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하면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진보? 과학? 문명? 발전? 복지? 선진? 뭐 여러가지 단어가 연상되실겁니다. 하지만 유럽은 동시에 정복, 착취, 지배, 기만, 침략, 억압등 철혈의 역사로도 이루어져있습니다. 실제로 100년전만해도 유럽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종족 분쟁을 야기하고 지도에 자기들 멋대로 선을 긋는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현대 유럽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소멸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록 하죠.
1. 유럽 제국의 시대
현재 태어난 세대들에게 유럽은 평화와 번영 그리고 조화를 이루며 하하호호 살아가는것처럼 보입니다만, 그 대륙이 바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낳은곳이며 그 이전에는 세계 5대양 6대륙을 돌아다니며 학살은 기본 옵션으로 전 세계에 깃발을 꽂지 않은 곳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는 영토를 그들의 뜻대로 조작해 종족 내전 및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는 아프리카에서는 생생하고도 참람한 현실이며, 서아프리카 쪽에 프랑스가 쿠데타나 암살을 최근까지도 기도한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죠.
어디 그 뿐입니까? 지금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대부분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실텐데, 영국과 프랑스등에게 동아시아의 대장격 국가이자 패권국이던 중국이 수도인 북경까지 방화되는 수준으로 처참하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까? 일본도 중국이 터져나가는걸 보고서 막강한 전함들에게 얻어맞기 전에 개항해버렸죠. 그리고 조선은 영국이 북미의 이로쿼이 족을 지원해 캐나다 지역 프랑스등 타세력을 몰아내듯이 일본을 성장시켜 러시아에게 맞서게 하였고 이는 주효했습니다. 러시아는 해군 주력 다수가 괴멸당했고 동아시아에서 발언권이 수십년간 사라졌죠.
그렇게 소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으로 위시되는 서유럽 세력은 전세계를 자기 뜻대로 바꾸어나갔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유럽국가들이 그걸 안한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북미나 인도쪽에 덴마크나 스웨덴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17세기 까지 깃발을 꽂은바 있습니다.
그냥 경쟁에서 밀려서 영국 네덜란드 등에게 강제로 뺐기거나 아니면 답안나오겠다 해서 헐값에 해외 영토를 매각했을 뿐이죠. 즉 그냥 그들이 딱히 선해서 그런게 아니라 능력이 딸렸던겁니다. 그 외 스페인, 포르투갈은 아예 그들의 원조격이었으나 근대 들어서 산업화가 부진하는등 신대륙 이후 본격적인 제 2차 세계 갈라먹기 게임에서 탈락했고 말이죠.
하여간 호오와는 별개로 현대인들은 예외없이 서구의 세례를 받았다는것인데,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했고 심지어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유럽외 인종들에게도 그들의 형상을 닮게끔 반은 회유, 반은 강요하였습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들부터 심지어 서구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중국까지 옛날 한복이나 한푸를 입으며 서당에 가서 유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겁니다. 청학동에 가면 있긴 하겠습니다만.
대신 영국 젠트리들이 입던 연미복의 변형인 양복을 입고, 동아시아 전통이랑 전~혀 연관이 없는 넥타이등을 착용하죠. 동'아시아' 란 지리학적 용어조차 유럽에서 출원된것이며 지금 한국의 시계기준조차 유럽 지네들끼리 합의해서 정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점으로 합니다. 이것만 봐도 문명적으로 그들이 세계를 정복했다는것은 서구 우월주의라고 비판할게 아니라 분명히 인지해야 될 사실입니다. 실제 영토적으로 보았을때 심지어 남극까지도 점유했던게 서구세력들이니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체급면에서도 중국이 전한이래 밀려본적없던 인구규모가 19세기 말 - 20세기초에 유럽에게 추월당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개별국가들보다는 컸지만, 중국 자체가 한 때 여러국가로 난립했던 국가를 통합시킨 대륙국가란점을 감안했을때 대륙 vs 대륙으로 비교하는게 더 합당하겠죠. 그렇게 유럽은 인구, 경제, 군사, 문화,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세계의 일약 중심부로 떠올랐습니다.
19세기 초 유럽대륙이 산업혁명을 이제서야 시작하려 들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신대륙을 식민지화하고 인도도 야금 야금 먹어들어갔지만 여전히 유럽의 경제력은 세계의 약 22%였습니다. 이걸 듣고 '와! 그것도 대단한거 아니냐?' 하시겠지만...유럽은 전통적으로 중국 인도와 동일하진 않지만 바로 그 다음에 올 수준의 인구가 많은 대륙이였습니다.
학계에선 이미 많은 반박이 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 침체와 무지의 시대로 알려진 중세 유럽을 갓 벗어나던 1500년대 초 시점에도 이미 세계 경제비중이 20% 정도 되었으니 300년사이 큰 차이가 생긴건 아니란거죠. 또한 인구가 폭증한 중국은 오히려 이 시기 세계 경제 약 32~33%로 1500년대 26~27%에 비해서 단순히 GDP 크기로 모든걸 설명할수 있는건 아니더라도 국가의 경제적 체급만 따질시에는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유럽 경제력이 약 세계 47%를 차지하게 되는 산업혁명으로 반전되는데요. 산업혁명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는지는 제가 알 도리가 없으나,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으로 치부될 만한것이 아닙니다. 전 감히 문명사 기준에서 누군가 씨앗을 처음 심어 농업의 싹을 틔운 이래 가장 위대한 변혁의 물결이라 일컫겠습니다. 왜냐면 일단 산업화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경제성장이 가능해졌는데 이것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하자면 옛날에는 그러니까 약 300년전만 하더라도 인류 사회의 경제 성장율은 0.1~0.2% 그러니까 사실상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는 일단 인구의 90%가 토지에 의존하니 기후와 토양조건에 따라서 수확량도 급격하게 차이날 수 밖에 없었고, 아무리 땀을 흘려 일을 해봐야 결국 한계가 명백했거든요. 심지어 그때는 화학비료가 뭡니까? 기껏해봐야 인분같은걸 뿌리는 수준이죠. 그렇다보니 인구 규모 = 부양할 수 있는 생산력 = 경제규모란 공식이 세워졌고 1인당 소득이 오를리는 만무했습니다. 오르는 유일한 경우는 갑자기 전염병이 대거 들어서 인구 30~40%가 삭제되는 14세기 유럽 흑사병같은 경우에나 벌어졌죠. 실제로 실질임금 측면에서 14세기 유럽 흑사병 수준을 회복하는건 19세기 중반에 가서나 입니다.
그런데 떡하니 산업혁명이 일어나서부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도 소득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 경제학이나 경제사학에서 부르는 '근대적 경제성장' 혹은 현재 우리가 '전혀 당연한것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제성장의 실체입니다. 공장은 기후나 토지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점에서 이는 엄청난것이죠. 이렇게 해서 커진 현대 경제규모가 얼마나 대단한것이냐면 현재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국방비는 500년전 1500년대 세계 GDP의 거의 3.5배에 육박합니다.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래도 한 국가의 국방비 규모 하나가 수백년전 세계 전체 경제규모의 3.5배에 달한다는것은 현대 경제는 전근대와 궤를 달리한다는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15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의 200년간 경제규모 성장이란 고작 1.5배 수준인데 이 200년간 성장규모는 삼성 시가총액 수준보다 못하죠. 지금 현대인들이 사는 세계는 전근대 기준에서 볼때 말도 안될정도로 '부' 가 넘쳐나는 사회라는것이거고 비록 그것에 대해 과거로 돌아가서 살아볼수는 없는만큼 체감은 불가하겠지만 수치상으로는 그렇다는겁니다.
여하튼 유럽은 이 산업혁명과 근대적 경제성장의 성공을 통해 기존부터 쌓아나가던 여러 기술 혁신에 더 박차를 가하고 그 결과물을 대규모로 현실에 구현해낼수 있게 되었고, 한반도 크기에 불과한 섬나라인 영국이 중동을 지배하는 3대륙에 걸친 제국 오스만투르크, 마우리아 제국 이후 인도아 대륙을 거의 통합한 2번째 제국인 무굴제국, 원나라보다 어떻게 보면 더 큰 강역을 차지한 중국사 사상 최대 왕조인 청나라까지 연달아 박살내버리는 결과를 낳죠.
