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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0/01 22:19:02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소셜 미디어, 기울어진 광장, 요란한 빈 수레
'호모 두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고유한 개성을 지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집단 정체성을 가진 이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즉, 인간은 개인이면서 집단이다. 그럼 소셜 미디어는 '호모 두플렉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에 가보면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쳐다보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눈앞의 사람마저 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을 가졌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는 동안 우리는 어딘가의 누군가와 연결한다. 연결의 강도는 다를지언정, 또 다른 집단과 소통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 넓이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마저 뛰어넘는다. 소셜 미디어는 고전적 연결을 약화시키더라도, 이를 능가하고도 남는 새로운 연결을 창조한다. 인터넷이 개인화를 부추긴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오히려 더 많은 집단을 만들며, 인간의 집단적 성향을 강화한다고 봐야 한다.

그럼 소셜 미디어는 나쁜 걸까? 좋은 걸까?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일종의 증폭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연결을 만들어 인간의 집단적 성향을 강화한다. 그 결과 더 커다란 목소리, 더 커다란 감정, 더 커다란 행동을 만든다. 즉, 하이브 마인드를 증폭하는 도구가 바로 소셜 미디어다.

이런 흐름은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리대가 부족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생각해보자. 과거였다면 그런 어려움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생리대 부족을 겪는 사람은 소수이고, 바쁜 사람들은 소수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소셜 미디어라는 확성기(증폭기) 덕분에 세상 끝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내고, 유의미한 지원을 이뤄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도 끼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6배나 빨리 퍼진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KKK나 다름없는 차별 집단이 대안 우파라는 이름으로 집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지역 차별, 남녀 차별, 이민자 차별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이런 부정적 목소리에도 여전히 확성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소셜 미디어는 단지 증폭기일 뿐이다. 뜬소문과 차별은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자원봉사와 지원 캠페인도 과거에 역시 존재했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라는 도구 자체는 선이나 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 

단, 그 도구에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모두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고, 똑같은 생각을 반복해 주고받으며 기존의 의견을 굳히고 더 강화하면 이른바 반향실 효과가 작용한다. 다른 의견을 맞닥뜨리지 않을 때 예상되는 가장 중대한 문제 중 하나는 자신의 믿음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선스타인의 보고에 따르면, 1960년에 자녀가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공화당원의 경우에는 5%, 민주당원의 경우에는 4%였다. 정치적 견해가 삶의 가치에서 큰 몫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2010년의 조사에서는 그 수치가 공화당원에서는 49%, 민주당원에서는 33%로 치솟았다.
<패거리 심리학>, 131p, 134p

공화당원의 1/3 이상이 민주당이 국가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하며, 민주당원의 25% 이상이 공화당에 대해 같은 말을 합니다.
<소셜 딜레마>

소셜 미디어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공공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모두가 기업에서 개발했다. 즉, 이 플랫폼의 목적은 소통이 아니다. 목적은 돈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럼 무엇을 팔아서 돈을 벌까? 사용자다. 수억 명의 사용자. 그들이 보는 광고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럼 소셜 미디어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광고를 볼 수 있으니까! 이를 위해 소셜 미디어는 사용자를 철저히 분석한다.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질까? 어떤 주제를 더 많이 볼까?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 때마다 분석은 한층 더 정교해진다.

소셜 미디어는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보는 콘텐츠를 조정한다. 따라서 내가 쓰는 페이스북은 내 옆 사람의 페이스북과 전혀 다르다. 내 취향에 맞춘,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고른, 나만의 페이스북이다. 그 결과 반향실 효과가 강해지고, 이것이 집단으로 이어지면 분극화 현상이 벌어진다.

결국 이렇게 형성된 다수 의견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논의가 전개되었더라면 형성되었을 다수 의견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비전문가의, 말 많은 자의, 시간만 넘쳐 나는 자의, 신중하지 못한 '소수'의 의견이 더 과다 대표 됩니다. 이것은 '다수'의 의견이 더 정확한 반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자기 견해만 내세우기보다 전문가의 견해도 비판적으로 경청하려 하고, 방구석 여포들보다는 말이 적고, 대부분 공사다망하여 24시간 바쁘고, 방구석 여포들보다는 신중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니터링하는 관객으로 밀려납니다. 대신 온라인 공간을 빈 수레들의 요란스러움이 채웁니다. 이것을 다수의 지배 여론의 지배라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

단순한 증폭기라면 별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이익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있고 (그나마 돈 때문이라 다행이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분극화를 조장하고 있다. 분극화가 증폭기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소수의 편향된 목소리가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는 현상이 벌어진다.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더 무서운 결과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요란한 빈 수레의 목소리가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며, 차별과 혐오를 주장한다면? 과거였으면 무시당해야 마땅한 말들이 요란한 소수에 의해 민의로 비친다면? 끔찍한 시민 독재가 펼쳐질 수도 있다. 더 끔찍하게도 시민 독재자는 자신을 민중의 대표이자 정의의 사도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보는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게 정답이니까. 모두의 현실이 아닌 끼리끼리의 현실. 그 결말은 지옥일지도 모른다.

