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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12 11:04:52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유비와 조조 (1) - 첫 만남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조조는 황건적을 토벌하던 중 전장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연의는 소설적 창작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그러면 두 사람은 실제로 언제 처음 만나게 되었을까요?

  정사 선주전의 배주로 인용된 영웅기(英雄記)라는 책에 매우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영제 말년에 유비는 일찍이 수도(낙양)에 있었다. 이후 조조와 함께 패국(沛國)으로 돌아와 무리를 모았다. 영제가 붕어하자 천하에 대란이 일었다. 유비 또한 군사를 일으켜 동탁 토벌에 참가했다.]

  영제의 제위 시기는 168년에서 189년까지입니다. 황건적의 난이 184년에 일어났으니 영제 말년이라면 그 이후의 시점이겠네요. 그리고 ‘천하에 대란이 일어났다’는 건 당연히 189년에 영제가 죽은 후 십상시들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이에 원소가 다시 내시들을 학살하고, 뒤이어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고 황제를 갈아치우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후 이른바 반 동탁 연합군이 조직되는 게 190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유비가 낙양에 있었다가 조조와 함께 패국으로 돌아온 건 어느 시점이었을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명확하지 않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료가 부족할뿐더러 몇 안 되는 사료 간에 서로 충돌이 일어나거든요.

  정사 무제기에 의하면 당시 조조의 발자취는 이렇습니다.
  -184년(30세) 낙양에서 의랑으로 있다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가 되어 토벌에 참여.
  -184년?(30세?)년 황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제남상(태수급)이 되어 해당 지역에 부임.  
  -???년(??세) 낙양으로 소환되어 동군태수에 임명되나 병을 핑계 삼아 고향인 패국 초현으로 돌아감
  -185년(31세) 왕분이 반란에 조조를 참여시키려 했으나 거절
  -188년(34세) 한수가 모반하자 낙양으로 소환되어 전군교위로 임명
  -189년(35세)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고 조조를 효기교위로 임명하나 고향으로 도망쳐 군사를 일으킴
  -190년(36세) 반 동탁 연합군에 참여

  한편 정사 선주전에 의하면 유비의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84년(24세) 황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움.  
  -187년?~189년?(27세?~29세?) 장순의 난 때 공을 세움. 안희현위에 임명. 독우를 두들겨 패고 도망침. 반란군 토벌 모병에 참여하여 사면. 공을 세워 하밀승에 임명. 관직을 버림. 고당현위에 임명. 고당현령으로 승진.
  -190년(30세) 반 동탁 연합군에 참여

  정리가 그럭저럭 잘 되어 있는 조조에 비해 유비의 발자취를 쫓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료 간에 서로 어긋나는 부분도 있거니와 워낙에 유비의 움직임이 정신없거든요. 그래서 일단 조조의 행적을 쫓아 보면, 그가 낙양에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건 두 번입니다. 첫 번째는 영제 재위시 동군태수에 임명되었을 때고 두 번째는 영제 사후 189년에 효기교위에 임명되었을 때지요.

  그런데 영웅기에 따르면 영제 말년, 즉 영제가 살아 있을 때 조조가 유비와 함께 고향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일 수가 없으니 첫 번째가 되어야 하죠. 그러나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보면 조조가 ‘무리를 모은’ 건 영제가 붕어하고 동탁이 정권을 잡은 이후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유비와 조조가 낙양에서 처음 만난 건 대략 189년 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하밀승에 임명되었다가 관직을 버렸을 때’라고 봅니다. 유비가 굳이 관직을 버려야 했던 이유가 조조를 따라 패국으로 갔던 것이라면 전후관계가 꽤나 그럴듯하게 들어맞거든요.

  그럼 제 근거 없는 추측에 따라 정리해 보겠습니다.

  황건적과 장순 등을 토벌하여 공을 세운 유비는 하밀승 벼슬을 받습니다. 임명장을 받기 위해 낙양으로 왔죠. 여기서 유비는 조조와 만납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요.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데다 가진 것이라고는 몇 안 되는 부곡(사병)뿐이었던 유비를 조조는 눈여겨보게 됩니다. 그래서 권유하지요. 내 수하가 되어라. 너를 중히 쓰겠다.

  유비는 그 청을 받아들인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밀승, 요즘으로 치면 하밀동 동사무소 행정계장 정도인 별 볼 일 없는 벼슬을 걷어찬 후 조조를 따라 패국으로 가죠. 그곳에서 조조의 친족인 하후돈/하후연/조인 같은 자들과 함께 병사들을 모았습니다. 이후 반 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유비는 자연스레 조조를 따라 종군하였지요.

  그런데 반 동탁 연합군이 허망하게 해산한 후, 유비는 조조의 휘하를 떠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공손찬에게 의탁하죠. 왜였을까요?

   물론 당시의 공손찬은 조조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보유했던 최상급 군벌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유비를 꽤 높게 평가하기도 했지요. 유비는 공손찬의 휘하에서 고당현위-고당현령-평원현령-평원상으로 쾌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평원과 고당 일대는 공손찬과 원소의 세력이 거세게 충돌하는 지역이었지요. 즉 유비는 공손찬의 수하로서 꽤 중요한 요지를 맡았던 셈입니다. 그러니 유비는 공손찬을 선택함으로써 꽤나 큰 이득을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단지 그 때문이었을까요.