그리고 이런 영국의 산업혁명 결실이 전 서유럽과 러시아까지 퍼져나가며 중동,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모든 지역이 유럽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문명은 one of the ~ 가 아닌 the Civilization 이 되었습니다. 산업화로부터 탄생한 도시화, 노동조합, 사회주의, 자본주의부터 영국 의회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좌파 우파 개념에서 진보와 보수란 용어등 모두 다 유럽에서 기원했죠.
그러나 성극이쇠라고 하였는지, 16-17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로 시작되어 세계 구석구석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9세기말 영국, 프랑스 등이 유라시아는 물론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를 분할가는등 절정기를 맞으며 (유럽인들에게) 좋은 시대라고 벨 에포크라고까지 부르며 세계를 주머니속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으나, 그것도 끝이 오기 시작합니다,
니체가 유럽의 모든 가치와 질서는 무너지리라며 허무주의를 내뿜어서였을까요. 정작 일본등이 크자 황화론을 부르짖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공포와는 달리 이미 너무 커져버린 그들 자신의 힘과 영향력에 의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유럽의 힘은 점차 감쇠일로로 치닫기 시작하게 되고 말지요.
2. 제 1차 세계 대전과 새로운 경쟁자들
'탕!...' 유럽의 촌구석이자 변두리였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스마르크가 말했듯 유럽이란 이미 준비되어있는 거대한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것에 지나지 않았죠. 애시당초 트리거가 될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폭발할수 있던곳이 유럽이였습니다.
유럽 왕가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이 각 왕가에 수출되어 친척관계를 맺게 됨으로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같이 담화도 나눌만큼 가까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내 민족주의 갈등부터 그 외 세계에서의 식민지와 영향력 땅따먹기 싸움으로 일관하는 중국의 고사인 구밀복검과 같이 위선과 욕망의 덩어리였던게 당시 유럽의 정치판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이미 1.5류 열강정도로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주요인물이 죽고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충돌하던 지각판인 발칸반도에 분쟁이 일어나게 되자 즉각 슬라브 국가들의 큰 형님을 자처하던 러시아 제국이 나서게되고 3B 정책을 펼쳐 중동진출을 꾀하며 게르만족 국가들의 수장격이라는 독일제국이 같은 게르만계 형제국이라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원하게 됩니다.
그러자 러시아 제국의 동맹국인 프랑스 또한 독일에 선전포고 하고 명예로운 중립이라며 유럽 대륙일에는 어지간하면 관여안하던 영국조차 독립 보장해놓던 자기네 바로 앞마당인 벨기에가 독일의 프랑스 침공루트로 쓰이자 독일과 전쟁하게 되며 결국 세계를 다 점유햇던 유럽의 식민지들 또한 자동적으로 전쟁에 동원되는등 세계 대전으로 비화되고 말죠.
이 와중 대서양 건너 조용히 힘을 키우던 국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은 이미 이 시점에 사실상 미국을 제외한 캐나다, 브라질, 칠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북남미 전체가 동맹해서 덤벼도 못이길 정도의 국력에 경제규모는 대영제국 전체를 능가하며 1인당 GDP 또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세계 최초의 메트로폴리스를 형성해 현대 사회의 원형이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석유 생산량이 세계 80%이상에 자동차 생산량은 세계 85%까지 소위 말하는 현대의 대량생산을 뜻하는 포디즘의 원조라고 할만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이 크는건 미국 남북전쟁때 보오전쟁에서, 보불전쟁부터 세포이항쟁, 이탈리아 통일까지 자기네들 앞가림도 바빴던게 큰데, 미국이 산업화를 본격화하던게 1850-60년대부터라 이 시절에 어떻게든 많은 타격을 입혔다면 이 정도로 순조롭게 성장할순 없었겠죠.
허나, 유럽대륙은 이미 그 당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혼란의 도가니였고, 미국은 유럽이 개입하고 관심 가지기에는 대서양이란 수천 키로미터에 달하는 너무나 큰 방벽이 있어서 본격적으로 작정하고 준비해서 쳐들어가지 않는한 의미가 없을수준이었고요. 그리고 소위 자기들이 부르는 미개민족을 부르는 기관총이 문명인들을 겨냥하게 되고 솜 전투등 약 천만이 넘는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육편처럼 갈려나갑니다.
사실 영토 크기나 인구 숫자만으로는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조합으로는 영프러에 상대가 안되고 실제로 오스트리아랑 오스만은 러시아에 쥐어터지다시피 했으나, 영국을 능가하는 세계 제 2 공업대국으로 성장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육군과 장교진을 가졌다는 독일이 똥파워를 발휘하면서 덩치는 거대하나 아직도 농민들이 인구의 절대 다수에 산업화가 미진해 전쟁 가용 자원이 얼마 안되는 러시아를 K.O 판정패 시켜버리고 당시 혁명 정부의 수반이던 레닌에게 러시아 서부 지역을 받는걸로 종결짓습니다.
그렇게 동부전선을 마무리지은 독일이 서부전선의 교착상황을 끝내고 파리를 함락시켜 빨리 강화를 맺어야 되었는데, 그 이유는 대영제국의 해상봉쇄에 따른 해상 교역망이 끊겨버려서 설탕도 대거 수입이 불가해졌고 사탕무를 통한 설탕을 만들어내야 될 정도까지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헌데,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함께 멕시코에게 미국이 뜯어간 땅을 주겠다는 치머만 전보 사건이 터집니다.
그렇게 인구 9천만~1억에 육박하고 경제력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총합에 필적하는 괴물 국가를 전쟁에 참전시키게 되는데, 미국은 대양을 건너서 430만명의 대규모 군대를 보냅니다. 이는 러시아 이탈후 기진맥진해가던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 힘의 균형의 추를 확실히 연합국 족으로 넘어가게 만들죠.
이 1차 세계대전 종전이 되는 베르사유 조약 이후 시점부터 미국의 달러는 영국 파운드보다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이용율을 보이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의 제안에 따라 현재 국제연합의 원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국제연맹이 창설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 미국 대통령이 제안해서 만든 국제연맹을 미국 의회가 가로막아서 가입을 못하게 되었다는게 있지만요.
여하튼 유럽은 이런 국제연맹이라는 어떤 강제력이 없는 허울같은 기구의 중임들을 차지하고서 1차 세계대전 아니 그 이전부터 점점 확고한 우위의 균열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던 유럽이 이끄는 세계질서를 유지할려고 안간힘을 다 씁니다. 허나 갈놈은 가게 되있는게 역사의 순리고 서구의 가장 강력한 두 축이라는 영국과 독일의 총합조차 미국에게 경제규모로 한 참 밀리게 되는 시점에서 사실상 시간의 문제였지 그들의 질서 유지 능력이 점차 떨어져가고 있다는건 확연했고요.
여기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번엔 오스트리아 인물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서 나타나면서 생겨납니다. 바로 특이한 스타일의 콧수염으로 유명한 독일 1차 대전 참전용사로 철십자 훈장을 받은 상병 아돌프 히틀러란 인물에 의해서 말이죠. 그렇게 이미 밀려나던 세계의 패권을 쥐던 유럽은 점차 뒷자리로 밀려나가게 됩니다.
3. 2차 세계대전과 유럽의 패권 상실
아돌프 히틀러. 그 이름은 아마 아무리 유럽사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알 이름일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소위 2 차 세계대전의 최종 빌런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 어느정도 그러하기도 했으니까요. (당장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의 국력은 거의 2.5~3배 차이 이상 났으며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 조차도 유럽전선을 메인 전선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대부분의 역사 사건이나 현상이 그러하듯, 시대의 흐름이나 추세를 바꾸는것이 고작 1명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런 지도자급 인물들이 일반 소시민들보다야 당연히 역사의 향방에 영향력을 더 끼치겠으나, 부족국가도 아니고 산업화 이후 분업화등이 이루어지고 매우 방대한 체계를 갖추게 된 현대국가들을 한 사람이 전부 갈아엎거나 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죠. 히틀러는 앞서 말씀드린 유럽에 넘쳐나던 유럽은 멸망하리라~ 라는 허무주의와 반유대주의, 범게르만주의, 노르딕주의 등 여러가지의 혼종입니다.
실제로 히틀러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일관적이거나 명확한 단일 논리도 없고 개념도 중구난방으로 쓰입니다. 체계적인건 단 한가지도 없고 그냥 저변지식의 짜집기에 가깝다고 보시면 되는데, 이마저도 사실 루돌프 헤스나 그 외 나치당에 나름 석박 학위 등을 딴 지식인 계층 혹은 인텔리겐치아들이 감독 및 편집을 많이 해준겁니다.
