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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3 18:55:02
Name 스마스마
Subject [일반] 에나츠의 21구(江夏の21球) (수정됨)
1980년, 일본의 문예춘추사는 미국의 유명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와 같은 성격의 잡지를 발간합니다. 훗날 한국에서 발행된 Sports 2.0(현재는 폐간 / 최민규, 박동희 등이 활동)에 영향을 준 바 있는 해당 잡지는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명망 높은 스포츠 전문지가 되죠.

2020년 3월을 맞이하며 1,000호 기념호를 발행하게 된 해당 잡지 명은 Sports Graphic Number.

일본에서 통칭 '넘버'로 불리우는 본 잡지의 기념비적인 1호 표지는 당대의 슈퍼스타 오 사다하루(교진)와 에나츠 유타카(히로시마)가 장식하지만, 지금에 와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표지가 아닌, 해당 호에 실린 야마기와 쥰지(山際淳司, 1948 ~ 1995)의 '에나츠의 21구'라는 논픽션 소설입니다. 이 글은 본 잡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명작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임팩트를 주게 되죠.

이 내용은, 1979년 열린 일본 프로야구 가을의 클래식 "킨테츠 버팔로즈(퍼시픽 리그) VS 히로시마 토요 카프(센트럴 리그)"의 7차전 9회에 나온 극적인 드라마를, 당시 마운드 위에 있던 에나츠 유타카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반추해본 글입니다. 치고 달리고, 던지고 잡고... 하는 것이 야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 준 본 드라마는, 유투브에도 많은 영상이 있으니 비교해 보며 읽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너무 유명한 글이라, 안국역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에서 찾아 열심히 복사하고 보관해두었네요. 서투른 번역이나마 이렇게 글을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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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나츠의 21구(江夏の21球), 야마기와 쥰지(山際淳司), 1980년 4월 20일 Number 창간호 발췌
-        관련 영상은 유투브 참조()



그·럴·리·가·없·는·데·
킨테츠 버팔로즈(近鉄バファローズ)*의 이시와타 시게루* 는, 여전히 이렇게 되뇌곤 한다.

9회 말 킨테츠의 마지막 공격. 스코어 4대3으로 지고 있는 상태에서 맞이한 원아웃 만루의 찬스. 1점 차로 좇고 있던 킨테츠에게 안타 하나면 역전, 희생타가 나오면 동점이 되는 천금의 기회가 찾아온다. 경기의 흐름은 이미 상대 뒤를 바싹 좇아 몰아치던 홈팀의 것인 상황.

마운드에는 히로시마 카프(広島東洋カープ)의 에나츠 유타카* 가 있었다. 그는 스퀴즈 작전을 경계하고 있었다. 에나츠가 이시와타에게 2구째를 던지기 전, 킨테츠 더그아웃으로부터 ‘그 사인’이 나왔다. 하지만 사인은 곧 상대에 읽히고 만다. 에나츠의 볼은 타자의 외각 바깥으로 빠져나갔고, 심지어, 커다란 낙폭을 그리며 떨어졌다. 이시와타는 최선을 다해 공을 향해 배트를 내밀고 허공을 휘저어 보았지만 닿을 수 없었다. 투수의 변화구가 깔끔히 배트 밑을 통과한 순간, 스퀴즈 사인을 받고 맹렬히 홈을 향해 달리던 3루 주자 후지세* 는 작전이 간파되었음을 깨달았다.

후지세 시로의 증언――
“타자였던 이시와타 씨의 카운트가 원 스트라이크 노 볼이 되었을 때, 더그아웃에서 블록 사인이 나왔어요. 무사에 3루 도착했을 시점부터 작전은 전해 들었고요. 스퀴즈도 할 수 있으니까 사인 잘 보고 있으라고… 처음엔, 에나츠 씨가 사우스포(Southpaw)니까 “스타트를 끊는 게 잘 안 보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그분은 스트라이크 존에 서슴없이 볼을 던지는 타입이고. 그런 선입관이 있다 보니 괜스레 스타트를 빨리 끊어 볼까, 뭐 이런 기분이 되더라고요. 포수한테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고… 만루였으니까요. 포스 플레이 상황인 점도 있죠. 터치 플레이였으면 평소처럼 스타트해도 괜찮겠지만, 포스 플레이는 좀 더 빨리 스타트를 끊어야 하니까... 그리곤 홈으로 뛰어드는데, 이시와타 씨의 번트 헛스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다리 힘이 확 풀려 버리더라고요.”

그 하나의 볼은, 당시 타석에 있던 이시와타의 머릿속 어딘가에 지금까지도 자리 잡은 모양이다.

이시와타 시게루의 증언――
“에나츠가 던진 그 볼, 정말 의식적으로 바깥쪽에 공을 던진 것인지… 아직도 믿기진 않아요. 포크볼이 우연히 손가락에서 빠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 배트에 맞추지도 못할 공은 아니었어요. 스퀴즈란 게, 빠른 볼에 타이밍을 맞추는 느낌으로 하는 거라… 투수도 벗어나게 던질 참이면 직구로 그렇게 던지죠. 근데 그 친구가 던진 건 변화구잖아요… 심지어 포크볼.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일부러 그렇게 던진 거면, 그건 뭐... 엄청난 것이긴 한데…”

에나츠가 던진 공이 그의 의도대로 이시와타의 배트 아래를 빠져나갔음은 사실이다. 우연한 발생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오사카 구장* 을 꽉 채운 킨테츠의 팬들에게 찾아온 낙담(落膽)의 순간. 하지만, 이 장면에 빨려 가듯 끌린 군상(群像)의 기분은 낙담은커녕 오히려 흥분에 가까웠을 듯싶다. 농밀히 급회전하는 시간 속엔 흥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들켰어요! 스퀴즈 작전을 들켰습니다! 투아웃! 순식간에 투아웃이 되어 버립니다!” 실황 중계를 전하던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이 볼은 해당 이닝, 에나츠가 던진 볼 중 19구째였다.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에서 킨테츠 버팔로즈 vs 히로시마 카프의 일본 시리즈 7차전이 열렸다. 각각 3승씩 나누어 가진 양 팀의 운명이 결착 지어질 무대.

히로시마는 1회 1점 - 3회 1점, 그리고 6회 미즈누마* 의 투런 홈런으로 추가점을 올리며 승리를 향해 나아갔다. 5회 말 히라노* 의 투런 홈런으로 반격을 개시한 킨테츠는, 6회에는 매뉴얼* - 쿠리하시* 의 연속 안타, 아리타* 의 번트 등으로 1점을 추가하며 상대의 뒤를 맹렬히 좇았다.

