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선거를 치른 적 있었지만 대선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텔레비전이라도 켜서 보고 싶었지만 운전 담당 주임님은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맥주라도 한 캔 까면 잠이 올까 싶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열기도 전에 경찰차가 보여 왠지 주눅 들었지만 주민센터 바로 옆 편의점으로 가 맥주 한 캔을 사왔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내일 참관인에게 지급할 돈과 봉사활동 학생들의 명단, 점심 식사를 예약한 식당 위치를 다시 살폈습니다.

선거 당일 새벽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전에 치렀던 급식 선거... 와 지선, 총선과는 투표율이 달랐으니까요. 단 한 번도 앉을 새 없이 투표가 마감됐습니다. 계장님과 함께 투표함을 들고 경찰차에 탄 뒤 개표소로 향했습니다. 이미 탑승해 있던 경찰들이 몇몇 보였고 우리는 모두 라디오에서 나오는 예상 결과에 집중했습니다.

모두 낙담했지만 어느정도는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저와 계장님은 물론 경찰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습니다. 개표소에 도착하고 빠르게 투표함을 반납하기 위해 이빨로 테이프를 끊는 와중에도 몇몇 동기들을 만나 즉석에서 술약속을 잡았습니다. 투표소에서 함께 일했던 계장님과 선배 직원 몇몇은 택시를 타고 저와 주민센터로 향했습니다. 택시 기사님은 이제야 서민들도 잘 살아볼 수 있겠다며 환호하셨고 전까지 남닥해 있던 계장님은 기사님 말을 잘도 받아주셨습니다. 저는 공무원 생활 짬밥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주민센터에 돌아오니 동장님이 회식을 제안하셨고 다들 아무렇지 않게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크게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침착하게 술을 마시며 일상적인 공무원의 회식 자리를 가졌습니다.

몇몇 동기들과 술집에 모였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모 대학 학생회 간부 출신인 한 형님은 청승맞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술을 좋아했던 저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진탕 마시고 답답한 속내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한 뒤 투표소로 쓰였던 초등학교 과학실을 청소하러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