일단 히틀러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제로 돌아가자면 이 히틀러란 인물이 유럽의 쇠퇴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던 사상들 중 하나에 영향을 받았다듯이, 실제로 당시 유럽은 어느정도 아예 2류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아니지만 완만하지만 두드러지는 하향세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뭐 앞서 말씀드린 미국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떠오르며 서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의 식민지를 위협하던 신흥 열강 일본, 그리고 당장은 고립되어있으나 유라시아 절반의 영역을 다시 통합시키고 서구가 300년 넘게 구축한 제국-식민지 체제를 부숴버리겠다는 소련까지 말이죠.
그리고 이 셋중 가장 덩치가 커져 대영제국조차 경제규모로 우습게 누르던 미국의 영향력과 위기를 동시에 나타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게 바로 1929년 대공황입니다. 근현대 경제사중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로 꼽힐정도로 대공황의 여파는 컸습니다. 일단 미국이 아무리 내수경제 지향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경제력과 공업력은 이미 단순한 세계 최대를 넘어 서유럽 4대열강이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합도 우습게 능가할정도였던데다 뉴욕의 금융 장악력은 기존 패권국이던 런던 못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국의 상하이는 비비지도 못할 수준으로 말이에요.
하여간 대공황으로 인해 유럽은 일찍 잡으면 1500년대 중후반 그리고 1600년대 초이래 항상 외부에 영향을 미치던 입장에서 그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 수동적 지위가 됩니다. 첫번째로 지금과 같이 당시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에서 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하며 미국계 기업 및 미국에게 자금줄을 수혈받던 독일 토종 기업들까지 싸그리 망해버리고 공장 설비 가동 또한 멈춰버리면서 실업율이 40%이상으로 폭증했고 이는 뮌헨 맥주홀 폭동이후 쪼그라들던 나치당이 순식간에 부활되는 반전의 계기가 됩니다.
또한 이미 능력적으로 독일을 감당해내는걸 버거워하던 영국과 프랑스등은 미국 대공황 이후 타격을 받아 런던에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운동이 더 강화됨은 물론 프랑스의 경우 역사학계에서 프랑스 파시즘이라고 불릴정도의 반유대주의 및 극렬한 징고이즘이 횡행하게 되었으며, 이런 경제 악화를 자양분으로 삼아 코민테른에서 지원해주던 공산주의 세력이 크게 세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때 열강이였으나 미서전쟁 이후 완전히 2류 국가 취급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서유럽에서 5번째로 큰 인구를 가졌던 국가 스페인은 대공황으로 인해 리베라 장군이 이끌던 권위주의 정권이 붕괴해버리고, 공화파가 대승하여 레콩키스타 이후 대대로 왕가와 종교가 국가 통합의 중심이었던 스페인에서 1931년 알폰소 13세가 퇴위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일어날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프리퀄 전초전인 스페인 내전의 전주곡이였고요.
이렇듯 유럽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의해 정치,사회,경제 모든 면에서 뒤흔들리고 여기에 유럽이면서도 아시아적인 가치를 포함한 러시아 제국의 후신 국가 소련의 공산주의 침투에도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게 당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수백년간 쌓아올린 세계 질서의 기둥을 유지할려고 아둥바둥 발버둥을 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더 이상 건함경쟁을 할 능력이 안됨을 시인한 워싱턴 군축조약부터 영, 프의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침공에 대해 성명문과 비판을 넘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한것까지, 1600년대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져오는 해양 패권과 나폴레옹 몰락 이후 어느정도 이에 보조를 맞추던 프랑스가 가까스로 지탱하던 질서는 이미 유명무실화 되었음이 여러 부문에서 눈에 띌 정도가 됩니다.
결정적으로 국제연맹 주요 5개국중 하나였던 일본이 중일전쟁 비판에 대한 보이콧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독일 또한 주데텐란트 지역을 날름 집어삼켰으나 그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대놓고 주권국을 합병하던 오스트리아 합병에다 비록 뒤에서는 나름 군비를 증강시키며 날을 갈고 있었다는 체임벌린이였지만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인상만 따지면 뮌헨협정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는 서구가 이끌던 질서를 유지시킬 능력도 의사도 없음을 인증해버린셈이였죠.
그리고 여기에 고무된 독일은 폴란드까지 침공하였고 소련 또한 조약에 따라 분할함에 영국 프랑스는 선전포고를 그제서야 했으나 이미 때는 한~참 늦었고, 그렇게 했음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전쟁준비를 할 여력이 안되서 가짜전쟁을 벌이며 독일에 대한 무력시위를 벌이지도 못했습니다. 몇개월 후에는 아예 독일이 선공을 날리는데, 만슈타인이 제안한 낫질작전에 의해 마지노선이 간단히 우회기동으로 뚫리고 영국의 지원군은 독일 육군과 공군에 포위됩니다. 이때 그 유명한 덩케르크 작전으로 영국군은 유럽대륙에서 탈출하고 프랑스 항복까지 이미 서서히 파열음을 일으키던 서구의 질서에 완전한 사망선고를 내립니다.
이렇게 유럽, 미국 그리고 심지어 아시아에서까지 한 때 제 3의 대안이라고 일컬어지던 파시즘이 유럽 대륙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면서 의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을 내세우던 서구가 아닌 극단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독일, 유라시아의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다른 세계로부터 강제적 고립을 당한덕에 타격을 얼마받지않고 내전 복구하며 급격히 성장한 소련, 대양 건너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 자임하던 미국의 3파전으로 흐를거 같았으나...그게 터집니다. 바로 진주만이죠.
이 진주만을 논급하기전에 일본 제국 또한 유럽의 세계 질서에 그 나름대로 영향을 미쳤는데, 기본적으로 그들이 비백인 열강에 아시아주의 선전을 해댄걸 논외로 한다손 치더라도, 일본제국이 유럽의 동남아 식민지를 침공하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해군을 침몰시키고 육군을 격멸시킨건 당시 피식민지인들에게 지대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싱가포르의 국부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시아 민주주의 논쟁을 펼쳤던 리콴유가 소회하였듯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것 같던 백인들의 권위가 자신들과 별다르게 생기지 않은 황인종인 일본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는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더 잔학한 행위를 저질렀지만 일단 그 일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물리법칙 같은것이 박살나는 기분이었던것이죠.
그리고 이 일본군의 침공 이후 실제로 도조 히데키에 손을 벌린 인도의 찬드라 보스에서 프랑스 본국의 항복이후 식민기구마저 완전히 무력화된 시점에서 더 세력이 불기 시작했던 베트남의 호치민까지 유럽이 아시아에서 가지던 우월적 지위는 사실상 이때를 기점으로 거의 소멸되었다 보셔도 좋습니다.
하여간 일본은 유럽제국들의 동남아 식민지를 먹어치우고 인도까지 노리면서 서구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고, 비록 영국동양함대까지 괴멸시켰으나 이는 일본 자신들이 미국의 석유제재와 후속 경제적 압력에, 일본측에서 내세우는 대미개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중 하나로 언급하는 논리인 ABCD (America, British, Chinese, Dutch) 연합을 실제로 구현시키게 되었죠.
게다가 그 이전에 유럽의 새로운 정복자이자 세계의 뉴월드오더를 펼칠거라 일본이 믿었던 독일과도 동맹을 맺으며 그들은 미국 하와이에 가서 대규모 공습을 1941년 12월 7일에 벌이고, 나치독일은 이미 영국을 지원하고 소해 작전을 펼치던 미국이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는지 얼씨구나 좋다고 같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날립니다. 그리하여 말그대로 세계 최고의 공업대국이자 경제대국이던 잠자는 사자 미국을 깨워버렸고...미국은 양면전쟁을 하면서 동시에 소련과 영국을 지원합니다.