이제 점수차는 겨우 1점.

에나츠가 이 날 오사카 구장의 마운드에 오른 것은 실점 후 다음 회인 7회 말 1아웃 - 주자 1루의 장면이었다. 사전에 예정된 것으로, 중간 계투로 나온 후쿠시(한국명 '장명부'. *주)* 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경기가 시작될 즈음, 에나츠는 슬쩍 더그아웃을 나와 라커룸으로 향했다. 이는 그의 예정된 루틴으로, 릴리프 투수로 전념하게 된 후부터 서서히 만들어간 습관이다. 트레이너가 들어와 정성을 다해 그를 마사지 해주었다. 이미 에나츠의 왼팔은 이런 식으로 매일 같이 관리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프로 데뷔 이래 공식 시합 만으로 4만 3천 3백 11구의 피칭을 해왔던 탓이다.

이따금, 오~오~ 하는 환성이 라커룸으로 들려 왔다. 누가 안타라도 치거나, 삼진을 당한 듯싶다. 구장의 환호성이 전해질 때마다 에나츠는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본인의 등판이 차츰 다가오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시합은 3회로 접어들었다. “요시!(한국어로 하자면 “좋았어!” 정도로, 결의를 나타내는 표현. *주)”하며 에나츠가 몸을 일으켰다. 이 또한 항상 하는 행동으로, 라커룸에서 나온 그는 그대로 불펜으로 향했다.

에나츠가 마운드에 오른 7회,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유니폼 하의 왼쪽 포켓에 로진백을 찔러 넣었다. 조명등에는 이미 스위치가 들어와 있었다.





경기는 에나츠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7회 말에 상대 후속 타자들을 간단히 처리한 그는 8회에도 3자 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에나츠는 9회 말 피칭에 앞서 벤치 뒤에 앉아 HOPE(일본의 유명 담배 브랜드 *주)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여기만 막아 낸다면,” 하고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한동안은 야구 할 일이 없겠지...”.

9승 5패 22세이브의 성적으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듯, 그 해 에나츠는 혹사에 가까운 활약을 하였다. 해당 시즌의 히로시마 카프의 주요 시합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가 마운드에 있었다.

HOPE를 깊숙이 들여 마실 여유는 없었다.

타카하시 요시히코* 가 삼진으로 물러선 뒤, 그는 마운드를 향하여 걸어갔다. 그리고 이로부터 26분간, 에나츠는 오사카 구장의 마운드에 버티고 선 채로, “승자”와 “패자”의 양극단을 격렬히 오고 간다. 그 사이 에나츠의 공 하나하나에 엮인 히로시마-킨테츠의 양 팀 더그아웃,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 서 있던 선수들 사이에는 온갖 희비가 교차하게 된다. 어쩌면 야구란, 여러 가지 생각이 펄펄 끓듯 부유하다가 맞닿고 엇갈리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성립되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에나츠는 그런 소용돌이 속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 회니까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으로 분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아까와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을 뿐.

“이번 회만 마치면 올해 야구는 끝. 1이닝만 던지면 당분간은 쉴 수 있겠지.”

킨테츠의 6번 타자 하타 신이치* 가 타석에 들어선다. 에나츠는 상대 타자가 초구부터 치려 들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했다.
“마지막 회잖아요. 어쨌든 이게 올 시즌 마지막이니까. 신중히 공략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그래서 초구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갔는데… 아웃코스 직구였죠. 던졌더니 그만 딱 하고 얻어맞는 거야. 센터 앞이었지 아마... 헉! 하는 느낌이었죠.”

드라마의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에나츠의 초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 역할이 되었다. 팔을 휘둘러 내리는 순간, 최종 악장 ‘알레그로(빠르고 경쾌하게 연주함을 의미. *주)’가 시작된 것이다. 오사카 구장의 그라운드는 마치 절구통 바닥처럼 보였다. 급경사진 관중석으로부터는 환호성이, 마치 TV 볼륨을 갑자기 높인 마냥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렁차고 흥겨운 응원 소리에 오사카 구장이 들썩였다. 여기저기서 오색종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하타 신이치의 증언――
“바깥쪽 직구였어요. 초구부터 직구만 노리고 있었거든요. 배트가 자연스레 나오더라고요. 직구가 오면 일단 휘둘러 봐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 회심의 일타(一打) 같은 거죠. 예상대로 대주자로 후지세가 나오길래, ‘그래, 이 녀석이 홈을 밟으면 동점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1루에서 교체될 때 후지세한테 “야, 꼭 들어와라!”는 말을 전했어요.”

후지세는 79년 시즌에 27개의 도루를 기록한, 킨테츠가 자랑하는 최고의 전문 대주자였다. 더그아웃에서 히로시마의 코치가 나왔고, 곧 팀의 내야진이 마운드로 집결했다. 킨테츠의 니시모토* 감독도 더그아웃에서 나와 다음 타자인 아놀드* 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에나츠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타에 대해서는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의 인상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가 1점 리드 중이던 9회였나… 노아웃-주자 2루인 상황에서 하타가 타석에 들어왔는데,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급하게 공격하다가 평범한 플라이를 쳐올린 거예요. 생각 좀 하고 타석에 설 것이지, 거… 하고 내가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 그다지 요령 있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거든요. 그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거죠. 근데 그런 친구한테 딱 하고 얻어맞으니 뼈아팠던 거지. 설렁설렁 던졌던 것도 아닌데... 근데 내가 종종 초구에 뻥 하고 얻어맞긴 해요. 79년 시즌에… 10개던가… 얻어맞은 홈런 수가. 근데 그중 7개가 초구 홈런. 심지어 홈런 타자들한테 처맞은 것도 아니고, 평소엔 홈런 칠 일이 없는 놈들한테만 당했던 게 그 정도였어요.”

히로시마의 내야진은 수비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해 마운드 주변에 모였다. 상대가 번트로 주자 후지세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낼 것인지, 주자가 단독 스틸을 감행할지, 아니면 히트앤드런을 낼 것인지를 예측해야 했다. 경기가 재개되자 후지세는 아랑곳없이 단독 스틸을 감행했다.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아놀드에게 던져진 네 번째 볼에, 그가 달린 것이다.

