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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2 17:45:33
Name 라쇼
Subject [일반] 난세의 검성 치세의 능신 - 야규 삼대 이야기 (2)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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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전 일본 검도 연맹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검도 발전과 보급에 이바지한 열다섯 명의 검사들을 선별해 명예의 전당에 올립니다. 이른바 검도 전당으로 15인의 검사 중 야규 무네노리와 미야모토 무사시를 특별 취급하여 별격 현창을 수여합니다. 현대 검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북진 일도류의 치바 슈사쿠 마저 일반 현창에 포함되었는데 무려 4백년 전의 검호를 가장 우선 순위로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야규 무네노리와 미야모토 무사시가 검술 철학서 '병법가전서'와 '오륜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전국시대 이래 50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검술 역사에서 무네노리와 무사시보다 더 뛰어난 검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자상전, 문외불출의 폐쇄적인 도제 시스템이었던 고류 검술에선 사람들이 널리 익히고 후대에도 전해질 검술서가 나올 수 가 없었지요. 야규 무네노리, 미야모토 무사시 이 두 검호가 현대의 검도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존경을 받는 까닭은 검도의 뼈대를 뒷받침해 줄 철학을 제시해서였습니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고 실전성이 탁월해도 어디까지나 술수에 불과했고 철학이 받쳐주지 않으면 도가 될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미야모토 무사시와 쌍벽을 이루는 이 야규 무네노리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야규 타지마노가미 무네노리(柳生但馬守宗矩 1571 ~ 1646)은 에도시대 초기의 검호, 정치가입니다. 검술 유파 야규 신카게류의 당주로 도쿠가와 쇼군가의 검술 지도를 맡았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 쇼군 삼대에 걸쳐 신임을 받아 봉행(현대의 시장이나 구청장), 감찰역 같은 요직을 두루 맡은 중신이었죠. 검술이면 검술 정치면 정치 못하는게 없는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대부분 이런 만능형 인물일 경우 능력이 하향 평준화되기 마련인데 야규 무네노리의 경우는 무력, 지력, 정치력 모두 만렙 찍은 먼치킨이었죠. 거기다 인품마저 훌륭해서 적이 많아질 감찰 업무를 도맡아했음에도 그에게 원한을 가진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당대엔 '꾀주머니'라 불린 마츠다이라 노부츠나, 이에미츠의 유모 카스가노 츠보네, 그리고 야규 무네노리 이 세사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떠받치는 세 기둥이라고 부를 정도였죠.

야규 무네노리는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량처럼 기록을 파고들 수 록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인물인데 유일한 흠이라면 자식 농사가 시원찮다는 점이겟네요. 무네노리의 장남 야규 미츠요시(이하 쥬베)도 아버지 못지 않은 명성 높은 검호였으나 어지간히도 속을 썩인 망나니 아들이였고, 이룩한 업적도 아버지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창작물에선 정 반대로 야규 쥬베의 인기가 높고 무네노리의 인지도는 낮았는데, 후술할 오와리 야규와의 분쟁건으로 폄하된 부분도 있고 정치와 밀접히 연관된 검호라 도쿠가와 막부의 하수인 같은 음험한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창작물에선 에도 막부의 방첩집단 수장으로 등장하여 도쿠가와의 영화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를 꾸미는 냉혈한으로 묘사되죠. 국내에도 개봉됐던 영화 소녀검객 아즈미 원작 만화에서도 아즈미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2000년대까진 꾸준히 악당 이미지를 벗지 못하다가 2010년부터 현재에 이르러 재평가가 이뤄졌는데 검성으로 추앙받던 미야모토 무사시의 거품론이 대두되면서 반작용으로 야규 무네노리의 평가가 올라가게 되죠. 그런 창작물의 변화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모바일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입니다. 페그오에서 묘사되는 야규 무네노리는 다소 어설픈 점이 보이는 미야모토 무사시에 비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짜배기 검성으로 묘사됩니다. 창작물에서 야규 무네노리의 이미지 변천사를 보면 항우나 유방, 조조와 유비 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평가가 정 반대로 뒤바뀌는 걸 보는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여튼 서두가 길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야규 무네노리의 생애를 설명해 볼까하는데 어릴 적 시절은 분량상 건너 띄고 전편 마지막 부분인 도쿠가와 가문에 임관한 시점부터 다뤄보겟습니다.