이 방식도 기가 막힌데 미국은 덴마크 노르웨이등이 나치에게 점령 당했기에 아예 북극해를 통한 아르항겔스크 항이나 중립을 선포하던 이란이 길을 빌려주지 않자 영국 및 소련과 논의하여 이란을 통째로 점령해버린후 이란 남반부 항구를 통해서 소련 중앙아시아로 물자를 날라보냅니다. 여기에다 영국에게는 독일의 운터제보트 약칭으로 U-Boat가 아무리 굉장한 실적을 보여도 거의 4일만에 1척씩 뽑아내기도 했던 리버티쉽부터 미국의 물량으로 스팸부터 온갖 자재들로 연합국 힐을 해주었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소련 공업지역 60% 이상을 날려버리며 모스크바 점령할 기세로 달려들던 독일군도 점차 밀려나고...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영미 연합군에 쭉쭉 격퇴당하는데다 애를 많이 먹였지만 없는것보단 있는게 나은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의해 1943년경 리타이어까지 당하면서 독일과 파시즘 진영은 확실히 수세로 전환됩니다.
그래도 동맹이라고 극동의 일본에게 소련 뒷통수를 후려갈겨달라 했건만, 단결을 외치기 좋아하는 그 두 국가들 사이의 팀플레이는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로 어지간히도 막장이라 일본은 할힌골 전투에서 대판 깨진후 이미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황이었죠. 뭐 가령 불가침을 안맺었다 한들 일본이 미드웨이 전투부터 이후 이어질 레이테만 해전과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까지 전력 30%수준으로 덤비는 미국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웠으니까 도와줄 여력도 없었고요.
그렇게 악화일로로 진행되던 독일의 전황은 드레스덴 폭격을 위시로한 연합국의 전략 폭격과 소련이 230만을 동원해 독일 베를린 제국회의까지 달려가던 소련군까지 사실상 끝을 보고 있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에는 아르덴 대공세마저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발리자 1차 세계대전에는 그래도 유린당하지 않던 독일 본토마저 네동강 나며 파시즘 세력의 뿌리가 뽑힙니다.
이어 미국은 동남아 지역 제해권부터 이전에 맥아더가 후퇴했던 필리핀까지 탈환하고 오키나와 까지 점령했으나 일본에서 결사항전을 외치자 유럽전선에서 효과를 보고 일본이 충칭 대공습을 하던거에서 영감을 얻어 대부분의 가옥이 목재로 이루어진 도쿄에 소이탄 대규모 폭격을 가했고 일본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펼쳐지게 되죠.
여기에도 대본영은 소련 중재카드를 꺼내려들었으나 이미 다 망가져버린 일본제국에는 이미 등을 돌린지 오래였고 루즈벨트와 함께 전후 어떻게 세계 질서와 영향권을 정할것인지 합의한 스탈린은 시베리아 극동지역 소련군에 8월의 폭풍작전을 입안하게 하여 만주국을 멸망시키고 일본 식민지던 조선까지 건너와 소련 군정을 세우고 이게 현대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북한의 기원이 됩니다.
덤으로 이 8월작전이 시작되던 시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 2발이 떨어지며 일본의 전의는 더 꺾여만 갔고, 히로히토는 옥음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결의 합니다. 이에 반발한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도 있고 했지만 바로 진압 당했고 중국대륙부터 동남아 지역에 흩뿌려져있던 일본군들은 모두 무장해제 당하게 되죠.
사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시면 알겠지만 사실상 유럽제국들은 여기서 큰 전황의 흐름을 주도하는 메인 플레이어에서 점점 조연 역할로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걸 눈치 채실수 있을겁니다. 실제로 얄타 회담 당시 미국과 소련의 양대 진영의 거두 사이에서 처칠의 의견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고 내각이 교체되면서 아예 영국에 불려가는 망신살까지 떨쳤죠.
좋으나 싫으나 유럽 최대 세력중 하나인 독일은 분할당해버리고, 프랑스는 남아있던 마지막 자존심인 비시프랑스도 나치독일에 병탄당했고 미국에 의해 파리 해방까지 선두가 따일뻔하다가 겨우 자유프랑스의 드골이 먼저 도착하여 체면치레를 했으며, 영국은 미국이 지원해준 군함부터 식량까지 수많은 후원의 대가로 카리브해에 미국을 견제할수도 있고 중남미에 영향력 행사도 할 수 있던 지역인 바하마,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토머스, 안티구아, 아루바-쿠라사오, 트리니다드, 영국령 가이아나 등 8개 기지에 대한 99년간의 임대권까지 내줍니다.
네덜란드는 다시 인도네시아 점령하러 간다했지만 마셜플랜등 미국의 돈을 받아야하던 철저한 을의 입장이였고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이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과 연계되는걸 경계하여 네덜란드에 압력을 넣어 동인도 인도네시아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게 되며, 이탈리아는 이전 리비아부터 해외 식민지 대부분을 상실하기에 이르죠.
그러나 미국은 약 40만명의 인명 손해로 세계 수천곳에 달하는 군사 기지를 설치하게 되었고, 이전에도 이미 압도적인 경제력이기었으나 그걸 넘어 유럽 절정기 1913년도 유럽대륙 전체 경제력 비중조차 일시적으로 능가하며 영프독, 이탈리아, 소련, 일본등의 연합국 및 추축국 주요 강대국들을 다 합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덩치로 커버렸습니다.
거기에 안 그래도 2차대전 이전부터 독일조차 능가하는 세계 제 2공업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세계에서 제일 많은 탱크를 찍어내는 위엄을 보인 소련이 동유럽 전역을 넘어 독일 수도까지 진입하고, 아시아에서는 한반도까지 진출함은 물론 다른 유라시아의 거대국가 중국까지 하위 동맹으로 두게 되었죠. 더 이상 조그만 본토로 해외 거대 식민지들을 경영하며 파워 싸움을 하는 수준으로는 힘의 밸런스가 안맞게 되어버린것입니다.
그렇게 유럽의 정치-군사적 패권은 소실되었고, 대영제국을 능가하는 미주 지역의 패권국이며 동시에 최강 해양제국인 미국과 동유럽 위성국을 합해 인류 역사상 단일 육상제국으로서는 최대 대륙국가인 소련 사이에 끼인 어떻게 보면 아기자기한 중견국가들이 모인 동네 정도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2의 전성기를 울리는 종소리이기도 했지요.
4. 핵전쟁이란 살얼음판 위 유럽의 평화와 번영
제 2의 전성기냐?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사실 일본제국 이후 일본이 미국의 효율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경직된 사회구조를 개신하면서 아시아 깡패 2류 열강에서 진정한 의미의 경제대국이자 서구 선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듯이, 유럽 제국들이 그들이 가졌던 정치적, 군사적 패권은 잃었을지언정 개개인의 생활 수준이나 경제 발전면에서는 오히려 더 큰 진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벨 에포크 운운하고 유럽 노동자 계층이 식민지에 살던 사람들보다야 나았을지언정 이미 식민지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식민지는 일부 그 플랜테이션이나 식민지와 결부된 산업과 연관된 자본가와 거기에 커미션을 얻는 정치권 및 군부등에게 이익이 되었지, 국가 전체적으로 보았을때는 행정비용, 군사비용 등으로 더 부담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고 이런 비용 부담은 보통 전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는점에서 단순한 국제 위상이나 국가의 위신을 넘어 개개 시민의 행복이나 윤택함만을 따지면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죠.
간단하게 2차대전 이후 유럽은 전후재건으로 인한 기술적 반등도 있었긴 하지만 현재 유럽에게선 상상하기도 힘들고 중국조차 버거워하는 6~8% 고성장 ( 유럽이나 한국이나 중국같이 경제 발전 단계가 낮을땐 다 높은 성장율을 찍었습니다 ) 을 꾸준히 했으며, 비록 고령화시대인 현재에 부담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한 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보편적 복지 모델도 이 때 대부분 구축됩니다.
더해 NATO등 집단안보체제와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충격 및 그 여파로 인한 미-소간의 완충지대스럽게 되어버린 자신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서 협력의 첫걸음으로 교역을 택했고 유럽의 주요 2개국인 프랑스와 서독 사이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가 탄생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이후 유럽연합이 될 중요한 조약이였죠.
이리하여 서로간의 교류는 증진되고, 경제는 성장하며 그에 따른 문화 또한 꽃피워 1910~20년대 무성 영화 시대부터 1930~40년대 유성 영화로 전환된후까지 막대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에 영화와 사진기의 본고장인 유럽이 맥을 못쑤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1960년대 프랑스 영화, 이탈리아 자본으로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그 유명한 비틀즈의 브리티쉬 인베이젼까지 대중문화 측면에서 유럽은 제국주의의 정점인 20세기초가 아닌 제국의 해체기인 1960년대에 절정을 맞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프랑스 배우 알랭들롱이 활동하던 시대가 바로 누벨바그 사조가 시작되던 50년대후반 60년대였고, 당시 미국의 미남 배우라고하면 떠오르던 폴 뉴먼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것만해도 당시 유럽 대중문화의 힘을 엿볼수 있죠. 어디 문화에만 국한되었을까요? 60년대 말에 유럽의 경제력은 미국조차 다시 능가하기에 이릅니다.