소셜 미디어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효율 만점의 광장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그 광장이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는 점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기울어져 있고, 누구도 완벽히 객관적으로 광장을 살펴볼 수 없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광장이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지금까지 가짜 뉴스나 차별/혐오성 콘텐츠에 관하여 결백하다는 식으로 나왔다. 플랫폼은 콘텐츠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성 콘텐츠가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제발 알고리즘 문제라는 변명은 관둬주라...) 따라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의도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면, 그 개입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기울어진 광장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트롤 플레이어가 넘쳐날 것이다. 요란한 소수에게 심판의 망치가 돌아가고, 끔찍한 시민 독재의 시대가 펼쳐질 수도 있다. 요란한 소수를 규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누가 그들에게 망치를 쥐여줬는지 깨달아야 한다.

참고
1) 책 <패거리 심리학>
2) 영화 <소셜 딜레마>
3)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 https://pgr21.com/freedom/88229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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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i(아이오아이)
20/10/01 22:27
수정 아이콘
전 애초에 자격 없는 요란한 빈 수레들이 소리 내다가 다수의 선택을 받아 그 빈 수레에 권력을 담는 걸 민주주의라고 봐서

지금의 현 상황은 사회가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봐요.
마스터충달
20/10/01 22:30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라면 지금은 다수의 선택을 받는 과정을 생략하는 게 문제랄까요?
ioi(아이오아이)
20/10/01 22:36
수정 아이콘
지금도 행동하는 소수의 선택은 받고 있죠. 침묵하는 다수의 선택은 못 받고 있지만
제 기억이 있는 세월 중에는 침묵하는 다수는 그냥 씹고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곰그릇
20/10/01 22:37
수정 아이콘
전 누군가가 목적성을 가진다는 말에 공감이 가요
요란한 빈 수레들인 것도 맞는데
요란한 빈 수레들이 누군가의 직접 간접적인 안 좋은 목적을 받아들고 떠든다는 게 더 무섭죠
탐이푸르다
20/10/01 22:4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추천 알고리즘은 확증편향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많아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마음은 여러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과 반한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는 매트릭스 같아요. 세상이 지옥 같더라도 같은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들끼리 행복의 세상을 만들 수 있죠.
국민들이 의견을 합의하지 못하고 파편화된다면 이득이 되는 당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겠죠.
호머심슨
20/10/02 00:10
수정 아이콘
일베추수꾼들, 상당히 많고 의욕적인듯.
치열하게
20/10/02 00:11
수정 아이콘
정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그것을 보장하던 인터넷 공간이 빈 수레로 꽉찬 느낌입니다.
blood eagle
20/10/02 02: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내용에 어느정도 공감은 하지만, 사실 일종의 꽉찬 수레도 각자의 의도를 듬뿍 담아서 여론을 유도했던걸 고려하면, 빈수레가 힘을 가지는걸 마냥 탓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최근 sns의 발달이 가지는 가장 무서운 부분은,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여론을 유도하는것 보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여론이 모이는것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추측 가능하고 제어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어렵죠.

물론 특정 누군가의 유도 없이 여론이 모이는건 좋은거 아니냐라고 할수도 있는데, 문제는 sns가 내가 듣고 싶은 의견만 들을 수 있고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쉽게 모일 수 있는 구조상의 특성 때문인데, 내부에서나 통하는 주장을 이제는 일정 규모만 만들어지면 여론이라고 우길 수 있고 힘을 발휘 가능하다는거죠. 물론 공론화의 장에서 대부분 수정 or 격파 가능하지만, 이게 안되는 경우는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고 봐요.

보통 외부의 유입이 어려운 작은 사회에서 발견되던 모습이, 모순적이게도 서로간의 쌍방향소통이 가능한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가는건 조금 우려스럽긴 합니다. 사실상 사회 전체가 일종의 작은 사회의 집합이 되버리는 느낌이에요.
마스터충달
20/10/02 11:46
수정 아이콘
여론의 내용을 유도하기보단, 여론이 모이는 거 자쳬를 유도한달까요? 어떤 방향까지 의도하진 않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근데 말씀하신대로 공론화도 안 되고 비판적/반성적 사고도 불가능하니 모이는 것 자체가 썩어들어가는 결과로 곧장 이어져버리죠;;
기다리다똥된다
20/10/02 21:40
수정 아이콘
넷플릭스 소셜딜레마 보면서 느낀 감정과 비슷한데,
아니나 다를까 참고 영상에 있네요.

플랫폼 기업이 막연히 빅브라더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에서 언론화 되고있다는 점까지 (사실 이건 영상에선 안나옴)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네이버 메인에 뉴스 편집을 네이버가 하던 시절이 있었죠.. 크크)
-안군-
20/10/03 15:14
수정 아이콘
예전의 커뮤니티: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현재: (빅데이터로) 너의 패턴은 모두 파악했다!!
평소 관심사라는게 결국은 그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는 법이니, 자기 성향에 맞는 글, 광고 등등만 마주치게 되고, 그 결과 확증편향이 더 강화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죠. 문제는 그게 돈이 되니 기업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거고요. 이게 스노우볼이 굴러서 이지경이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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