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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30 02:24:3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 중국 송나라의 수도 개봉의 모습들


...동경(개봉)의 술집 문 앞에는 모두 색이 있는 비단으로 장식한 구조문인 환문이 있었다. 임점(任店)이라는 가게만 이와 달라 문을 들어서면 160m 정도의 쭉 뻗은 도랑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 있는 마당에는 양쪽으로 주랑이 나 있었는데, 그 주랑은 모두 쪽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밤이 되면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아래위를 비추고, 화려하게 화장한 기녀 수백 명이 주랑(主廊)의 기둥 앞에 모여 술꾼들이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자면 마치 신선이 된듯 하였다.




....풍악루는 다섯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건물들은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각각 '공중에 걸린 다리' 와 난간으로 이어져 어둡고 밝은 것이 조화를 이루었다. 그 외에 주렴과 수놓은 액자가 있고, 등촉도 휘황찬란했다. 신장개업을 하면 처음 며칠은 제일 먼저 온 사람들에게 상품을 주었다. 그러나 이틀 정도가 지나면 더 이상 이런 경품을 주지 않았다.




원소절 밤에는 죽 늘어선 지붕의 기와등과 기와 고랑 하나하나에 연등을 달아놓았다. 




... 대부분의 술집에서는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춥거나 덥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영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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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쪽방의 모습






 일반적으로 술집에서 안주를 파는 이들을 일러 다빈박사, 혹은 양주박사라고 불렀다. 술집에서 시중드는 어린애를 모두들 '대백' 즉 '아저씨' 라고 불렀다.



 또 길거리에는 허리에 청화포 수건을 매고, 머리에는 높다랗게 머리를 틀어 올리고는 술꾼들에게 탕을 올리고 술을 권하는 부인들이 있었는데, 시정 사람들이 '준조' 즉 '술지게미 데워주는 여자' 라고 불렀다.



 또 술집에 들어가 부잣집 자재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면 가까이 가서 조심스럽게 대접하면서 물건도 사 오고, 기녀도 불러주고, 돈이나 물건을 가져오거나 보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불러 한한, 즉 '할 일 없는 사내들' 이라고 하였다.



 또 앞에 와서 탕을 바꾸고 술을 권하며 노래를 하거나, 간식이나 향수 등을 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손님들의 술자리가 파하면 잔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을 일러 '시파' 라 하였다.



 또 못생긴 기녀들은 부르지 않아도 술자리에 스스로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들이 오면 손님들은 잔돈이나 하찮은 물건을 쥐어줘서 가게 하였다.


 
 또 약이나 과일, 무 등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술꾼들이 사거나 말거나 막무가내로 나눠주고는 돈을 주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를 '살잠' 즉 '삽시간에 뿌리기' 라고 불렀다. 이런 일들은 술집마다 모두 있었다.


 오직 주교 탄장가와 유락장가라는 술집만이 앞에서 말한 사람들을 모두 들이지 않고, 안주도 팔지 않았고, 단지 절여놓은 고급 채소만을 안주로 주고 좋은 술만을 팔았다.





 백미경, 두갱, 신법암자갱, 삼취갱, 이색요자, 하심, 계심, 훈포 등의 걸쭉한 스프 종류들,



 선소분옥기자, 군선갱, 가하돈, 백설제, 화궐어, 가원어, 결명두자, 결명탕제, 육초탁태천장, 사어양숙, 자소어, 가합이, 백육협면자, 용할육, 호병, 탕골두, 유취양, 돈양, 요청양, 각가요자, 아압배증, 여지요자, 환원요자, 소억자, 입로세향연화압첨, 주적두현, 허즙수사양두, 입로양, 양두첨, 아압첨, 계첨, 반토, 초토, 총발토, 가야호, 금사두갱, 석두갱, 가적장, 전암자, 생초폐, 초합이, 초해, 설해, 세수해 등의 종류가 있었다.



 이런 음식들은 아무때나 주문을 해도 바로 나왔다. 이 중 한가지라도 빠지면 안되었다. 혹여 다른 방식으로 안주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해도, 그 즉시 만들어 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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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의 거리 식당들





 또 조그만 소반에 건과류를 담아 와서 파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볶은 은행, 밤, 하북아리, 배조각, 말린 배, 이육, 교조, 조권, 이권, 도권, 호두 속살, 아조, 해홍, 가경자, 능금선, 오리, 이자선, 앵두전, 서경우리, 부리, 감당리, 봉서리, 진부탁리, 하음석류, 하양사자, 사조, 사원온발, 회마의 포도, 서천유당사자, 당상봉아, 감람, 온감, 면정, 금귤, 용안, 여지, 소 지방의 백우, 사탕수수, 녹리, 말린 능금, 지두건, 말린 파초, 인면자, 파람자, 진자, 비자, 하구 등의 종류가 있어 내놓았다.