아버지 야규 세키슈사이에게 당주자리를 물려 받고 도쿠가와 가문의 가신이 된 20대의 야규 무네노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영지를 몰수 당해 몰락한 야규 일족을 부흥시키라는 막중한 소임이 맡겨졌습니다. 명색이 천하 이인자의 검술 지도를 맡았는데 받은 영지는 겨우 200석, 첫 시작으로 보기엔 볼품 없는 규모였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도쿠가와로부터 검술 지도를 맡은 일도류의 오노 타다아키도 200석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당시 일본의 권력자들이 생각하는 검호의 인식이 딱 그정도였습니다. 검술만 잘해서는 결코 빼앗겨버린 야규 일족의 영지 2천석을 되찾아 가문을 부흥시킬 수는 없었다는 것이죠.

막중한 소임 만큼 재능도 출중했던 야규 무네노리는 검술 사범 역 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중심에 접근하여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죠. 하늘도 무네노리의 생각을 알아주셨을까, 의외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1600년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의 운명을 판가름 짓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 것이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선봉으로 반기를 든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킵니다. 야규 무네노리도 이에야스를 따라 종군하게 되죠. 그런데 이시다 미츠나리가 친 도요토미파 다이묘를 끌어 모아 대군을 조직하여 도쿠가와를 공격합니다. 후방이 위험하게 되자 이에야스는 이제 갓 임관한 햇병아리인 야규 무네노리에게 후위를 맡아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을 견제하라고 지시합니다. 무네노리는 과거 야규 일족이 섬기던 야마토의 츠츠이 일족과 호족들을 규합하여 이시다 미츠나리를 견제하고 후방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냅니다.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끝나고 이에야스는 공을 세운 무네노리에게 지난날 몰수된 야규 일족의 영지 2천석을 수여해 주었습니다. 임관한지 수 년도 안되어 이룩한 쾌거였죠.

야규 무네노리는 영지 200석의 한미한 무사에서 2천석의 하타모토급 사무라이로 일약 출세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1601년에 새로운 쇼군이 된 히데타다로부터 검술사범역을 벼슬을 받아 천 석이 가증되어 총 3천석의 영지를 갖게 되죠. 아들이 순조롭게 성공가도를 달리며 가문을 부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야규 세키슈사이는 흡족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세키슈사이는 친애하는 손자 야규 효고노스케 토시요시에게 신카게류의 비전서를 물려주고 1606년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가 다스리던 구마모토 번에서 쫓겨나 무네노리의 저택에서 더부살이 하던 토시요시는 새로이 임관하여 1603년 에도에서 오와리 번으로 떠나죠.

야규 신카게류가 에도 야규와 오와리 야규로 갈라져 정통성 분쟁을 일으키게 된 시기는 무네노리와 토시요시가 중년의 나이가 되는 더 훗날의 일이나, 지금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요약하면 야규 무네노리가 토시요시의 누나를 조선인 출신 문지기에게 시집 보내서 분노한 토시요시가 크게 반발하여 따로 유파를 만들어 독립한 것이죠. 더 자세한 내막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제가 쓴 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pgr21.com/freedom/89412


대세는 도쿠가와 쪽으로 기울어 졌으나 아직 도요토미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습니다. 슨푸성에서 오오고쇼가 되어 상왕정치를 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화근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심하죠.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오사카성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살아남기 급급하던 도요토미 히데요리도 이에야스가 칼을 들이밀자 참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머니 요도도노를 중심으로 구 도요토미가의 가신들, 그리고 구도산에 은거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던 사나다 노부시게(이하 유키무라)가 모여 결사 항전을 감행한 것이죠. 바로 오사카의 진이었습니다.