에나츠가 던진 볼은 우타자 아놀드의 바깥쪽 직구였다. 하지만, 왼손 투수인 그가 던진 바깥쪽 직구에 슈트 회전이 걸리며 노린 코스보다 살짝 빠졌다. 심판의 콜은 볼. 포수 미즈누마는 허둥지둥하며 급히 2루로 송구했다. 타이밍 자체는 완전한 아웃이었으나 포수의 송구는 2루 베이스 앞에서 원 바운드 되어 중견수 쪽으로 빠지고 만다. 후지세는 그대로 3루 베이스를 향해 달려갔다.

노아웃 3루. 킨테츠에 생각지도 않은 찬스가 굴러 들어왔다.

오사카 구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TV 카메라는 1루 측 더그아웃 위로 일렁이는 오색종이의 물결을 좇았다. 실황 중계 중이던 라디오 아나운서도 흥분하여 절규하듯 외치고 있었다. “노아웃 3루! 노아웃에 주자 3루입니다! 킨테츠에 있어 너무도 간절했던 찬스! 종이테이프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아, 관중석에서 귤도 날아들고 있습니다!”

라디오 해설자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짐짓 근엄하게 덧붙였다. “어지간한 일이 벌어지지만 않으면, 동점이 되는 케이스네요.“

확실히 이 장면은, 대주자 후지세의 단독 스틸과 이에 당황한 미즈누마가 2루 악송구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백네트에서 관전하고 있던 노무라 카츠야* 또한, 후지세의 단독 도루로 여겼다. 객관적으로 그리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야구의 정석으로 비춰볼 때, 여기서 도루 사인을 낸다는 건 굉장한 모험입니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맞이한 9회잖아요. 주자가 죽으면 그 순간 끝이니까. 그런데도 달리게 했다... 물론, 야구는 ‘결과가 전부’이긴 합니다. 작전이 성공하면 그걸로 된 거지만은, 실패했을 땐 틀림없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거든요. 에나츠 - 미즈누마 배터리 vs 후지세의 대결 양상을 고려할 때,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면 시도해선 안 되는 거였습니다. 니시모토 감독은 평소 이런 식으로 작전을 내는 분이 아니에요. 엄청나게 신중한 양반이라…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는 그냥 안 건너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작전이 샛길로 빠진 거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측은 별개의 고민을 품고 있었다.

에나츠는 말한다.
“뭔가 시도하려는 건 알고 있었죠. 그거야 뭐 이쪽에선 어찌할 방도가 없고. 지난 2차전이 제 일본 시리즈 첫 등판이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어요. 주자는 후지세, 타자는 찰리(매뉴얼). 당시엔 점수를 안 주려고 엄청나게 분발했어요. 주자도 어떻게 좀 묶어 보고, 타자도 잡으면 좋겠고… 하는. 근데 실패했어요. 찰리한테 얻어맞았거든요. 이번엔 그리되어선 안되겠다 했죠. 후지세는 다리가 엄청 빨라요. 아마 내 버릇도 파악해뒀을 것이고… 그렇다면 달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바엔 타자에 집중하는 게 낫지. 1구째는 번트를 경계해서 바깥으로 볼을 뺐어요. 번트 시도의 느낌은 없더라고요. 2구째는 휘둘러라!, 하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그 볼도 빠졌고. 전~혀 칠 마음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아놀드한테는 웨이팅 사인이 났구나... 후지세가 달리는 걸 기다리고 있구만… 히트앤드런은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죠. 아놀드도 헛스윙이 많은 타자니까…”

하지만, 킨테츠 더그아웃의 니시모토 감독이 낸 사인은 히트앤드런이었다.
“당연하지. 그 장면에서 도루 사인은 말도 안 되고. 히트앤드런 사인이었어.”

어째서인지 이게 단독 스틸이 되었다. 후지세는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일단 뛰었다.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이 되고 나서 히트앤드런 사인이 나왔어요. 히트앤드런이니까 스타트를 다소 늦게 했거든요. 작전이 들키지 않도록. 그래서 도루할 때 보단 약간 스타트를 늦게 끊었죠. 스타트하고 세 발 정도 갔던가… 아놀드가 히트앤드런 사인을 놓쳤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아웃 타이밍이 된 거죠. 그래도, 어쩌면 세이프가 될지도 몰라, 하는 마음에 그냥 뛰었어요. 사실 단념하고는 있었지만…”

니시모토 감독은 더그아웃 구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작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건 둘째 치고, 그것이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노아웃 3루. 에나츠 vs 아놀드의 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스리 볼. 외야 플라이를 경계한 에나츠는 인코스 낮은 쪽으로 볼을 찔러 넣었다. 심판의 콜은 볼. 결국 포볼이 되며 주자는 1, 3루가 되었다. 아놀드의 대주자로 후키이시* 가 나갔다. 에나츠는 생각했다. “1점은 뭐, 어쩔 수 없겠네.” 마운드 위 투수 입장에서 가질 만한 솔직한 심정이다. 히로시마 더그아웃에 있던 감독 코바 타케시*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야진에게 전진 수비의 지시를 내린다. 1점도 주지 않겠다는 수비 태세를 취한 것이다.

코바 감독의 증언――
“그 장면에서는, 내야진을 약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 낫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전진 수비를 취하면 1루 주자인 후키이시의 도루 시도가 편해지니까요. 후키이시가 2루로 가면, 안타 하나에 역전되는 거고요. 근데, 우리로서는 어쨌든 1점도 주고 싶진 않았습니다. 3루 주자 후지세는 느린 땅볼로도 얼마든지 홈 베이스로 뛰어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1점 빼앗겨서 동점이 되면 그 순간 경기는 그대로 지는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1루하고 3루에 주자가 있었음에도 전진 수비를 지시한 겁니다.”

이 장면, 아니 잠시 후에 벌어질 더욱 긴박한 장면 앞에서도 코바 감독은 “냉정 하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백네트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노무라 카츠야는, 솔직히 코바 감독이 낸 작전은 히로시마의 패인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았죠, 라고 평가한다.
“당시 수비하는 쪽에서 보자면, 3루 주자보다는 1루 주자 후키이시가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후키이시라도 홈에 못 들어가게 막으면, 히로시마는 최소한 동점인 상태에서 연장을 맞이하게 되는 거니까. 그런데 후키이시를 공짜로 2루로 보내는 듯한 수비 태세를 취한 거죠.”