 여기에 설탕졸임류와 향신료와 과일, 관자당매, 시고아, 향악소원아, 소랍차, 봉사원 등의 종류가 다 있었다.




 술집에서는 또 연양과 갖가지 만두, 저양하포, 소육건포, 옥판자, 파자, 편장 등의 종류를 밖에 내다 팔았다.



 여타 조그마한 주점에서도 지진 생선, 오리, 볶은 닭과 볶은 토끼, 전욱육, 매즙, 선지국, 분갱 같은 종류의 안주를 팔았다. 가격은 1인분에 15전 수준에 불과했다.



 술집들은 모두 주랑에 지붕이 있어 햇빛을 가려주었고, 늘어선 작은 방들에는 들창이 있었고, 들창 밖에 꽃과 대나무를 심었다. 각 방 옆에는 주렴과 커튼이 걸려 있고, 기녀를 불러 노래를 시키고 같이 웃고 즐겼는데 모든 것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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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옆에서 물건 늘어놓고 앉아서 파는 사람들과 지나가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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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까지 심어둔 2층에서 느긋하게 술 한잔 걸치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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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견고하게 만든 인공 돌다리 부근에 늘어진 노점들





...거주지는 가로와 세로로 만 단위의 수를 세어야 할 정도로 많아 끝을 알 수가 없다. 곳곳마다 대문이 몰려 있고, 각각의 다방과 주점, 기예를 하는 사람들의 공연장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시내에서 장사하는 집들은 왕왕 거리의 점포에서 음식을 사서 먹고, 집에서는 해먹지 않는다.



야시장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 까지 되어서야 끝났다가, 고작 새벽 3시에서 5시도 안 되어서 다시 개장을 하였고, 번화한 곳에서는 아예 하루 종일 영업을 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방의 제일 외지고 조용한 곳에서도 야시장이 섰는데, 초산함, 저이호병, 화채병, 환아, 야호육, 과목교갱, 관장, 향당과자 같은 종류를 팔았다.



겨울에 눈보라가 치고, 추적추적 비가 내려도 야시장은 열렸다.



야시장에서는 접자, 강시, 말장, 홍사, 수정회, 전간장, 대합조개, 게, 호두, 택주당, 기두, 아리, 석류, 사자, 온발, 인절미, 단자, 염시탕 같은 종류들을 팔았다. 



밤 11시가 넘어서도 병에 차를 담아서 파를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개 공적이거나 사적인 일 떄문에 업무를 본 사람들이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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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에 포장마차 스러운 노점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인력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시종 거느리고 나서는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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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전에 앉아서 밥 먹는 사람들, 다리의 노점상들, 지나가는 사람들과 다리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매일 새벽 3시에서 5시 정도가 되면 각 사원의 행자들이 목탁을 치면서 각 문을 돌아 새벽을 알렸는데, 이것도 각자의 구역이 있었다. 이 행자들은 낮에는 탁발을 하였다. 아침에 시장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이때 각 성문, 다리, 거리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열었는데 예를 들어 호갱점 같은 곳은 문 앞에 조그만 아이 하나가 앉아 "요골두!" 즉 "뼈다귀도 풍성하게 해드립니다!" 하고 외쳐 되었다.



 간간이 관폐 및 허파 볶음도 팔았다. 주점들은 대게 등불을 밝히고 팔았는데, 술값은 일인분에 20문 밖에 되지 않고, 게다가 죽과 간단한 먹을거리도 주었다. 또 가끔 얼굴 씻는 물과 전점탕차약을 파는 이도 있었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팔았다.



 돼지와 양을 도살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돼지와 양을 짊어지거나 수레에 싣고 시장에 왔는데, 한번 움직였다 하면 백 단위의 수였다.



 과일 역시 주작문 밖과 주교 서쪽에 집중하여 모여 있었는데, 이곳을 과자향이라고 불렀다.



 종이와 그림도 행상들이 그 지역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판매하였다.