  조조는 유비와 그 일당들을 무척이나 높게 보았습니다. 그건 이후 조조의 유비에 대한 평가나(천하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뿐이오!), 관우에 대한 집착, 또 장비가 하후연의 조카딸과 결혼한 일 등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유비 또한 조조의 그릇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공손찬의 세력이 강성하지만 조조가 곧 두각을 드러내리라는 사실은 유비 역시 깨닫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유비는 왜 조조를 떠났을까요.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결국 넌더리가 난 조조는 부족한 군사를 모집해야 한다는 핑계로 연합군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유비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저 무리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큰일을 하기는 글렀소. 나와 함께 갑시다. 내게는 그대 같은 사람이 필요하오.”
조조가 설득했지만 유비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손백규(伯珪. 공손찬의 字)는 저와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요, 예전에 탁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저희 집안을 여러모로 돌봐 준 은혜가 있습니다. 그가 지금 도적들을 토벌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르니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조는 무척이나 아쉬워했지만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명분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 후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지 장비가 유비에게 물었다.  
“아니 형님. 보아하니 저 자가 형님을 높이 보는 것 같은데 굳이 그 밑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까? 공손백규가 딱히 형님을 정중하게 초청한 것도 아니거니와 조맹덕도 꽤 그럴듯한 인물 같은데 말입니다.”
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맹덕은 영웅호걸이다. 반드시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다.”
장비가 이해되지 않은 듯 재차 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유비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가 거목(巨木)이 되기 전에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을 그의 부하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측량하기 어려우리만큼 거대한 천하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유비와 조조의 삶은 이후로도 몇 차례나 거듭하여 교차하게 됩니다. 때로는 적으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그리고 일생일대의 호적수로서.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은 서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서주대학살이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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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2 11:14
수정 아이콘
글곰님을 뵈옵니다.

선 추천.
drunken.D
19/02/12 11:19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부터 누르고 읽어내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비가 조조 휘하에서 공손찬의 휘하로 향했던 이유는 지극히 본인의 이익을 좇은 거라고 보는데,
조조 밑에선 클 기반 자체 마련이 어렵다고 판단한거 같습니다. 유비의 욕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이 시점이 아니었나 추정해봅니다.
19/02/12 11:25
수정 아이콘
하늘 아래 태양이 둘 일수는 없지요. 또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고요. 언제나 글곰님글은 추천입니다.
뽀롱뽀롱
19/02/12 11:26
수정 아이콘
휘하 막료의 구성체계에서 미래에 대한 진단을 해본것 아닐까요?

조조측은 무력담당은 친족 위주로 구성된 것에 비해
공손찬측은 그러지 않아서

무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유비 입장에서는 성장한계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9/02/12 11:29
수정 아이콘
본인의 욕심이 없다면 거목 옆에서 난세를 끝내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이 거목이 내가 바라는 거목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거나..
펠릭스30세(무직)
19/02/12 11:37
수정 아이콘
새 소설을 위한 설정이겠죠

현금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界塚伊奈帆
19/02/12 11:49
수정 아이콘
(2)

잔탄 준비는 언제든지 해놓을테니 책을 내놓으십쇼.(?!)
19/02/12 12:03
수정 아이콘
조조와 유비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졌던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 보고 있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을 수도 있겠죠.

유비가 저 시기에 조조와 함께했다고 하면 유비 진영에 대한 조조 진영의 (기록이 없음에도) 고평가도 이해가는 구석이 있겠네요. 하후돈이나 하후연 같은 애들이 바로 옆에서 유관장이 날뛰는 거 보면서 "와 관우 장비 저 인간백정들 보소. 조낸 만인지적이야." 라고 드립을 쳐댔을수도 있으니...
강미나
19/02/12 12:36
수정 아이콘
조조 진영의 구성을 보면 유비가 떠난 이유가 너무 분명하죠. 친척과 친구와 친척이면서 친구.... -_-
19/02/12 14:34
수정 아이콘
오잉 이런 뒷 이야기 전혀 몰랐습니다.
티모대위
19/02/12 15:12
수정 아이콘
오늘도 글곰삼국지 감사히 읽습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9/02/13 23:50
수정 아이콘
늦게나마 잘 봤습니다
서현12
19/03/04 15:05
수정 아이콘
항세준(杭世駿)이 조별전(操別傳)을 참고해 이른말에 따르면 이 당시 조조를 전군도위(典軍都尉)로 임명해 초(谯)로 돌려보냈다. 이때 패(沛)의 사졸이 함께 배반하여, 그를 습격했다. 조조는 위험에서 벗어나 달아날 수 있어, 평하정장(平河亭長)의 집에 숨고는, 조제남(曹濟南) 처사(處士)라고 칭하며, 8, 90일을 숨어 살며 발의 상처를 치료했다. 정장에게 이르길 "저 조제남이 비록 패했으나, 존망은 아직 알 수 없으니, 공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차로 바래다주셔, 4, 5일을 왕래할 수 있다면, 저는 공께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정장이 이에 우차로 조조를 전송했는데, 아직 초까지 수십 리를 이르지 못해서, 기병이 조조를 찾음이 많았다. 조조가 휘장을 열고 그들을 꾸짖었다. 모두 크게 기뻐하며, 비로소 조조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제 생각엔 아마도 이 시점에 유비가 초로 간거 같습니다. 효기교위로 임명되었을때는 여백사 사건이 있는데 그때 유비가 같이 있었다는 얘기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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