그 때, 어떤 장면이 에나츠의 눈앞에 느닷없이 펼쳐치며 그는 한층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 에나츠에게 있어 경기의 흐름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되어 버린 이 장면으로 인해, 마운드 위에서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그의 집중력은 돌연 상념 속에 묻히게 된다.

라디오 중계 중이던 아나운서가 그라운드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체크하며 히로시마의 위기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히로시마의 투수가 3루 쪽 불펜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비쳤고, 이를 곧바로 마이크에 대고 상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3루 불펜 쪽에서 이케가야* 가 등장, 투구 연습을 시작합니다. 히로시마, 위기입니다!” 에나츠 또한 3루 측 히로시마 더그아웃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이케가야의 피칭 연습이 시작된 것을 지켜 보고 있던 그의 눈에, 키타벳푸* 마저 불펜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들어온 것이다.

“아니 씨발, 뭐 하자는 거야!” 에나츠의 머릿속은 바로 반응했다. 거기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궁지에 몰린 상황이긴 하지만… 내 뒤에 던질 투수를 준비한다고? 아 그래? 날 아직 신뢰 못 한다는 거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죠. 불펜을 움직였다... 그렇다면, 난 이제껏 뭐하러 여기까지 던져 온 거지?... 석연치가 않은 거에요. 내가 마운드에 있는데 불펜을 움직일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이것은,
3승 3패로 맞이한 일본 시리즈 7차전,
거기에,
4대3으로 간신히 1점을 리드한 상황에서 9회 말 최후의 수비에 돌입한 팀이 내세운
자타공인의 ‘릴리프 에이스’ 에나츠 유타카가 맞이한,
위기 상황 속 마운드 위 투수 심리의 한 단면이다.

당시 불펜 주변의 광경을 부정적인 심정으로 지켜본 탓인지, 이는 결과적으로 히로시마 카프가 일본 시리즈 우승 좌(座)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속 깊은 상처로 남는 이유가 된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나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마음이다. 가슴 속 응어리를 안게 된 에나츠이지만, 동시에 노아웃 - 주자 1, 3루라는 현재의 상황에도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타석엔 히라노가 들어섰다.

에나츠는 초구로 빠른 공을 스트라이크 존 상단을 벗어난 곳에 던져 보았다. 스퀴즈 작전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히라노는 이를 그냥 지켜보았고 볼이 되었다. 히라노에게 던진 2구째, 에나츠는 이번 이닝을 좌우할 구종을 던진다. 우타자 무릎 근처로 휘어져 꺾이는 커브. 이를 포크볼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나츠의 손가락 길이는 프로야구 선수 중엔 짧은 편으로 완벽한 수준의 포크볼을 던지기엔 무리가 있었다.

에나츠의 증언――
“우타자 무릎 근처에서 꺾이는 커브볼은 그전까진 별로 쓰지 않았어요. 가장 겁나는 코스니까. 원바운드가 되기도 쉽고, 포수 뒤로 빠질 우려도 있고… 근데 거기로 던졌더니 히라노가 하프 스윙을 한 거예요. 헛스윙한 거지. 그걸 본 순간, 이 볼은 통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는 이후,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이 구종으로 위기를 탈출해 낸다.

히라노를 상대로 던진 초구는, 일단 스퀴즈 작전을 예상하고 살짝 벗어나게 던져 보았다. 스퀴즈 작전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에나츠는 치려드는 타자의 적극성을 이용하여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져 나가는 커브를 구사,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원 볼을 만든다. 이것이 에나츠가 맞닥 뜨린 현 상황에서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 방식이었다.

일·단·은·, 에나츠의 시선을 더 따라가 보기로 한다. “히라노는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타자니까요. 번트는 하지 않을 걸로 예상했어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무슨 작전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서 초구를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빼 본거죠.”

그러나 히라노는 타석에 들어선 뒤, 마운드 위 에나츠를 보며 완전히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초구는 완전히 볼. 2구째는 커브던가 포크던가… 순간적으로 공이 보여서 휘두르긴 했어도, 그것도 암튼 볼이었죠. 뭐랄까. 초구랑 2구째를 보니까 에나츠도 꽤나 동요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초구 볼. 그런 하이 볼은 정말이지… 그 친구 본래의 피칭은 아니죠.”

타석의 히라노는 에나츠의 상태를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별 거 아니네, 라고.

더그아웃의 니시모토 감독 또한 히라노에게 별다른 사인을 지시하지 않고 있었다. “노아웃 주자 1, 3루라고 하면 절호의 공격 찬스잖아요. 그 상황에서 감독님은 아무 지시도 안 내리시고 저에게 맡기더라고요. 더욱 기합을 넣고 타석에 임했죠.”

기합이 든 히라노를 보고도, 에나츠는 그에게 인사이드를 파고드는 커브를 던져 본 것이다. 누가 먼저 상대의 수를 읽어내고 이길 것인가.

히라노가 느낀 에나츠의 마음 속 요동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요동은 상대 타자가 아닌, 히로시마 더그아웃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었다. 에나츠는 이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한 마냥 서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세차게 뿜어지는 상념의 뚜껑을 덮어 보고자 했다. 이런 심적 소용돌이가 있기에, 그는 자신이 동요하고 있는 이상으로 냉정함을 찾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히라노와의 승부는, 에나츠의 3구째에 1루 주자 후키이시가 2루 도루를 감행하면서 중단 되고 만다. 예상대로의 움직임이었다. 포수 미즈누마는 2루에 던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3루에는 후지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노아웃 주자 2, 3루가 되었다. 그러자 히로시마 더그아웃은 만루책(満塁策)을 지시한다. 타자에게 포볼을 내주라는 고의사구 사인이 나온 것이다.

에나츠는 히로시마 더그아웃을 쳐다 보았다. 마운드로 모여든 내야진과 대책 마련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계속 벤치의 움직임을 좇았다. 불펜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여전히 이케가야와 키타벳푸가 몸을 풀고 있었다.

노아웃 풀 베이스의 상황. 에나츠의 마음은 복잡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마운드를 내려올 순 없는 거 아닌가. 내 역할을 누가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교체될 꺼라면 차라리 유니폼을 벗는 게 났겠군.”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에나츠의 생각 그리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 등, 당연하지만, 이 모든 바탕에는 “자부심”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13년간의 힘든 프로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운드를 지킨다, 라는 건 결국 이와 일맥상통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의존하는 것 만이, 투수로써 존재하는 의미인 셈이다. 혼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자팀 더그아웃의 움직임에만 온 신경을 집중 시켰던 에나츠의 자부심은 이미 상처 받고 있었다.

