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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8/14 11:33:2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윤치호가 바라본 직장상사로서의 민영환
윤치호 일기는 말 그대로 사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주관적 감정이 참 많이 들어가 있어 꽤나 재미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민영환에 대한 에피소드는 오늘날 직장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절단 파견 당시의 일화입니다. 
민영환이 사절단 대표, 윤치호가 통역이었는데, 윤치호가 바라본 민영환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오후 민영환이 매우 불쾌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저녁식사 하는 동안 내가 그를 가볍게 대우했다고 내게 퍼부어 댔다. 그 이유는 다음 4가지 때문이다.

1. 내가 8월(음력)이 여름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는 것. 내가 조선 국왕의 특사인 각하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그런 실수를 했으니 유감이다. 8월(영어로 8월)은 내가 미국과 조선에서 경험한 바로는 매우 더운 달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8월이 여름에 속한다고 했었다.

2. 내가 한 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때는 저렇게 말했다는 것. 이 문제는 이렇다. 여기 두 러시아 관리, 파스콤 장군과 플랑숑 씨가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돕도록 임명된 사람들이다. 우리 사절 중 누구도 특히 외교계에서 준수해야할 러시아의 관습이나 예절에 익숙하지 못하다. 나나 민영환이나 모든 중요한 경우에 러시아 관리들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수를 한다. 이를테면 일전에 그들은 우리가 명함을 돌리는 것 정도 외에는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 사절들을 방문해 일을 만들지 않도록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문제에 대해 상황을 더 잘 알게 되면서 그 러시아 조력자들은 우리가 사적으로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어제 파스콤 장군과 플랑숑은 터키, 페르시아 그리고 청국 사절들 또한 대관식 행사 동안 성당에서 모자를 벗을 예정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래서 나는 민영환에게 성당 밖에 남아 있기보다는 똑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터키 대사는 자신은 모자를 벗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성당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과 페르시아와 청국 사절들이 모두 입장할 것인지는 의심스럽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이런 상황 변화에 내가 책임이 있는 것인가? 나는 단지 민영환에게 그 러시아인들이 내게 말한 것을 통역했을 뿐이다. 나는 결코 한 때는 이렇게 말하고 다음에 저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3. 내가 들은 모든 말을 민영환에게 통역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4. 내가 자주 모르는 체 한다는 것. 이 말은 오히려 내게 찬사다. 확실히 나는 신이 보낸 이처럼 유식하지도 못하고 뻔뻔하지도 못하다. 민영환이 이 네 가지 내 잘못을 꾸짖기로 하고 내 자신이 변명을 하려다가는 사태를 악화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나는 각하에게 차후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 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점은 그의 성격에서 두드러진 장점이다."

여기서 윤치호는 민영환에 대해 짜증내면서도 장점 한 가지를 언급합니다. 직장 상사인 그가 불만을 바로 얘기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색하지 않다가 뒤통수치는 상사가 더 미운 법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흔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절단의 원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후 민영환이 엄청 짜증내면서 상심했었는데...윤치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민영환은 매우 낙담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집이 떠나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자신의 무능 때문에 실패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좋다. 나는 진실로 의심하지만, 만일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유교적 겸양의 덕을 지니고 있다. 다만 실패의 책임을 협상의 통역자인 내게 전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민영환은 윤치호를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본인을 탓했을 뿐입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면 너무 자주 마주치는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온갖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있죠. 최소 민영환은 그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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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4 11:41
수정 아이콘
맨 마지막 하나만으로도 평균은 줄만 하네요
aurelius
20/08/14 12:05
수정 아이콘
개인적 경험으로는 평균보다 위인듯 합니다 크크
삼성전자
20/08/14 12:10
수정 아이콘
저렇게 합리적이고 똑똑한 분이니
나중에도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일제와 맞서싸웠겠죠?!
croissant
20/08/14 12:23
수정 아이콘
3번 같은 경우는 원래 기대했던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원인을 찾아야 할테니
혹시 통역과의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있지 않았나 의구심을 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윤치호와 신뢰가 쌓여있지 않았다면 의심할 수도 있었겠죠.

그래도 사절단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은 을사조약 직후 자결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초년에는 말이 많았지만, 말년에는 그래도 고관으로서 책임감은 가지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인물이지 않을까 합니다.
Je ne sais quoi
20/08/14 12:26
수정 아이콘
자신의 능력을 알고 책임을 느끼고 있으니 평균이상은 되긴 하네요
답이머얌
20/08/14 12:30
수정 아이콘
능력이 문제였는지, 당시 시운이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결국 망국의 갈림길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드러나다
20/08/14 12:31
수정 아이콘
그래도 윤치호도 대인배네요. 불만을 말하는 것을 그의 장점이라고 평가하는 건 쉽지 않죠.
及時雨
20/08/14 13:09
수정 아이콘
영어 잘하고 일기 잘 쓰는거 2툴인 윤치호보다야 비분강개하여 순국한 민영환이...
훌게이
20/08/14 13:58
수정 아이콘
직장에서도 남 탓, 부하탓 안하는 상사들이 참 멋있죠.
내친구과학공룡
20/08/14 16:13
수정 아이콘
8월은 그럼 가을인가요?
수부왘
20/08/14 16:24
수정 아이콘
전 둘다 이해가 가네요 윤치호는 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법 하고 민영환도 생전 처음 보는 외국에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왔는데 말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서 통역에 불안을 느낄만 하죠 조금의 의구심도 닦달하게 되고
하야로비
20/08/14 17:18
수정 아이콘
충정공(忠正公)이란 시호가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분이십니다.
꿀꿀꾸잉
20/08/14 18:01
수정 아이콘
민영환 매력있네요
킹치만
20/08/14 19:06
수정 아이콘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이죠
킹치만
20/08/14 19:09
수정 아이콘
마지막 내용을 보면 민영환은 좋은 상사였네요
내친구과학공룡
20/08/14 22:50
수정 아이콘
아!
임전즉퇴
20/08/16 02:31
수정 아이콘
1번은 맥락에 따라서는 잘못다운 잘못인데 윤치호는 영 억울한 건지 틀리긴 했다는 건지 좀 모호하네요. 생각건대 실수이지만 윤치호가 실제로는 썩 싹싹하진 않아서 민영환이 짜증이 나서 1로 끝날걸 4절까지 해버린 듯합니다.
한편 윤치호만의 말이니까 문제인데 그 말을 독자적으로 뱉었다면 그게 포인트 아니었을까요. 피통역자가 의욕이 있을 때 통역은 비서로서 충실해야 하고 그가 외롭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윤치호가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외국어부심만으로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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