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2/05 18:27:31
Name 우주전쟁
Subject [일반] 귀는 눈보다 빠르다...하지만... (수정됨)
데이비드 이글먼이라고 하는 뇌연구의 권위자가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청각신호와 시각신호 가운데 어떤 신호를 더 먼저 처리하는 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실험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100미터 육상선수들을 불러서 육상선수들이 청각정보를 받고 출발할 때와 시각정보를 받고 출발할 때 어떤 경우에 출발반응속도가 더 빠른 지 분석을 했던 것이죠.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 100미터 육상은 총성을 신호로 해서 출발하게 됩니다. 즉 청각정보가 전달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생물학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아무리 훈련을 한다고 해도 출발반응속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서 정해놓은 최소출발반응속도는 0.1초입니다. 만약 어떤 선수가 이것보다 더 빠른 출발반응속도를 보였다면 이는 부정출발로 간주가 됩니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만약 선수들이 청각신호 대신 시각신호 즉, 자동차 경주대회처럼 신호가 되는 불빛을 보고 출발을 하게 되면 출발반응속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자연에서 빛은 소리보다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만약 선수들이 빛을 보고 출발을 하게 될 경우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소리를 듣고 출발하는 것보다 정보가 더 빨리 들어오게 되는 것이므로 출발반응속도도 조금은 더 빨라지지 않을 까 예측해 본 것입니다. "에이~!그 가까운 거리에서 두 신호간의 전달속도에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해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uvVudbG.png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선수들은 시각신호를 받고 출발할 때가 청각신호를 받고 출발할 때 보다 출발반응속도가 유의미하게 더 느렸습니다. 이로부터 이글먼이 내린 결론은 비록 시각정보가 우리 눈을 통해 뇌까지 전달되는 것은 청각정보가 우리 귀를 통해서 뇌까지 전달이 되는 것보다 더 빠르지만 우리 뇌에서 두 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대로 청각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움직임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걸리는 시간이 청각신호를 받은 경우가 시각신호를 받은 경우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글먼에 따르면 만약 위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눈앞에서 손뼉을 쳐보면 우리가 보기에 손바닥끼리 서로 맞닿는 것과 그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항상 동기화되어 마치 동시에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청각정보가 비록 우리에게 도착은 늦을 지라도 뇌에서의 처리 속도는 더 빨라서 전체적으로 시각정보보다 해석이 더 빨리 된다면 손뼉 치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조금은 더 먼저 들리고 난후 손바닥끼리 서로 마주쳐야 될 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이것 역시 저 같은 문외한에게 있어서는 구분에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결국 이글먼이 정리해 주는 바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시각, 청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고 동기화해서 지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또는 벌어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일을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다시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들이 사실은 아주 미세하게나마 약간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들이고 뇌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아주 세심하게 편집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공된, 또는 뇌의 편집을 거친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이 말이 맞는다면 결국 우리는 늘 현재보다 아주 약간 전의 과거만을 보고 있는 샘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일들도 다 미세하게 과거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뇌가 "매트릭스"인 것이고 우리 모두는 빨간 알약을 먹기 전 "네오"인걸까요? 약의 색깔은 어차피 처음부터 의미가 없던 것이었을까요?  

1416.jpg?width=700&quality=45&auto=format&fit=max&dpr=2&s=f6e686b365791b6341239917d16e525a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드셔~!