에나츠가 “아니 씨발, 뭐하자는 거야!” 라며 투덜 대었을 때, 그의 내면에선 프라이드를 자극 당한 당혹스러움과 불안 그리고 분노라는 감정이 마구 뒤섞인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토록 깊은 상처를 안겨준 것은 대체 누구인가. 그는 바로, 이케가야와 키타벳푸를 불펜으로 보내어 워밍업을 지시한, 코바 타케시 감독이다.

코바 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그 장면에서 상대가 우리에게 1점을 뽑았다고 칩시다. 그럼 동점 상태 그대로 연장전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그러면 에나츠의 타석이 언젠가는 돌아올테지요. 그 때 핀치히터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떤 수를 써야 할 것인가. 그제서야 부랴부랴 다음 투수들의 워밍업을 지시했을 때는 이미 늦잖아요.”

경기가 10회 초에 돌입할 경우, 히로시마의 타선은 2번타자 키누가사* 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타순을 고려했을 때 11회가 되면 에나츠에게 타순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9회 말 킨테츠의 공격이 진행되고 있을 때 시계침은 오후 4시 30분 즈음을 가리켰다. 이는 시합 개시로부터 3시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일본 시리즈의 경우(1979년 당시 기준, *주), 연장전 돌입 이후로는 시합 개시 기준으로 4시간 반이 경과한 뒤 새로운 이닝에 돌입할 수 없도록 규정 되어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시간. 동점인 상태로 연장전에 돌입할 경우, 5시 반까지 시합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므로 11회까지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코바 감독은 이 부분까지 고려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운드 위 에나츠가 워밍업을 위해 불펜으로 달려 간 투수들을 바라 보며, “아니 씨발, 뭐하자는 거야!” 라고 투덜 댄 것을, 코바 감독은 당시 모르고 있었다.

다시, 코바 감독의 증언――
“그 지시가 에나츠에게 상처가 될 꺼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투수들을 워밍업 시켜서 에나츠의 분발을 유도하겠다는 계산 또한 없었고요. 단지 저는, 동점이 되고 난 후의 상황만 고려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실무적인 판단이다. 용광로처럼 끓어 오른 당시 분위기 속에서, 코바 감독은 담담하게 직무를 수행하고자 했다. 그런 탓인지 그에게는 마운드 위 투수의 감정적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에나츠의 자부심에 생채기를 내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운드 위의 투수는 이미 심한 내상을 입었다. 본인 스스로가 낸 상처로 봐도 무방하다. 이제껏 그를 지탱해 온 “자부심”이란 놈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인가 자신에게 칼날을 겨눈 셈이다.

9회 말 노아웃 만루. 시즌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본 시리즈 최종전이자, 결과 여부에 따라 승리 혹은 패배가 정해질 중요한 순간. 그라운드 안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불과 수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상황을 공유하면서도 각자 입장에 따른 생각의 방향성에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에나츠는 물론, 코바 감독 또한 경기 속 열기와 긴장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혀 다른 온도라는 것을 느낄 틈 조차 없었다.





다시 에나츠로 돌아가서, 노아웃 만루상황을 맞이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무슨 생각을 합니까. 그냥 포기하는 거지. 사실 진거나 마찬가지인데.”

니시모토 감독은 만면에 퍼지는 미소를 애써 가라 앉히며 더그아웃을 나왔다. 대타로 오른손 타자 사사키* 를 내세운 초로(初老)의 감독은 타자에게 어드바이스를 건냈다.

니시모토 감독의 증언――
“이겼다, 고 생각했지. 당연하잖소. 노아웃이잖아. 주자도 세 명이나 있고. 이겼다고 봐도 무방했지.”
그리곤 한동안 더그아웃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허둥지둥 하고 있었다.

에나츠는 그런 니시모토 감독을 바라 보았다. “영감… 촐랑 거릴 필요 없잖소. 어차피 당신네들이 이긴 거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에나츠가 참담한 심경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니시모토 감독은 생각지도 못한 듯하다.

타석에는 사사키가 들어섰다. 에나츠는 말한다. “어찌해 본들 실점 없이 지나가긴 글렀다 싶었죠. 그 순간, 그래… 씨발… 죽을 꺼면 아예 화려하게 죽자,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밀어내기 볼넷라든지 외야 플라이로 점수를 주는 건 너무 싫고… 그럴 바엔 제대로 얻어 맞고 뻗는 게 낫겠다, 때릴테면 때려 봐라, 막 이런 마음이 되더라고요. 홈런 맞아도 괜찮잖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이야말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라…“

이렇게 마음 먹은 시점에서부터, 그는 상대를 향해 완벽한 피칭을 전개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백네트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노무라는, 에나츠의 피칭과 볼 배합에 시선을 빼앗겼다.
“갑자기 에나츠가 상대 타자의 번트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피칭하더라고요. 대타로 나온 사사키가 작전 구사에 용이한 타입이 아니란 점도 있었겠죠. 수년 전, 에나츠는 저와 함께 난카이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니시모토 감독이 이끄는 팀들(한큐 – 킨테츠. *주)을 상대하면서 어느 상황과 시점에 스퀴즈 작전이 쓰이는지 봤을 겁니다. 니시모토 씨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다지 스퀴즈 작전을 사용하지 않는 분이라 그런 점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도 있겠습니다만, 에나츠 또한 승부사로써 천부적인 감·각 을 가진 선수이니까요. 초구를 우타자인 사사키의 무릎 쪽에 떨어지는 커브로 볼을 빼더라고요. 사사키는 이 볼을 치려다가 겨우 배트를 멈추었고요. 그걸 본 에나츠는, 사사키가 적극적으로 타석에 임하고 있음을 알았을 겁니다. 사사키 또한 그 순간 본인이 직구를 노리고 있다는 걸 투수에게 들켰다고 생각했을테고요. 그래서 사사키는 에나츠의 2구째를 커브로 예측하고 노렸는데, 바깥쪽 직구가 들어오는 바람에 대응 못하고 원 스트라이크 원 볼이 되었지요. 3구째는 가운데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포크볼이었고, 사사키가 이를 잘 맞추긴 했는데 아쉽게도 3루 베이스 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는 파울이 되고 맙니다…”

