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7/03 17:11:24
Name 연필깎이
Subject [일반] 6개월,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1월 초, 집에서 전화가 옵니다.
울면서 내는 소리인지라 많이 뭉개졌지만, '췌장암'만큼은 정확하게 들리더라구요.
할아버지가 췌장암이랍니다.
하필 월급루팡을 하며 나무위키로 췌장암을 봐서 그랬나..하는 뻘한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원체 체력이 약했던 할아버지는 수술 이후 거의 드시질 못했습니다.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 못 드셨던 할아버지는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6월 초 사망하셨습니다.

원래 췌장암이라는게 생존율이 극악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악화될 수가 있나 싶더라구요.
할아버지에겐 저 포함 손주가 4명인데 사망하기 전, 저를 제외한 3명은 의식이 있어 봤지만 전 못 봤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는 이미 의식이 희미하셨거든요.
할아버지 기억속에 저는 5월에 봤던 모습이 된 셈인거죠.

장례를 치루었던 3일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내가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는구나.. 빠르네' 이 기억 정도..?
발인까지 마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한 달이 지나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시원하게 울지를 못하겠어요.
사망 당시, 그리고 장례 당시엔 울긴 했지만 시원하게 토해내듯이 울진 못했거든요?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겠더라구요.
우리엄마, 이모 그리고 할머니 정신 잃으면 내가 부축해야한다는 정신으로 버티긴 했는데
뭔가 자꾸 응어리가 남은 기분입니다.

아마 속 시원하게 울고나면 진짜 할아버지가 떠났구나 라고 생각을 할까봐 제 안에서 스스로 막는 기분입니다.

예전에 어떤 유튜브에서 남자는 감정표현, 특히 울음을 표출하는 기회가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적기 때문에
우는걸 잘 못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헛소리겠거니 했는데 막상 제가 겪어보니 피부로 와닿더라구요.

저희 할아버지는 더운걸 되게 싫어하셨거든요. 그래서 혹 돌아가시더라도 가을에 가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가족끼리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가을이 되면 속 시원하게 울고 할아버지를 진짜 마음 속에서 보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곁에 있던 29년의 시간보다 곁에 없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참 그렇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블랙박스
20/07/03 17:34
수정 아이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정이라는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실감나지 않다가, 몇달 후에 길거리에서 저희 할머니의 목소리와 비슷한 다른 할머니 목소리를 듣고 뜬금없이 울음이 터지더군요. 감정을 정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일상생활에 충실하며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리되지 않을까요?
이쥴레이
20/07/03 17:43
수정 아이콘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저는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저에게는 충격보다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하겠구나 했습니다. 그전까지 미적거리던 결혼도 장례식 이후 상견례 잡고 그 이듬해 결혼 했습니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빨리 결혼할걸... 그러면 할아버지가 좋아하셨을텐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한사람의 죽음은 허전함과 함께 후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그렇게 살아가야겠죠
어느새아재
20/07/03 18:00
수정 아이콘
할아버님이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저도 할머니가 키워 주신거나 마찬가지인데 돌아가실 때 어찌할 줄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면 마음껏 슬퍼하고 그러겠는데 그때는 뭔가 어벙벙 그래도 장손인데 듬직해야하나?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아무튼 뭐 이랬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부모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구요.

마음 잘 추스리시고 누가봐도 흐뭇한 삶 사시길 바랍니다.
興盡悲來
20/07/03 18:24
수정 아이콘
저는 태어났을 때 이미 양가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라...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슬프겠죠....
20/07/03 19:25
수정 아이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울었어서 더 안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1년쯤 지났나... 외가집 갈일이 있어 간김에 할아버지와 자주가던 목욕탕에 갔는데 거기에 할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목욕바구니가 여전히 있는게 보였고 보였고 거기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는걸 보고는 정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뭔가 한번쯤은 계기가 있으실거여요.
그렇게 털어내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7054 [일반] 을지문덕이 선비족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 부족 울지부. [7] Love&Hate14135 20/07/03 14135 24
87053 [일반] 6개월,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5] 연필깎이9056 20/07/03 9056 9
87052 [일반] 에어버스의 실패작(?) A380 [42] 우주전쟁12101 20/07/03 12101 24
87051 [일반] 쇠망해가는 지방민으로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50] 므라노14800 20/07/03 14800 23
87050 [일반] 동아시아 3국의 젓가락, 숟가락 [26] 겨울삼각형10540 20/07/03 10540 7
87049 [정치] 통일부장관 이인영, 안보실장 서훈, 외교특보 임종석, 국정원장 박지원 내정 [251] 興盡悲來18412 20/07/03 18412 0
87048 [일반] 우리 오빠 이야기 [39] 달달한고양이9541 20/07/03 9541 63
87046 [일반] [잡담] 컴퓨터 조립시 팁 한 가지 [47] 고등어자반10391 20/07/03 10391 4
87044 [정치] 통합당, 비정규직 차별 제로 논의 "비정규직에 보수 더 줘야" [175] 감별사14199 20/07/03 14199 0
87043 [일반] 극단적 선택을 한 어린 트라이애슬론 선수 [44] Croove11396 20/07/03 11396 5
87041 [일반] [삼국지] 제갈량의 5차 북벌 초반부 정리 [7] 서현128510 20/07/03 8510 5
87038 [정치] 도쿄 도지사 후보를 살펴보자 [22] 독수리가아니라닭12296 20/07/03 12296 0
87037 [정치] 통합, 추미애 해임요구…"해임 않으면 내일 탄핵 발의" [129] 감별사16246 20/07/03 16246 0
87036 [정치] 바보같은 미래통합당 [37] 움하하11586 20/07/03 11586 0
87035 [정치] 간신과 충신 [51] Sardaukar11485 20/07/02 11485 0
87034 [일반]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12 [4] PKKA8178 20/07/02 8178 8
87032 [일반]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 방관한 대한체육회는 공범입니다 [23] 잊혀진영혼9463 20/07/02 9463 11
87031 [정치] 미래통합당이 국회 복귀각을 보고 있군요 [45] Fim10412 20/07/02 10412 0
87030 [일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후기 - 그 해 여름은 따스했네 [15] aDayInTheLife7112 20/07/02 7112 2
87029 [정치] 靑 “노영민, 반포집 내놨다”…“아니 청주집” 정정 소동  [200] 미생18276 20/07/02 18276 0
87028 [일반] [삼국지]제갈량이 굳이 마속을 가정에 보낸 이유 [24] 서현1211601 20/07/02 11601 16
87027 [일반] [도서소개] 대격변: 세계대전과 대공황, 세계는 어떻게 재편되었는가 [11] aurelius9996 20/07/02 9996 13
87026 [정치] '대북전단' 박상학 "文대통령 UN에 고소할 것"..주호영과 면담 [132] 감별사14083 20/07/02 1408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