이에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는데, 1. 기본적으로 유럽은 이전부터 산업화된 선진지역에 미국보다 인구가 당시 기준으로 3배 가까이 많다. 2. 나토를 통한 유럽의 국방비 부담이 이전 제국주의 시절보다 훨씬 경감되었다. 3. 전간기까지 치고 박던 유럽 주요국들이 한번 폐허가 되고 나토로 연대의식이 생긴데다 양 사이드의 초강대국인 미국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내부 교역이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정도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출산율은 그렇게 낮지 않아 인구구조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전통산업만으로도 그 당시 수요를 다 맞추고도 남았죠. 거기에 냉전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제 2, 3세계의 불안정성이 생겼고 그 때문에 미국계 자본이 투자할곳이 유럽과 일본 그외에 한국 정도로 제한되면서 해외투자도 대거 받아들이기 용이했고, 구공산권과 제 3세계가 상황이 그로기한만큼 아웃소싱이 여의치 않았으니 노조의 요구에 따라 임금 또한 꾸준히 올라 제국주의 시절때 극심하던 양극화와 빈부격차 또한 줄어듭니다.
이 시기가 바로 먼나라 이웃나라 선생님을 집필하신 이원복 선생님이 느끼고 현재 대부분 한국인들이 가지는 복지가 튼튼하고, 국방비에 크게 투자하지 않으며 내실을 확충하던 유럽 선진국 이미지가 형성되던 때입니다. 1930년대 까지만해도 유럽 대도시 뒷거리에는 넘쳐나는 빈민과 사회 경제에 불만을 가진 시위대들로 들끓었으나 아이러니하게 패권을 잃고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국방비를 최대한으로 절약하며 전후 재건 및 경제 발전과 사회 투자에만 집중하니 국민들의 삶의 질이 한껏 더 개선될수 있었던것이죠.
그리고 미국보다 경제규모가 커졌다는데서 암시되듯이, 이런 거대한 경제권에서 던지는 경제 및 사회적 의제는 곧 세계 각국들이 따라할 표준이나 모범이 됩니다. 심지어 그 미국조차 환경 규제나 그 외 사회 분야에서 유럽의 제도 및 사례를 그대로 따라한게 상당했지요. 허나 이것도 컴퓨터와 인터넷이란 현대 사회를 재창조할 신문물의 발명과 철의 장벽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며 함께 무너질 조짐을 보입니다.
5. 중국의 개혁개방과 공산권의 붕괴
흑묘백묘론과 선부론을 제창한 덩샤오핑대 이래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은 현대사에서 가장 주요한 2가지 사건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 아시는 소련과 공산권의 해체죠. 그리고 이 두 중대 이벤트들로 인해 혹자는 패권국인 미국이 내리막길을 탔다고도 하지만 통계를 보면 이 명제는 전혀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정말로 하락세를 걸은건 미국의 서방동맹국인 서유럽 국가들 혹은 구 유럽 식민제국들입니다.
한가지 측면만 보면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이 탄생해 독일이 더 수출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소련이란 서유럽 따위는 뭉개버릴 수준의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이 사라져 안보 부담도 덜해지고 서유럽과 동유럽을 아우르는 거대 경제 블록인 유럽 연합이 탄생한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일차원적인 평가죠. 유럽 연합이 탄생하고 유로를 출범하면서 생긴 재정과 통화의 분리로 생기는 각종 고질적인 문제를 뺀다고 하더라도 이는 유럽에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독이 되었습니다.
일단 중국부터 논해보죠.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은 변변찮은 기술도 없어서 한국 60년대 초에나 수출하던 의류등의 경공업조차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될 정도였으나 중국 공산당의 해외 기업들의 중국기업과의 합작 강제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문제 삼는 기술 도둑질 및 거대한 인구규모를 바탕으로 이런 난점을 매우 빠르게 극복해내게 되는데 이것은 유럽 산업들에 그야말로 재앙이 닥친거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럽의 주력산업은 심지어 지금조차도 자동차, 제약, 의류, 기계설비 등 대체로 100년~120년전에 대부분 시작된 산업들입니다. 해당 산업들도 당연히 T-모델 같은거에서 발전이야 했지만 산업 자체는 상당히 연원이 오래되었다는것이죠. 이말은 즉슨, 산업의 성장 동력 또한 거의 멈춘 상태이고 이미 포화상태의 규격이 정해진 파이를 나눠먹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자동차 판매댓수가 매년 평균 1500~1800만대인데 이 수치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부터 이미 도달했습니다. 유럽이나 일본 그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주식 차트들을 보면 시가총액 규모가 80~90년대 이후부터 자동차 등 전통산업에 기반한 기업들이 큰 상승폭을 보이지 않는것을 눈치채실수 있습니다.
상승한때는 대체로 중국이나 그런 신흥국들의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인데 이 조차도 중국 자국 자동차 기업이 성장하고 동시에 최근 중국 경제 또한 농촌에서 도시로 진입하고 이게 최대 한계치에 달해서 임금상승으로 전환되는 기점인 루이스 포인트에 도달합니다. 더해 초기 성장기에 인프라만 깔아도 빠르게 성장하던 고성장 보너스를 상실한데다 국유기업 특유의 비효율이 나타나면서 지금 자동차 판매량이 1년 넘게 -12% ~ -16% 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죠.
즉 이미 시장이 과포화된 상태에서 신흥국의 수요조차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이런 중국같은 플레이어은 당연히도 국내에서만 머무르는게 아니라 해외에도 진출하지 않겠습니까? 파이의 크기는 변동하지 않는데 나눠먹을려는 놈들은 더 많아졌다는거고, 실제로 유럽 단순 생필품의 경우 중국제로 상당수 대체되었으며 프랑스에서도 자국 고용 규제가 너무 심해 해외로 기업들이 탈출하면서 경제는 계속 침체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마크롱이 최근에 대규모 재정풀기랑 감세조치를 취하기전까지만 해도요.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경우엔 더 심했는데,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소위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기술은 뛰어난 중소기업들의 매출이 이탈리아 경제의 상당부분을 지탱했습니다. 헌데, 세계화가 보다 더 가속화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적극 발휘하는 초대형 기업들의 자본 공세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특히 아예 국가와 공산당이 주도해서 보조금을 퍼주는 중국에게 산업 자체가 거의 몰락해버렸습니다.
이런 중국의 보조금 & 기술 탈취 & 저가의 트리플 콤보로 유럽 전통적 제조업 및 공방들은 싸그리 밀려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심지어 유럽 최대 제조강국인 독일에게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소급한 구공산권의 붕괴도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왜냐면 아이러니하게 공산국가들의 특징은 이념교육을 위해서 공교육이 철저하다는것입니다.
실제로 소련의 경우 미국이나 서방 선진국들보다 대학 졸업율은 오히려 더 높았죠. 이게 이념적으로 쓰인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시장 자유화 이후 이게 큰 이점이 되는데 그 이유는 즉슨 소득은 낮으니, 당연히 임금 또한 낮은 편이였습니다. 헌데, 직원들의 수준만 보면 교육수준에서 서방권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스웨덴으로 몰리던 ICT 관련 기업들이 오히려 체코 쪽으로 더 많이몰리고 독일의 제조업 상당수도 폴란드나 동유럽 쪽으로 이전하게 되었죠.
사실 2020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은 독일처럼 제조업을 살려야 된다 뭐 이런 소리를 했는데 이는 주식/경제 전문가들이 자주 보는 경제 일간지인 Barrons에서 통계치로 반박을 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 이래 제조업 종사자의 비율의 감소란 측면에서 미국이나 독일이나 비슷비슷하다는것으로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큰 간극이 있다는것이였죠. 이렇게 유럽은 새로운 혁신과 신산업을 선도하는것도 아니면서 2차 산업혁명 시절의 기존 산업들조차 중국이나 혹은 이전 동유럽 공산권들에게 지분을 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주요 기업들은 큰 등락폭을 보이지 않았고 현재 가치나 미래 성장 기대라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게 유럽의 산업이 차차 뒤쳐지고 있는 와중 결정적인 한 방이 오는데 현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최근 사건으로 불릴 2008 세계금융위기입니다.
