 된 형님과 아그라 성에 갔다. 내일은 새벽 일찍 타지마할에 갈 계획.
나는 거제도 대우조선소를 그만두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형님은 stx조선소를 그만뒀다는 말 한마디에 '말하지 않아요~'라는 광고가 생각났다. 대우조선소도 그만두기 전에도 난리였지만 stx에 비해선 양반이었다고 형님의 마음을 다독거렸다.
인도 관광지 외국인 입장료는 보통 현지인보다 5배에서 10배가량 비싸다. 아그라 성도 그 당시에 입장료가 500루피였는데 현지인들은 50루피였다. '이걸 확 그냥!'
아그라 성은 델리에서 욕쟁이 누님과 같이 갔던 붉은 성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그라 성 내부에는 한국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쩐지 오던 길에 버스가 많다고 했더니 다들 패키지로 인도에 오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30대로 보이는 젊은 층도 있었는데 소수인원 지프니 패키지 투어로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인도가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저렇게 패키지로 다니면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과 나는 추리닝에 쪼리 차림으로 아그라 성에서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을 보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의 패션은 눈이 부셨다. '설마 여기서도 등산 가시는거 아냐?' 싶을 정도로 화려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타지마할로 향했다. 숙소 사장님이 최근에 타지마할에 안개가 많이 껴서 건물이 잘 안보인다고 했는데 이날도 안개가 굉장히 많이 꼈는데 입장료가 비싸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인도여행의 큰 목적이 타지마할 보기였는데 절대로 포기 못하지. 그리고 매표소에 도착을 했는데 남여 줄이 따로 있었다. '어? 인도에서 이걸?'라며 또 한번 놀랐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택시 정찰제나 사뭇 나를 여러번 놀라게 했다. 1000루피에는 토익 시험장에서 주는 신발 덮개와 작은 생수통 1개씩을 지급했다. 타지마할 대리석에서는 신발로 다닐 수 없다고 한다.
12월 중순, 아그라의 새벽은 꽤 쌀쌀했는데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고 있었다. 어제도 아그라 성 안쪽에 가니 아주 작게 타지마할이 보이던데, 실제 크기가 작겠구나 싶은 것이 동네 어딜 걸어도 타지마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타지마할 주변으로는 엄청나게 높은 벽이 있어서 입장시간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새벽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의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고 드디어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건물을 보기 위한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에서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타지마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 이건 지렸다. 죽기 전에 꼭 봐야된다."
타지마할이 이렇게 크고 아름답다니! 이건 마치 피사의 사탑에 갔는데 사탑의 크기를 보고 놀란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이건 마치 "해남 거기 문 열면 바다보이는 깡촌 시골아니야?"라고 놀려댔다가 우연히 놀러온 해남 시내를 보고 놀라는 충격과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타지마할 4개의 기둥은 혹시모를 지진을 대비한 설계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이 시기에는 타지마할 대리석 청소 기간이라서 발판을 설치해둔 것이 아쉬웠다. 몇달 뒤에는 타지마할 건물 자체 청소를 위해서 발판을 설치한다고 하니 그것보단 낫다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전문 사진작가를 고용해서 타지마할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인생샷을 남기고 있었다. 타지마할 방문의 날이라고 현지인들에게 많이 방문하도록 독려한다는데 인도가 자랑해도 모자랄 만큼 멋진 건물이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만든거지?'
1000루피가 아깝지가 않았다. 다음에 타지마할은 발판이 없을 때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날 밤 stx형님은 요르단이 땡긴다면서 델리행 버스로 떠났고 나는 마지막 목적지인 갠지스 강을 보러 다시 기차역에 왔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혹시 몰라서 일찍 온 밤 10시 기차는 아직 도착해있진 않았다.
매표소 화면에서 기차 시간을 보는데 10:00으로 떠 있길래 '오, 이게 웬일이야? 먼저 갠지스 강에 간 한국인 커플들은 바라나시 기차가 14시간 지연으로 캔슬됐었다고 하던데.' 라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인도에서 밤 10시면 22:00이 맞는데 왜 10:00이지?' 그러던 중 갑자기 옆에 있는 외국인들이 '너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 가냐? 이거 딜레이 맞지?' 라며 말을 하는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이미 기차는 12시간 지연이 확정이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바라나시행 기차가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인도에서는 이런 일이 태반이라는 표정으로 아무개 기차역에서 안개가 너무 심해서 지연이 됐다고 모니터에서 'Late'로 바꾸고 일단 기차가 올때까지 기다려보라면서 돌연 사라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3일 뒤에 델리로 떠나야 되는데 비행기 결제도 다 해놨는데 어쩌냐면서 "What the fxxx"이라고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현지인들은 '뭘 이런 걸로 그래?'라면서 가슴 한켠에 숨겨둔 노숙용 비닐을 기차역 바닥에 펼쳐놓으면서 눕방을 위해서 모포를 깔고 있었다.
역시 인도는 호락한 곳이 아니였다. 과연.. 나.. 갠지스 강에 갈 수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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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행의 목표는 타지마할, 갠지스 강이였는데요. 가이드북 지도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정했어요. 요즘 구글맵치면 리뷰나 사진이 잘나오니깐 그걸로 계획을 얼추 잡고 왔는데, 기차 딜레이나 막상 갔더니 별로인 곳은 바로 넘어갔어요. 가이드북 보면 버스,기차 시간대별로 정말 잘나와있어서 그거 참고하면서 계획을 잡았어요.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한국 여행객들이랑 얘기하면서 들은 정보로 즉흥적으로 가고 싶은 마을도 추가해서 교통편 확인하면서 여행했어요.
1. 어딜 가고 싶은지 큰 틀을 잡는다.
2. 비행기 티켓을 일단 결제 한다.
3. 인도는 변수가 많으니깐 절대로 마을마다 사전 예약(숙소예약,액티비티 등)을 해두지 않는다.
4. 워낙 큰 나라니깐 여행 기간내에 다 보려고 하지말고 다음에 봐도 된다는 생각으로 여행 계획을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