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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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와 조식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졌지만, 적장자라는 명분이 있었던 조비에게 중신들의 지지가 몰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본래 적장자가 아버지를 계승한다는 개념 자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적용되었습니다.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권력과 재산의 분산을 막고 후계자 경쟁에 따른 내부의 충돌을 방지한다는 압도적인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식이 조비와 경쟁할 수 있었던 건 당대의 최고 권력자이자 아버지인 조조가 그를 총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조식도 나름대로 자신의 세력이라 할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1부에서 언급한 양수는 조식보다 열일곱 살 연상으로 당대의 명문가인 양씨 집안에서도 특히 명성이 높은 인재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심복이라 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 숫제 조식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 양수를 비롯하여 정의와 정이 형제, 순운 등이 조식의 편에 선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정의와 정이 형제는 조조의 친구였던 정충의 아들로 당대에 명성을 날렸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비록 지위는 높지 않았지만 조식처럼 조조의 총애를 듬뿍 받았습니다. 그리고 순운은 바로 그 순욱의 아들이며 동시에 조조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조비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이른바 사우(四友)가 그들이었지요. 사마의를 비롯하여 진군, 오질, 주삭 네 명은 조비가 특히 신뢰한 이들이었습니다. 사마의는 명문가 출신의 뛰어난 인물로 조조가 몇 번이나 거듭하여 초빙할 정도의 인재였습니다. 진군 역시 명문가에서 태어나 본래 유비 휘하에 있다 벼슬을 그만두었고, 훗날 조조에게 출사하였는데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습니다. 오질은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조비의 꾀주머니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삭은 깡말랐다는 것 외에는 기록이 별로 없네요. 그 외에도 하후연의 조카인 하후상 역시 어려서부터 조비의 친구이자
심복이었습니다.
이 두 세력의 싸움은 음모와 암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죽은 친구 정충의 아들인 정의가 벼슬길에 올랐다는 말을 들은 조조는 한 번 만나본 적도 없었던 그에게 대뜸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으려 합니다. 물론 정의가 워낙 재능으로 명성이 높았으니 그 점도 감안했겠지요. 그래서 조비를 불러다 묻습니다. “네 여동생 있잖니. 정의에게 시집보내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그런데 조비는 대답하죠. “아버지. 원래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를 중요시하잖아요. 근데 정의는 한쪽 눈이 멀었던 말이죠. 아버지 딸이 걔를 좋아할까 모르겠네요. 차라리 하후돈 숙부의 둘째아들 하후무가 잘생겼다는데 거기 시집보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조조가 들어보니 그럴듯한 말인지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정의를 승상부의 관리로 삼아 데려온 후 대면하여 의논을 해 보고는 이렇게 말하죠. “대단한 선비로다. 애꾸가 아니라 두 눈이 다 멀었더라도 사위로 삼았어야 했다. 내 아들놈이 나를 그르쳤구나!”
자. 이 짤막한 일화에서 조비의 행동에는 두 가지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정의가 조조의 사위가 되는 걸 막은 거죠. 동시에 하후무와 그 아버지인 하후돈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훗날 하후돈은 조비의 즉위를 지지하였습니다. 말 한 마디로 적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힘을 키운 셈입니다.
몇 가지 일화를 더 들어보도록 할까요. 양수가 조식의 편에 서자 위협을 느낀 조비는 조가현의 현장으로 있던 자신의
심복 오질을 불러들여 상의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한 지역을 담당한 관리가 멋대로 부임지를 떠나는 건 큰 잘못이지요. 그래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큰 상자에다 사람을 집어넣은 후 그걸 수레에 실어서 궁 안으로 들여옵니다. 하지만 양수가 그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조조에게 고자질을 합니다. 조비가 그 일을 알고 무척 걱정하는데 오질이 태연히 안심시키지요. “뭘 걱정하십니까? 내일 똑같은 방식으로 수레를 내보내는데 다만 상자 안에 비단을 가득 넣어두십시오. 누군가 검사하더라도 안에는 비단뿐이니 오히려 저들이 거짓말한 꼴이 될 것입니다.” 과연 다음날 조조는 그 수레를 검사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안에는 비단밖에 없었지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조조가 위왕이었던 시절, 조비와 조식을 시험해보려고 성문 밖을 나갔다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궁을 지키는 사람에게 가만히 일러서 그 누구도 내보내지 말라고 하죠. 먼저 조비가 갔는데 뜻밖에도 성문을 지키는 자들이 통과시켜 주지 않습니다. 조비는 별 수 없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그 일을 전해들은 양수가 조식에게 귀띔해 줍니다. 조식이 말하죠. “그럼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양수가 대답합니다. “왕명을 받들고 나가는 길입니다. 누군가 가로막는다면 왕명을 거역한 것이니 응당 베어버리셔야 합니다.” 조식은 그 말대로 하여 조조에게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또 양수는 조식에게 예상답안지를 만들어 줍니다. 조조가 물어볼 만한 일에 대해 우수답안을 미리 만들어서 조식에게 달달 외우도록 한 것인데 말하자면 커닝페이퍼인 셈입니다. 그리하여 조조가 무슨 질문을 할 때마다 조식이 즉석에서 바로바로 대답하니 조조가 감탄하게 됩니다.
오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조가 전쟁에 나갈 때마다 조비와 조식은 앞다투어 멋진 시를 지어 아버지를 전송했죠. 그런데 오질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시를 잘 지어도 조식에게는 이길 수 없겠단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시 짓지 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며 우세요.” 물론 이건 아주 적확한 조언이었습니다. 조조는 내심 조비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조비와 조식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런데 앞뒤의 상황을 살펴보면 누가 조조의 총애를 받느냐, 혹은 누가 밉보이느냐가 대결의 핵심입니다. 즉 후계자 결정은 결국 조조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걸 두 아들 모두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반면 앞서도 말했다시피 조정 중신들 대부분은 조비를 지지했습니다. 종요, 최염, 모개, 환계 등 조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사서에 명확하게 기록된 이들만 꼽아 보아도 그 면면이 대단하지요. 더군다나 최염은 조카딸와 조식이 결혼하여 조식의 처삼촌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명분을 들어 조비를 지지했습니다. 마치 시소 같은 모양입니다. 한쪽에는 명분론과 조정 중신들의 지지가 있고, 반대쪽에는 인물론과 조조의 총애가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조식은 능력으로도 인품으로도 모두 조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16년. 조조가 위왕(魏王)이 된 이후로 일이 묘하게 돌아갑니다. 최염이 조조의 위왕 즉위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자살을 강요받았고, 뒤이어 모개 역시 조조를 비방했다는 고발을 받아 간신히 목숨은 구했지만 직위를 박탈당합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인재를 선발하는 임무를 담당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인재 선발 제도라는 건 결국 입소문과 개인의 안목에 의존한 것이었기에 최염과 모개의 권한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조비의 지지자였던 두 사람이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건 조식에게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기록에 따르면 정의가 모개를 싫어하여 참소했다고도 하죠.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의 죽음을 조비-조식의 후계자 다툼과 연계하여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하튼 조조가 왕위에까지 오르자 더 이상은 후계자 지정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조조의 나이가 벌써 예순하고도 둘이었거든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태자를 정해야 했습니다. 이 때 조비의 나이가 서른, 조식이 스물다섯이었습니다. 모두의 이목이 조조의 선택에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대한 시점에서 조식은 돌이킬 수 없는 거한 사고를 치고 맙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