오사카의 진의 결말은 역사대로 도요토미가 멸망하고 도쿠가와의 승리로 끝나지만, 야규 무네노리에겐 두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히데타다를 따라 종군한 무네노리는 쇼군의 곁에서 참모 역할을 합니다. 그러던 중 사나다 유키무라 군이 결사적인 돌격 전술로 두터운 수비 진영을 뚫고 히데타다가 있는 곳까지 들이 닥친 것이죠.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순간! 일곱 명의 갑주로 무장한 무사들이 들이 닥치자 야규 무네노리는 직접 칼을 뽑아들어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천하 제일 검술이라 칭송 받는 야규 신카게류의 실력을 발휘하여 모조리 참살해 버리죠. 이 부분이 야규 무네노리의 생애에서 유일하게 실전을 벌인 기록입니다. 고작 일곱명이라니 요시오카 일문 수십 명과 싸운 미야모토 무사시에 비교하여 실망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겟지만, 무사시가 요시오카와 결투를 벌인 건 이견도 있고 갑옷으로 중무장한 무사 일곱명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승리했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전과입니다. 날붙이 무기로 갑옷 입은 적을 상대하면 공격할 부위가 극히 제한되는데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홀로 다수를 쓰러뜨렸다는 것은 야규 무네노리의 검술 실력이 대단히 뛰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셈이죠. 덕분에 살아남은 히데타다는 무네노리를 더욱 총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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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규 가문의 문장



오사카의 진이 끝나고 난 이듬해. 히데요리에게 시집 갔던 이에야스의 손녀 센히메의 재가를 두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4만석 다이묘 사카자키 나오모리가 센히메의 재혼 상대를 찾는 임무를 수행중이었는데, 이에야스는 돌연 혼다 타다토키와 센히메를 결혼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사카자키 나오모리는 무네노리의 벗이기도 했는데 성격이 급하고 괴팍한 면이 있었습니다. 이에야스가 결정한 일을 그냥 받아들였으면 될텐데 자신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 사카자키 나오모리는 센히메가 탄 가마를 납치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버렸죠. 다른 곳도 아니고 에도에서 벌어진 사태에 발칵 뒤집힌 막부는 사카자키 나오모리를 잡아들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막부 중진 타케나카 무네시게는 비록 사카자키의 죄가 크다고는 하나 강제로 군사를 동원하면 센히메에게 화가 닥칠 것을 우려하여 자식들은 살려주어 대가 끊기진 않게 해줄테니 자진하라란 계책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사카자키 나오모리와 절친한 야규 무네노리에게 교섭을 맡겼죠. 친구에게 죽으라고 말하러 가는 자리가 무네노리에겐 달갑지 않았겠지만 무사란 아무리 불합리한 지시가 내려와도 따라야하는 법이었습니다. 무네노리는 사카자키를 긴 시간을 들여 설득합니다. 결국 사카자키 나오모리가 자진하여 사태는 해결되었고 막부도 약속대로 사카자키의 아들에게 200석을 주어 대가 끊기지 않게 해주었으나, 사카자키의 영지 4만석을 몰수하는 개역을 단행합니다. 막부가 사카자키의 영지를 개역할 심산이란 걸 미리 알았는지 몰랐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무네노리로썬 떨떠름한 상황이었겠죠. 시간이 흐르고 세간에선 무네노리를 두고 친구를 팔아 출세한 자라고 비아냥 거리는 소문도 돌곤 했다고 합니다. 최후를 앞두고 사카지키 나오모리와 야규 무네노리가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진 모르겠으나 사카자키는 친구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부탁하며 가문의 문장을 물려줬다고 합니다. 야규 가문의 문장으로 쓰이는 두 개의 삿갓이 사카자키 가문의 문장이었다고 하네요. 가문의 상징인 문장을 전해줄 만큼 각별한 사이였으니 친구를 팔아 출세했다는 소문은 유언비어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오와리 야규가 야규 무네노리를 폄하하려는 선동이란 설도 있더군요.

2대 쇼군 히데타다의 치세도 끝나고 3대 쇼군 이에미츠가 등극합니다. 여담이지만 이에미츠가 쇼군이 된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이에미츠가 어릴 적 다케치요로 불리우던 시절 동생 쿠니마츠(도쿠가와 타다나가)를 두고 누가 더 후계자에 적합한지 경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유모 카스가노 츠보네의 활약으로 이에미츠가 후계자가 되긴 했는데, 이 후계자 선정을 닌자들의 싸움으로 결정짓겠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바로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의 배경 설정이었죠. 그리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도쿠가와 타다나가가 삐뚫어져서 스루가성 어전시합을 벌여 많은 피를 보는 기행을 저질렀다가 본인은 할복하고 영지는 몰수당해 개역당한다는게 시구루이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두 작품 모두 짧게나마 야규 무네노리가 등장하는데, 무네노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지 찾아보는 것도 만화를 보는 재미가 되겠네요.