 밀가루 국수를 파는데 9.5kg 정도를 포대 하나에 달아 주면서 '일완' 이라고 하고, 혹은 28~47kg 정도를 일완이라 하기도 했다. 태평거나 나귀에 실고 성 밖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따가 성안으로 들어와 팔았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또 어가 주교에서 황궁 남쪽에까지 일찍부터 약과 음식을 파는 이들도 있었는데, 다양하게 물건을 파는 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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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빨래를 널어놓은 아낙들, 물 길어가는 사람들. 배를 타고 수로를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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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사의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길거리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 만약 말을 기른다면 두 사람이 날마다 풀을 썰어줄 것이다.


 개를 기른다면 맥아당 찌거기를 공급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기른다면 고양이밥과 작은 물고리를 공급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뚫린 곳이 있다면 때워주고, 구리거울 등을 닦아주고, 통의 테를 고치고, 일상용품을 수리하고, 신발을 손보고, 허리띠를 광내고, 모자를 수리하며, 부녀자들이 쓰는 각관을 고쳐주는 사람들도 따로 있다.



 매일 향과 인쇄물을 공급해주는 고정적인 점포가 있어, 일반 집에 붙이는 편액과 계절마다 불상 등을 인쇄해 제공하였다.



 사람들에게 물을 길어주는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구역이 있었다. 



 철을 하고, 비녀와 고리를 만들고, 큰 도끼로 장작을 패고, 부채 손잡이를 갈고, 향료를 섞어 만든 석탄 덩어리를 공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름에는 양탄자를 빨고, 우물 청소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눈앞에 있던 것처럼 빨리 나타났다.



 군대에서 예인들을 모아 한가한 때 군악대의 연주를 벌이면 마을의 어린이나 부인네들이 구경을 오기도 했다. 이때 그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매일매일 집이나 궁원 문 앞에 직접 방문하여 양고기, 양머리, 요자, 백장, 메추라기, 토끼, 생선, 새우, 털 뽑은 닭과 오리, 대합조개, 게, 잡욱, 향악과자 등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관소, 영말, 두면, 의복, 일상적으로 쓰이는 철제 그릇, 옷상자, 자기 같은 것등을 다양하게 팔았다.



 또 위에 말한 물건들을 도박을 이용해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이것을 감택, 즉 '집 살피기'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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벛꽃 나무 아래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다리 위에서 턱을 괴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





...길거리나 다리 근처 시장에는 모두 고기 파는 테이블이 있었다. 여기서는 네다섯명이 늘어서서 칼을 놀렸다. 날고기와 익은 고기 모두 손님이 요구만 하면 큰 덩어리로 턱턱 썰어주기도 하고, 넙적한 편으로 썰어주기도 하며, 가늘게 잘라주기도 하고 칼로 으깨기도 하였다. 밤이 되면 고기 절임이나 끓는 물에 바로 익힌 고기를 파는 시장이 섰다.





 일반적으로 떡집은 유병점, 그리고 호병점이 있다.



 유병점에서는 증병과 당병을 팔았는데 합에 담아 팔기도 하고 쟁반에 담기도 하였다. 호병점의 경우는 테이블마다 네다섯명이 있어 밀가루를 방망이로 밀어 잘라내고, 모양을 찎은 뒤 화로에 넣었따. 매일 새벽부터 무늬를 찍어내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무성왕묘 앞 해주장가와 황건언 앞의 정가 네 가게가 제일 번성했는데 그 집들은 화로가 50여개나 있었다.




 
 활어를 파는 가게에서는 얕고 그리 크지 않는 나무로 만든 통을 사용하였는데, 생선을 버들잎에 꿰어서 통 속의 맑은 물에 담가놓았거나, 혹은 거리에 나가 팔기도 하였다.



 매일 아침 신정문, 서수문, 만승문을 통해 이 같은 활어들이 수천 통씩 들어왔다.



 겨울에는 황하 곳곳으로부터 다른 고장의 생선들이 들어왔는데, 이를 '거어' 즉 '수레타고 온 물고기' 라고 하였는데, 1근에 100문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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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흥정하면서 신발을 한번 맞는지 신어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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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몰아 무거운 짐을 싣은 수레를 옮기는 사람들과 그네 타고 노는 여자들. 그리고 도사의 이야기를 모여서 듣는 사람들.






..다양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깔끔한 그릇에 음식을 담았고, 수레나 어깨에 매는 기구들 역시 희한하면서도 솜씨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하였다.



 요리의 맛이나 갖은 조미를 한국 종류는 대충대충할 생각도 못하였다.



