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12/23 17:24:01
Name 작고슬픈나무
File #1 KakaoTalk_20181223_170608937.png (1.17 M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넷플릭스] '트로츠키' 감상한 소감을 저도 올려봅니다.


별 생각 없이 아침에 1화를 시작했다가, 한 번도 끊지 못하고 8화가 지금 끝났어요. 마지막 정주행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1이었으니까 무척 오랜만이네요.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우선, 말로만 듣던 인물과 시대를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이 문에 들어서게 하는 지점이예요. 트로츠키, 레닌, 스탈린 세 주연과 고리키나 프로이트에 프리다 칼로까지. 볼셰비키, 10월 혁명, 붉은 군대 등. 산 너머에 있다는 막연한 시공간에 발 딛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느낌입니다. 제작, 자본, 주연 모두 순수한 러시아 콘텐츠라는 점도 흥미롭고요. 할리웃이 만들지 않은 러시아 영웅들의 모습은 어떨까.

유태인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이 트로츠키로 이름을 고치고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드라마는 트로츠키에게 끊임없이 달라붙습니다. 집요해요.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이루려고 그랬는가를 희생자의 입을 빌어 묻지요. 과연 문호의 나라 러시아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일이관지’, 하나로 모두를 꿰뚫는다는 말처럼 그의 가치관은 모순되지도 허점이 드러나지도, 찌질하지도 않게 표현됩니다. 이 내가, 이 대단한 영웅인 내가 이 나라와 민중을 공산주의 낙원으로 이끌겠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구조와 비슷합니다. 전성기를 지난 주인공에게 인터뷰어가 붙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극을 전개해요. 인터뷰어는 계속해서 늙고 추방된 지도자의 업적 혹은 행적을 깎아내리려 안달하고, 인터뷰이는 때로는 의연하게 젊은 애송이를 논파하기도 하고 환영에 휘둘리며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극은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짜깁습니다. 그 바느질 자국은 설원을 거침없이 달리는 ‘붉은 군대의 기차’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이 기차가 바로 트로츠키 본인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요. 골방의 사상가에서 창고의 선동가, 카페와 광장의 연설가, 전장을 달리는 지휘관을 거쳐 망령에 시달리며 회한에 휩싸인 늙은 영웅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 흠뻑 빠진 채로 여덟 시간이 훌쩍 지나 마지막 장면이 첨부한 이미지입니다. 혁명의 열차에 삶의 모든 걸 바친 트로츠키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미장센도 훌륭합니다. 1898년 5월 오데사, 1902년 파리, 브뤼셀, 1차 대전이 끝날 때의 러시아, 1940년의 멕시코 등지를 구도와 빛깔 모두 잘 살려냈어요. 그 시대를 살지 않았으니 살려낸 것같다고 해야겠지요.

주연 콘스탄틴 하벤스키의 연기는 뭐 하나 아쉽거나 흠 잡을 데가 없구요. 나탈리야 역의 올가 수툴로바는 연기도 잘하지만 정말 아름다워요. 그런데 배우들의 정보를 구글에서도 쉽게 얻을 수가 없어요. 그 점도 흥미롭지요.