쇼군으로 취임한 이에미츠는 무네노리에게 종 5위 타지마노가미 관직을 수여합니다. 무네노리의 백관명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죠. 이세노가미를 이름으로 쓰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 함께 무네노리는 유이하게 조정에서 벼슬을 받은 검호입니다. 백관명을 임의로 사용하던 다른 검호들과 달리 지체 높은 신분이었죠.

이에미츠의 치세에서 무네노리는 출세의 가도를 달립니다. 이에미츠는 무네노리에게 막부를 섬기는 로쥬,와 다이묘를 감찰하는 역할인 오메츠케 벼슬을 내리고 막부의 권력 강화를 시도합니다. 이에미츠의 의도대로 무네노리는 훌륭하게 감찰역을 수행하였고 도쿠가와 막부는 3대째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는 전성기에 들어서죠. 이에미츠는 이 유능한 신하에게 고쿠다카 영지를 뿌리다 시피 안겨줍니다. 1632년에 3천석, 1636년에 다시 4천석을 가증하여 무네노리는 1만석의 다이묘가 됩니다. 고향 야마토에 초대 야규번주로 등극하기도 하죠. 만년에 500석 요절한 차남에게서 회수한 2천석을 더함으로써 최종적으로 12500석이 됩니다. 이는 역대 검호들 중 가장 많은 영지인데 라이벌이었던 일도류 오노 타다아키가 생전 최대 500석, 미야모토 무사시가 300석이었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였죠. 땅 한뙤기 없는 몰락한 호족의 자제가 일신의 능력으로 12500석의 다이묘가 되었으니 야규 무네노리의 재주를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미츠는 틈만나면 무네노리의 영지를 늘려주려 했으나, 충직하고도 겸손한 이 심복은 번번히 사양했습니다. 감찰역을 맡은 자로써 분에 넘치는 영지는 대사에 어긋난다는게 그 이유였죠. 그런 연유에서인지 다이묘들의 감시와 비리를 캐는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무네노리는 원한을 산 이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명재상의 귀감이었죠.

이에미츠의 치세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무네노리는 이후 연로함을 이유로 은퇴 1646년 병에 걸려 향년 75세로 사망합니다. 무네노리 사후 그의 유언대로 막부에게 받은 영지 12500석을 모두 반환합니다. 이에미츠는 이를 받지 않고 무네노리의 아들들에게 분배하죠. 친우 타쿠앙 선사의 중제로 의절당했던 것을 용서 받고 당주가 된 야규 쥬베에게 8천 5백석, 삼남 무네후유에게 4천석,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200석을 나눠줬다고 하네요. 이에미츠는 마지막까지 충성스러웠고 청렴했던 무네노리가 세상을 떠나자 부모를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울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이에미츠와 무네노리의 사이는 매우 각별했는데, 아버지 히데타다에게서 사랑을 별로 받지 못했던 이에미츠가 무네노리로부터 부성애 같은 애정을 받지 않았나 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사료에 기록된 이에미츠와의 일화를 보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몇 건 예를 들어보면


1. 시마바라의 난이 발발하자 막부는 이타쿠라 마사시게를 보내 진압을 도모했으나, 무네노리만이 이타쿠라의 패배를 예견하고 철회할 것을 간언하였다. 또한 시마바라의 난이 언제 끝날 것인지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였는데 과연 무네노리의 말대로 이루어지자 이에미츠를 비롯한 주위 인물들은 놀랐다고 전해진다. - 덕천실기 徳川実紀

2. 1622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신카게류의 모든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하자, 무네노리는 전서 2권을 작성하여 주었는데, 책 말미에 '기법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인가는 별개입니다.' 라고 적힌 글귀를 보고 이에미츠가 크게 웃었다고 전한다. - 옥성집 玉成集

3. 무네노리는 이에미츠와 검술에 관한 의견차이로 싸우고 자택에 칩거합니다. 친구 타쿠앙 선사가 찾아와서 사정을 묻자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은 윗분께 달렸다." 라고 대답하며 웃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에미츠가 백기를 들고 무네노리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둘의 사이가 좋은 예전 상태로 돌아갔다고 하는 군요. 이건 무슨 밀당하며 연애하는 커플도 아니고 크크크;

4.1642년 몸이 좋지 않아 온천으로 치료 여행을 떠난 무네노리로부터 소식이 없자, 이에미츠는 타쿠앙 선사가 찾아올 적마다 "무네노리가 스님을 통해 보낸 편지는 없는가?" 하고 열 번이나 되물었다고 합니다.