킨테츠 더그아웃은 순간 이겼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1루 벤치 쪽 관중석에서 오색 종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선 3루 라인을 타고 흐르는 안타로 보일 만했기 때문이다. “아! 아슬아슬한 타구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타구입니다! 페어 그라운드에 걸쳤더라면 의심의 여지 없는 역전 타성 타구! 승부는 아직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리듯 전해졌다. 동시에 이는 오사카 구장 곳곳을 가득 메운 3만 명의 관중, 그리고 TV와 라디오를 들으며 옴짝달싹 못 하고 있던 수천만 명 야구팬들의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에나츠는 차분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어!... 하는 느낌? 그 코스는요, 암만 잘 때려 봤자 안타는 안 나오는 곳이라고요. 파울이 되거나 내야 땅볼, 그것도 타구에 힘이 없는… 플라이 타구는 절대 칠 수 없는 구질이에요. 그래서 난 전혀 불안감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멋대로 난리 치는 거지…”

그저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마운드 위 에나츠의 속마음을 알아채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경기 상황 또한 매우 흥미진진했다.

경기를 관전하던 노무라 또한, 에나츠와 마찬가지로 사사키가 친 타구를 덤덤히 바라 보았다.
“에나츠가 카운트 쌓으려고 던진 낚시성 볼을 사사키가 덥석 문 거죠. 에나츠는 바로 다음 공으로 타자 가슴 근처로 날아드는 볼을 과감히 뿌리거든요. 파울이 되긴 했지만, 그건 결정구를 던지기 전에 해보는 여흥이나 마찬가지고. 그 뒤에 뿌린 공도 한 번 더 인코스 낮게 직구로 구사해 봤고… 이게 다 버리는 공들이에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 다섯 번째 공을 바로 전과 동일한 궤적으로 오다가 타자 앞에서 쓱, 하고 떨어지는 커브로 정했죠. 눈의 착각을 이용한 투구 기술이랄까. 조금 전과 같은 궤적으로 볼이 오니까. 사사키에게는 그 볼이 분명 보이거든요. 볼이 온다, 휘두른다, 떨어진다… 사사키에게는 분명 볼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고 보였을 겁니다.”

오사카 구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삼진. 그리고 원 아웃.





긴장감 넘치던 상황 중에 히로시마의 1루수 키누가사가 마운드 위 에나츠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음을 기억해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에나츠가 사사키를 2스트라이크 1볼로 몰아넣었을 때, 키누가사는 마운드 근처로 다가가 궁지에 몰린 투수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도 너랑 같은 기분이야. 더그아웃이나 불펜 따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던져 버려.”

에나츠가 술회한다. “그 한 마디로 뭔가 구원받은 느낌? 음…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구나. 얻어맞고 있는 건 나인데, 어째서 저 녀석이 나한테 미안해하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바보 같은 거예요. 그래도, 저렇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스레 기쁘고, 그 덕에 약간 울렁이던 마음도 침착해졌어요. 그 한 마디가 엄청나게 든든하더라고… 스멀스멀 집중력이 생겨납디다.”

에나츠가 히라노와의 승부에서 던진 바 있는 ‘인코스로 오다가 가라앉는 커브’를, 사사키에게 승부구로 써야겠다, 고 마음 먹은 것이 이 직후의 일이었다. 에나츠는 이후 같은 코스 그리고 같은 구질을 이용하여, 스퀴즈를 실패한 뒤 낙담해 있던 이시와타를 상대로 삼진을 빼앗게 된다.

키누가사가 말한 “나도 너랑 같은 기분이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불펜의 움직임을 보며 흔들리던 에나츠 맘속 생채기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나 싶다. ‘누구 때문에 이 무대까지 온 건데 그건 아니지…’ 하는 마음. 그라운드 안에서, 그 안의 공기를 함께 흡입하고 있던 사람이, 그러한 장면이었기에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감정의 표현인 듯하다.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빅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긴장감과 부담감을 등에 지고 싸우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들을 일깨운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플레이어들은 ‘빅 게임’이라는 타이틀에 심리적인 조종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양하게 국면을 바꾸어가고 있는 ‘야구’라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나츠도, 코바 감독도 “냉정했다”고 말한다. 게임은 커뮤니케이션의 갭을 두고도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집중력을 되찾은 에나츠는 1사 만루의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이시와타를 맞이한다.

“초구로 던진 게, 외곽에서 존으로 들어가는 커브였어요. 이시와타가 전혀 움직이질 않더라고. 그래서 ‘아, 이거 스퀴즈 가는구나’ 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칠 기세가 보였더라면 나도 생각을 바꿨을 거요. 스퀴즈 작전을 어느 시점에 할까… 이젠 그걸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시리즈 7차전까지 가면서 킨테츠 측의 블록 사인은 대략 파악해두긴 했지만, 그 시점에 킨테츠 더그아웃에서 스퀴즈 사인이 나왔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잖아요. 그때 제가 던진 두 번째 볼이 나중에 이슈가 된 볼이었고… 우리의 사인은 커브였어요.”

일본시리즈 7차전, 에나츠 – 미즈누마의 콤비는 정규 시즌의 사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일본시리즈 초반의 몇 경기는 시리즈용 사인을 사용했다. 정규 시즌에 활용한 사인은 이미 상대가 파악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합을 뛰어 보니 사인이 파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요소 보다, 새로운 사인으로 인해 생겨나는 배터리 간의 주저함과 민감함에 따른 신경질적인 부분이 더 마이너스라는 생각이 들어 본래의 사인으로 돌아왔다. 미즈누마가 포수 글러브 뒤에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가락 1개… 2개… 3개… 포수는 랜덤으로 사인을 내고, 이를 보는 에나츠는 본인이 던지고 싶어하는 구질의 사인이 나오면 고개를 젓는 방식으로 사인 교환을 했다. 언제나 같은 사인의 교환 중, 에나츠가 선택한 것은 커브 사인이었다.

