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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23 23:44:02
Name 깃털달린뱀
Subject [일반] 가족장 치른 이야기
얼마 전에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왔습니다.
이미 아흔을 훌쩍 넘기시기도 했고, 가시기 전에 이미 눈에 보이던 상황이었기에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해놨을거라 생각합니다.

뭐 딱히 고인과의 추억, 이별에 대한 슬픔에 대한 글은 아니고 장례식이란 문화에 관한 글입니다.

드문 일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장례식을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족장은 물론 손님으로서도요.
학창시절 시험 망하면 친구들과 '너는 부조 없이 육개장, 수육 무한리필~' 같은 소리하며 시시덕거리긴 했지만 정확히 뭔진 몰랐죠.
제가 아는 거라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한다.', '거기 가면 육개장이랑 수육 준다.', '부조를 낸다.'가 끝이었습니다.
장례 절차는 커녕 며칠하는지조차 몰랐어요.

그래서 새벽에 자다가 아빠 전화로 비몽사몽 부고를 접하고 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식을 언제 하냐고 물었습니다.
모레 끝난다는 말을 듣고 그럼 시간이 있으니 '내일 갈까?'라고 물었는데 급한일 없으면 당장 오라더라고요.
잠결에 첫차를 예매해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알고보니 모레 끝난다는건 말 그대로 장례가 그때 끝나고, 화장까지 마무리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미 당일부터 장례식은 시작 됐던거지요. 흔히 말하는 3일장입니다.

어쨌든 상조 직원분이 나와서 여러 장례 절차를 주관해 주셨는데 그게
절과, 절과, 절과, 절과, 절과 절 절 절 절....
뭔 절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지...

일단 시키니까 하긴 하지만 머릿속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건 대체 무슨 의미.
뭐랄까 내가 장례를 치르고 있다기보다는, 여행객이 어떨결에 아무것도 모르고 타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느낌?

토종 한국인이 여행하다 말고 갑자기 동아프리카 유목민 전통 제사(제 상상입니다)에 참여하게 된 느낌이랄까요?
상황 파악도 안 됐는데 제사장이 저한테 칼을 쥐어주고는, '양의 배를 갈라 심장을 제단 위에 얹어라!'라고 했을 때, 시키는대로 하긴 하겠지만 멈추지 않는 의문부호와 터져나오는 혼란.
당장 저기서 한국식 장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어느 섬의 전통 장례나 남아메리카 마푸체식 장례를 치렀어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을겁니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요컨대 한국 장례 또한 [나의 문화]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돌잔치에선 애가 연필을 잡고, 결혼식에선 뷔페를 가는 건 당연한거지만, 장례식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윗세대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굉장히 낯섭니다.

비단 전통문화라는 것이 다 그렇지요. 전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명절에 한복을 입었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었지만 이제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후세대는 저런 것 또한 자신의 문화가 아닌, 교과서에서나 배운 박제된 '전통'으로 느낄지도 모르지요.
제가 한복이나 판소리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이.

장례도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대로 전해지지 않고 죽은 문화가 되는 것.
하지만 이래저래 생각해 본 결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는 이질감은 사실 제 세대의 특징이라기보단 그저 장례식을 가보지 않은, 저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인 것 같으니까요.

오히려 완전 소멸한다기보단, 시대에 적응해 나가겠지요.
마치 더이상 직접 담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서 먹는 김치, 된장처럼, 직접 곡을 하진 않겠지만 필요할 때 상조를 통해 처리하게 되겠지요.
저도 이제 한 번 겪어봤으니 다음번부터는 익숙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그냥 장례 전후로 맴돈 생각을 정리해보고싶어 적어봤습니다.

p.s.
전 장례식 가면 육개장을 주는 줄 알았는데 시락국을 주더라고요?
알고보니 중부지방은 육개장이, 경상도 쪽은 시락국이 국룰이랍니다.
그래도 수육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흘 내내 먹으니 좀 질리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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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가자
20/11/23 23:58
수정 아이콘
글쓴분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늦게 장례식을 접해보신것 같네요.
어찌보면 복이라면 복일 수도 있겠습니다 :)