5. 무네노리 사후 이에미츠는 주위 신하들에게 "나는 천하를 통치하는 법을 무네노리에게 배웠다." 라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합니다. 한편 고심할 일이 있을 때마다 무네노리가 살아있었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할 지 물어봣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하네요.



여기까지 무네노리의 생애를 알아보았고, 글을 마치기 전에 그의 검술 철학을 잠깐 설명해보겠습니다.



야규 무네노리는 절친했던 벗인 타쿠앙 선사의 영향을 받아 검술과 불교의 선을 결합한 검선일여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검술은 사람을 해하는 살인검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죠. 활인검하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나시죠? 네, 바람의 검심에서 나그네 켄신의 불살의 신념과 히로인 카미야 카오루의 활인검이 무네노리로부터 나온 겁니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틀림없는 사실.' 이라는 대사로 바람의 검심에서 돌려까고 있고 창작물에서도 활인검을 위선자의 궤변인 마냥 폄하하는데 야규 무네노리는 진심으로 사람을 해하는 검술보단 사람에게 유익한 활인검을 추구하였던 듯 합니다.

그의 어록에서 활인검을 어떻게 생각햇는 지 사상을 엿볼 수가 있는데


"한 명의 악인이 만인을 고통받게 한다면, 마땅히 악을 베어 만인을 구한다. 참된 검이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쓰여져야 한다."

"검술을 사람을 죽이는 수단으로 생각하면 어리석은 짓. 인명을 해하는 게 아니라 악을 베는 것이다."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선 살인검이 필요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오면 살인검은 마땅히 활인검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무네노리는 검술이 사람을 해하는 살인검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지만, 부득이하게 사용된다면 명분이 뚜렸한 정의로운 일에 사용하라고 주장합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하극상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전국시대의 난세였고, 평화가 찾아온 에도시대에도 사사리오 검술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베는 츠지기리 사건이 벌어졌던 걸 감안하면 무네노리의 활인검은 무사도나, 기사도 같은 일종의 제어장치 역할을 한 것이죠. 평화로운 시기에 필요 없어진 검술을 살인을 목적으로한 살인검에서 호신을 위한 무도로 탈바꿈 시켰을 뿐더러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인 쇼군의 위상을 올려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검술 철학이었습니다. 실전성만 추구하여 무도 정신을 등한시한 일도류가 막부로부터 소외를 받은 것 또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무네노리는 비단 활인검 같은 철학적인 개념 말고도 심법, 정신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소위 현대 스포츠에 도입된 멘탈 관리 개념인데 무네노리는 매사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달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 외에도


"남을 이길 방법은 모르나, 나를 이기는 방법은 알도다."

"칼이 짧으면 한 걸음 더 나아가라."

"무도(無刀)란 상대의 칼을 뺏는게 아니다. 내가 칼이 없음을 보고 상대가 부끄러워 하여 빼어든 칼을 거두게 하는 것이 진정한 무도이다."



위의 같은 어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수신(修身)의 중요성과 일이 자기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도 침착하게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있죠.


야규 무네노리의 호신과 수양을 강조한 검술 철학은 동시기에 활약했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 오노 타다아키와 정 반대됩니다.

무사시와 타다아키는 실전에서 이기기 위해서 강해지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가르치고 있죠. 무사시의 이도류 또한 승리를 위해 가진 무기를 전부 활용하자는 신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야규 무네노리가 이들 검호와 부딪치는 일화가 현재까지 남아있기도 합니다.

야규 무네노리가 삼남 무네후유의 검술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을 염려하자, 이를 들은 오노 타다아키는 사람을 베는 것이 가장 빨리 검술 실력을 올리는 방법이니 죄인을 베게 시키라 하고 권유합니다. 무네노리는 그 자리에서 즉시 부정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 채 자리를 떠났는데, 오노 타다아키의 제안대로 검술 연습을 위해 사람을 베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오노 타다아키가 부추켰는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검술 실력을 늘리려고 츠지기리를 실행하려 하자 무네노리가 야규 신카게류 비기 무토토리를 사용하여 쇼군을 제지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선량했던 이에미츠의 성품을 볼 때 허구라고 생각되는 야사네요.