6. 2008 금융위기와 잃어버린 20년으로의 진입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벌어진 2008 금융위기의 첫빠따는 당연히 미국 그 자신이었으나, 이것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확실히 타격을 입은곳은 바로 유럽대륙입니다. 간단하게 유럽의 은행 자산들을 보면 2000년대 초반에 영국이 약 16%에, 서유럽이 12%고 미국이 한 22% 정도로 유럽의 은행들이 미국을 능가했습니다. 도이체 방크가 1990년대에 투자은행으로 미국에 진출하기까지 했고요.
그런데 2008 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금융, 산업, 그외 전반적인 경제 모든 부분에서 거의 파멸에 다다릅니다. 2000년대 초반에 28%에 육박하던 그 수치는 현재 2019년 시점으로 10%는 커녕 8%에 불과하며 이중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전체의 비중은 고작 2%인데 이것은 버블이 붕괴하고 조로증을 겪는다는 일본의 수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은행 자산은 현재 세계 은행 자산의 36%로 증가했고, 중국은 2015년도까지 한 참 증가하다가 상하이 주식 폭락 이후 하향세를 타면서 세계 25%, 호주/캐나다 등은 16%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인구 4억 이상을 자랑하는 서유럽 전체가 미국은 커녕 호주/캐나다와 같은 인구 2~3천만 짜리 국가들에게도 밀리고 있다는 의미가 되죠.
단순히 은행자산만 그런게 아니라 투자 펀드들의 자산 규모만 보더라도 유럽 전체 규모가 약 4.7조 달러로 한화 5,500조원 가량인데 미국의 그것은 2경 4,360조원 여기에 미국내 최대 투자 펀드중 하나인 블랙록이 굴리는 액수가 7,061조원으로 유럽은 지금 미국의 '투자 펀드 기업 하나' 보다 못한겁니다.
여기에 실물경기의 선행지수라는 주식 지표를 보면 프랑스는 아예 1990년대 초반에 고점을 찍고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그래도 런던이란 상징성때문에 해외 자본 유입이 많이되어 2017년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고 이탈리아의 FTSE MIB의 총액이 2009년보다 못합니다. 독일의 DAX는 그래도 중국등 신흥국 시장때문에 2017년까지 상승폭을 보였다가 하락하고 있는데 이게 2015년때랑 비등비등한 수치고요.
이런 기업들의 부진때문일까요? 유럽의 경제성장율은 한국에서 사상 최악이라고 울부짖는 1% 후반대 ~ 2% 성장하면 엄청난 호경기라고 부를정도로 성장률이 낮습니다. 0.5~1.2% 이런 소숫점 성장률을 찍고 있고 이는 일본에서도 이미 보이는 현상입니다. 아니 진보와 번영의 유럽이 대체 왜 이렇게 된거인지에 대해 한번 파고들어보자면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자산 수요 및 생산성 하락 2. 지나친 관료주의적 행정 및 규제 3. 혁신 산업들의 창출 실패 이 세가지는 단순 유럽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 등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보이는 현상으로 비웃을 처지가 아닙니다. 일단 1번은 예전에 제가 글로 다루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현재 유럽 &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와 그로 인한 은행들의 실적 폭망까지 여러가지에 영향을 줍니다.
일단 저출산 고령화가 되면 구매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노인들의 수요량이란건 뻔하니 기업들의 실적도 당연히 내려가고 이들이 은행에 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대출을 구할려는 시도 또한 당연히 감소 추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거죠. 단순히 기업뿐 아니라 거주할 집을 사고 사회생활하며 필요한걸 갖출려는 20~30대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생산가능인구숫자도 적어지니 생산요소 증가나 신규 자본 유입도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게다가 이런 침체되고 암울한 시장에 활력을 돋구는 경기부양을 하기 위해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하면 시중 은행들의 주요 재원인 예대마진이 일단 맛이가는거고, 그렇게 될시 은행들은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는데 이미 벌여놓았던 사업들은 많으니 유동성 확보를 갈구하게 되는겁니다.
그리고 이런 유동성을 더 챙기기 위해 계속 리스크를 더 감수하는데, 그럼에도 인구가 줄어드는 구조적인 유입원 감소를 대체 못할 수준이라 저렇게 리스크를 떠안은게 삐끗 잘못되면 지금 경제쪽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많이 들어보이는 한 때 유럽 최대은행이었던 도이체 방크의 시가총액 94% 하락과 파산위기까지 이르게 되죠.
게다가 젊은층에 비해서 기술이 있다고 해도 노령층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 밖에없고, 이들에게 나갈 사회복지 비용의 급증 때문에 기존의 복지 시스템도 상당수 절감하거나 그 외 연구투자라던가 인프라등에 나가야 할 돈이 다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 성장과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것 영원히 빠빠이인 것이고 전형적인 쇠퇴하는 국가에 들어서게 된다는 의미죠. 참고로 유럽은 절대 젊은 국가들이 아닙니다.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의 경우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20%대 즉 거의 일본에 근접하는 노인 비율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독일은 약 2030년대에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거의 35~38%대까지 잘하면 오른다는 추정치가 있을정도에다 2010년대 초반부터 총인구 감소도 일본처럼 시작되어 8100만대 까지 찍었다가 2015년도까지만 하더라도 8,000만 7,980만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다 8,200만으로 반등된게 바로 시리아 난민 사태등으로 인한 난민 유입들이고 이것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크게 치루게 하고 있죠. 그럼에도 이런 난민들을 제일 많이 받아들인 국가가 바로 독일, 스웨덴이란 점은 이들이 단순한 인권과 선의에 따른것이 아닌 그들의 감소하는 인구 갭을 맞추기 위해서 유입을 허용했다는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별개의 사건같지만 난민사태부터 모든것이 이런 사회-경제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것을 시사하고 있죠.
그런데 지나친 규제는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유럽연합은 규제와 절차가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다고 악명이 높습니다. 그에 대해서 고충을 토로하거나 혹은 개선점을 얘기하는 수많은 유럽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있고, 유럽에서 신생 기업이 많이 나오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일일히 간섭과 규제를 거치니 여기서 초래되는 각종 비용뿐 아니라 경쟁 기업들에 의해 점차 도태되고 결국 미국이나 중국의 자본 수혈이 빵빵한 대기업들에게 먹혀들어간다는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유럽대륙이 상대적으로 하락세를 보인다해도 유럽의 총경제규모는 아직까지는 중국보다도 크고 미국 외에는 앞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규모에서 미국-중국의 10분의1도 안되는 수준이라면 뭔가 다른데 문제가 크게 있다는것을 얘기하는겁니다. 그렇다고 유럽 교육수준이나 인프라가 완전 아프리카 오지수준으로 열악한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이는 3번째 사항인 신산업과 혁신의 선도부분과 바로 연계되는 사안인데 유럽기업들중에서 좀 특출나고 유명한 IT 기업 들어보신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겁니다. 그나마 SAP인데 얘들은 Business - Business 쪽이 사업모델의 주력이라 애플이나 구글 넷플릭스 같은 Business - Customer 모델을 채택한 기업들과 달리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긴 힘듭니다. 거기다 미국이나 중국의 새로운 기업들에 비해서는 이 기업조차 좀 많이 늙은편인데, 이 기업뿐 아니라 사실 유럽의 주력기업들 대다수가
아예 19세기말 20세기초이고 1970년대 이후로는 100개도 채 안나왔다는 사실까지 논급한다면 암울함이 배가 되고 말이죠.
대표적 예로 2019년 시점에서 세계 10대 IT 기업중 유럽 기업은 '단 하나도' 이름을 못올린다는 점에서 유럽은 이 정보산업은 물론 이와 거의 필수적으로 엮이는 4차 산업쪽에서도 사실상 경쟁상대가 안된다는것을 뜻합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저출산 고령화등으로 인해 경기부양을 하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 및 지나칠정도로 까다로운 신용 규제로 인한 자본조달 측면에서의 난이도 상승까지 유럽의 정책적인 부분까지 모든것이 연결되어 있고 이는 결국 유럽 경제 및 생산성의 향상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덩치가 위축되고 침체하는 유럽은 심지어 그 중국에게조차 손을 벌릴정도로 상황이 굉장히 나빠졌으며, 증가하는 사회보장비용조차 감당을 못하는게 자기들 처지이니 국방비 따위는 당연히 제껴두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경제규모로는 거진 11분의1인 러시아 같은 국가의 호전적 행동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러시아의 자원 외교에 휘둘리는 양상으로까지 흘러갔죠.