에나츠는 늘 해오던 방식대로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그의 피칭폼엔 한가지 특이한 쿠세가 있다. 그것이 일본시리즈 역사에 남을 결과를 낳을 것이라곤 에나츠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투구 모션에 들어간 뒤에 팔을 들어 올릴 즈음 1루 쪽을 바라보고, 그리고 나서 볼을 뿌리기 직전에야 타자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게…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하고 3년째이던가… 카네다(마사이치) 씨한테 배운 투구법이에요. 던지기 바로 직전에 타자를 봐라, 그래야 상대의 호흡을 본 뒤,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볼을 빼는 것이 가능해져… 라고 하셨거든요. 이시와타한테 던진 2구째가 딱 그거였어요. 이시와타를 본 순간, 배트를 쓱 하고 움직이는 거예요. 이거다! 싶더라고. 시간으로 말하자면 100분의 1초도 될까 말까… 분명 번트를 한다, 언젠가는 스퀴즈 작전을 펼칠 꺼야… 라고 예상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내 손에서 볼이 떠나기 전에, 상대의 번트 자세가 딱 보인 거지. 커브를 던지려 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볼의 그립을 바꿀 순 없거든요. 커브 그립 그대로 잡고 빠지는 볼을 던진 거죠. 미즈누마가, 아마 3루 측 주자 움직임을 본 게 아닐까 싶은 게, 딱 그 시점에 일어서서 볼을 받을 준비를 하더라고.”

바로 이 점이, 이시와타에겐 믿기지 않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스퀴즈를 벗어나게 던진다고? 심지어 변화구 그립을 쥔 채로 볼을 뺀다고?... 말도 안 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구장 중앙에서 마운드 위 투수의 뒷모습을 통해 타석을 비추고 있던 TV 중계 카메라는, 에나츠가 항상 해오던 투구 동작을 찍고 있었다. 투수가 던진다 - 포수가 일어선다 - 타자는 번트 준비를 한다… 는 일련의 상황이 하나의 시간 축 위에 발생했다. 쭉 뻗은 이시와타의 배트는, 브라운관 내에서 1~2cm 정도 위아래로 휘저었다. 그의 모습은 허덕이듯 비추어졌다.

하지만, 에나츠가 던진 구종은 이시와타가 말했던 포크가 아니었다. 한번 떠올랐다 수직으로 가라앉는 커브였다. 에나츠는 슬라이더처럼 휘는 커브, 그리고 높은 곳에서 쓱 가라앉는 커브 등 2종류의 커브를 구사한다. 후자의 커브를 구사할 경우, 손목이 90도 정도 왼쪽으로 열리게 되는데 이러한 동작으로 직구는 던질 수가 없다. 이 때문인지, 그 볼 하나에 이시와타는 완전히 농락당해 버렸다. 무정하게도 볼은 배트의 밑으로 가라앉듯 지나가 버렸다.

3루 베이스에서 뛰어든 주자 후지세는, 발꿈치로 주루를 멈추고 3루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푹 고꾸라진 형태가 되었고 매정한 미즈누마는 뒤를 좇아 상대 주자의 등을 강하게 때렸다. 에나츠는 공을 뿌린 직후, 등줄기에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3루 주자의 협살로 투 아웃. 그리고 타자 이시와타의 카운드는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에나츠는 주저 없이 승부를 보았다. 인코스 낮게 던진 직구에 이시와타는 겨우 갖다 대며 파울로 버텨 내었다. 에나츠는 빠른 템포로 그다음 공을 던졌다. 같은 코스에서 가라앉는 커브. 이시와타의 배트가 하늘을 갈랐다. 9회말 에나츠가 던진 21번째 볼. 정확히 26분 49초라는 시간 동안, 에나츠는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티었다. 마운드의 주인은 에나츠이기 때문이다.

이시와타가 나가떨어지듯 삼진당한 뒤, 에나츠는 마운드에서 뛰어 내려왔다. 크게 뛰어오르며 앞으로 달려 나온 에나츠의 주변으로 동료들이 모여들어 헹가레 태세를 갖추었다. 코바 감독, 그리고 에나츠의 몸이 몇 번이고 하늘을 향해 떴다. 그의 하늘색 원정용 유니폼의 등 뒤에는 빨간색으로 ‘26’이라는 숫자가 아로새겨 있었다. ‘26’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도 울먹일듯 한 오사카 구장의 하늘 아래 춤추었다.

벤치로 돌아온 직후, 에나츠는 고개를 떨구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 주* ------------------





• 킨테츠 버팔로즈(1949년 창설 ~ 2005년 3월 해체) 2004년 일어난 퍼시픽 리그 구단 합병 이슈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구단. 오사카 연고지 구단으로, 1979년 리그 참가 29년 만의 우승을 달성하며 ‘가장 늦은 우승’의 기록을 세움. 이 후 총 4회의 리그 우승 달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은 한번도 못함. 요미우리와의 1989년 일본 시리즈가 가장 아쉬운 결과로, 3승을 선점하고도 4연패로 패퇴함.

• 이시와타 시게루(石渡茂 / 1971 ~ 1985, 선수 활약)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이 이끌던 킨테츠 시절의 주전 유격수. 베스트나인 2회에 선정되긴 했어도 선수로의 남긴 성적은 보잘 것 없는 수준. ‘에나츠 21구’로 인해 평생 갈 영상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됨.

• 에나츠 유타카(江夏豊 / 1967 ~ 1984, 선수 활약) 한신 - 난카이 - 히로시마 - 니혼햄 등에서 활약한 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으로 히로시마 이적 이후에는 ‘우승 청부사’로 불리웠음. 한신 시절에 기록한 시즌 401개의 탈삼진(68년)은 프로야구 세계 기록. ‘야후 재팬’이 기획한 ‘20세기 일본 야구 베스트 나인’ 투수 부분에서 1위에 선정된 바 있음.

• 후지세 시로(藤瀬史朗 / 1977 ~ 1983, 선수 활약) 킨테츠의 전문 대주자 선수. 통산 53안타 - 117도루라는 성적이 그의 활용도를 말해 줌. 79 시즌에는 대주자로만 25개의 도루를 기록.

• 오사카 구장(大阪球場 / 1950 개장 ~ 1998 폐장)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南海ホークス)가 오사카 프랜차이즈 시절 사용하던 홈구장. 79년 당시 킨테츠의 홈구장인 후지이데라 구장은, 야간 설비 미비 및 일본 시리즈를 개최 하기엔 관객 동원력이 떨어지는 구장이라 시리즈 한정 난카이 측에 빌려서 활용했었음.

• 미즈누마 시로(水沼四郎 / 1969 ~ 1983, 선수 활약) 히로시마가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한 1975년부터 일본 시리즈 2연패를 거머쥔 1980년까지 팀의 주전포수로 활약한 선수. 공격력이 보잘 것 없어 수상 경력은 없지만 견실한 수비로 팀에 승리에 공헌하였음.