미야모토 무사시의 제자가 남긴 이천기에선 무사시가 쇼군가의 검술 사범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훼방을 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또한 이천기의 원 사료인 무공전에 나오지 않는 일화라 허구라고 생각되는데 다른 사료의 기록에서도 무네노리와 무사시가 만났던 일화가 전해지네요.


어느 날 무사시가 시합을 청하며 도발을 해오자 무네노리는 "그대의 검의 경지는?" 이라고 물었다. 무사시가 "전광석화와 같다!" 라고 대답하자, 아직 수행 부족이라며 도전을 물리쳤다. 그래서 역으로 무사시가 같은 질문을 해오자, 무네노리는 "나의 검은 봄바람과 같나니." 이라 말했다고 한다. - 鵜之真似


오노 타다아키 측 일도류 사료에선 오노가 야규 무네노리와 쥬베를 때려눕혔고 이에 감복한 무네노리 부자가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 간청하였다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나, 위에 언급한 활인검을 추구한 상대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권하는 등 매우 무례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 반면, 무사시와 무네노리가 연관된 기록들은 어떤 쪽에선 무사시가 위였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쪽에선 어림 없는 소리 무네노리가 무사시보다 뛰어났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덕천실기 같은 공식 사료에 남은 야규 무네노리의 행적 말고는, 검호의 일화들은 진위가 불분명한 개인적인 기록들이긴 하나 당시 검호들의 성격과 관계가 어땟는지 상상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럼 야규 삼대 이야기 무네노리 편을 마치며 다음 편 예고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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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무쌍의 경지에 이르른 검호는 60이 넘은 노령에도 쉴 틈이 없다. '국궁진췌 사이후이' 저 옛날 제갈무후의 고사대로 몸이 바스러질 때까지 도쿠가와의 영광과 안녕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다짐하며 무네노리는 지금도 산더미 같이 쌓인 공문서에 파묻혀 업무에 매진 하는 것이다. 그가 오랫동안 문서를 들여다 보느라 침침해진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한 숨 돌리려던 찰나 장짓문이 거칠게 열리며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경망스럽구나."

"소, 송구... 송구하옵니다. 일이 다급하여 쥬베, 쥬베 형님이..."

쥬베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무네노리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져 나온다. 무네노리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삼남 무네후유가 흘러내리는 진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분하게 말해보아라. 쥬베가 또 무슨 짓을 벌였단 말이냐."

"그게 송구하오나 형님이 쇼군을... 검술 지도 중에 쇼군을 그만..."

무네노리가 답답한 듯 혀를 차자 무네후유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질렀다.

"쥬베 형님이 이에미츠 전하를 때려 눕혔다고 합니다!"

"뭣이야! 이... 이이..."

무네노리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 쥔 문서가 구겨지는 것도 모르고 연로한 노검사의 주먹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이 천하에 바보 자식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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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2 17:51
수정 아이콘
친구 플스 빌려서 검호3 했었는데 다시 하고싶어지네요
20/12/22 18:38
수정 아이콘
검호 시리즈 재밌는 게임이죠. 고증도 꽤 잘되어 있습니다 크크.
지금 우리
20/12/23 10:55
수정 아이콘
차세대기에서도 해보고싶은데 겐키 라는 회사 자체가 없어져버린 걸로 알고있는데..ㅠㅠ
아쉽습니다.
패트와매트
20/12/22 18:05
수정 아이콘
1만석 영지를 반납해서 자손들은 다이묘는 아니게되어 결과적으로 유일한 다이묘가된게 좀 묘하긴 했었죠. 다음은 10 빼기 1의 10 그분이군요
20/12/22 18:42
수정 아이콘
청렴하고 유능햇던 재상의 미담인데 장남 쥬베가 어지간히 속을 썩혀서 저놈한테 주느니 차라리 사회에 기부하고 만다 이런 심정이었을지도 몰랐겠다란 망상을 해본적이 있네요 크크. 다음편은 야규 큐베 아니 야규 쥬베 글이 맞습니다.
지금 우리
20/12/23 10:57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잘읽고있습니다.
다음에 혹시라도 땡기시면(?) 아시카가 요시테루 특집도 부탁드립니다. 흐흐
김곤잘레스
20/12/26 13:3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영호충
20/12/31 22:32
수정 아이콘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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