 약을 팔고, 팔괘를 이용해 점을 치는 사람들은 모두 모자와 띠를 갖추었다. 



 심지어 거지까지도 나름의 법식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약간이라도 나태하다 여겨지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비, 농사꾼, 공장일 하는 사람, 상인들 직종에 따라 특유의 복장을 갖추었으며 마음대로 이 틀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향 파는 가게에서 향 싸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모를 쓰고 배자를 걸쳤다. 그리고 전당포에서 일하는 사람은 검은색 반팔 적삼인 조삼에 짐승 뿔로 장식을 한 각대를 허리에 두르고, 모자는 쓰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옷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느 직종에 종사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술을 제조하는 술집인 정점의 경우 각 점들에서 네댓 번씩이나 와서 술을 사 가지고 가도 4,5백량이나 하는 은술병에 술을 담아서 빌려줬다.



 심지어 가난한 집에서 와서 술을 달라고하여도 은술병에 술을 담아 보내고, 밤새 술을 마시게 되면 이 은술병들은 다음날 수거해왔다. 여타 기생집에서 술을 보내달라고 이야기만 해도 앞의 상황처럼 은술병에 술을 담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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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통해 끝없이 들어오는 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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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가다가 줄타기하며 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모여서 구경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 걸치고 있는 사람들.







 글의 원문은 동경몽화록(당연하지만 원문에 킬로미터니 하는 식으로 나오는건 아니고 보기 편하게 의역된 부분입니다), 그림은 청명상하도 입니다. 




 동경몽화록은 남송 시절 개봉의 옛 모습을 추억한 맹원로라는 사람의 작성하여 1147년에 발간되었고, 청명상하도는 북송 시대의 화가였던 장택단이 그린 그림으로 모두 당대 사람이 당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니, 당대 모습에 대한 정확도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높습니다.






온갖 산해진미는 비교적 싼 가격에 넘쳐나고 각종 서비스도 필요하면 넘쳐나고 심지어 먹고 싶은거 배달 서비스도 되고 애완동물 식사 공급해주는 사람도 있고



밤새도록 술 퍼먹다 떡이 되서 나오면 앞에서는 해장국 팔고 있고 해장국 한잔 하고 나면 뜨거운 물 가져온 사람이 얼굴 씻는 물이라고 해서 물좀 팔아서 그거에 얼굴 좀 씻고 



갑자기 메모를 해서 보내야 할 일이 생각나서 어디 쓸거 있나 보면 바로 옆에 종이 파는 행상인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사서 쓱쓱 써서 사람 보내서 전달하고 




 술 깨는동안 앉아서 쉬다가 거리를 둘러보니 서역 출신의 이슬람 상인이 신기한 재주를 펼치는걸 와 하고 구경하다가 술 깨고 일어나서



외박했으니 집에 들어가면서 마누라하고 자식들에게 살 군것질거리 과자 좀 몇 개 사서 들어갈 수 있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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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18/11/30 02:41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타임머신 느낌 크
펠릭스30세(무직)
18/11/30 03:00
수정 아이콘
중국이 당시 전세계 GDP의 1/2을 차지하던 시절이군요. 심지어 석탄까지 널리 활용되었으니. 인건비가 조금만 비쌌어도 산업혁명이 일어날 기세였는데....

아 X발 몽골.