무역과 경제에서도 각국 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팡질팡 충돌을 일으킬뿐 아니라 재정 통합논의조차 프랑스, 독일 주요 양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일이 균형재정을 하는데 다른 국가들은 많이 써재끼니 자기들은 책임을 지고 독일인들의 세금으로 나가는 재정 보증 및 통합 즉 유럽 연합의 유럽합중국 단계로 나아가야 되는 첫번째 발걸음에 대해 비토, 거부권을 날린겁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안보 부문에서도 통합군을 외치나 어떻게 보면 프랑스의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것처럼 위쪽에선 브렉시트에, 동쪽 저편에선 폴란드, 오스트리아는 반대 의사를 밝히고, 심지어 유럽연합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조차 그에 대해 시큰둥하기 그지 없습니다. 프랑스를 위시로한 서구 몇몇 국가들이 러시아랑 같이 협력할려는 시도조차 러시아는 유럽연합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부터 각종 건에 대해 양보할 모습을 보이지 않는것은 물론이고 말이죠. 즉 유럽은 더 이상 세계를 움직이는 중핵이 아닙니다.
7. 결론
유럽은 한 때 세계를 지배했고 그들의 입맛대로 지구 전역을 갈라먹었습니다. 지난 300년간의 역사는 그야말로 유럽의, 유럽에 의한, 유럽을 위한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문물과 사상은 세계 최고로 낙후된 오지조차 영향을 줬고 말이죠. 정치제도, 법률, 사상, 경제, 문화, 군사, 학문 모든것은 다 서구화되었고, 서구 질서에 반대 기치를 높이드는 선봉장인 중국조차도 그들의 연단에 공자와 맹자 혹은 중국 역대 왕조들의 위인이 아닌 19세기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것은 정점에 이르면 내려온다는 자연의 법칙때문이었을까요?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를 재편하고 군림했던 유럽은 19세기말 20세기초 세계 경제 47%를 장악하고 지구 면적의 90% 이상을 정복했으나 유럽 대륙 중심에서 굴기하는 신흥 공업강국 독일의 더 많은 국제무대에서의 지분 요구와 함께 대서양 건너 최강국으로 성장한 미국이란 차기 패권국에 의해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되고 수백년간 공고햇던 그들의 질서는 파열음을 일으키게 되죠.
결국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중심이 된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와 발칸반도의 슬라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범슬라브주의간의 충돌이 매개체가 되어 유럽 전역이 무장하게 되는 1차 세계 대전으로 흘렀고, 이는 곧 유럽의 식민지 상태였던 그 외 세계 대부분 또한 격랑의 파도를 헤쳐나가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이 1차 세계 대전의 결정타를 날린것은 유럽 그 자신들이 아니라 바로 대서양 건너 미국의 수백만 단위의 폭탄드랍이었고, 빈 체제 이후 유럽 열강들 끼리 주도하던 외교 무대를 어쩔수 없이 미국이란 신생 강국에게 양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외교 질서는 열강들끼리의 야합과 밀사로 이루어지던 힘의 균형의 질서에서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국제 공동체를 이룬다는 국제연맹의 탈을 쓰게 되었습니다. 웃긴점은 미국 대통령이 설계했지만 미국은 정작 참가하지 못했다는것이지만요. 물론 이 시점에도 각국은 뒤로 더러운 짓은 다했지만 아예 겉으로 최소한의 규칙조차 지킬 필요 없던 이전 유럽 강대국들이 세운 외교질서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이는 후에 현재 유엔이라 통칭되는 기구의 시초격이 되기 때문에 그 의의는 충분하다 할 수 있겠죠.
여하튼 이 1 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은 더 이상 항상 영향력을 주는 능동적 행위자에서 피동적인 상태로 바뀌기 시작한걸 체감하게 됩니다.할리우드와 재즈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문화는 1920년대 유럽의 중산층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연극 공연의 중심도 빅토리아 시대 최성기를 이루던 웨스트엔드에서 브로드웨이로 옮겨갔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과 일본등은 급격히 성장하여 일본제 수출품이 영국령 인도등에서 경쟁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미국의 경우 마천루들을 쌓아 올리면서 경제규모나, 소득에서나 모든 면에서 유럽을 한참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인구 규모상 유럽 대륙 전체의 그것에는 미달했고, 정치/외교/군사/학문등 지난 수백년간 쌓아온것은 단순한 헛방이 아니었던만큼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최고 수재들조차 영국이나 독일로 유학을 갈정도로.
그러나 이것조차 미국의 대공황과 그 이후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일어난 2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대공황 시절 그들은 미국 자본과 경제의 영향력을 톡톡히 실감할정도로 실업률과 경제 지표는 사상 최악을 달리고 정작 대공황의 기원인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란 극단적 사상들이 팽배하게 되었고 말이죠.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은 극단적인 행동을 부르는 법이듯이, 유럽은 모든 전쟁을 끝낸다는 전쟁인 1차 세계 대전에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다짐했던것으 망각한것과 같이 1차 세계 대전의 확장판이라 해도 될 만큼 더 거대한 전쟁을 향해 내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대전쟁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와중에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로한 체제를 유지할려던 기존 세력들은 자신들의 동맹들과 심지어 안보보장을 한 국가들조차 3년도 못갈 '시대의 평화'를 위해 팔아넘기며 체제 도전 세력인 독일, 이탈리아등에게 무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중일전쟁때조차 변방 동아시아의 일이라며 머뭇거리던 영국, 프랑스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까지는 더 이상 용납 못한다며 선전포고를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그렇게 위기의 상황에서도 제정신을 못차리고 아직 탄약 확충 및 보급이 제대로 안되어 가짜전쟁의 양상을 보여주다가 1차 대전 때는 방어해낸 파리가 순식간에 독일군에게 함락당하며 프랑스는 나치에게 항복하고, 영국 혼자 고립되어 독일과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비록 이런 국면에 처했지만, 예전 1차 대전때 구원투수로 나선 미국은 여전히 고립주의였고 소련은 영국의 사단갯수가 30사단도 안된다는것에 정나미가 떨어져 아예 독일과 불가침을 맺어버려 서구가 이룩한 질서는 완전히 끝나고 대서양의 미국, 유럽의 파시즘 독일, 유라시아의 소련이 난립하는형국이 될 것만처럼 보였으나 독일은 소련이란 거대 국가가 뒷통수에 자리잡고 있음에 히스테리스러운 공포감을 느껴 침공하고, 아시아 동맹국인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 공습을 하여 미국이 참전하게 되어 영국과 자유프랑스 망명정부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결과적으로 영국동양함대까지 격멸하며 기세등등하던 일본은 본토가 잿더미가 될 정도로 미국에게 두들겨 맞았고, 독일 또한 랜드리스 이후 민간물자를 확충하고 군수물자 생산에만 집중할수 있게 된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고 중동부 유럽에서 쓸려나가며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소련기가 걸리는등 완전히 패망하게 됩니다.
허나 더 이상 서유럽 열강들에게 제공될 국제무대의 VIP 상석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아예 독일/연합군에게 점령당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서유럽 대국인 독일은 4조각으로 분할되었고, 그나마 미국편에 서서 상황이 나은 영국조차 미국에게 물자를 제공받는 대가로 카리브해를 비롯한 각종 해상거점 이권을 양보하고 그 미국 지원품과 자원을 통해 전후 상황을 겨우겨우 수습할 정도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전쟁을 주도하고 5대양을 차지한데다 모든 강대국들의 총합뿐 아니라 절정시기 유럽대륙 전체의 경제력 비중보다 거대해진 미국, 그리고 유라시아 전역에 영토를 펼치고 있으며 동유럽 전역을 집어삼키고 천만 상비군을 자랑하던 소련입장에서 보면 이는 웃기는 일이였죠.