더 많이 쓰고 싶은데, 쓸 재주도 없고 스포도 자제할 겸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히 일감을 권해봅니다. 추천해주신 aurelius님 고맙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urelius
18/12/23 17:33
수정 아이콘
오 고퀄의 후기 감사 드립니다. 제가 쓴 글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후기입니다. 제가 느꼈던 감정선을 모두 담아주셨는데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요. 훌륭한 글 감사 드려요.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합니다 :)
작고슬픈나무
18/12/23 18:03
수정 아이콘
과찬이세요. 다시 감사드립니다.
베라히
18/12/23 17:58
수정 아이콘
콘스탄틴 카벤스키는
영화 원티드에서 조연으로 나오기도 했어요.
(쥐에다가 폭탄을 설치해서 터트리는 능력를 가진 사람으로 나옴)
작고슬픈나무
18/12/23 18:03
수정 아이콘
그렇다더라구요. 원티드를 제가 대충 봐서 그 정보는 적지 않았습니다.
베라히
18/12/23 18:16
수정 아이콘
총알이 휘어져 나가는게 나름 인상이 남아서요
18/12/23 21:05
수정 아이콘
재밌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작고슬픈나무
18/12/23 22:36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이런 드라마도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다가.
10년째도피중
18/12/23 21:41
수정 아이콘
으으 넷플릭스를 가입해야만 하는가. 좋은 볼거리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고슬픈나무
18/12/23 22:37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넷플릭스 앤 칠도 가능하시면 더욱 좋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9468 [일반]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하는 법 [29] 고통은없나9052 18/12/24 9052 5
79467 [일반] 자동차 브레이크 결함 관련 기사 [6] 로켓6762 18/12/24 6762 0
79466 [일반] 남초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번지수를 잘못찾았습니다. [121] Waldstein16701 18/12/24 16701 17
79465 [일반] [스포] 아쿠아맨 보고 쓰는 포르노 이야기 [22] 조말론11123 18/12/24 11123 3
79464 [일반] 국회위원 갑질 기사에 김정호 의원 해명글을 보셨으니 이제 직원 해명글도 보시지요. [197] 자유16041 18/12/24 16041 31
79463 [일반] BMW 차량결함 은폐, 축소, 늑장리콜 [50] 사업드래군7984 18/12/24 7984 0
79462 [일반] 크리스마스 이브, 옛 여자친구 [57] 글곰9021 18/12/24 9021 17
79461 [일반] 영화 스윙키즈 후기 (스포일러 있음.) [9] 아타락시아17180 18/12/24 7180 4
79460 [일반] 사실 미래가 되어 교육이 크게 바뀌지 않는한 성별성적문제가 앞으로도 달라지진 않을겁니다. [13] SKKS6109 18/12/24 6109 1
79459 [일반] 쿠팡과 데브시스터즈에 대한 단상 [36] 제너럴뱀프10799 18/12/24 10799 8
79458 [일반] 인터넷 무료 포르노가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69] yisiot17755 18/12/24 17755 8
79457 [일반] 내가 베이징대 졸업생보다 많이 버는 이유가 멀까 [31] 삭제됨10140 18/12/24 10140 2
79456 [일반] 유시민의 롤, 축구 발언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꼰대의 편견인가? [243] chilling22984 18/12/24 22984 16
79455 [일반] 투자로 돈버는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하여 [42] 주본좌11644 18/12/23 11644 6
79454 [일반] 신재생발전의 필수부품(?)인 ESS에서 올해만 16번의 화재가 났답니다. [21] 홍승식8353 18/12/23 8353 2
79453 [일반] 학생부 종합전형이 굉장한 파급력이 갖게 된 이유 [53] 아유8643 18/12/23 8643 9
79452 [일반] [단상] 미국 이후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 [55] aurelius10992 18/12/23 10992 17
79451 [일반] 나의 코인투자기(코인 아님) [7] minyuhee6896 18/12/23 6896 0
79450 [일반] 20대 남자는 민주당을 버리고 자유당으로 갔는가 (갤럽 조사를 중심으로) [326] 홍승식19790 18/12/23 19790 11
79449 [일반] [넷플릭스] '트로츠키' 감상한 소감을 저도 올려봅니다. [9] 작고슬픈나무9305 18/12/23 9305 8
79448 [일반] 결국 유치원 3법의 통과가 무산되었습니다. [168] 음냐리13884 18/12/23 13884 13
79447 [일반] 후지산에 올라가 봅시다 (사진 다량) [10] 봄바람은살랑살랑6247 18/12/23 6247 8
79446 [일반] 음주운전자 정치인의 뻔뻔함 [26] 삭제됨9587 18/12/23 9587 1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