진짜 로마제국의 오파츠스러움을 생각하면 13세기에 아시아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는데 말이지요.
Cookinie
18/11/30 03:13
수정 아이콘
몽골 UU 타이밍에 머스킷 무시하고 산업화 테크로 쭉 달린 중국의 잘못이라는 게 학계 정설... 읭?
18/11/30 09:26
수정 아이콘
전 좀 다르게 생각하는게
송대에 자본주의 터지고 산업혁명 일어났으면
조선은 영국-아일랜드나 미국-멕시코 관계처럼 직접, 혹은 경제적 식민지가 되었을거 같아요.
아무리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자본주의가 해온게 그런것들이라....
handmade
18/11/30 09:28
수정 아이콘
앵? 산업혁명요? 송대에 경제력이 쩔었다는건 저도 알지만 산업혁명 이야기는 처음인데 진짜인가요?
18/11/30 09:35
수정 아이콘
송대에 석탄을 사용하고 여러 기계장치들이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유물들이 몽골맨과 홍위맨들에게 영영 사라져 버렸죠.
근데 중국은 기계로 할 일을 인민들이 해버리던 나라라 영국이 방직기로 대량생산하던 면직물이 청나라 가내수공업 면직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카서스
18/11/30 09:47
수정 아이콘
일단 영국이 가지고 있는 산업혁명의 배경을 전부 가지고 있긴 했죠.
18/11/30 10:53
수정 아이콘
중국쪽에서 많이 나오는 의견입니다.
학계 주류 의견은 산업혁명은 단순히 석탄을 쓰거나, 생산력이 증대됐다고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송대에 산업혁명은 무리다 정도..
홍승식
18/11/30 10:58
수정 아이콘
몽골 환경 전사가 막지 않았으면 지구는 이미 인간이 살 수 없다는 환경이 되었을 거라구욧!
항즐이
18/11/30 13:54
수정 아이콘
몽골 환경전사 크크큭. 환경주의자의 기마술 맛을 볼테냐
Hastalavista
18/11/30 03:23
수정 아이콘
진시황부터 마오쩌둥까지의 중국 역사 중 송대가 가장 살기 좋은 시대 같아요. 결론은 환경전사가 나쁜놈이다...?
밝음의전설
18/11/30 05:56
수정 아이콘
마치 로마제국같은 느낌이네요
하르피온
18/11/30 07:41
수정 아이콘
포청천이 치안유지 하던 시절
만주변호사
18/11/30 09:32
수정 아이콘
완-------------벽------------
상계동 신선
18/11/30 08:17
수정 아이콘
테이크아웃 차(茶)에 택시 비슷했을 인력거 서비스에 버스킹(?) 공연까지 지금 있는 것들 중 웬만한 것은 다 있네요.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독수리가아니라닭
18/11/30 08:24
수정 아이콘
저런 환경에서 정치를 하니 예술을 사랑하는 명군도 나타나고 하는 거겠죠
신불해
18/11/30 09:27
수정 아이콘
휘종도 평복으로 잠행하고 거리로 놀러 다가서 기생 만나러 다닌...
만주변호사
18/11/30 09:32
수정 아이콘
그런 명군이라면 국방도 튼튼히 잘 했겠죠?
18/11/30 08:28
수정 아이콘
이때는 밤에 촛불 사용했나요?
신불해
18/11/30 09:31
수정 아이콘
등불을 사용했습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일개 주점들 하나하나가 다 등불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서 밤은 물론이고 어스름한 새벽에도 등불을 키고 새벽에 일찍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팔았습니다.
18/11/30 13:43
수정 아이콘
등불은 동물 기름으로 만드는 건가요?
18/11/30 09:22
수정 아이콘
몽골놈이 말아먹은 문명의 기반을 생각하면 정말 갈아마셔도 시원찮죠. 일제보다도 2배 악랄한 놈들이었는데. 그냥 워낙 옛날이라 묻히는 것뿐.
신의와배신
18/11/30 12:26
수정 아이콘
몽골제국의 최초 정복시기의 잔인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직접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그랬습니다.
(고려의 대몽골 항쟁기를 이야기 하신다면 일제보다 가혹한건 인정하는데, 그건 전쟁이었으니까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몽골의 속국이 된 이후에는 고려왕들이 수탈의 직접정범이라서 몽골탓만 하기도 어렵죠.)
원제국 때로 접어들어 대도시의 풍경은 본문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중국의 문물과 아랍권 나아가 서양의 문물이 빈번하게 교류된 덕분에 더 융성했다고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몽골의 지배는 동서양교류의 물꼬를 열었고 그결과 근대화의 길이 뚫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동서양의 역사학자들이 뽑은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위인중 가장 중요한 인물 순위에서 징키즈칸이 압도적 1위를 하는 이유도 그러한 평가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문명의 기반을 말아먹은 자는 주원장입니다. 교류는 발전의 어머니이고 쇄국은 망국의 첩경입니다.
명의 중화사상에 기초한 세계질서 정립으로 중국이 몰락한 것이지요.
미키맨틀
18/11/30 09:34
수정 아이콘
중국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가 예외적인 시기 같아요.
물속에잠긴용
18/11/30 09:35
수정 아이콘
타임머신 타고 먼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그럴거면서폿왜함
18/11/30 09:41
수정 아이콘
문화대혁명 없었으면 더 대단한 자료가 남았겠네요
18/11/30 10:25
수정 아이콘
경제력으로 국방을 카바했는데 외교를 말아먹어서....
페스티
18/11/30 10:28
수정 아이콘
불야성...
도뿔이
18/11/30 10:30
수정 아이콘
남경이 작살난거면 몰라도 개봉의 영화가 끝난건
몽골이랑 관련이 1도 없죠
개봉이 금에게 함락당한게 1126년인데 칭키스칸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그 대단한 경제력과는 별개로 나름 괜찮은 군주였다는 태종, 인종시절에도 요, 서하에 먼저 공격을 들어가고도 실패해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고 금에게 나라 반토막나기 전에도 이미 여기에 바치는 조공이 슬슬 나라 재정에 압박을 주고 있었습니다 방랍같은 대규모 반란도 일어났고 수호전의 배경도 이 시절이고 삼협오의의 포청천은 허구언날 탐관오리를 모가지 댕강하던 시절이죠
cadenza79
18/11/30 16:50
수정 아이콘
좋은 댓글이네요.