• 히라노 미츠야스(平野光泰 / 1972 ~ 1985, 선수 활약) 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 킨테츠의 선봉 대장으로 활약한 외야수.

• 찰리 매뉴얼(Charlie Manuel / 1976 ~ 1981, 선수 활약) 78년 야쿠르트 - 79년 킨테츠의 각각 첫 리그 우승을 책임진 NPB 사상 최고의 외인 타자 중 한 명. MLB 복귀 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을 역임. 2008년 월드 시리즈 우승.

• 쿠리하시 시게루(栗橋茂 / 1974 ~ 1989, 선수 활약) 15년간 킨테츠에서 활약하며 통산 200홈런을 친 왼손 강타자. 베스트나인 3회 선출. 하지만 79-80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1할대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

• 아리타 슈죠(有田修三 / 1973 ~ 1990, 선수 활약) 킨테츠 - 요미우리 - 다이에에서 활약한 명포수. 킨테츠 시절에는 나시다 마사타카와 병용되어 ‘아리나시’ 콤비로 불리운 바 있음. 2회의 골든 글러브 수상 기록.

• 후쿠시 히로아키(福士敬章 / 1969 ~ 1986, 선수 활약) 한국에선 ‘장명부’라는 이름으로 유명. NPB 통산 91승 / KBO 통산 55승의 성적을 올린 선수로 삼미 시절인 83년의 30승 - 36완투 – 427.1이닝 – 피안타 388개의 수치는 지금도 KBO 기록.

• 타카하시 요시히코(高橋慶彦 / 1976 ~ 1992, 선수 활약) 히로시마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유격수. 80년대 NPB 최고 스타 중 하나로, 베스트나인 5회 / 도루왕 3회 등의 실적을 올림. 본 글의 배경인 1979년도 일본 시리즈의 MVP.

• 하타 코이치(羽田耕一 / 1973 ~ 1989, 선수 활약) 킨테츠에서만 17년을 활약하며 통산 225홈런을 때린 3루수 출신의 강타자. 골드 글러브 1회 수상.

• 니시모토 유키오(西本幸雄 / 1954 ~ 1981, 감독 이력) 다이마이 – 한큐 – 킨테츠 등 퍼시픽 리그에서만 감독으로 활동하며 1384승을 거둔 명감독. 통산 8회 일본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면서 ‘비운의 명장’이라고도 불리웠음.

• 크리스 아놀드(Chris Arnold / 1971 ~ 1980, 선수 활약)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6년간 활동 후, NPB 진출하여 킨테츠에서만 3년간 활약.

• 노무라 카츠야(野村克也 / 1954 ~ 1980, 선수 활약) NPB 사상 최고의 포수. 양대리그 분리 후 최초의 타격 3관왕. 통산 타석수 – 희생플라이수 – 병살타수는 현재도 역대 1위 기록 보유 중. 통산 .277 / .357 / .508의 슬래쉬 라인과 2901안타 - 657홈런 - 1988타점을 기록한 대타자.

• 후키이시 토쿠이치(吹石徳一 / 1975 ~ 1988, 선수 활약) 킨테츠에서 13년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써 활약. 3명의 자녀 중 장녀가, 일본의 톱스타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의 아내인 여배우 ‘후키이시 카즈에(吹石一恵)’.

• 코바 타케시(古葉竹識 / 1975 ~ 1985, 히로시마 감독 역임) 히로시마에서만 4번의 리그 우승 - 3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뤄낸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 이케가야 코지로(池谷公二郎 / 1974 ~ 1985, 선수 활약) 1976년 20승 – 207 탈삼진 등으로 다승 및 삼진왕, 그리고 사와무라상 획득. 하지만 이듬해, 현재까지 NPB 기록인 시즌 최다 피홈런 48개를 기록하게 됨.

• 키타벳푸 마나부(北別府学 / 1976 ~ 1994, 선수 활약) 히로시마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투수. NPB 20세기 최후의 200승 투수로, 통산 213승을 거뒀으며MVP 1회 - 사와무라상 2회 수상. 일본 시리즈 총 5회 출장, 11 경기 등판했으나 승리 없이 5패만 기록.

• 키누가사 사치오(衣笠祥雄 / 1965 ~ 1987, 선수 활약) 2215경기 연속 출장 기록에 빛나는 ‘철인’. 야마모토 코지와 함께 YK포로 불리며 히로시마 전성기의 대표 선수로 군림. 1984년 시즌 MVP이며 통산 2,543안타 - 504홈런 - 1448타점 기록.

• 사사키 코스케(佐々木恭介 / 1972 ~ 1981, 선수 활약) 킨테츠에서 10년간 외야수로 활약하였고, 훗날 감독까지 선임된 팀의 프랜차이즈 우타자. 78년 시즌 타율 1위를 비롯, 2회의 베스트나인을 수상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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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악
20/12/23 19:17
수정 아이콘
멋진 글 감사합니다.
집중해서 읽느라 집에 다 왔는데도 안들어가고 밖에서 읽었습니다.

야구의 정수가 담긴 글이네요.
스마스마
20/12/23 19:2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감사합니다.
추천 게시판에 작년에 쓴 '미움받는 남자'가 올라가서 용기를 내어 하나 더 작업해 보았어요 ^^
Blooming
20/12/23 19:3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20/12/23 19:36
수정 아이콘
야구는 뭔가 심장을 뜨겁게 하는 것이 있죠.

어떻게 보면 투수와 타자 1대1의 대결이라 더 비장한 것일지도...
20/12/23 20:00
수정 아이콘
베...베쯔니..! 글이 좋아서 추천을 누른건 아니라구....!
스마스마
20/12/23 20:19
수정 아이콘
후후후 오히사시부리 데쓰네 -_-+
키스도사
20/12/23 20: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런 글엔 당연히 추천이죠!
saintkay
20/12/23 22:21
수정 아이콘
SPORTS 2.0을 아직도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독자로 있다가 제 첫 직장이 된 곳이거든요.
스마스마
20/12/23 23:26
수정 아이콘
아 그러셨구나. 왠지 반갑네요 하하.
스포츠 2.0과 무비 2.0을 매주 세트로 사서 보곤 했죠. 지금도 무비 2.0의 다크나이트 특집은 잘 가지고 있는데 스포츠2.0은 이사가면서 다 버렸네요. 두팬인데 당시는 스크 전성기라 한국시리즈 특집이 죄다 슬픈 내용이었거든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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