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JUNG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4/08 00:13:36
Name 치열하게
Subject [일반] [7] 제(祭)
제(祭)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밥을 해주고 떡을 해준다는 것은

모름지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술은 어떠냐



고맙다는 말조차 들을 수가 없다

입맛에 맞는지 알 수도 없다

잔을 부딪칠 수도 없다

그저 빙 돌릴 뿐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원을 들어주는 거 같지도 않다

수저를 옆으로 누이며

하던 대로 따를 뿐이다



그러나 상여의 무거움을 알게 되고

고맙다는 말도

부딪히는 술잔도 무슨 소용이랴



바랬던 가장 큰 원을

스스로 감아버린 사람에게

빌어서 뭐할지냐



열린 문 사이로

바람뿐이던가

눈을 감고

홀로 말을 건다



밥이든 떡이든

쉬운 일이 아니던가

하물며 술은 어떠냐


================================================================


언젠가 제사를 지낼 때 동생들이 저에게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제사 왜 지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예전부터 하던 것이었기에

으레 그러려니 했었지요.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습니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제 또래에서는 제가 가장 높은 출석률을 가지고 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참석해야하는 건가 해서 참석했었던 것 뿐

그 누구보다 나몰라라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참석률은 미약하게나마 부모님 발언권을 높여드리기에 조금의 효도이긴 할 겁니다.)



인생에서 여지껏 장례식장에 두 번만 참석할 만 큼 죽음과 가깝지 않았습니다.

시골 어르신이 돌아가셔도 멀기도 했고 어리기도 해서 전 가지 않았죠.

자라면서 아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제가 참석해야할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번 중 한 번은 정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제 이름을 지어주신 작은 할아버지



그러고보니 저의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들은 정말 예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제 또래는 아예 본 적이 없습니다.(심지어 며느리들과 사위들도요.)

그러니 기억도 없고

추억할만한 것도 없죠.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와서 음식 차려놓고

절을 하라고 하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남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요.



그러던 중

기억이 살아있고,

예뻐해주시고 귀여워해주시던 추억이 있는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느낌이 살짝 달랐습니다.




한편,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TV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아마 남자로 기억하는 데 감옥이었나 아니면 어디 집이 아닌 먼 곳에 살고 있었나

그 남자는 며칠동안 자기 먹을 거 안 먹어가면서 음식을 챙겨놓는 겁니다.

자기도 엄청 힘든 상황이면서 음식을 챙겨서 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 제사였습니다.

초라한 제사상이라도 그 남자는 어머니 제사를 챙겨드리고 싶었던 거지요.
( 그래도 음식은 결국 남으니 크게 손해 본 것은 없겠지요.)

그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요.




결국 제사의 본질이란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기억법'이 아닐까 합니다.

정확히는 기억법 중 하나겠지요.

누군가는 기도를 할테고

누군가는 음식을 차릴테고

누군가는 모여서 이야기를 할테고

진중한 분위기도 있을거고

떠들석한 분위기도 있을거고

다 각자의 기억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사가 형식에만 너무 치우치기도 하고,

제사상 자체를 며느리들만이 준비하는 등의 폐단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속 나무위키 문서 2.3. 가정의 패전 인용

"그런데 여기서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길목에 세워야 할 방어진지를 산 꼭대기에 세우는, 전쟁사상 다시 없을 바보짓을 한다.
부장 왕평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이마저도 무시해버린다."
18/04/08 13:50
수정 아이콘
좋은글인데 댓글이 없는것이 다들 좋은글에 사족이 되는 댓글을 굳이 달고싶지 않았나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치열하게
18/04/08 14:21
수정 아이콘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04/08 14: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치열하게
18/04/08 14:21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8/04/08 14:16
수정 아이콘
<코코>가 생각나네요.
리멤버 미... (왈칵)
치열하게
18/04/08 14:22
수정 아이콘
한편으론 코코에선 죽은 자들의 시선을 볼 수 있었죠. 무슨 진수성찬을 바라겠습니까 그저 잘 살고 날 기억해주는 모습이면 '그거면 됐다'라 하지 않을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28] jjohny=쿠마 25/03/16 16854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301413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5713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58438 4
104142 [일반] 도덕에 대하여 [2] 번개맞은씨앗789 25/05/01 789 2
104141 [일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 착각, 믿음, 이해. 모든 것을 담은. (약스포) aDayInTheLife473 25/05/01 473 2
104140 [일반] 거룩한 밤&썬더볼츠..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스포유) [12] ph1260 25/05/01 1260 1
104139 [일반] K2 북벽 난이도 체감 해보기 [12] Croove2358 25/05/01 2358 1
104138 [일반] 이제 '강의'도 필요 없어지는 걸까요? [13] Quantumwk3332 25/05/01 3332 2
104137 [일반] <썬더볼츠*> - 부연설명 없이도 괜찮은. (노스포) [35] aDayInTheLife3941 25/04/30 3941 4
104136 [일반] 못생길수록 게임 더 많이 한다?…英·中 공동연구 결과 [71] 如是我聞6382 25/04/30 6382 3
104135 [일반] 루리웹에서 '아동 성학대 이미지' 예시가 공개되었습니다. [69] 리부트정상화9084 25/04/30 9084 4
104133 [일반] 이번 SKT 해킹 사건으로 가장 떨고 있을 사람들에 대하여 [38] 깐부10535 25/04/30 10535 0
104132 [일반] eSIM 가입하려다가 망할뻔함. [53] 사업드래군10819 25/04/29 10819 9
104131 [일반] LLM 활용에 대한 간단한 팁과 의견 [7] 번개맞은씨앗5427 25/04/29 5427 5
104130 [일반] 새롭게 알게된 신선한 유튜브 채널 추천 [12] VictoryFood11084 25/04/29 11084 7
104129 [일반] 나의 세상은 타인의 세상과 다르다는 걸 [28] 글곰8660 25/04/28 8660 46
104127 [일반] PGR21 대표 덕후들의 모임☆ 덕질방 정모 후기 (움짤있음) [37] 요하네스버그7995 25/04/28 7995 46
104126 [일반] SK텔 해킹 사태에 대응한 보안 강화 요령 [42] 밥과글11611 25/04/28 11611 19
104125 [일반] 종말을 마주하며 살아가기 [38] 잠봉뷔르8433 25/04/28 8433 19
104124 [일반] 역대 최악의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고 [71] 나미르11142 25/04/28 11142 8
104123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3) - 미완의 꿈, 제무왕 유연 2 [3] 계층방정2360 25/04/27 2360 5
104122 [일반] 심히 유치하지만 AI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2] Love.of.Tears.4902 25/04/27 490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