근데 정강의 변 이후에도 개봉은 꽤 큰 도시 아니었나요?
금 말기 몽골의 압박을 받자 연경에서 개봉으로 천도했었고, 결국 거기서 금이 망했으니까요.
도뿔이
18/11/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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컸긴 했을텐데 본문의 모습은 아니었을겁니다
대신 남경이 엄청 번화했죠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다는게 북송이 아니라 남송 시절일겁니다
복슬이남친동동이
18/11/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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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좋은 글 잘 읽습니다. 근데 송나라의 경제력이란게, 뭐 커브를 타면 계속 더 흥성하기야 하겠지만 처음 모멘텀이 돼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BERSERK_KHAN
18/11/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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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 시절 이뤄진 양쯔강 이남 개발이죠. 수양제가 만든 대운하가 나라를 말아먹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남으로의 물류와 인구이동을 촉진시키며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죠. 당 현종 시기에 이르러선 전통적인 중국의 중심 화북일대와 함께 중국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양대 축이었습니다. 안사의 난으로 화북 일대가 초토화되고는 실질적으로 중국을 책임지는 지역이었고, 송나라 건국 이후 만개하여 항저우와 수저우가 풍년이면 천하가 족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할 만큼 풍요로운 땅이 되죠. 남송이 몽골에 40년 간 항전한 까닭도 강남 일대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뿜어내는 엄청난 경제력이 몽골의 침공도 견딜만큼 대단했다는 반증이죠.
복슬이남친동동이
18/11/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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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양쯔강 이남이면 묘하게 현대중국이 쌍창사업 한답시고 밀어주는 지역과도 겹치는군요..
말다했죠
18/11/3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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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개발이 끝나서 쌀생산력이 폭증한 거겠죠
BERSERK_KHAN
18/11/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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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서운 건 송대는 양쯔강 하류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정도고, 시간이 지날수록 중상류로 농업지대가 이동하게 됩니다. 하류 일대는 상품 작물 재배로의 전환을 이뤄냈고 송대에도, 청대에도 여전히 중국의 경제 특구 노릇을 했죠.
말다했죠
18/11/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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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블레스 양쯔강이군요..
18/11/3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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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이래서 개봉박두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군요~!(농담)
루크레티아
18/11/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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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는 심지어 기후도 지금보다 따뜻한 편이라 온갖 과일, 화초 재배도 편했죠. 진짜 5호 16국으로 그렇게 개판이었는데도 태조, 태종 2대만 안정시키니 폭발하는 생산력을 보면 중국의 힘은 무시무시할 따름입니다. 망할 문혁만 아니었어도 저런 묘사자료 10배는 더 있었을텐데..
Lord of Cinder
18/11/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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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전성기의 개봉이나 동로마 전성기의 콘스탄티노플은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서 보고 싶은 곳들입니다.
천년 전에 저렇게 상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몰린 도시들이 있었다는 게...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융성한 옛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지...
칼라미티
18/12/01 05:00
수정 아이콘
맞아요. 진짜 어떻게든 가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흑 ;_;
여행의기술
18/12/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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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년 정도 지나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느낌으로 VR로 탐험할 수 있을꺼라 생각됩니다. 건강과 돈을 챙기며 존버 하세요.
칙칙폭폭
18/11/3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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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발좀 원근법
18/11/30 18:32
수정 아이콘
저 당시 밤거리는 정말 화려했을 거 같네요.

그림에서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게 한잔 걸치고 싶어지네요 크크
18/12/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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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산하도면 저 모든게 한 장이었던가???대학교 수업시간 때 봤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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