* 이 글은 David Eagleman의 저서 [The Brain – The Story of You]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1/02/05 18:40
수정 아이콘
도입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100m 선수들은 청각을 신호로 출발하는것을 굉장히 고도로 훈련한 사람들이 아닌가요?
청각이 빠른게 확실해질려면 반대로 F1 선수들을 데리고 청각으로 출발하는 시험을 해봐야 검증이 어느정도 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우주전쟁
21/02/05 18:51
수정 아이콘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글먼 이 녀석 석사 때 실험 기초도 제대로 안 배웠구나!...--;;
Prilliance
21/02/05 19:05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에도 저런 실험을 할거면 100미터 선수가 아니라 아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21/02/05 19:33
수정 아이콘
오.. 공감합니다. 훈련된 사람들은 거기에 최적화되어 있을 수 있으니깐요.
BlueTypoon
21/02/05 19:55
수정 아이콘
프로게이머로 조금 찾아봤습니다.
G2에서 반응속도 유튜브로 올라온 영상이 있는데 가장 빠른 원더 선수가 평균 166ms, 최고 157ms를 찍었고 input lag, display lag을 제외하면 육상 선수들의 반응속도와 비교해도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BlueTypoon
21/02/05 19:59
수정 아이콘
그런데 관련 논문이 있네요.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456887/
시각은 평균 180~200ms, 청각은 140~160ms이라고 합니다.
깃털달린뱀
21/02/05 19:04
수정 아이콘
사실 처리속도에 상관 없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건 모두 미세하게 과거의 일입니다. 보는 것도 결국 빛이 반사 돼서 우리 눈까지 닿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완벽한 동시성이란 존재하지 않죠.
우주전쟁
21/02/05 19:16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것 + 뇌가 종합적으로 현상을 재구성 하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확실하게 과거를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21/02/06 14:25
수정 아이콘
‘동시’란 애초에 무엇일까요...
우스타
21/02/05 19:10
수정 아이콘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과거의 일이긴 하죠. 빛의 속력은 유한하니까...
착시나 환각 등 명백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는 경우도 너무나 많고
내가 보는 "녹색" 이라는 색을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다가 넘겨버리고 말죠 크크크
어차피 인간은 모두 다르니까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고요
우주전쟁
21/02/05 19:17
수정 아이콘
우리는 결국 "객관적인 실체"를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우스타
21/02/05 19:2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색"을 예로 들었으니 그거에서 더 나아가자면, 어차피 가시광선은 모든 전자기파와 마찬가지로 그 색에 해당하는 파장대역이 있으니 과학에서는 파장(대역)값으로, 웹/인쇄에서는 RGB/CMYK 값이 존재하니 그걸로 객관성을 충족시킬 것이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죠.

실체가 어찌되었건 우리가 단순히 감각기관을 통해 [느끼는] 건 객관적일 수 없으니까요. 당장 청색/금색 드레스 사진만 봐도 그렇고요.
+) 우주전쟁님이다보니 생각났는데, 천문 관측에서도 우리 가시광선 바깥의 파장을 false colour로 억지로 우리 가시광선으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실체"는 우리의 능력 밖에도 엄청나게 많기도 하네요.

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크게 파고들며 생각해본 분야는 아닙니다 크크크
피우피우
21/02/06 10:08
수정 아이콘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객관적인 실체를 확인하는 게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인지의 한계가 아니어도 고전적 의미의 "객관적인 실체"라는 건 애초에 없다는 게 지금까지 물리학의 결론이긴 하죠..
우리가 모르는 숨은 변수가 있고 그것만 알면 "실체"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거 없고 그냥 이 애매하고 모호해보이는 파동함수가 바로 실체다! 하는 코펜하겐 해석이 현재로선 정설이니까요.
사실 물리학이 제시해줄 수 있는 건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과 법칙 뿐이라 그 법칙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얘기하는 건 철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거시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객관적인 실체라면 우스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색을 RGB/CMYK 값으로 나타내듯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기술의 힘을 빌려 확인할 수 있기는 하죠. 다만 그렇게 데이터화된 실체를 사람들이 얼마나 진짜 "실체"처럼 생각할지는 또 별개의 문제라..
21/02/06 02: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사람의 청각 인지 속도가 시각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집 고양이들이 누워서 자거나 쉬는 중에 갑자기 고개를 들어 획돌리는걸 보고 “왜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볼륨을 낮춰놓지 못한 컴퓨터에서 띵!! 하는 큰 경고음 따위가 뒤늦게 저의 귀에 인지가 되는걸 여러번 경험했거든요. 물론 제가 거북귀 일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소리는 어떤 사건 발생시에 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시 눈에 들어오는 빛 정보에 비해 신경 자극적이고 순간적으로 텐션을 올려서 청각 인지 속도가 아닌 근신경의 동작이 빨라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티모대위
21/02/06 04:42
수정 아이콘
청각 인지가 더 빠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확실한 것은, 청각 쪽이 훨씬 정보량이 적고 처리하기 편해요.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색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할때도 우리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게 초록색 물체가 빨간불을 가려서 초록색이 됐는지, 정말 초록색 불인지 구분을 하면서 판단할 겁니다. 나뭇잎이 신호등을 가린 건데도 초록불로 착각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죠.
즉, '초록색' 이라는 단순한 정보만으로 출발신호를 인지하는게 아니라, 다른 상황도 고려한 판단이 함께 들어간다는 거죠.
근데 청각은? 탕! 하면 그게 출발하라는 신호라고 판단하는건 너무 간단하죠.
21/02/06 11: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https://youtu.be/K4vyRvMASPU