왜냐면 양대 초강대국의 관점에서 세계대전을 2번이나 일으킨 대전쟁의 진앙지이자 해외 식민지 소요도 제대로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본토는 자기네들 지역 하나보다 작을정도에 불과하니 이런 유럽 국가들에게 일등석은 커녕 2등석이나 주면 다행이였고, 유럽은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닌 장기말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국면에 들어서면 서유럽은 초기 성장을 미국의 안보/경제 지원을 받았으며, 동유럽 지역은 심지어 냉전 중반기까지도 소련에 상당수 의존하는 하위협력파트너로 전락했고요. 그나마 독자적이란 프랑스조차 미국의 안보 우산에 마지못해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군사 패권의 상실은 나쁜것만은 아니었는데 특히 서유럽은 이런 국방비로 들어갈 돈을 미국이 대신 부담해주는 구조로 사회 복지와 경제 성장에 올인할수 있었고 이는 내실을 보강하며, 경제규모가 다시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죠.
이런 경제적 번영은 곧 문화 산업의 번창으로 이어져 동아시아 및 전세계에 미국 할리우드를 몰아내고 50년대후반 60년대초 누벨바그를 위시로한 유럽 대중문화 사조가 큰 흐름을 이루게 됩니다. 허나 유럽이 경제 문화적 풍요에 취해있는 동안 미국등지에서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펼칠 신산업들이 태동하고 있었고 이는 후에 미국과 유럽, 일본등 대다수의 선진국들의 명운을 가르게 됩니다.
80-90년대의 유럽은 구공산권 붕괴로 드디어 3 차 세계대전의 위협에서 벗어나는등 봄이 찾아오는듯 했으나, 통일이후 유럽의 병자가 되버린 독일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문제점들을 유럽연합이란 거대 경제블록 형성과 유로라는 공동통화의 출범 및 동유럽 국가들의 새로운 참여등으로 이어져 사회, 경제, 문화 부분에서 유럽이 한 때 세계 표준으로 여겨질 정도가 됩니다. 인구 천만도 안되는 스웨덴의 경우만 하더라도 Moral Superpower 즉 도덕 및 윤리 초강대국으로도 불리게 되죠.
거기에 유럽의 중심 국가인 독일은 이어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시키고 국가 수출 경쟁력을 향상시켜 중국등 신흥국에 수출증대를 꾀해 심지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조차 능가하는 무역흑자를 쌓고, 도이체방크와 BNP 파리바는 미국 투자은행 업계에 진출하는등 냉전이후 미국과 연대하는 서구 헤게모니의 중심으로 끝나지 않을 번영을 누릴것만 같았습니다.
허나 이것은 밑에 도사리고 있던 여러 위험들을 간과한것이었는데, 80년대부터 점차 심화되던 노령화로 인한 시장활력, 생산성감소와 함께 세계 절반의 사회복지 비용을 차지하게 되는 사회복지 비용의 극대화로 길게는 19세기 말 비스마르크 시절의 독일때 형성된 4대 보험 그리고 짧게는 1943년도부터 수립되던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의 청사진이라는 베버리지 보고서에 기반한 서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의 지속성은 이미 크게 위협받고 있었죠.
게다가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이라던 중국이 유럽의 주력산업이던 전통 산업들의 거대한 경쟁자로 나타났고, 게눈 감추듯이 그들의 시장을 잠식해나갔습니다. 북이탈리아의 강소 중소기업들은 파산에 내몰리고, 프랑스의 전통 제조업들은 약세를 면치 못했으며, 동유럽의 자본유치까지 겹쳐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도 이전 20세기 후반까지 보이던 그것과 대비해서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이나 북유럽에 전통적으로 몰리던 하이 테크 전문 일자리는 중유럽 체코나 슬로바키아등으로 분산되었고, 한 때 환경보호와 녹색 에너지로 새로운 글로벌 패러다임을 구성할때 도움이 되었던 강력한 규제와 행정 절차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에 더해 자본조달 또한 어려워서 미국 중국등의 대기업에게 경쟁이 안 되어 인수합병 당했고 결국 신산업 주도는 커녕 혁신의 물결 끝자락에 속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했고요.
은행 자산과 금융 규모는 세계 3분의1에 육박했다가 현재는 10% 미만으로 내려갔으며, 주식 시장의 경우 미국과 같은 대규모 성장은 커녕 버블이 붕괴해버린 일본 니케이 같은곳과 비교해야 될 정도로 지지부진하게 변했습니다. 그 외에도 저출산으로 인해 은행 수익률이 더 악화되는데 마이너스 금리로 경제부터 시장까지 모든곳에 왜곡이 일어나고 있으며,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고 이미 2010년대 초부터 일어난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난민까지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여기다 60~70년대의 꽃피던 유럽의 대중문화는 거의 미국에게 먹혀 자국 문화부심이 강력한 프랑스조차 프랑스 영화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30% 정도인데 비해 미국 영화는 50~55%등 과반을 차지하게 되고 그 외 유럽 여타 지역은 약 80~90% 정도로 미국 문화가 팽배해졌으며, 검색엔진과 SNS의 90~95% 이상이 미국 검색엔진과 메시지 프로그램인 구글과 왓츠앱을 사용할 정도죠.
어디 그것에만 국한되던가요? 국방분야에서도 이전 1-2차 세계 대전은 물론 냉전 시절보다도 한 참 못한 수준으로 전락해 3~4국가를 제외하곤 이미 유명한 기관총 대신 빗자루를 꽂아 훈련한 독일 국방군을 논외로 하더라도 유럽 국가 대부분이 0.9%~1.2% 등의 국방비로 군대 증강은 커녕 유지조차 하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지나치게 부풀어오르고 미래에 보다 증가할것이 확정된 사회보장비용 때문에 이걸 개선할 차후 여력조차 없다는게 더 절망적이죠.
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강력한 군대를 유지한다는 프랑스조차 리비아에서 펼친 오디세이 새벽작전에서 화력제공은 물론 말리나 서아프리카 지역 및 시리아 공습에서조차 미국 공중 급유기랑 스마트 폭탄을 지원받아야 겨우 적에게 타격을 줄 정도의 체면치레나 하는 수준이고, 다른 국가들은 대외 원정은 커녕 자국 방어도 못해 한때 세계 최강 육군을 자랑하던 독일이 폴란드에게 안보를 기댈정도라 소련때랑 비교도 안 될정도로 약체화된 러시아에게조차 속수무책입니다. 단순 경제규모로 보면 러시아는 한국수준으로 유럽전체와 비교도 안되는데도.
또한 그래도 그나마 버티던 유럽의 거대한 경제규모조차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줄어가 서유럽만 놓고본다면 이미 중국 경제규모에도 작년부터 밀리기 시작했고 1700년대의 그것보다도 더 낮아졌습니다. 네, 상대적인 관점에서 300년전보다 못해졌다는 거죠. 거기다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에 사실상 실패하여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 10개중에 유럽 기업은 이름 한 자 올려놓지 못했는데 경제성장율은 저성장을 악명 높은 일본보다 더 낮고 고령화 가속도는 한국과 중국보다는 양호하지만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세계 수위급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달리 말해 유럽은 20세기 초의 전성기는 물론 20세기 중후반의 중흥기조차 그저 한여름밤의 꿈처럼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총체적인 멜트다운을 겪고 있으며, 이미 사실상 후발주자로 종속되다시피 한 정보산업은 물론 거기서 한 층 더 발전해서 결실을 맺어야 되는 4차산업에서는 보다 더 뒤떨어지고 약세를 보일것을 의미하죠. 그럼에도 누군가는 유럽은 그래도 예전부터 잘살았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며 유럽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 한 세대가 25년이고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던 시절이 1940년대초에 끝장났다고 하면 이미 3대란 세월은 흘러가버렸습니다. 즉 유럽은 -정작 새로운 산업혁명은 미국 그리고 그나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것과 같이 - 19세기의 그때처럼 혁신을 선도하며 산업혁명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상 과거 세계에 군림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역사란 무대의 주역에서 물러나 골골대는 뒷방 늙은이처럼 세계 패권 경쟁은 커녕 본선 참여도 못할뿐더러 사실상 레이스에서 배제되었다고 보아야 되겠죠.
1990년대 - 2000년대초와 같은 세계의 사회/문화적 기준을 제정할 능력도 사라졌고 마크롱이 말하는 유럽의 부활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그저 미-중 간의 경쟁에서 승리한쪽이 될 새로운 패권국의 보조 역할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처럼 될 가능성이 높을겁니다. 그렇다해도 누군가는 유럽은 진보적이고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라며 유럽의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합니다. 과연 그들은 옛 영광을 회복하고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에 성공할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는 현재로선 그들의 업보일지도 모르지만 매우 가능성이 낮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