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글이네요.
한동안 갑자기 사라진 글쓰기 버튼, 댓글쓰기에 당황했었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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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찮게 낡은 서랍 속에서 찾아낸 것은 달콤했던, 쓰라린 편지 한 통이었다.
아기자기하고 너덜너덜한 편지봉투 앞은 귀여운 곰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몇 번이고 붙였다 뗐었기 때문인지 반쯤 찌그러져 지금은 귀여운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편지 구석엔 정갈한 글씨체로 라는 문구가 씌여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하고, 나지막이 작은 탄성을 터뜨려버렸다.
가슴 한 켠에 희미하게, 어렴풋이 숨겨두었던 추억들이 새벽 이슬처럼 젖어들었다.
미련따위나 특별한 감정이 섞인 되새김질은 아니었다.
좋아했고, 사랑했었다. 함께 기뻐하고, 울었다.
그랬던 내가 있었구나, 그리고 그랬던 그녀가 있었구나.
꼬깃한 편지지를 펼치니 가지런한 글씨가 깜지마냥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글귀 속으로 빠져들었다.
<2>
[그거 알아? 오빠가 준 꽃 아직도 멀쩡하다?]
그랬었지. 너는 무척이나 예쁜 아이였다. 커다란 무언가가 아닌, 작고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웃을 줄 아는 여자였다.
내게 모자르고, 없었던 것은 철뿐 만이 아니었을 시절.
마음은 커다란 꽃다발이었지만, 형편이 좋지 못했던 나는 네게 고작 꽃 한송이를 선물했었다.
너는 다소 초라한 선물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쁘다며 손뼉을 치고, 꽃내음을 음미했었다.
순진한 마음에 나는 내가 준 꽃보다 꽃내음을 맡던 니가 더 살아있는 꽃처럼 느껴졌었다.
기뻐해주는 모습만으로도 가슴 안쪽부터 울컥한 포만감이 차올랐다.
그 날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간 너는 꽃줄기를 자르고 얇은 꽃병에 물을 담았다.
그래, 이 편지는 얇은 꽃병에 담긴 꽃 사진을 받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받았던 선물이었다.
<3>
[내가 투정부리는 만큼 많이 배려해줘서 고마워. 오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것은 항상 나였다.
이따금씩 모진 말로 너를 멍들게끔 했던 나를 너는 오히려 이해해줬었지.
아프고 힘들다는 핑계로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볼멘, 서운한 투정을 받고나서야 네 이야기를 들어주니, 너는 펑펑 울었다.
별 것도 아니었는데.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울음을 그치고 째릿하던 표정에 나는 제법 식은 땀을 흘렸었다.
그렇게 울고도 금새 저녁 식사에 토라진 마음이 풀어지는 너는 나에게 마치 산들바람 같았었다.
<4>
[다음에는 놀이공원도 같이 가자.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타는거야. 같이 타 줄거지?]
사실 무서운 놀이기구는 딱 질색이었다.
그래도 무서운 놀이기구는 잘 못 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꼭 같이 가자고 조르는 니 눈빛이 너무 좋아서, 그 눈빛을 보고 있으면 왠지 나도 청룡열차 쯤은 거뜬히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놀이기구 순서를 기다리며, 바싹 마음을 졸였던 걸 너는 알았을까?
어쩌면 알았을 지 모른다. 너는 너보다 나를 더 신경써주곤 했으니까.
어쩌면 몰랐을 지도 모르지. 평소엔 섬세했지만, 흥이 나곤하면 나도 차마 말릴 수가 없었으니까.
내 마음을 네가 알고 모르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바싹 긴장하다가도 포개어 네 손을 잡고 나면, 나도 모를 용기가 우습게도 솟아났었으니까.
<5>
[도시락 싸서 한강도 가자. 내가 열심히 만들어볼게!]
날 좋은 날, 한강 둔치에서 너는 짠하고,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너는 꽤 요리를 못했었지.
간이 고루 베지않아, 어디는 짜고 어딘가는 싱거운 계란말이는 신선하고 풋풋했다.
그래도 모양만큼은 그럴 듯 했지.
맛이 없다고, 반찬투정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
도시락 만드느라 고생한 건 너인데, 맛있다는 얘길 할때마다 함박 웃음 짓는 너를 보니 내 마음이 더 뿌듯했었다.
내가 요리를 했다면, 맛이 없었어도 너도 나처럼 맛있게 먹어주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거야. 우린 이런 면에서 무척 닮았었으니까.
<6>
[오빠가 정말정말 좋으니까. 꼭 나랑 오래오래 사귀어주세요.]
편지 끝 부분쯤 나오는 문구는 어떤 부분보다 가장 쓰라렸다.
추억에 젖어들면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너인데.
어쩌다가 너는 어렴풋한 추억으로 내게 남은걸까.
사소한 다툼, 쌓이는 서운함에 꾹꾹 화를 눌러담던 네가 결국 터져버린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뚝뚝 눈물을 흘려대던 너를 나는 어찌대해야할 지 잘 몰랐고, 어렸었다.
많이 모자랐다. 숫자로 정해진 나이가 많아 너보다 어른스러운 줄 알았던 나는 우스운 어린애였다.
우는 너를 보는 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는 너를 보는 게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나는 자존심을 세웠었다.
얼마가지 않아 후회하며, 너를 붙잡았던 나인데 그 때에도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네 안의 생채기를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마주하지 못 했는지 몰라.
바라는 것 없이 주는 사랑에 익숙해진 나는 기고만장 했지.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뒤늦은 후회와 회한으로 돌이켜본 너와의 날들은 그야말로 눈부셨어.
너는 내게 사랑을 받는 법을 가르쳐주고, 어떻게 사랑해야하는 지 알려줬어.
어떻게 이별해야하는 지도.
<7>
편지를 완독하고 나서는 미련도 사랑도 아닌 착잡한 뭔가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는 기분이다.
착잡한 그것이 가라앉을 쯤에서야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릴 수가 있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땐 그랬지.
소중한 편지였지만, 버리는 것에 큰 미련은 남아있지 않았다.
편지를 버림과 동시에 마음 속에서 가라앉아가는 착잡한 무엇인가를 훌훌 털어버렸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이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나를.
비겁하지만, 내가 굳이 빌지 않더라도 행복할,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행복을 빈다.
자신감 넘치는, 행복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라,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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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및 의욕 부족으로 미친듯이 치열하게 후회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는 못했는데요. 다 지나갑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 은 솔직히 너무 듣기 좋은 이야기고요. 그냥저냥 넘길만해요. 그렇게 또 새로운 사람 만나서 시작하고 결혼하고 하는거지요. 저는 김현식 - 사랑사랑사랑 들으면서 많이 도움됐습니다.
(수정됨) 2년 만난 여친이 줬던 편지들 아직 못버렸어요. 작년 3월에 헤어졌으니 시간이 좀 지나긴했는데 차마 없앨수가 없었어요. 헤어지고 나서는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 이후에 1달 남짓 연애를 하긴 했는데 그냥 짧은 인연으로 끝나버렸고 오히려 그 이후에 더 많이 생각났어요. 이별 후폭풍이 그 때 제대로 와서 지난 겨울에 많이 싱숭생숭했어요. 지금도 가끔 편지 찾아보긴 하는데 언젠간 저도 그 편지들 버리는 날이 오겠죠. 일곱 번 째 단락 읽는데 마음이 많이 아렸어요. 전 신승훈의 오랜 이별 뒤에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