우리의 뇌는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주제입니다. 한국어 자막도 있으니 추천드립니다
우주전쟁
21/02/06 11:58
수정 아이콘
결국 이글먼 선생님 말씀이 맞았군요...the specious present...
21/02/06 12:39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고 딱 떠오른 영상이어서 추천을 했는데요. 다시 보고 나니까 영상의 끝에서 이글만의 더 브레인의 내용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나오는군요. 크크크 우주전쟁님의 글을 보충해주는 영상인 걸로...
길고양이
21/02/06 12:39
수정 아이콘
굉장히 흥미롭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0337 [일반] [코로나] 2월 8일 코로나-19 관련 뉴스 모음 [3] 메타졸6589 21/02/08 6589 3
90336 [일반] 노력은 재능이다는 '게으름은 재능이다' 로 바꿔야 합니다 [173] 싶어요싶어요18178 21/02/08 18178 14
90335 [일반] 서울시 코로나 19 확진자수 정리 (접촉력, 이동동향 2021년 2월 7일 기준) [6] 아마추어샌님8994 21/02/08 8994 5
90334 [일반] 거리두기 상황에서 설날연휴를 보내기 위한 고민 [29] Dr.박부장8355 21/02/07 8355 4
90333 [정치] 나경원 "서울서 결혼·출산하면 1억1천700만원 보조" [142] 마늘빵16293 21/02/07 16293 0
90332 [일반] 모두, 사기 조심하세요.(탐욕에 눈이 먼 이야기) [37] Lucifer011838 21/02/07 11838 25
90331 [정치]  기본소득당-시대전환-진보당-여성의당 연대 논의 [12] 나디아 연대기7436 21/02/07 7436 0
90330 [일반] 미얀마 거주민 입장에서 보는 미얀마 현재 상태.txt [66] 눈팅전문가13788 21/02/07 13788 72
90329 [일반] 자산배분 및 백테스트에 유용한 사이트 하나 추천합니다. [14] StayAway8942 21/02/07 8942 10
90328 [정치] "박원순, 그런 사람 아냐" 손편지…"아내가 쓴것 맞다" [120] 맥스훼인15113 21/02/07 15113 0
90327 [일반] 오늘은 화성(火星) 설날입니다... [12] 우주전쟁8425 21/02/07 8425 18
90326 [일반] 왜 중국은 고령화를 걱정하는가? [122] 아리쑤리랑65769 21/02/07 65769 142
90325 [일반] 그냥 주말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본 이야기. 주절주절 (강스포) [42] 12년째도피중9611 21/02/07 9611 7
90324 [일반] 어영부영 늦게 자거나 어쩌다 일찍 일어나버린 새벽반 [3] 판을흔들어라6825 21/02/07 6825 0
90323 [일반] 육아에 지친 작곡가가 난데 없이 뽀로로에게 화풀이 함..... [13] 포졸작곡가9796 21/02/07 9796 25
90322 [일반] 그냥 옛날에 2인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갔던 일 [29] 마스터충달10880 21/02/07 10880 10
90321 [일반] 로봇 애니 붐은 온다! 로봇 애니메이션 노래 라이브 영상 모음 [33] 라쇼10317 21/02/06 10317 2
90319 [일반] 1반 선생님과 8반 선생님 - 교육과 권위, 학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32] 토루19396 21/02/06 19396 37
90318 [정치] 변창흠 국토부장관은 대중교통 요금을 알고 있을까요? [194] Leeka15885 21/02/06 15885 0
90317 [일반] 국회의사당 폭도들의 계급구성 - 이어서 (발췌 번역) 아난8320 21/02/06 8320 2
90316 [일반] [코로나] 2월 6일 코로나-19 관련 뉴스 모음 [15] 메타졸9033 21/02/06 9033 0
90314 [일반] 슈퍼 호넷 이야기 [12] 피알엘7704 21/02/06 7704 5
90313 [일반] 코로나 영업 시간제한 조치 완화 [182] 7급15613 21/02/06 15613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