제사 같은 제도는 굉장히 간소화되거나 없어지겠지만,
장례식은 상대적으로 (어느정도는 더 간소화 될 가능성이 높지만) 더 길게,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할 거라 생각이 드네요.
말씀대로 많은 부분이 상조회나 돈을 들이는 부분으로 넘어가서 정착된 상태이기도 하고요.
깃털달린뱀
20/11/24 00:05
수정 아이콘
아, 세대 얘기를 해놓고 제 나이대를 안적었네요. 아직은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입니다.
저도 제사는 종국에는 사라지겠지만 장례식은 존속할거라 봅니다. 장례가 방식은 여러가지지만 존재 자체는 인류 공통이니까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0/11/24 00:20
수정 아이콘
흠 그래도 요새는 상주맞절도 많이 안하고 대성통곡 안한다고 수근대지도 않고 상조나 등등 지원 시스템도 많고 옛날만치 힘들진 않은 것같습니다. 말씀대로 점점 더 간략하게 가긴 가겟네요
깃털달린뱀
20/11/24 00:27
수정 아이콘
앗 맞절은 요새 안하는 추세인가요. 시키는대로 다 하긴 했는데 진짜 힘들긴 하더라고요.
오히려 어른들은 손님 맞으러 잠시 잠시 나가는데 저는 일단 장손이라 비울 수도 없고..
확실히 곡은 요새는 잘 안한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손님 중 간혹 하시는 분이 있긴 하셨는데 좀 놀랐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0/11/24 02:24
수정 아이콘
맞절 이거 상주 허리 나갑니다. 조문객과 상주는 요새 보통 목례로...
프링글스
20/11/24 00:45
수정 아이콘
코로나때문에 간소한 장례를 겪어봤는데 편하긴하더라구요..
20/11/24 00:46
수정 아이콘
저도 제사나 장례식이 소꿉놀이와 뭐가 다른걸까 생각한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장손이라 하기 싫은 이유를 열심히 찾은걸지도 모르죠
FreeRider
20/11/24 01:08
수정 아이콘
저희 동네는 강원도 동해인데 장례식에 된장미역국이 나옵니다
미역국 나오는 지역이 더 있을까요?
솔로몬의악몽
20/11/24 01:28
수정 아이콘
예전에 상조회사를 다닌 적이 있고, 입사해서 관리직 교육의 일환으로 해서 장례지도사를 1주일간 따라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느낀 바로는, 장례문화는 그리 쉽게 간소화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보면

1. 죽은 사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때 상을 당한 가족은 절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가는 길 마지막으로 좋은 것이라도 입혀주고 싶어하고, 좋은 관 쓰고 싶어하고, 제사밥도 꼬박꼬박 챙깁니다. 수의 등급 하나에 수십만원씩 뛰고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남의 장례식도 다녀오고 했던 사람이 자기 부모님 장례식을 남보다 간략하게 치른다? 전 진짜 흔치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2. 특별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한, 한 사람당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은 2~4회 당할겁니다. 자기 부모님과 배우자 부모님요. 근데 장례지도사는 하루에도 1~2건에 장례를 꾸준히 치릅니다 (이건 제가 있던 업체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객 상담을 하게 되면 솔직히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마음만 먹으면 별의 별걸 다 팔 수 있겠더라고요. 부모님을 화장해서 유골함에 넣기로 했는데, 한 유골함은 벌레 먹을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방충/항균장치를 했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시신 태운 가루일 뿐이지만 꺼림직 하시죠? 이거뿐만 아니라 상조회사에서 업그레이드할 것은 차고 넘칩니다. 상 당하고 경황 없는 와중에 인센티브 달려있는 장례지도사 앞에서 자기 중심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는 어차피 장례를 치르려면 장례지도사를 불러야 하는데, 그 황망한 순간에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우리 부모님을 남보다 못하게 보낼 수도 없거니와 그러려고 하더라도 장례지도사와 상담을 하다보면 점점 뭔가가 붙기 마련이기 때문에 (우리가 장례 문화를 원하느냐와는 별개로) 장례문화 간소화는 단시간 내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20/11/24 11:33
수정 아이콘
고인이 세상을 뜨면서 마지막으로 주변지인들이 모여서 추억하는거죠.
형태만 다를뿐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의식입니다.
20/11/24 12:18
수정 아이콘
고인이랑 글쓰신분이랑 70살의 세대차이가 있으셔서 그래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고인과 지낸시간이 길수록...
장례식이라는게 그나마 마무리할 수 있는,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는 단계라는게 다가오더라구요
시카루
20/11/24 17:08
수정 아이콘
저도 얼마전에 같은 상을 치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예전이었으면 죽어라 손님 맞이 했겠죠
수고하셨습니다
유자농원
20/11/24 22:07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 사실 특수한 상황이 맞으실 겁니다. 저는 돌잔치라는걸 한번밖에 안가봐서(그나마 이것저것의 행사와 짬뽕으로 같이 진행) 정 반대로 인식하고 있거든요.
유자농원
20/11/24 22:08
수정 아이콘
근데 저도 상 같은 경우는 군대 전역할때까지 겪을일이 없더니 그 직후로 매년 발생하더군요... 20대 중후반부터 부쩍 겪기 시작했던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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