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역을 식민지화한 제국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9세기말 영국인이 세계지도를 펼치면 지구의 4분의 1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는 분명 자부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다른 유럽열강 만큼 강한 군대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다른 국가들만큼 인구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기술력이 외계의 것인 것마냥 완전히 넘사벽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영국은 어떻게 이렇게 광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영국제국에 대한 책을 몇권 읽다보니 드는 생각은, 영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제국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다국적기업과 비슷한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진정한 강점은 영국이 만든 [플랫폼]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이득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애플이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을 제공해서 수많은 앱개발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듯이, 영국은 런던 시티(금융)과 로열네이비(해군/운수)를 필두로 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집단을 여기에 편입시켰습니다.
광저우의 중국상인들도 이득을 보았고, 인도에 거점을 두었던 유대인과 파르시(조로아스터교도, 페르시아인)도 이득을 보았고, 이제 막 세계와 무역을 하기 시작한 신생국가 미국 상인들도 이득을 보았고, 또 여기에 편승한 라틴아메리카의 낙농업자와 상인들도 이득을 보았습니다.
저번에 소개해드린 David Sassoon은 이라크 출신 유대인이었으나, 인도-중국 무역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고 그의 자손은 영국의 귀족이 되었습니다.
또 오늘날 인도 경제를 우리나라 삼성마냥 꽉 잡고 있는 인도 최대 재벌 타타그룹의 창시자도 19세기 중국무역에 뛰어든 페르시아인 상인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아편무역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홍콩과 상하이에 거점을 둔 영국의 무역상사에서는 영국인 백인들만 일한 것이 아니고, 다수 중국인들도 함께 일했었는데, 이들은 중국의 근대화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상사에서 배운 노하우를 적용하여 중국 최초의 민간은행이나 민간기업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영국에 대해서 때로는 적대적이었던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나라의 부자들도 영국에 투자했고, 자본을 영국은행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의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은 영국이 운영하는 업체에서 일하면 다른 곳에서 일할 때보다 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영국은 [플랫폼]을 제공하여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이 플랫폼의 성공에 지분을 갖게하여 거대한 협력관계를 이룩한 것입니다.
전에도 소개해드렸지만, 이 단락은 정말 대영제국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만큼 인상적인 곳은 드물 것이다. 정부관료와 군인 그리고 주요상인들은 영국인이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중국인이다. 이 중에는 도시의 제일 가는 부호도 있고, 일반 농민들도 있으며 수리공이나 노동자들도 있다. 현지의 말레이인들은 어부나 뱃사람들이고 이들이 경찰병력의 다수를 구성한다. 말라카의 포르투갈인들은 이 도시의 사무직과 작은 무역회사 등을 맡고 있으며 서인도의 무슬림과 아랍인들은 이 도시의 작은 가게 등을 운영한다. 벵갈인들은 세탁소와 이발소 등을 운영하며, 이 도시의 일부 존경받는 상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다. 게다가 자바에서 건나온 뱃사람들과 하인들이 있다. 이 도시의 항구는 여러 유럽국가들의 배로 가득하며, 수백척의 말레이 또는 중국의 정크선도 있다. 이 도시에는 멋진 관공서와 교회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무슬림 모스크, 힌두교 사원, 중국식 건물, 그리고 유럽식 건물들도 혼재되어 있다."
제국을 꿈꾸는 자는 이렇듯, 개방적인 플랫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